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
이영표.이승국 지음 / 홍성사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

 

이영표 선수에 대해서는 성실한 선수, 그리고 크리스천 이렇게 두 가지 인식이 함께 있었다. 전자에 대해서는 누구나 좋아하지만 후자는 분명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인지 한때 안티크리스천이었다는 의외의 이야기가 놀랍기도 했고 친근감이 가기도 했다. 이 책은 이영표의 한 팬이 이영표 선수와 1주일가량 머물면서 그를 인터뷰한 책이다. 그래서인지 흔한 자서전과는 달리 스스로를 부풀리는 점이 없어서 좋았고 (물론 책을 읽으면서 느낀 이영표 선수는 그럴 리가 없는 선수라는 생각이 들지만) 열 살 가까이 어린, 하지만 또 마냥 어리지는 않은 팬의 눈으로 보았기에 다른 인터뷰보다 신선했다. 이영표 선수 입장에서도 막내 동생에게 차근차근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주는 편에 가까웠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노력, 물론 대단하지만 세계를 누비는 한국의 모든 선수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그의 ‘생각’이었다.

“노력을 많이 하면 노력에서 오는 자신감이라는 게 확실히 있어.”

“나는 백퍼센트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결정을 미루는 편이야. 그래서 흐지부지 끝난 일들도 있긴 하지만, 후회하지 않을 만큼 확신이 오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아.”

“노력을 하면 자신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자신감을 영원히 지켜주진 못해. 더 큰 자신감을 가지려면 막연한 무엇이 아니라 스스로 안심할 수 있는 진짜 실력이 있어야 하거든.”

“‘진짜’ 실력은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어. 심지어 자신도 모를 수 있고. 나는 자신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실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청년 시절에는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 하고 싶은 건 정말 많은데 해야 하는 것과 부딪힌단 말이야. 그러면 후자를 선택하는 게 지혜롭다고 생각해.”

“지금 뭔가 많이 하고 싶은 건 20대의 에너지가 없어지기 전에 그런 것들을 하고 싶은 것뿐이거든. 근데 사실 지금 하고 싶은 것 대부분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

양희은이 노래한 ‘봉우리’를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시대를 풍미하는 사람은 ‘진짜’ 노력하면 결국에는 될 수 있어. 근데 전설적인 사람이 되느냐 못되느냐는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냐. 너한테 허락된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야. 그리고 전선이 된 사람들의 재능은 인정해주면 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비빔밥 유랑단 - 255일, 세계 24개 도시, 8770그릇, 100번의 비빔밥 시식회 성공 스토리
비빔밥 유랑단 지음 / 담소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요즘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하라고 권합니다. 온 사회가 도전을 권유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오죽하면 ‘도전의 과잉’이라는 표현까지 있겠습니까.

그런데 과연 도전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단순히 위기를 감수하고서라도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도전일까요? 아, 그럼 어느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까지 도전으로 포함시키면 어떨까요?

도전의 점위는 참 넓고도 애매합니다. 제가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은 도전은 그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알게 되었을 뿐이지, 그들에게 있어 진짜 도전은 그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가치와 현재의 나를 이어줄 징검다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계획입니다.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 속에 징검다리가 많으면 가는 길이 좀 더 쉬워질 것이고, 징검다리가 적으면 건너는 데 애를 먹겠지요. 그래서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어쩜 그렇게 겁이 없느냐고. 하지만 어찌 겁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겁내는 부분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제가 정말 겁나는 것은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원했던 것이 아닌 것들로 가득 채워지는 저의 인생입니다.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도전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도전처럼 보이는 것만 골라 하는 것은 너무 비겁하고 어리석어요. 도전을 할 때 필요한 것은 뭔가를 해서 성공하겠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그것을 하다가 실패하더라고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본문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 개정신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늦은 밤, 아니 이른 새벽, 잠은 오지 않고 외로워 미칠 것 같다.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자니 너무 힘들고, 밖에 나가자니 무섭고, 누군가에게 전화로 문자로 위로받고 싶은데 미안해서, 또 답문이 바로 안 올까봐, 민망해서, 연락도 못하겠다. 그 모든 것을 무릅쓸 만한 사람도 없다. 남들도 다 이런 건지, 아니면 내가 유독 예민한 건지, 외로움이라는 것이 비록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 잘 알지만 이렇게 자주 강하게 느낀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지, 과연 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죽기 전에 만날 수나 있을지, 끝끝내 못 만난다면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외로울 때마다 찾게 되는 책이 공지영의 책들이다. 그러나 이 책만큼은 지금의 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녀의 소설이나 여타 산문집과는 달리, 이 책은 그녀 자신의 넋두리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녀의 딸이나 독자들로 청자를 한정시켜 놓았기 때문에 이전의 책들이 쏙쏙 마음에 와 닿았다면, 이 책은 그녀의 감정이 흐르는 대로 흘러 한참 어지러운 마음의 내가 귀 기울이기는 힘들다. 마치 술에 취해, 감정에 취해, 힘들게 늘어놓는 친구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 것처럼. 그 이전의 책들이 독자를 위로한다면, 이 책은 작가가 자신을 위로하며 쓴 글 같다. 나의 일로도 번잡스러운데 남의 가슴앓이까지 들어주기에는 지금의 나는 너무나 벅찬 것 같다. 남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스킬이 필요하고, 남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으려면 정제된 말보다는 두서없을지언정 쏟아지는 말들로 인해 내 마음이 풀어지는 법인데, 이 책은 후자인 것 같다. J는... 그녀 자신이거나, 아니면 작가 스스로 위로받고 싶은 어떠한 존재가 아닐까. 많은 독자들에게 공지영이 그래왔듯이.

 

 

 

 

 

 

 

 

 

 

 

나를 버리고, 빗물 고인 거리에 철벅거리며 엎어진 내게 일별도 남기지 않은 채 가버렸던 그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지요. 그가 죽는다는데 어쩌면 그가 나를 모욕하고 그가 나를 버리고 가버렸던 날들만 떠오르다니. 저 자신에게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리고 그의 죽음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지만 그러나 그것 역시 진실이었습니다. 죽음조차도 우리를 쉬운 용서의 길로 이끌지는 않는다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이토록 끈질기며 이기적이란 것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다만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직 다 용서할 수 없다 해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입니다. 우리 생애 한 번이라도 진정한 용서를 이룰 수 있다면, 그 힘겨운 피안에 다다를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이별로 향하는 길이라 해도 걸어가고 싶습니다.

 

저는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만, 그리하여 슬퍼지고 말았습니다.
책을 덮고, 살아온 모든 생애의 힘을 다해서 오래도록 움켜쥐고
있었던 손을 폈습니다.
내가 움켜진 많은 것들..
결혼에 대한 집착, 행복한 가정에 대한 집착. 돈에 대한 집착.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집착,
심지어 도덕적으로 옳고 착하기까지 해야 한다는 그 끔찍한 집착까지!
그러고 나자 마지막으로 억울하고 가련한 희생자가 되고 싶은
저의 교활한 얼굴이 드러났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지요.
그것은 제가 그토록 경원하던 무책임한 삶의 다른 이름이었으니까요.
제 온 몸에서 푸릇푸릇한 녹즙들이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던 나날이었습니다.

 

신이 저를 사랑하시고 제가 진실에 가까이 근접하기를 원하셨다면
고만고만한 행복에 제가 머무르도록 허락하셨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완전을 향해 나아가고자 할 때,
불완전함만큼 더 큰 동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래오래 앓았고
그러나 이제는 회복기에 들어선 환자처럼 담담하고 맑아지고 있습니다.
씩씩해지고 많이 웃을 수 있습니다.
가끔 달리기도 하고
아이들과 자전거도 탑니다.
J,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은총이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진정한 외로움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 끝에 찾아 왔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거리를 기웃거리는 외로움과는 다른 것입니다. 자신에게 정직해지려고 애쓰다보면 언제나 외롭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럴 때 그 외로움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당하면 외로움이고 선택하면 고독이라고. 우리는 한참 웃었습니다만 외로우니까 글을 쓰고, 외로우니까 좋은 책을 뒤적입니다. 외로우니까 그리워하고 외로우니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어떤 시인의 말대로 외로우니까 사람입니다.

 

내가 남들보다 예민하고 내가 남들보다 감정의 폭이 격렬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에는 남들이 잘 안 쓰는 피아노 건반의
가장 낮은 옥타브부터 높은 옥타브까지 모두 두드리며 사는 부류들이 있는데
제가 그 부류에 속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글도 쓰고 그래서 남들 표현 못하는 것을 표현하는 줄 알면서도
가끔은 그것이 참 원망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생애 동안 우리는 대개 낮은 건반을 두드리는 일이
높고 경쾌한 건반을 두드리는 일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그냥 인정해버리자
저는 저 자신을 비로소 얼마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친구에게
"그러지마. 이건 진짠데 난 남들보다 더 많이 아파해"
하고 담담하게 말할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카모메 식당 - 아웃케이스 없음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카타기리 하이리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핀란드의 갈매기들은 덩치가 매우 크다. 그들은 비대한 몸뚱이로 선창가를 어기적거리며 내가 어린 시절 키웠던 고양이를 떠올리게 한다. 무려 10.2kg에 달하던 나나오라는 이름의 고양이는 온순하지도 않았고 항상 싸움을 일삼고 다녀 모두가 싫어했다. 그 고양이는 유독 나에게만 호의를 보였고, 배를 가볍게 어루만져주면 가르릉거리며 좋아했다. 난 나나오를 정말 좋아했다. 난 엄마에게도 알리지 않고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곤 했다. 결국 너무 뚱뚱해진 고양이는 죽고 말았다. 1년이 지난 후 어머니는 트럭에 치어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무척 사랑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나오가 죽었을 때보다 덜 울었던 것 같다. 그 이유가 단지 무술가였던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울지말라고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난 통통하게 살찐 동물을 정말 좋아한다. 그들이 아주 만족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우는 모습을 좋아한다. 나의 어머니는 바짝 여윈 분이셨다.”

 

인상적인 카모메 식당의 도입부이다. 이 도입부가 영화 전체를 빛나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카모메 식당의 카모메는 갈매기라는 뜻이며, ‘나’는 일본 여성 사치에로 핀란드에서 일본식 가정식 식당을 운영한다. 세상의 마지막 날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이라는 사치에는 한 달 동안 손님 없는 식당의 첫 손님에게 평생 무료 커피를 제공하겠다고 하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눌러앉은 두 명의 일본인 여성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어떤 근사한 감정을 떠올린다거나 대단한 페이소스를 느낀다거나 엄청난 반전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런 것을 기대한다면 큰 실망을 할 것이다. 이 영화는 느긋하게, 하지만 따뜻하게 세상을 관조하며, 그 시선은 딱, 여주인공 사치에의 시선이다. 식당을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상냥하게 대하되, 먼저 다가가지는 않아도 다가오는 손님들에게 음식+인정을 준다. 요새같은 세상에 저렇게 백치에 가까울 정도로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없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고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며, 결국 아무도 믿지 못해 끝끝내 외로워질 것이다. 다소 심심하고 담백하지만 포만감이 드는 영화, 꼭 오니기리를 닮았다. 별 내용도 없으면서 이런 저런 미장센과 클리세로 예쁘게 포장된 프랑스 영화는 먹으면 금방은 달콤하지만 금세 느끼하고 헛헛해지는 케이크라면, 화끈하고 감정의 극을 달리는 우리나라 영화가 뜨거운 육개장이라면, 아무런 수사가 없는 건조한 독일 영화가 짭짤한 맛 밖에 없는 빵이라면, 이 영화는 딱 오니기리이다. 일본 가정식이다. 흥분하지도 않고 담담하면서도 담백하고, 그러면서도 군데군데 양념이 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할 때 이 영화를 보면 더 짜증이 날 수도 있겠다. 힘들고 눈물이 날 때 보아도 별로이다. 그럴 때는 술이 필요하지 오니기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니까. 이 영화는 감정의 끝을 폭발시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냥 딱 주먹밥 먹을 만큼만 배고플 때, 감정이 허기질 때, 지쳐 쓰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이상하게 기운이 나지 않을 때, 집중이 되지 않고 계속 잡생각이 날 때, 저녁 시간에 한 손으로 주먹밥을 먹으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후딱 보아 버리기에 딱 적당한 영화이다.

 

* 난 핀란드가 엄청 추운 나라일 줄 알았는데 매번 나오는 청년은 반팔 티를 입고 다니고 영화 속 헬싱키는 늘 따스한 햇살이 비춘다.

** 핀란드에서는 뛰어다니는 사람이 없단다. 늘 느긋하다고. 그래서 갈매기도 살이 쪘겠지.

*** 백야 보고 싶다. 밤에도 해가지지 않고 수평선에 떠서 길게 그림자가 지는 광경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 인썸니아에서는 백야가 불면증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공포의 인자로 작용했는데 여기는 굉장히 따스한 느낌이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햇볕이 든다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리스인 조르바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도 저울 한 벌을 가지고 다니는군요. 안 그렇소? 모든 것을 자세히 재보는 버릇이죠. 안 그래요? 자, 친구, 마음을 결정하시오. 이젠 콱 정해버리라니까요!”

 

당신을 어떤 정열에서 해방시켜 좀 더 고상한 정열에 휩쓸리게 만드는 것, 하지만 그것 또한 어떤 노예 상태가 아닐까? 사상이나 인종이나 하느님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동경의 모델이 고상하면 고상할수록 우리를 옥죄는 노예의 쇠사슬이 길다는 뜻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좀 더 넓은 경기장에서 재미를 보고 까불다가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채 죽는 게 아닐까? 그럼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자유일까?

 

“그렇소, 나는 아무것도 안 믿습니다. 나는 믿는 것도 믿는 사람도 없습니다. 조르바만 믿습죠. 조르바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아서가 아닙니다. 천만에, 조금도 나을 게 없죠! 그도 다른 놈과 매한가지 짐승이죠. 하지만 나는 조르바를 믿어요. 왜냐하면 내가 다스릴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존재이고 내가 아는 하나밖에 없는 놈이니까. 그 밖의 모든 것은 허깨비지요.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들으며 이 창자로 먹은 것을 삭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허깨비지. 그렇고말고요.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싹 죽어 없어집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조르바의 말은 나를 채찍처럼 후려갈긴 것이다. 나는 그가 그토록 강인하고 그토록 사람들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그들과 함께 살고 일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존경했다. 그들과 참고 견디어 나갈 수 있도록 나는 금욕주의자가 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모두 가짜 깃털로 장식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 사람은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봤다.’나는 생각했다. 그러니 그의 두뇌는 괴상하게 뒤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온갖 경험을 고루 갖추고 있다. 마음이 확 틔었고 원시적인 대담성을 조금도 잃지 않았으면서도 심장은 크게 성장해 있었다. 우리가 아주 얽히고 설켜서 도저히 풀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문제에, 그는 마치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칼로 끊어내듯이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 그에게는 표적을 놓치는 일이 오히려 힘들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두 다리는 온몸의 무게를 받아 힘차게 대지를 꽉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야만인들이 뱀을 숭배하는 이유도 여기 있었다. 그들은 뱀이 온몸을 땅에 붙이고 있어서 틀림없이 지구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뱀은 그의 배로, 그의 꼬리로 그리고 그의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그것은 늘 대지의 어머니와 접촉하거나 어울려 지내는 것이다. 조르바의 경우도 그와 같을 게 틀림없다. 우리 교육받은 사람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새 대가리처럼 골이 비어 있는 것이다.

 

“말썽이 나는 게 질색이라고요?” 조르바는 어이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럼 도대체 주인님이 원하는 게 뭡니까? 사는 것 자체가 말썽입니다. 죽으면 말썽이 없지요. 산다는 것-그게 뭘 의미하는 건지 알기나 해요? 당신의 허리띠를 풀고 말썽을 찾아나선다는 뜻이라고요!”

 

“만약 확대경으로 당신이 마시는 물을 들여다보면-언젠가 한 기술자가 말해줬는데-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작은 벌레가 물속에 우글거린대요. 그 벌레를 보면 마시지 못하겠죠. 물을 마시지 않으면 갈증으로 속이 타들어 가겠지요. 당신의 확대경을 부숴요. 그럼 작은 벌레들이 없어질 테니까. 그러면 마실 수 있고 정신도 번쩍 들 겁니다!”

 

미래가 다가오기도 전에 미래를 엿보려고 들었던 그날 아침의 지각없는 행동이 신을 모독하는 행위처럼 여겨졌다. 어느 날 아침 나뭇등결에 붙어 있는 나비 번데기를 발견했던 적이 있었다. 나비는 빠져나오려고 번데기에 구멍을 내고 있는 참이었다. 나는 한참 기다렸다. 하지만 집을 뚫고 나오는 것이 너무 더뎌서 참기 힘들었다. 나는 허리를 굽히고 입김으로 번데기를 덥히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급히 나비집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더니 바로 내 눈앞에서 생명의 속도보다 빠른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구멍이 열리고 나비가 엉금엉금 기어나왔다. 나는 그때, 뒤로 붙은 채 구겨진 그 날개를 본 순간의 공포를 잊을 수가 없다. 불쌍한 나비는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날개들을 펴보려고 기를 썼다. 나는 그놈 위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서 입김으로 날개 펴는 것을 도우려고 들었다. 부질없는 노릇이었다. 나비가 부화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어야 했다. 그리고 날개를 펴는 일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는 작업이어야 했다. 너무 늦어버린 뒤였다. 내 입김이 나비로 하여금 날개가 온통 구겨진 채 때가 되기도 전에 앞당겨 나오도록 강요한 셈이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바동거렸지만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고 말았다. 오늘 나는 자연의 위대한 법칙을 어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깨달았다. 함부로 덤비지 않고, 성급하게 굴지 말며, 영원의 리듬을 굳게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이다.

 

난생처음으로 그 모든 것에 피도 눈물도 없으며 아무 냄새도 풍기지 못하고 전혀 인간적인 내용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푸르뎅뎅 창백하고 진공에 담긴 것처럼 텅 빈 언어들. 잡균 하나 없이 완전히 깨끗한 증류수이지만 영양분 또한 없었다. 요컨대 생명이 없는 것이었다. 가슴에서 불타는 열망이, 대지와 씨앗을 품은 열망이 그의 시에서는 그만 하나의 티 없이 정연한 지적 놀음, 기발하고 몽환적이며, 복잡한 건축물이 되고 만 것이다. 순수한 시! 인생은 단 한 방울의 피도 더럽힐 수 없는 밝고 투명한 놀이가 되어 있었다. 인간적 요소는 야만스럽고 거칠며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사랑과 육체 그리고 불만이 지르는 비명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 전에는 그토록 나에게 매력적이던 것들이 오늘 아침에는 그저 단순한 지적 광대놀음이거나 세련된 사기극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사나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살아왔다.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오직 펜과 잉크로 배우려고 했던 모든 것을 실제로 살아왔다. 내가 고독하게 의자에 눌어붙어 차근차근 하나하나 풀어보려고 했던 모든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 들고 공기 맑은 산 속에서 해결해버린 것이다.

 

“아! 내가 당신만큼만 젊다면 얼마나 좋겠소! 나는 모든 것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거요! 곧장 정면으로, 일이건 술이건 사랑이건 모든 것을 붙들겠어요.”

 

매순간 죽음은 죽어가고 생명은 새로 태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삶과 같았다. 수천 년 동안 봄이 오면 신록이 우거진 나무 그늘에서 처녀 총각들이 모여 춤을 추었다. 포플러 밑에서, 전나무 밑에서, 떡갈나무 밑에서, 플라타너스 그리고 날씬한 종려수 그늘에서 그들은 정욕에 이글거리는 얼굴로 앞으로 또 수천 년을 계속 춤출 것이다. 얼굴은 바뀌고 허물어져 땅으로 들어가지만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들의 자리를 차지한다.

 

“인간이란 얼마나 이상한 기계입니까! 그에게 빵과 술과 물고기, 홍당무 따위를 가득 먹여놓으면 그 속에서 한숨과 웃음과 꿈이 되어 쏟아져 나오잖아요. 무슨 공장 같다니까요. 발성영화가 우리 머릿속에서 틀림없이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위험한 순간에 놓였다고 생각하자 트렁크에서 하얗게 윤이 나는 뼈로 만든 십자가를 꺼내서 그걸 베개 밑에 넣어뒀던 것이다. 오랫동안 그녀는 그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것은 다 찢어진 슈미즈와 벨벳과 걸레쪽에 뒤섞여 트렁크 맨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마치 예수란 무섭도록 아플 때만 먹는 약 같았다. 먹고 마시며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동안 그것은 필요없는 약이었다.

 

“아니, 그 염병할 많은 책을 다 읽었는데도-도대체 그 책들이 무슨 소용이오? 당신은 뭐하러 그걸 읽고 있는 거요? 그런 질문에 대한 답도 쓰여 있지 않다면 어떤 것을 당신에게 가르쳐 준단 말이오? 우리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말을 해달란 말이오. 그토록 오랫동안 당신은 마술이 적힌 검은 책들을 읽느라 몸을 불살랐으니까. 50톤의 종이쯤은 거뜬히 씹어먹은 셈일 텐데! 거기서 얻은 게 뭡니까?”

 

“세상에 세 가지 인간이 있다고 봅니다. 이른바 주어진 인생을 살면서 먹고 마시고 연애하고 돈 벌고 유명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 그런 사람들이 있고, 그 다음에는 스스로의 인생을 살기보다는 인류 전체 생활에 더 관심을 쏟고 그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 있죠. 그들은 모든 인간은 같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인류를 계몽하려고 하며 사랑할 수 있는 데까지 사랑하려 들고, 그들에게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겁니다. 마지막 인간은 전 우주의 삶을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이죠. 모든 사물의 목숨, 인간과 동물과 나무와 별들, 우리는 모두가 한 목숨이고, 우리는 다같이 무서운 싸움에 말려든 한 물질이라는 겁니다. 무슨 싸움이냐고요? 물질을 정신으로 바꿔놓기 위한 싸움이죠.”

 

사위어가는 불 곁에서 나는 조르바의 말을 저울질하고 재봤다. 뜻이 많은 그 말들은 따뜻한 흙냄새를 풍겼다. 그의 존재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그 말은 인간의 따스함을 아직 지니고 있다고 나는 느꼈다. 나의 말은 책에서 나온 종이로 만든 말, 그것들은 내 머리에서 떨어지는 것일 뿐 거의 핏방울 하나 묻어 나오지 않는 그런 말들이다. 말 속에 만약 어떤 조그마한 가치가 있다면 그 속에 묻어 있는 한 점의 핏자국 덕분이다.

 

모든 것이 빗나가고 뒤틀리고 있을 때 당신의 정신을 시험하고 정신의 인내력과 용기를 관찰한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노릇인가! 보이지 않는 가장 강력한 적이-어떤 이는 그것을 하느님이라고 부르며 어떤 이는 그것을 악마라고 부르지만-우리를 파괴하려고 기습을 가하는 것 같아도 우리는 파괴되지 않았다. 비록 겉으로는 곤죽이 되도록 얻어터져도 그때마다 안에서는 정복자가 될 수 있는 우리 인간은 형용할 수 없는 자부심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외부의 재앙은 더할 수 없이 높고 뒤흔들어놓을 수 없는 행복감으로 변한다.

 

운이 없는 사람은 가련한 자기 둘레에, 난공불락이라고 스스로 믿는 방벽을 쌓아놓게 마련이다. 그는 그 속에 숨고 그의 생활에 작은 질서와 안정을 구축하려고 든다. 자그마한 행복감이다. 모든 일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처리된다. 그것은 신성불가침의 일과를 이루며 그는 안전하고 단순한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 미지의 세계로부터 밀어닥치는 맹렬한 공격을 막기 위해 견고히 방어된 이 테두리 안에서 그의 왜소한 확신은 도전을 받지 않는 지네처럼 노닥거리고 있는 것이다. 강력한 기적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정말 무서워하고 미워해 마지않는 커다란 필연적인 사실이다.

 

“천만에,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그는 말했다.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이 묶인 줄보다 더 길지도 몰라요. 그것뿐이죠. 당신은 긴 줄에 묶여 있어요, 주인님. 당신은 그 사이를 마음대로 오가니까 자유롭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당신은 그 줄을 절대 자르지는 못합니다. 그러려면 한물 살짝 간 바보가 돼야 합니다. 모든 걸 위험에 내맡겨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당신은 그렇게 강한 두뇌를 가지고 있으니 언제나 그 머리가 당신을 다스리게 될 거예요. 사람의 머리는 식료품상 같지요. 계산을 합니다. 내가 얼마를 쓰고 얼마를 내었다, 그건 곧 이 정도의 이윤 아니면 저 정도의 손해다! 머리는 조심스러운 장사꾼이지요. 절대로 가진 물건을 모두 거는 도박은 않습니다. 언제나 예비금이 조금은 있거든요. 속박의 줄은 결코 못 끊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아, 어림없는 소리지요! 녀석은 팽팽히 줄에 매달려 있는 거예요. 잡았던 줄을 놓치면 머리라고 하는 작은 악마는 갈 곳을 잃고 끝장이 나버리고 마는 거죠! 그러나 사람이 그런 유대의 끈을 끊어버리지 않는다면 인생은 무슨 맛이 남겠습니까? 카모밀차의 맛밖에 남는 게 없겠지요! 럼주 같은 향기, 당신 인생의 안팎을 뒤집어놓고 맛본다는 것은 턱도 없는 일이죠!”

나는 거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조르바가 한 말은 구구절절이 옳았다. 어렸을 때 나에게는 온갖 광기, 초인간적인 욕망이 가득하여 도무지 세상에 만족하질 못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침착해졌다. 나는 한 개의 줄을 긋게 되었다. 가능한 것을 불가능한 것과 분리했고 인간적인 것을 신적인 것에서 구분하면서 나는 내 연을 꼭 잡아당겼다. 달아나지 못하게.

 

이성이라는 영원한 소매상인은 마치 우리가 마녀와 늙은 여자를 비웃듯이 정신과 영혼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괴벽이 있는 노파들을 비웃듯이 말이다.

 

처음 나는 화가 났다. 수백만 사람들은 그들의 육체와 정신을 지탱할 빵 한 쪽이 없어 쓰러져가고 있는데 나더러 예쁜 녹옥 하나를 보러 수천 마일의 여행길을 떠나라고 전하는 전보가 오다니! 아름다움 따위는 지옥에나 가라지! 도무지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인간의 고통에 대해선 한 가닥 관심조차 없거든.......하지만 나는 곧 너무 놀라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내 안에 숨어 있던 야생의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나더러 가자고 보챘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나는 대담하게 나서질 못했다. 나는 속에서 외치는 신성한 야만의 목소리에 따르지 않았다. 나는 생각 없는 고상한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성의, 온건을 취하며 차디찬 인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나는 펜을 들고 조르바에게 가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랬더니 조르바의 답장이 왔다.

당신은 고작 펜대 놀리는 재간밖에는 없는 사람이오. 당신도 일생의 한 번쯤은 녹옥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으련만 가련하게도 그걸 보지 못했던 거예요. 참 환장할 노릇이죠. 할 일이 없을 때면 나는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세상에 지옥이라는 게 있을까 없을까? 하지만 당신의 편지가 오고 난 다음 나는 말했습니다. 정말 몇 사람 안 되는, 주인님 같은 펜대 운전사들에게는 틀림없이 지옥이 있을 거라고요.

 

창문을 바다 쪽으로 열어놓으니 교교한 달빛이 방 안에 넘치고 바다 또한 행복한 듯 속삭이고 있었다. 수영을 너무 많이 해서 내 몸은 관능적으로 피로해 있었으며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