이 영화는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독일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여러모로 원작에 못 미치긴 하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천사 연기는 어색하지는 않지만 배우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어쩔 수 없이 느끼하다. 화면 구성(그걸 전문 용어로 미장센이라고 하나?)도 감탄할 정도였던 원작에 비하면 뭔가 엉성하다. 원작에서의 사랑은, 영생불사(永生不死)의 천사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수많은 이유 중 하나였지만 이 영화에서는 유일한 이유가 되었다. 이것이 이 영화를 원작보다 더 가볍게 만들어 버린 대신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쉽게 사게 한다.
영원히 죽지 않는 자들이 바라보는 끝이 있는 삶이라는 것, 죽음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던 1987년의 영화는 그 역설적인 면 때문에 큰 울림을 던졌다. 인생에 대한 철학적이고 심오했던 독일 영화가 1998년에 할리우드로 넘어오면서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로 바뀐 셈이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 천사들이 모여 있는 도서관, 힘들고 지칠 때마다 우리에게 다가와서 터치함으로써 그들의 임무를 하는 천사들, 그리고 먼저 천사에서 사람이 된 사람 등 상당 부분을 원작 영화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문제는 원작에서는 인상적이었던 장치들이 주제가 바뀐 영화에 수정 없이 그대로 옮겨지다 보니 뒷부분에 가서는 다소 혼란스럽기도 호러(horror)스럽기도 하다는 것이다. 의외의 부분에서 묵직한 감동을 주던 영화가 미국에서 다시 만들어지면서 다소 우스꽝스럽게 변한 부분이 있다.
비평가들의 비판을 받는다는 것은 종종 대중의 호응을 일정정도 유도해 낼 수 있다는 점일 수도 있다. 물론 100%는 아니지만 그런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이 영화 또한 그렇다. 너무 진지해서 다소 지루하기조차 느껴졌던 원작에 비해 이 영화는 약간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훨씬 더 말랑말랑해졌다.
마음에 남는 장면 하나. 음식을 먹으면서 어떤 맛이냐고 묻는 세스에게 메기는 배(pear)맛이라고, 배 맛을 모르냐고 묻자 세스는 말한다. 당신이 느끼는 것이 나와 같은 것인지 궁금하다며 묘사해 보라고. 그 당시를 모면하고자 순간적으로 한 말일 수 있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유효한 말 아닌가. 내가 느끼는 것을 당신도 똑같이 느끼는지. 우리가 입으로는 똑같은 단어를 말하고 있지만 가슴에 떠올리는 느낌도 같은 것인지.
마음에 남는 장면 둘. 현미경으로 피를 관찰하며 둘이 나누는 말. 현미경으로 보이는 혈액 속 세포 하나하나가 나이고, 그 사이사이도 나라는 말. 이 영화에서는 feeling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도 나오는데 feeling이란 결국 세포 하나하나의 떨림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