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 마스다 미리 산문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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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을 넣지 않는 날, 이 것 무척 공감갔다.

 

정신없는 일정으로 이어지는 날들 속에 여유롭게 생각할 시간이 없어서 불안해졌고, 그래서 일정을 넣지 않는 날을 미리 일정에 넣어두기로 했다고. 일주일 중 이틀은 집에서 자리잡고 앉아 일을 하거나, 멍하니 있거나, 책을 읽는 날로 하자는 것. 아, 이거 정마 좋은 아이디어다. 물론 프리랜서이고 부양가족이 없어서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거침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혼자서 낑낑대는 시간을 어느 정도 확보해둔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일이다. 달력에 미리 적어두고, 저자처럼 '그날은 약속이 있다'며 다른 날을 잡게 된다는 것. 실제로 이 날만큼은 쉬어야지, 했다가 마음대로 안 된 적이 많다. 아직 젊고 밖에서 새로운 것을 하고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내가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어쩌면 지금 바로 이 순간, 온전히 나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찰나의 시간조차도 사치처럼 느껴지는 나의 요즘 모습 때문에 지쳐서이기도 하겠다.

 

나이 먹는 이야기, 이 것도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부분인데, '작년에 입었던 옷이 갑자기 안 어울리게 되었다', '요즘은 등에 살이 찌기 시작했다', '갑자기 흰머리가 늘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만날 때마다 의외로 즐겁게 하고 있다고. 그 이유는 새로 나온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처럼 이제 젊은이가 아닌 '새로운 자신'을 얘기하며 노는 것이라고. 나이 들어가는 자신이 새로워서라고. 나만의 편견이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이 한탄을 하거나 좌절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재미있어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이 작가만의 여유일지도.

 

책 제목이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다. 43세의 작가는 일본에서 3~40대 여자들의 일상을 만화로 그리거나, 에세이로 쓰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나 나이가 많은(죄송!) 여성이 마치 소녀처럼 상처를 받거나 기뻐하는 모습이 생소했다. 이미 다 큰 어른인데 무슨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다는 것인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대놓고 이야기는 못하겠지만, 결혼하고 자식을 낳지 않으면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데 그런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런데 책을 읽기 바로 얼마 전에, 이미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여자 개그우먼이 소소하게 예쁜 메모지나, 스티커를 사며 아주 작게 남아 있는 소녀감성을 되살린다는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결혼했고, 아이도 있고, 심지어 본인 스스로 살고 있는 집의 대출을 갚아나가야 하는 생계형 개그우먼이라고 하고, 남들을 웃기고 무대에 서기 위해 때로는 뻔뻔해져야 하는 개그우먼에게서 의외로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철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고, 열심히 자신과 일과 가족에 충실하는 워킹맘. 아마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철없는 남편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가운데에서도 표정만은 밝았던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나이가 적든 많든, 결혼을 했든 혼자 살든, 자식이 있든 없든, 남자든 여자든 간에 소년 소녀 감성을 간직하는 것은 어쩌면 버거운 사회 생활을 해 나가는데 최소한의 환풍구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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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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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 문을 연 가게는 다음 달에는 다른 가게로 바뀔 수 있고, 올해에 준공식을 한 건물은 몇십 년 뒤에는 흔적조차 없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별들조차도 빛을 잃고 붕괴됩니다. 이것이 현상의 무상함의 진리입니다. 사랑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움도 영원하지 않으며, 불행한 기분과 행복한 감정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마음의 무상함의 진립입니다.

몸이 아플 때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몸이 나아져 갈 때 "그래, 이거야."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살아 있는 한 조만간 또다시 아플 일이 있을 것입니다. 등이 결리고 허리가 쑤실 것입니다. 행복에 매달리지 말고, 불행을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다만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십시오. 행복은 행복이고, 불행은 불행일 뿐입니다. 그것에 좋고 나쁨을 대입할 때 고통과 불만족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나쁜 습관입니다. 그것들에 얽매이지 말고 다만 지켜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인디언들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 전혀 생색내지 않고 상대방의 눈에 띄는 곳에 말없이 놓아두고 간다고 합니다. 무슨 뜻을 달거나 이유를 붙여서 선물을 전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불교적인 표현을 빌리면 '무주상보시'입니다. 베푼다는 생각 없이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현재 행복하지 못하고 불행한 것은 아직 오지도 않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입니다. 이런 걱정 근심을 가불해 쓰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라는 시간이 소멸되고 없습니다.

 날마다 다른 사람과 무엇이든 나누라.

 혼자인 경우에는 누구에겐가 편지를 쓰거나 전화라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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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리나 - The Ruby Collection
빌리 와일더 감독, 오드리 헵번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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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사랑이나 인새에서 도망치지 않겠다."

 

공부가 너무나 안 되고

좌절하여 우울한 기분이 노력해도 가시지 않는 하루에

며칠 전부터 있었던 매너리즘까지 겹쳐 있어서

가지고 있던 DVD를 보게 되었다.

멍하니 보다가 오드리 헵번의 이 대사를 듣고 완전히 위안이 되었다.

참, 머리로는 알고 있는 말도 왜 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으면

이렇게 한 순간에 위로가 되는 걸까.

 

이 영화는 1995년에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리메이크를 한 감독도, 배우도, 모두 당대 스타이며

그 전의 작품에서 전부 능력을 인정받았음에도

리메이크는 원작에 훨씬 못 미친다는 평을 들었다.

그만큼 원작이 가진 매력이 크다는 뜻일 게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있고,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워커홀릭으로 결혼까지 마다하는 형,

세 번의 결혼 실패로 책임은 싫고 즐기기만 하려는 동생,

그리고 맹목적이던 소녀가 야무지고 재기발랄한 여성으로 성장한 모습.

주연 배우의 외모나 연기나 훨씬 더 원작이 매력적이다.

 

리메이크 작에서 꽤 긴 시간 동안 보여준 파리의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흑백의 화면이 더 우아하고 고풍스럽다.

훨씬 더 최근에 만들어진 리메이크 작이 더 가볍운 느낌.

심지어 여자 주인공이 파티에서 입는 드레스도 수십 년 전의 오드리 헵번의 드레스는

지금 보아도 눈을 못 뗄 정도인데, 리메이크 작 드레스는 좀 실망스러웠다.

 

화면을 잡는 구도도 더 세련된 것 같고,

배우들 간 오고가는 대사들은 더 유머 있다.

사브리나의 아빠, 그리고 그 저택의 고용인들의 캐릭터도 원작은 하나하나 생생한데

리메이크 작은 마지 못해 집어넣은 느낌.

리메이크 작을 볼 때, 주인공들 사이에 흐르는 감정이 뭔가 부자연스러웠는데

원작은 그런 부분이 전혀 없고, 잔잔히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세 남녀 사이의 감정의 변화에

수긍하게 된다. 아무리 재치 있는 장면이나 대사라도 반복하면 시시해지니까,

리메이크를 하면서 빼버린 것일까, 그 때문에 1995년 작은 아무래도 어색해진 듯.

 

"일부러 혼자가 되는 남자는 없어."

이런 오글거리는 대사를 해도 절대 모양 빠지지 않는 험프리 보가트는 왜 명배우인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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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리나 (1995)
파라마운트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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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오드리 헵번의 대표작을 1995년에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사브리나 역에 줄리아 오몬드, 상대역으로 해리슨 포드가 출연하였다.

스토리만 보아서는  산드라 블록의 당신이 잠든 사이에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

두 형제 간에의 한 여자, 처음에 끌렸던 쪽이 아니라 형제의 다른 쪽과 이어지는 여자.

그리고 똑같이 90년대의 이야기.

주인공인 줄리아 오몬드의 외모도 산드라 블록과 비슷하다.

 

이런 로맨틱 코미디는 주인공의 매력과 외모가 영화를 크게 좌우하는데

아무래도 이 영화는 여러모로 그런 면에서 아쉬운 편이다.

굳이 오드리 헵번의 사브리나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영화만 놓고 보아도 많이 아쉽다.

극 중의 줄리아 오몬드의 의상만이라도,

좀 화려하거나 사치스러웠으면 오히려 눈이라도 즐거웠을까.

그 당시로서는 최신 유행 스타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채로 무채색 계열에 단순하고 절제미만 강조되어서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살리려면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강조하는 의상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줄리아 오몬드는 가을의 전설과 카멜롯의 전설에서 보고 감탄할 정도로 예쁘다고 생각했던 배우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좀 밋밋하다. 이런 아기자기한 코메디에는 어울리지 않는 배우같다. 장엄한 역사극이나, 광대한 자연에서 지성미와 건강미가 돋보이는 배우 같다. 프랑스 배우 줄리엣 비노쉬와 비슷한 느낌인데 그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버린 배우같아서 안타깝다.

 

이 영화가 여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것은 단순히 운전사의 딸과 재벌 2세의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점이 아닐 것이다. 미운 오리 새끼가 변신해서 백조가 되는 이야기, 그리고 백조가 된 후에 나를 못 알아보는 짝사랑남이 아니라 그 옆에 있던 사람이 바뀐 후에도 그 전의 내 모습을 알아봐 주는 이야기. 

 

이 영화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사브리나가 짠 하고 변신하여 나타났을 때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데이비드는 끝까지 그녀를 못 알아봤지만

슬쩍 지나가던 라이너스가 바로 알아보았던 그 장면.

그 다음으로 좋았던 장면은 별장에 가서 사진을 찍던 사브리나가

카메라가 있기 훨씬 전부터 사진을 찍어 왔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던 장면.

또 좋았던 장면은 사브리나의 아버지가 책으로 가득 차 있는 방의

커다란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도중

사브리나가 '아버지는 책을 많이 읽고 싶어서 운전사라는 직업을 택했다'는 말을 하는 장면.

그러고보니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은 전부 투샷이 아니라 원샷이구나.

남녀가 한 화면에 나와서 좋았던 장면도

주인공의 키스신이 아니라

사브리나가 파리에서 일하던 시절 데이비드의 약혼 소식을 듣고

사브리나를 마음에 두던 사진 작가 선배와 홧김에 선을 넘으려다 결국 불발된 그 장면이었다.

 

이래 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다.

원작이 흑백이었던 만큼 컬러 영화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화려하게 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정도로 주인공이 환골탈태하고, 세련된 주인공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편이 그나마 원작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정도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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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짱의 연애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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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는 인생과 낳지 않는 인생,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서른 일곱의 수짱, 연애만큼 일도 좋다, 장점만큼 단점도 좋다.

 

수짱 시리즈 네번째 이야기.

어느 새 또 일년이 흘렀다. 가게 점원에서 점장에서

이제 수짱은 유치원에서 일한다.

아이들을 상대하는 직업이라서 그런지

전체적인 톤이 참 평화롭고 좋다. 꼭 파스텔톤 느낌이랄까.

원장선생님이 텃밭을 돌보고

그 텃밭에서 수확하는 채소를 반찬으로 쓰고

원장선생님의 아내는 영양사.

그 곳에서 수짱은 급식조리사로 일한다.

 

아이들의 편식을 없애기보다

좋아하는 것을 점점 늘려주자는 것이 미도리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 둘은 비슷하면서도 같지는 않아.

생각해보면

어른이 되면 새로운 음식을 접할 일이 드물어진다.

그래서 아이들이 새로운 음식과 만나는 소중한 체험을 하는

현장에 있다고 생각하면

몸까지 긴장돼.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 전과는 다르게

수짱이 얼마나 자신의 일에 애착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어 흐뭇했다.

 

물론 고민은 여전하다.

 

결혼도 한 하고 아이도 없으면 축하받을 일이 적은 인생이야.

'축하해'라고 열심히 말할 뿐, '고마워'라고 말할 기회는 적지.

 

이 정도는 약과다.

 

결혼하지 않는 그리고, 아이도 낳지 않는 여자들은 많다.

그 영화배우도 그 탤런트도 그 작가도

이렇게 찾아보면서 안심해봤자

결국 다른 사람들 인생이지.

아이를 낳지 않는 인생이라면

나의 생리는

무엇을 위해 있는 걸까.

 

이 부분은 정말 내 일처럼 마음이 아프다.

 

다만 수짱 시리즈를 읽어나가면서

한 권 한 권 읽으며 수짱은 나이가 들어가지만

오히려 그만큼 초조함은 더 줄어들고, 여유와 즐거움이 더 늘어나는 느낌이다.

왠 역설인지?

아마도 작가는 또래의 30대 여성들에게

자기 방식으로 위로와 격려를 전달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제목은 수짱의 연애지만,

여기서는 본격적인 연애보다는

잠시 썸만 타다가 끝난다.

4살 연하의 서점 직원, 그러나 애인이 있다.

예전 직장에서부터 점장이었던 수짱을 마음에 은근히 들어했고,

1년만에 우연히 다른 서점에서 마주치며 번호를 교환하게 된다.

약간의 밀당과 설렘이 오가고

끝나버릴 것 같던 만남에 살짝 희망이 비치면서 끝이 난다.

완벽한 해피엔딩이라면 오히려 너무 판타지였을 것 같고,

딱, 이 쯤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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