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 개정신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늦은 밤, 아니 이른 새벽, 잠은 오지 않고 외로워 미칠 것 같다.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자니 너무 힘들고, 밖에 나가자니 무섭고, 누군가에게 전화로 문자로 위로받고 싶은데 미안해서, 또 답문이 바로 안 올까봐, 민망해서, 연락도 못하겠다. 그 모든 것을 무릅쓸 만한 사람도 없다. 남들도 다 이런 건지, 아니면 내가 유독 예민한 건지, 외로움이라는 것이 비록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 잘 알지만 이렇게 자주 강하게 느낀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지, 과연 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죽기 전에 만날 수나 있을지, 끝끝내 못 만난다면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외로울 때마다 찾게 되는 책이 공지영의 책들이다. 그러나 이 책만큼은 지금의 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녀의 소설이나 여타 산문집과는 달리, 이 책은 그녀 자신의 넋두리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녀의 딸이나 독자들로 청자를 한정시켜 놓았기 때문에 이전의 책들이 쏙쏙 마음에 와 닿았다면, 이 책은 그녀의 감정이 흐르는 대로 흘러 한참 어지러운 마음의 내가 귀 기울이기는 힘들다. 마치 술에 취해, 감정에 취해, 힘들게 늘어놓는 친구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 것처럼. 그 이전의 책들이 독자를 위로한다면, 이 책은 작가가 자신을 위로하며 쓴 글 같다. 나의 일로도 번잡스러운데 남의 가슴앓이까지 들어주기에는 지금의 나는 너무나 벅찬 것 같다. 남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스킬이 필요하고, 남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으려면 정제된 말보다는 두서없을지언정 쏟아지는 말들로 인해 내 마음이 풀어지는 법인데, 이 책은 후자인 것 같다. J는... 그녀 자신이거나, 아니면 작가 스스로 위로받고 싶은 어떠한 존재가 아닐까. 많은 독자들에게 공지영이 그래왔듯이.

 

 

 

 

 

 

 

 

 

 

 

나를 버리고, 빗물 고인 거리에 철벅거리며 엎어진 내게 일별도 남기지 않은 채 가버렸던 그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지요. 그가 죽는다는데 어쩌면 그가 나를 모욕하고 그가 나를 버리고 가버렸던 날들만 떠오르다니. 저 자신에게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리고 그의 죽음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지만 그러나 그것 역시 진실이었습니다. 죽음조차도 우리를 쉬운 용서의 길로 이끌지는 않는다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이토록 끈질기며 이기적이란 것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다만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직 다 용서할 수 없다 해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입니다. 우리 생애 한 번이라도 진정한 용서를 이룰 수 있다면, 그 힘겨운 피안에 다다를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이별로 향하는 길이라 해도 걸어가고 싶습니다.

 

저는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만, 그리하여 슬퍼지고 말았습니다.
책을 덮고, 살아온 모든 생애의 힘을 다해서 오래도록 움켜쥐고
있었던 손을 폈습니다.
내가 움켜진 많은 것들..
결혼에 대한 집착, 행복한 가정에 대한 집착. 돈에 대한 집착.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집착,
심지어 도덕적으로 옳고 착하기까지 해야 한다는 그 끔찍한 집착까지!
그러고 나자 마지막으로 억울하고 가련한 희생자가 되고 싶은
저의 교활한 얼굴이 드러났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지요.
그것은 제가 그토록 경원하던 무책임한 삶의 다른 이름이었으니까요.
제 온 몸에서 푸릇푸릇한 녹즙들이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던 나날이었습니다.

 

신이 저를 사랑하시고 제가 진실에 가까이 근접하기를 원하셨다면
고만고만한 행복에 제가 머무르도록 허락하셨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완전을 향해 나아가고자 할 때,
불완전함만큼 더 큰 동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래오래 앓았고
그러나 이제는 회복기에 들어선 환자처럼 담담하고 맑아지고 있습니다.
씩씩해지고 많이 웃을 수 있습니다.
가끔 달리기도 하고
아이들과 자전거도 탑니다.
J,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은총이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진정한 외로움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 끝에 찾아 왔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거리를 기웃거리는 외로움과는 다른 것입니다. 자신에게 정직해지려고 애쓰다보면 언제나 외롭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럴 때 그 외로움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당하면 외로움이고 선택하면 고독이라고. 우리는 한참 웃었습니다만 외로우니까 글을 쓰고, 외로우니까 좋은 책을 뒤적입니다. 외로우니까 그리워하고 외로우니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어떤 시인의 말대로 외로우니까 사람입니다.

 

내가 남들보다 예민하고 내가 남들보다 감정의 폭이 격렬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에는 남들이 잘 안 쓰는 피아노 건반의
가장 낮은 옥타브부터 높은 옥타브까지 모두 두드리며 사는 부류들이 있는데
제가 그 부류에 속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글도 쓰고 그래서 남들 표현 못하는 것을 표현하는 줄 알면서도
가끔은 그것이 참 원망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생애 동안 우리는 대개 낮은 건반을 두드리는 일이
높고 경쾌한 건반을 두드리는 일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그냥 인정해버리자
저는 저 자신을 비로소 얼마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친구에게
"그러지마. 이건 진짠데 난 남들보다 더 많이 아파해"
하고 담담하게 말할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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