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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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전적으로 아름다운 여자는 남자에게 상상력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을 알랭 드 보통이 이 책에서 인용하였다.

 

남자 입장에서 남자 주인공의 시각으로 쓰여져 더 재미있고, 사랑에 대한 섬세한 발견도 놀라운데,

중간중간 저렇게 마음에 드는 구절까지 나오니 더 인상적이다.

 

이런 구절도 있었다. "성숙이란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받을 만한 것을 받을 만한 때에 주는 능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또 자신에게 속하고 또 거기서 끝내야 할 감정과 나중에 나타난 죄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촉발시킨 사람에게 즉시 표현해야 할 감정을 구분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있는 힘껏 삶을 영위하느라 미쳐 우리도 몰랐던 의미를 통찰하는 능력. 말하면 입만 아픈 보통의 장기이자 특기이자 취미고 개성이겠지만, 이 책이 고작 스물 다섯에 쓰여졌다는 것은 질투날 정도로 그가 천재적인 작가라고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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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이성 친구 (작은책)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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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화의 분위기는, 오래 전부터, 아주 아주 오래 전부터, 어쩌면 너무 오래 전부터 약한 불 위에 올려 놓은 어떤 음식이 설핏한 저녁 햇살 속에서 천천히 익어 가고 있는 시골 부엌의 분위기만큼이나 아늑했다."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 깊은 구절이자 이 책을 잘 설명하고 있는 구절인 것 같다.

속 깊은 이성 친구... 실제 그대로 번역한 것인지 아니면 의역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참 함축적이면서도 시적이고 책 안의 모든 이야기를 포괄하는 내용인 것 같다.

40편 정도의 짤막짤막한 이야기들. 이야기들은 대체로 한 장을 넘어가지 않고,

삽화는 그 이야기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잡아낸다.

 

기-승-전-결 이 없고 단지 남녀 사이의 스쳐지나가는 짧은 순간,

어쩌면 그 순간은 사람에 따라서 평생을 뒤흔들 순간이 될 수도 있고

뇌 속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저 날아가버릴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그 순간을 작가답게 포착하여 두고두고 펼쳐보고 싶은 이야기책을 만들었다.

 

동성이 아닌 이성, 그러나 아직 연인은 아닌 친구, 격렬하고 열정적인 사이는 아니지만

꼭 거기에 있어서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아직 정의되지 않은 우리 사이를

침착하게 관조할 수 있는 속 깊은, 그런 이성 친구. 누구나 그런 존재를 꿈꾸고

어쩌면 그 이상을 바랄 수도 있고. 이 책은 오늘같은 봄보다는 가을에 어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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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 ㅣ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 자크 상뻬 지음, 김호영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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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이 1969년에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놀랄 것이다. 다정다감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 최소한의 선과 색만 사용했지만 따스함이 넘치는 그림. 한마디로 '우정'에 대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알맞는 책, 이 책이 최근도 아닌 40년도 더 전에 만들어졌고 지금 봐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는 것. 아마도 첫번째 이유는 책이 훌륭해서일 것이고, 두번째 이유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우리 반에는 이 책의 주인공처럼 걸핏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물론, 그 아이는 시도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아니었다. 흔히들 얼굴이 빨개지는 바로 그런 상황이 유독 그 친구에게는 좀 잦았다. 그만큼 순수하고 또 순진한 친구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친구에게 역시 우리 반의 한 여자아이가 선물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선물한 때가 남자아이의 생일이거나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그리고 두 친구가 사귀거나 소위 말하는 "썸을 타는" 사이도 아니었다. 물론 그 시대에는 그런 말도 없었지만. 여자아이가 선물을 주기 전부터 이 책에 대해 이야기했고, 선물을 주는 그 과정을 내가 전부 목격했던 것은 내가 남자아이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었다거나 그 여자아이가 내 절친이었던 이유는 아니었고 오로지 내가 앉은 자리가 그 둘의 중간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 둘은 바로 붙어 앉아있지는 않았지만 각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한 정도의 자리에 있었고, 내 자리는 그 둘의 중간쯤이었다. 그리고나서는? 별 일 없었다. 그걸로 끝.

 

약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이 책을 다시 보자마자 그 때의 일이 어제처럼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된 아이들이 등장하는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이 나오기 전까지 얼굴 빨개지는 아이의 절친인 재채기하는 아이는 당연히 여자아이인 줄로만 알았다. 내 고등학교 동창 중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에게 책을 통해 마음을 표현한 것이 분명했을 것이기에. 아마도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에게 호감이 있었을 것이고 남자아이는 아니었겠지. 물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기억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언급한 책도 아니고, 나와 절친했던 여자아이가 좋아했던 책도 아니고 사실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책이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고등학교 때의 그 일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지고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각색되어 기억에 남아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내가 그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씁쓸하거나, 부끄럽거나, 안타까운 느낌이 전혀 없이 그저 갑남을녀의 예쁜 한 때로만 기억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작 당사자들은 그 일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하지만, 아마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둘 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몇 년이 흘렀고 사회인이 되면서 남자아이도 여자아이도 그 때와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남자아이는 순수의 시절을 지나 더 이상 얼굴이 빨개지지 않을 수도 있고 여자아이도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먼저 선물을 하기보다는 선물을 받아내는 방법을 터득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일은 분명히 둘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40년이 넘어선 생명력을 지닐만큼 훌륭한 책이니까. 남자아이는 소장가치가 분명한 이 책을 버리지는 않았을 것 같고 자기 방 책꽂이 한 편에서 볼 때마다 그 때 기억을 떠올릴 테니까. 여자아이는 이 책을 소개하는 예능 프로를 볼 때마다, 어쩌면 서점의 스테디셀러 코너를 지날 때마다 그 때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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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 세상에서 제일 큰 축복은 희망입니다 ㅣ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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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아름답고 눈물겹고 소중한 책이다.


 

-선생님은 이제껏 계속 항암치료 중에 영미시산책을 쓰셨잖아요. 어떻게 견디십니까?

“재미있는 것은, 항암치료도 자격을 필요로 해요. 단단히 맘먹고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백혈구 지수가 낮게 나와서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그게 제일 안타까웠지요. 방사선 치료 때도 힘들었구요. 척추에 방사선을 쪼이면 식도가 탑니다. 물 한 방울만 먹어도 마치 칼을 삼키는 듯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새벽에 먼동이 뿌옇게 밝아오는 창 밖을 보면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보내나, 참으로 한심했지요. 그렇지만 오늘 하루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다시 살아보자, 그러면 내일은 나아지겠지, 그런 희망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다 보면 고통이 끝날 때가 있으리라고 믿었어요.”

-이제 칼럼을 끝내고 나면 무얼 하실 건가요.

“일단은 항암치료를 끝내야겠지요. 아직 반 정도밖에 치료를 받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이 시들로 정말 예쁜 그림이 들어가는 아름다운 책을 만들고 싶어요...”

위 글은 2005년 5월 말, 조선일보에 1년간 연재하던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을 끝낼 때 박해현 기자님이 쓰신 ‘본지 칼럼 끝내는 장영희 교수’라는 제목의 기사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지금 이 기사를 읽어보니 참으로 신기합니다. 정말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는 동안 도합 스물네 번의 항암치료가 끝나고, 정말로 이렇게 예쁜 그림이 들어간 예쁜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이던 고통이었지만, 분명 끝이 있었습니다.

한 달 전쯤인가요, 이 책의 교정을 보고 있는데 출판사 편집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이 책은 희망에 관한 시들을 모았으니까 제목을 ‘희망’으로 하면 되겠지요?”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희망에 관한 시들이니까 ‘희망’이라는 제목을 준다-그것은 암만 생각해도 너무 멋대가리 없고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전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운치 없고 재미없습니다. 아니, 무엇보다 시집의 제목인데 너무 ‘시적’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시는 그렇게 사전적이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는 정보 위주의 선전문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상을 보고 그냥 ‘이건 책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시가 될 수 없지요. 그 책상에서 친구와 함께 공부했던 추억, 그 친구의 얼굴, 그 시간의 소중함을 떠올리며 그 책상에 대해 마음과 이미지로 말하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그래서 시는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웅변으로 말하기보다는 한 발자국 물러서서 조그만 소리로 말하는 것, 신작로처럼 뻥 뚫린 길을 놔두고 향기로운 오솔길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시인 칼 샌드버그는 시란 문을 활짝 열고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살짝 문을 열었다 닫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상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희망을 그냥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을 활짝 열고 들여다보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다가 며칠 전 책상에서 문득 사서함 주소가 적힌 봉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청송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재소자였습니다. 선생님이 병중에 있다는 것을 신문에서 읽었다는 말, 평소에 선생님 글을 좋아했는데 참 안타깝다는 말, 용기를 가지라는 말 등을 달필로 적어 내려가다가 그분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이곳에서 제가 드릴 수 있는 선물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것처럼 큰 축복이 어디 있겠어요.”

축복-갑자기 내 머리위로 향기로운 꽃 폭죽이 처지듯, 그냥 듣기만 해도 마음을 기쁘고 설레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희망이 축복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어쩌면 신이 우리에게 준 최대의 축복입니다. 희망을 가짐으로써 내가 더 아름다워지고, 그리고 그렇게 아름다워진 내가 다시 누군가를 축복하고(축복은 늘 내가 나 스스로에게가 아니라 남에게 주는 것이기에), 그래서 더 눈부신 세상을 만나고 더 아름답게 살아가라고 신이 내리신 축복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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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스 투 줄리엣 - 일반판 - 아웃케이스 없음
개리 위닉 감독, 아만다 사이프리드 외 출연 / UEK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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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사랑스럽고, 배경은 아름답고, 음악은 감미롭고, 이야기는 매혹적이다.

 

이렇게도 사랑에 빠질 수 있구나.

 

몇 년 전 개봉했을 때 이런 흔한 러브스토리는 굳이 돈 주고 볼 필요 없다며 외면했는데 지금 내가 일부러 이 영화를 찾아 보기까지 내 자신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나보다. 내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혹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서 일어났을 마음의 움직임들.

 

뻔한 스토리라도 좋다. 영화에서만 가능한 해피 엔딩이라도 좋다. 심금을 울리는, 인생을 관조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도 좋다. 그저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 한없이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이야기. 한때는 이런 이야기를 무시했는데, 그런 태도가 쿨하다고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갈구하게 되었다. 나의 변화. 나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고 나의 처지가 변함으로써 생기는 나의 변화, 때문이겠지.

 

영화를 보고 나면 이탈리아에 가고 싶어진다. 20대 초반에 갔었던 대학생 베낭 여행의 코스, 로마와 베니스 말고. 영화 속 소피의 일정을 따라 나도 베로나에 가서 줄리엣의 비서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고 시에나를 돌면서 클레어의 첫사랑 찾기에 동참하고 싶고 찰리를 찾기 위해 다시 이탈리아를 오고 싶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영화. 눈으로 보고 머리로 가기도 전에 마음을 울리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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