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 - 아웃케이스 없음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카타기리 하이리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핀란드의 갈매기들은 덩치가 매우 크다. 그들은 비대한 몸뚱이로 선창가를 어기적거리며 내가 어린 시절 키웠던 고양이를 떠올리게 한다. 무려 10.2kg에 달하던 나나오라는 이름의 고양이는 온순하지도 않았고 항상 싸움을 일삼고 다녀 모두가 싫어했다. 그 고양이는 유독 나에게만 호의를 보였고, 배를 가볍게 어루만져주면 가르릉거리며 좋아했다. 난 나나오를 정말 좋아했다. 난 엄마에게도 알리지 않고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곤 했다. 결국 너무 뚱뚱해진 고양이는 죽고 말았다. 1년이 지난 후 어머니는 트럭에 치어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무척 사랑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나오가 죽었을 때보다 덜 울었던 것 같다. 그 이유가 단지 무술가였던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울지말라고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난 통통하게 살찐 동물을 정말 좋아한다. 그들이 아주 만족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우는 모습을 좋아한다. 나의 어머니는 바짝 여윈 분이셨다.”

 

인상적인 카모메 식당의 도입부이다. 이 도입부가 영화 전체를 빛나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카모메 식당의 카모메는 갈매기라는 뜻이며, ‘나’는 일본 여성 사치에로 핀란드에서 일본식 가정식 식당을 운영한다. 세상의 마지막 날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이라는 사치에는 한 달 동안 손님 없는 식당의 첫 손님에게 평생 무료 커피를 제공하겠다고 하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눌러앉은 두 명의 일본인 여성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어떤 근사한 감정을 떠올린다거나 대단한 페이소스를 느낀다거나 엄청난 반전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런 것을 기대한다면 큰 실망을 할 것이다. 이 영화는 느긋하게, 하지만 따뜻하게 세상을 관조하며, 그 시선은 딱, 여주인공 사치에의 시선이다. 식당을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상냥하게 대하되, 먼저 다가가지는 않아도 다가오는 손님들에게 음식+인정을 준다. 요새같은 세상에 저렇게 백치에 가까울 정도로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없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고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며, 결국 아무도 믿지 못해 끝끝내 외로워질 것이다. 다소 심심하고 담백하지만 포만감이 드는 영화, 꼭 오니기리를 닮았다. 별 내용도 없으면서 이런 저런 미장센과 클리세로 예쁘게 포장된 프랑스 영화는 먹으면 금방은 달콤하지만 금세 느끼하고 헛헛해지는 케이크라면, 화끈하고 감정의 극을 달리는 우리나라 영화가 뜨거운 육개장이라면, 아무런 수사가 없는 건조한 독일 영화가 짭짤한 맛 밖에 없는 빵이라면, 이 영화는 딱 오니기리이다. 일본 가정식이다. 흥분하지도 않고 담담하면서도 담백하고, 그러면서도 군데군데 양념이 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할 때 이 영화를 보면 더 짜증이 날 수도 있겠다. 힘들고 눈물이 날 때 보아도 별로이다. 그럴 때는 술이 필요하지 오니기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니까. 이 영화는 감정의 끝을 폭발시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냥 딱 주먹밥 먹을 만큼만 배고플 때, 감정이 허기질 때, 지쳐 쓰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이상하게 기운이 나지 않을 때, 집중이 되지 않고 계속 잡생각이 날 때, 저녁 시간에 한 손으로 주먹밥을 먹으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후딱 보아 버리기에 딱 적당한 영화이다.

 

* 난 핀란드가 엄청 추운 나라일 줄 알았는데 매번 나오는 청년은 반팔 티를 입고 다니고 영화 속 헬싱키는 늘 따스한 햇살이 비춘다.

** 핀란드에서는 뛰어다니는 사람이 없단다. 늘 느긋하다고. 그래서 갈매기도 살이 쪘겠지.

*** 백야 보고 싶다. 밤에도 해가지지 않고 수평선에 떠서 길게 그림자가 지는 광경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 인썸니아에서는 백야가 불면증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공포의 인자로 작용했는데 여기는 굉장히 따스한 느낌이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햇볕이 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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