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ㅣ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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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을 읽으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책이 한 권 더 있었다.

 

둘 다 김연수 작가의 책이고, 원래 나왔던 책의 10년 후, '+'를 붙여서 다시 나온 책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나중에 나온 책만 읽었더랬다.

 

처음 나왔던 책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 후 10년을 다룬 책이 다시 나왔다는 것은 많은 청춘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는 뜻이 아닐까? 당시 청춘들은 더 이상 청춘이 아닌 나이가 되었을 테고, 나도 몇 년 뒤면 더 이상 청춘이 아닐 테지만, 어쨌든 청춘의 끝무렵에 부지런히 두 책을, 출간된 순서를 바꾸어 읽었다. 순서대로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김연수라는 작가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을 테고, 또 나중에 나온 책이 먼저 나온 책의 일부를 소개한 뒤, 그에 대한 뒷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소감은, 기대에는 좀 못 미친다는 생각? 내가 이미 청춘의 한 복판을 지나 청춘의 끄트머리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10년 후의 이야기를 먼저 읽어서인지, 전체적인 책이 색깔로 비유하자면 채도가 낮다는 느낌이다. 10년 후에 나온 청춘의 문장들이 마치 청록색의 느낌이라면, 이 책은 회갈색 같다는 느낌? 뚜렷하게 남는 문장도, 무릎을 탁 치고 싶은 구절도 없다. 힘들었던 시간이었겠지만, 그 시간에 대한 서술은 희미하여 당시에 분위기나 저자의 심정이 솔직히 잘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청춘의 문장들'에서 '문장'에 해당하는 부분도, '청춘'과 아귀가 딱 맞지 않고 약간 헐거운 문짝 같다는 느낌이다. 비슷한 책으로 공지영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책이 있는데, 작가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의 방식으로 쓰여진 이 책은 편지의 내용과 소개되는 작품들이 잘 맞물려 공지영이 소개하는 그 책들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거나, 읽지 않아도 공지영이 인용한 몇 몇 문장들은 강하게 내 마음에 살아 있다. 좀 더 강렬한 책을 원했던 나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웠던 책이었다. 굳이 작가의 '청춘'을 이야기하면서 '문장'을 인용할 때는, 그 문장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점도가 있어야 하며, 당시 작가의 삶과 착 달라붙어 있어야 할 텐데, '청춘'과 '문장'이 따로 노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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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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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소설을 알게 된 계기는 동명의 영화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박범신이라는 유명한 작가의 원작, 신인 여배우의 파격적인 노출, 그리고 영화 자체에 대한 수많은 논쟁, 그 해 모든 영화제의 신인여우상을 휩쓸어버리며 다시 한번 영화와 소설이 동시에 화제에 오르게 된 그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책을 보지 않거나 영화를 보지 않아도 '은교? 그게 뭐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찾아보니 영화의 관객수는 130만명이라고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소설의 판매 부수는 그보다는 적을 것이다. 아마도 69세의 시인이 17살 소녀를 사랑한다는 설정 자체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영화의 예고편, 그리고 평론가들의 리뷰, 영화를 보고 온 지인, 그리고 소설과 영화에 대한 수많은 기사들을 읽으면서 '은교'가 단순히 늙은 시인의 철없는 본능을 논하는 게 아니라, 젊음과 늙음, 시와 인생, 사랑과 죽음에 대해 복합적인 통찰을 담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싫었다. 왜, 왜, 인생과 사랑과 시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꼭 나이 어린 소녀와의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해야 할까, 왜 작가는 꼭 그렇게 설정을 했던 것일까, 하고 생각하자 불쾌해졌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기로 결심하기에는, 그 불쾌한 감정을 떨치려는 어느 정도의 노력이 좀 필요했다. 다 읽고 난 후에는, 놓치기에는 참으로 아까운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책을 읽으면서 늙은 시인에 대해 든 솔직한 생각은, 역겨움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다 덮고 난 후에는 노인에 대한 연민과 함께,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랑의 한 모습을 보았다는 생각이었다. 그 연민이라는 것이, 아무리 늙어도 사람은 현명해질 수 없으며,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욕정에 지고 마는구나, 하는 생각 끝에 불쌍하고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진실로 사랑을 하고, 그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었다. 참, 박범신은 놀라운 작가이며, 이 소설 또한 놀라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에게 있어 연애는 영혼으로부터 감각으로 옮겨가는지 모르지만,

 

남자에게 연애는 감각으로부터 영혼으로 옮겨간다,

 

라고 그 순간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관념적으로 연애를 상상할 때와 너무도 다른 결론이었다. 나는 은교를 만나기 전까지, 참된 연애란 남녀불문하고 영혼으로 시작된다고 믿었다. 감각은 하나의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는 은교를 통해 내가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실체 없는 관념이었는지 명백히 알게 되었다.

60년 넘게 산 노시인의 사랑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에 대한 부분이다. 이런 문장도 있다.

 

나는 그 무렵, 분명히 연애를 하고 있었고, 내게 연애란, 세계를 줄이고 줄여서 단 한 사람, 은교에게 집어넣은 뒤, 다시 그것을 우주에 이르기까지, 신에게 이르기까지 확장시키는 경이로운 과정이었다. 그런 게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나의 사랑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고유명사였다.

이 부분을 읽고 나는 확신했다. 아, 이 노인의 사랑은 진짜로구나.

 

연애를 하면서 동시에 지혜로워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잠언은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은교에게 서지우의 입술이 포개지던 일도 지워져 없었고, 유난히 더 불안한 얼굴로 나를 배웅하던 서지우도 지워져 없었으며, 카페 안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나와 은교를 어떻게 볼는지에 대한 염려도 지워져 없었다. 세계엔 나와 은교뿐이었다. 나는 구체적인 욕망을 느꼈다. 내가 지금 하려는 모든 것이 범죄라 해도 내게 공범자가 곁에 함께한다면 무슨 상관인가.

 

 

두 사람만의 상점에서 서로 만나서

두 사람만의 술을 우리들은 마신다

너는 조금 나는 많이

늘 마시는 술을 마시면서

낮에 있었던 이야기며 일의 이야기

 

남의 소문이며 내일의 스케줄을

그리고 갑자기 어둠 속에서의 입맞춤

 

-이와다 히로시, 「미혼未婚」에서

 

 

한때 좋아했던 일본 시인의 시를 나는 암송했다. 내 머리칼들이 곤두서 별에 닿았다. 나는 나의 머리칼로 우주와 나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학생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교문에서 좀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비상들을 켜두었다. 은교는 틀림없이 다른 때처럼 뛰어나올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려고 뛰어본 적이 있는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자를 향해 뛰고 있는 사람은 다 아름답다. 그러므로 사랑에는 하나의 법칙밖에 없다.

 

그것은 그리운 그를 향해 뛰는 것이다.

 

이 부분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아련하기도 하고,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69세의 나이를 뛰어넘어 이 부분만은 그 어떤 나이가 주는 현명함, 세월이 주는 웅장함이 아니라, 평생 동안 시라는 거대한 세계를 만든 사람이 아닌, 그냥 처음 사랑을 시작한 사람의 수줍음, 그리움, 설렘 만이 가득했다. 바로 뒤이어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 때문인지 대비되어 더 슬프면서 애가 탔다. 충격적인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의 진실, 분노와 슬픔의 시간이 흐른 후 시인의 사랑은 또 이렇게 말한다.

 

늙어서 힘이 없었다고 오해하지 말라. 나는 회복되었으며, 충분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애는 그 어느 때보다 치명적이라고 느낄 만큼 관능적이었고, 아무런 방비도 없었다.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의 욕망은 한껏 당겨져 있었다. 그런데도 내 몸은 고요했다. 그것은 고요한 욕망이었다. 한없이 빼앗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내 것을 해체해 오로지 주고 싶은 욕망이었다. 아니 욕망이 아니라 사랑, 이라고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비로소, 욕망이 사랑을 언제나 이기는 건 아니라는 확고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비로소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시인이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에 서지우와 은교, 세 사람간의 오해가 부른 파국이 더 비극적이고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은교가 말했듯이, 실제로 사랑한 것은 이적요와 서지우였다고. 둘의 관계는 마치 부자간의 관계 같다. 심리학적 용어인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자꾸 떠올랐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이적요 시인에게는 아들이 있었지만, 혈육보다도 피 한 방울 안 섞인 서지우를 더 사랑한 것 같다. 아버지이자 스승을 영원히 뛰어넘지 못하는 아들의 좌절과, 아버지의 여자인 어머니를 영원히 가지지 못하는 비극. 엄마가 사준 은교의 거울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문학적 감수성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문학을 희구하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참 딱하고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재능이 없는 자의 끝없는 실패와 슬픔을 생각하면 또 냉정하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답답하기도 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지지만, 이쯤에서 마쳐야지. 어쨌든 이 이야기는 '은교'를 사랑한 시인의 이야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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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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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니, 아는 것 자체는 그렇게 늦지는 않았는데 직접 들어보기까지가 오래 걸린 것 같다. 한 달에 두번 업데이트 되다가 일주일에 한 번 업데이트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데 1년이 총 52주이고 지금까지 100회를 넘겼으니 대략 2년쯤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2012년 5월 1일이 첫방송이었다고 한다. 만으로 2년을 넘겼구나, 아니 곧 3년이 되겠구나, 헤아려보니 대단하다. 단순히 길게 끌었다는 게 아니라, 이 방송은 언급된 수많은 책들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렸고, 심지어 절판이 된 책을 재출간시키는 힘을 보여줬다고. 내가 이 방송을 듣게 된 것은 얼마 전 읽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때문. 지인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고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다가 부랴부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검색창에 쳐봤는데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 관련 검색어에 뜨더라. 알고 보니 이 책을 심도 있게 다룬 방송이 있었고, 순전히 책 때문에 한 회 방송을 듣다가 반해 결국 1편부터 정주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바로 그 첫 회에서 다룬 책이 천명관의 고래. 무려 2000년대 이후 최고의 한국 장편 소설로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과 나란히 꼽힌 이 책은, 그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왠지 선뜻 읽게 되지는 않았던 책을 읽게 만들었다.

 

이 책의 줄거리는 참 요약하기 힘들다. 삼대에 걸친 이야기들, 고래로 상징되는 판타지, 그러나 한국 전쟁과 유신 시대 등 이 땅의 역사를 의미하는 수많은 장치들로 인해서 분명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화처럼 느껴지는 힘. 누군가는 그를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그가 여태까지 우리가 생각하던 소설이라는 것의 영역을 뛰어넘었다고 한다. 솔직히 읽으면서 이런 소설을 접한 적이 별로 없기에 당혹스러웠고 낯설었으며, 그로 인해 약간의 저항감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마치 마르지 않는 샘처럼 퍼도 퍼도 계속 솟아오르는 느낌이고, 그 넘치는 물에 온 몸을 다 흥건히 적시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일단 읽기 시작하면 등장 인물들이 어떻게 될 지, 결말은 어떻게 끝날지 집중하고 몰입하게 만든다. 한 줄로 요약하기가 참 힘든 책이자,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단을 뽑아내기도 힘들다. 다만, 내가 찾은 이 책의 한 부분은 이것이다.

 

춘희는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비극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육체는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의 유니폼처럼 단지 고통의 뿌리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 거대한 육체 안에 갇힌 그녀의 영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여줬던 불평등과 무관심, 적대감과 혐오를 그녀는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었을까? 혹, 이런 점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이야기꾼이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만이 세상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들은 한 줄 또는 두 줄로 세상을 정의하고자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명제가 그런 것이다.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춘희는 평등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의 탐구, 그것은 절대 간단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 중 풍부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소설가가 될 것이고 작가 또한 그런 사람이겠지, 라고 생각을 잇다 보면 그가 생각하는 소설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노파는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표정으로 옆에서 춘희가 먹는 양을 지켜보다 어느샌가 함지를 이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것이 일찍이 남의 집 부엌살이로 떠돌다 딸에게 연인을 빼앗기고 버러지처럼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지독하게 돈을 모았지만 끝내 한푼도 못 써보고 결국 그 돈 떄문에 목숨까지 잃어 한 많은 생을 마감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불에 타 죽게 함으로써 스스로 복수를 완성한 노파의 마지막 모습니었다.

 

한 노파의 세상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 거대한 이야기가 발단 전개 절정 위기를 맞게 되고, 결말에 거의 이르러서 등장한 노파의 모습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서술로 노파의 복수도, 이 소설도 종점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춘희의 이야기도 결말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벽돌을 굽는 일에 그토록 필사적으로 매달렸을까? 그녀는 그 단조로운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그 작업 안에 어떤 좋교적 희원이 담겨 있어싸면 그 바람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감동적이리만치 순정하고 치열했던 그 열정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진실이란 본시 손안에 쥐는 순간 녹아 없어지는 얼음처럼 사라지기 쉬운 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혹, 그 모든 설명과 해석을 유예하는 것만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그녀를 단순하고 정태적인 진술 안에 가둬두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만이, 또 그럼으로써 그 옛날 남발안의 계곳을 스쳐가던 바람처럼 가볍게 흩어지도록 놓아주는 것만이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아닐까?

 

종점에 다다라서, 그래서 대체 이 작가는 뭘 말하고 싶은 거였을까, 흔히 말하는 소설의 주제, 가 있다면 이 소설의 주제는 그래서 뭐란 말인가? 하고 되묻고 싶어질 무렵, 등장한 이 구절. 손안에 쥐기도 어렵고 금방 사라지고야 마는 것에 대해 구구절절 캐묻고 연구하는 게 아니라 모든 설명과 해석을 유예함으로써 더 큰 감동에 가 닿을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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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감독, 조지 클루니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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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극찬한 영화.

 

국내외 수많은 영화 산업 종사자, 평론가, 관객들이 극찬한 바로 그 영화.

 

영화관에서 놓친 게 참 아쉬웠다. DVD로 볼 때 방 안을 완전히 캄캄하게 한 상태에서 모니터만 최대한으로 크게 키우고 보기는 했지만, 내가 직접 우주에서 표류하는 것 같은 체험을 하는 것은 영화관에서 직접 보지 않고는 불가능할 테니까.

 

대략 영화관에서 보면 압도되지 않을까, 짐작은 갔다. 만약 그랬다면 정말 나도 이 영화를 보고 한 평론가처럼 별 다섯개를 주었을지도 모르지.

 

영화의 구성은 간단하다. 우주 비행사들이 사고로 표류하게 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산드라 블록이 지구로 귀환하는 과정. 아름답고 평화로운 우주 공간에서 너무도 무력하게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고요해서 편안하게 느껴지던 우주 공간의 적막함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킬 정도로 침묵만이 가득한 공간으로 전환되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온다.

 

이 영화는 딱 보아도 제작비가 많이 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비중있게 등장하는 인물도 단 두 명이며, 아마도 우주 공간 세트를 정교하게 짓는 데에만 제작비를 쏟으면 되었을 테니 마지막 장면만 제외하면 모든 장면이 실내에서 촬영되었을 테니까.

 

이런 저런 매력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과학적으로는 맞지 않는 부분이 몇 개 있는 것 같다. 그런 점들 떄문인지, 아니면 지극히 단순한 구성 떄문인지, 그도 아니면 짧은 러닝 타임 떄문인지, 나는 별 세 개 반, 그 이상을 주지는 못할 것 같다. 아마도 영화관에서 봤으면 별 네 개까지는 줬겠지만, 그래도 별 다섯 개까지는 아닌 것 같다.

 

영화관이 아니라 DVD로 보면서 좋았던 점 하나는, 영화 속에서 잠깐 동안 산드라 블록이 지구의 누군가와 통신을 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 부분이 별도의 짧은 단편 영화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아들이 이 영화의 각본을 썼고, 그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창의력 또한 유전되는 것일까. 아이디어가 참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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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3-0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이 보고 몇번이나 언급한 영화입니다.
저는 아직 못본.. 이 기회에 한번 봐야겠군요.

마고할미 2015-03-06 01:39   좋아요 1 | URL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것과 DVD로 보는 게 어마어마한 차이가 날 것 같습니다. 영화관에서 놓친 게 굉장히 아쉬웠던 영화였습니다.

[그장소] 2015-03-06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그럴테죠..그런데 미술관은 괜찮은데..영화관은 싫어요.
이제 못가겠어요.
ㅎㅎㅎ 모르죠..어느날 훌쩍 다시 자연스레 가게될런지.. 지금으론.. 그 공간이 싫으네요..아무리 압도적인 영상이 필요하다고 해도...

죄송합니다...돌연스럽죠.
느닷없이..내미는 이런 대답이요.
제 기억이 아직 거부 상태..뭐..그런가봐요.
영화는 보는데 영화관은 싫다는..몹쓸 반응에..저도 어쩔줄 모르겠어요. ^^;
한참을 영화자체도 멀리했으니..지금은
좀 좋아지고 있는 거라 봐도 될거예요..
실례가..컸습니다..정말..죄송해요.

Andrea님 말씀엔 전적으로 동감 합니다.
저..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제 문제이고요..^^

마고할미 2015-03-06 23:24   좋아요 1 | URL
소설가 김훈 선생이 씨네 21과 한 인터뷰를 보면요, 제일 싫어하는 게 영화라고 하셨습니다. 영화보다도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싫다면서 들어가면 컴컴한데 수백 명이 앉아서 이놈 저놈 냄새 막 나고 그런 공간을 문 열고 들어가는게 불가능하다고요. 영화 잡지와 한 인터뷰에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재미있는 것이 그분의 따님이 영화 제작자이십니다. 댓글 보니 그 인터뷰가 생각이 나서 달아봤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장소] 2015-03-06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답답해요..멀티플렉스 관이 되면서..
사운드가 더 생생해지면서..어쩐지..엄청 싫어졌어요.
고래 뱃속에 들어가도 이것 보단 나을 거란.. 심정이 되곤 해요.
오버사운드가..압도하는 ..그 울림.
공해에 가까워요..제게는요.
좀 여유있는 게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해도.. 그게 좋아요.영화가 싫진 않아요.
3D에 그런 걸 좋아하지 않을..뿐..ㅎㅎㅎ
 
빛이 있는 동안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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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집

몰락한 지주 집안 출신의 존 시그레이브.

회사 사장의 딸의 친구와의 만남을 전후로 아름다운 하얀 집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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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여배우 올가 스토머. 낸시 테일러라는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는 제이크 레빗이 접근하고 올가는 최고의 연기를 위한 무대를 준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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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를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클레어. 제럴드의 아내 비비안의 비밀을 알게 되지만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지배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호텔에 가명을 기입하고 머무른 행위가 이 소설의 여주인공에 그치지 않고, 이 작품 발표 직후 실종된 작가의 실제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도 이런 저런 추측만 무성하다.

 

크리스마스 모험

탐정 푸와로와 함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낸 젊은이들의 해피엔딩 푸딩 스토리.

 

외로운 신

대영박물관의 외로운 꼬마 신. 파파 할아버지와 파리의 님프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

 

맨 섬의 황금

맨 섬의 관광 진흥을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 소설은 탄생하였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맨 섬의 밀수업자들의 전리품에 대한 전설들을 근거로 보물찾기 행사가 기획되고, 섬 어딘가에 보물을 감춰두고 그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들을 추리 소설에 등장시키는 것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신에 명성에는 턱없이 부족한 60파운드의 수고비를 받고 여러 날 동안 섬에서 묵으며 이 소설을 완성시킨다. 5회에 걸쳐 디스패치라는 신문에 연재되는 이 소설은, 밀수로 큰 돈을 번 삼촌의 유산을 찾기 위해 4명의 친척들이 돌아가신 삼촌이 남겨놓은 단서를 따라서 이른바 보물찾기를 하게 되는 내용이다. 소설 속에서는 황금으로 가득 찬 네 개의 궤짝은 실제에서는 서명된 서류가 들어있는 코담뱃갑 네 개였으며, 그것을 시청으로 가지고 오면 백 파운드(오늘날의 가치로는 약 3천 파운드)의 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약 5백만원 정도인데, 실제로 이 보물찾기가 관광 증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미지수였다고 하며, 이런 류의 행사는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후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에서 변주되고 발전되어 나타나는 것 같다. 이런 프로젝트 자체도 참 흥미롭지만, 기꺼이 참여한 크리스티도 재미있다.

 

벽 속에서

사교계 유명 인사였던 이소벨 로링. 가난한 젊은 화가인 앨런 에버러드. 두 사람의 결혼 후 태어난 딸 위니의 대모 제인 하워드. <우유처럼 하얀 벽 속, 비단처럼 부드러운 커튼 속, 수정처럼 맑은 바다 속에 잠긴 금빛 사과 하나.> 삼각관계와 예술에 대하여.

 

바그다드 궤짝의 수수께끼

푸와로가 인정한 완벽한 살인. <모두가 방 안에 있었다> 아름다운 여자. 그녀의 남편. 비밀스러운 애인이자 남편의 친구. 그리고 또 다른 남편의 친구의 비밀.

 

빛이 있는 동안

전쟁 중 사망한 남편 팀 뉴전트. 그의 아내 디어드리. 예전부터 자신을 흠모하던 조지 크로우저와 재혼한 디어드리 앞에 다시 나타난 팀. 과연 디어드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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