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장고:분노의 추적자 - 일반판 - 아웃케이스 없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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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책을 보다가 지치는 순간이 왔다. 내가 있는 곳의 사정상 인터넷도 할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면 그냥 덩그러니 산만 있다. 더 멀리 나가려면 차를 움직여야 하는데 며칠간 그럴 수도 없다. 말랑말랑한 소설책이라도 있음 좋으련만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렇다고 가벼운 에세이집을 읽기는 또 싫다. 나는 왜 이렇게 까탈스러운지. 그래서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면, 결코 가볍지 않은 전문서적이기에 읽다가 지치는 순간이 또 찾아온다.
TV를 볼까?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마땅한 프로가 없다. 예능프로는 부산스럽고 드라마는 중반부부터라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이때 장고를 만났다.
케이블 TV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쉽디 쉬운 일이지만 의외로 보고싶은 영화를 처음 시작부터 방해받지 않고 끝까지 보는 행운은 자주 오지 않더라.

 

이 장고는 보지는 못했어도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개봉 당시 평단과 관객 양쪽의 취향에 잘 부응했고 디카프리오가 악역으로, 그것도 조연으로 출연한다는 사실로 엄청나게 화제가 되었다. 물론 시대를 풍미하는 최고의 명배우가 나이가 들어 명작의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일수 있겠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질 때나 지금이나 디카프리오는 아직은 젊은 축에 속하고 대스타이다.

 

카톡으로 가족과 지인에게 안부를 묻다가 시들할 정도로 나는 활자에 지쳐있었고 단어와 문장이 지겨워진 상태였다. 그런 나에게 대사가 극도로 자제되어 있고, 건조하지만 강렬한 화면을 보여주며, 현대 음악과 클래식, 줌 인과 슬로우 모션을 적절히 구사하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고는 그야말로 최고의 타이밍에 만난 셈이다.

 

중간 중간 힘든 부분도 있었다. 음식처럼 영화도 조미료 친 것, 치지 않은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장고는 확실히 달착지근한 부분이 없다. 예전에 딱 한 번 먹었던 우래옥 냉면같은 맛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그러기에 이 영화는 건조하다. 좋은 명태로 알맞게 건조한 북어와 비슷하다.

 

평소같으면 개시도 하지 않았을 영화인데 하필 이런 날에 알맞게 나한테 온 영화다. 물론 디카프리오 덕분에 채널돌리기가 더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정말 좋아하는 배우. 어린시절 타이타닉을 보고 잠을 설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오히려 나는 요즘이 더 멋있게 느껴진다. 작품을 선택하는 눈이 탁월하며, 매 작품마다 어떻게 연기해야 할 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다. 요즘 가끔 케이블에서 볼 수 있는 타이타닉 때의 모습이 오히려 디카프리오의 실제와 가장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느껴질 정도로. 잘생긴 청춘 스타가 되는 것은 본인 노력과는 무관하며, 그렇다고 연기파 배우가 되는 것은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닌데, 소년에서 청년, 장년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레 이 과정을 이행해가는 것은 더더군다나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은 아닐 것이다. 브래드 피트나 탐 크루즈, 조지 클루니나 조니 뎁처럼 결혼하여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고, 그러면서 연기폭을 넓혀 가는 것도 멋지다고 생각되지만 디카프리오만큼은 그러한 '일상성'이 최대한 희미한 배우로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를 품에 안은 할리우드 대스타를 보면 친밀함이 드는 건 당연하지만 디카프리오만큼은 낯설고 신비하게 남아줬으면 하는 희망이 있다. 그리고 올 해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모습도 함께 보았으면 하는 바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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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M.T. 키케로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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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조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고..

아등바등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반대로 생각하면 아등바등해야 겨우 이나마 사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쳐있을 때 이 책을 만났다.

 

요즘 응팔이 화제라기에 주말에 잠깐 봤다. 다 본 것은 아니고 하이라이트 영상만.

보면서 재미있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울했다.

나에게도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이 있었고

사건도 추억도 많았는데

그게 완전히 과거가 되어버렸다.

마지막화 제목이

안녕 나의 청춘 굿바이 쌍문동 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도 이제 나의 청춘에 안녕을 고할 때가 온 것 같아서였다.

 

어릴때 그렇게 꿈많고 밝았는데

이제는 사회인이 되어서 먹고 살 궁리를 하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게

돌고 돌았지만 그래도 원하는 분야에 발을 디뎠고

내 능력이 이거 밖에 안 되는 구나 좌절하면서도 꾸역꾸역 하고 있기는 한데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던, 앞날을 종잡을 수 없던 순간은 이미 벗어났는데

내가 힘든 것은 목표가 상실된 까닭인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껴서인지 종잡기 힘들었다.

 

그럴 때 지인의 추천으로 이 책을 만났다.

 

노년이 비참해 보이는 네 가지 이유
첫째, 노년은 우리를 활동할 수 없게 만들고, 둘째, 노년은 우리의 몸을 허약하게 하며, 셋째, 노년은 우리에게서 거의 모두 쾌락을 앗아가며, 넷째, 노년은 죽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 얼마나 이런 이유들이 타당한가?

 

인생의 주로는 정해져 있고 그 길은 한 번만 가게 되어 있고 각 단계마다고유한 특징이 있다. 허약한 소년 저돌적인 청년 위엄있는 장년 원숙한 노년

 

노년에 대하여 요약하면 이 정도? 솔직히 와닿지는 않았다. 미숙해도 청춘이 좋았다.

이런 나의 반응에 지인은 이렇게 답했다.

 

육체적 쾌락으로부터 해방되어 지혜로워지며 청추이 갈구하는 장수를 이미 얻었고, 굳이 다시 그 시절로 가지 않았도 되는 것이라고. 이미 다 안다고. 게다가 운좋게 이렇게 늙을 때까지 아직 죽지도 않았다고.

 

여기에 나는 다시 이렇게 답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이런 느낌으로 읽혔다고.

 

그러자 다시 지인은 말했다.

 

아직 나에게는 조금 이른 책인 것 같다고. 일단 가볍게 넘기고 나중에 혹시 다시 읽어 볼 일이 있었으면 한다고.

 

성숙해지기 전에 맺은 우정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성격이 달라지면 취향도 달라지고, 취향이 달라지면 우정은 소멸한다.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이 친구가 될 수 없는 까닭은 그들 사이에는 성격과 취향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정에 관하여는 노년에 관하여 보다는 좀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많이 와닿지는 않았다. 아직 내 인생에서는 일이나 가족이나 사랑보다 우정이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였을까. 하필 이 책을 읽을 무렵 심리테스트를 했는데, 자존심, 일, 가족, 사랑, 우정 중 내가 힘들때 가장 먼저 버리는 것이 우정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았다. 친구 때문에 일을 포기할 수는 없고, 친구에게 사랑을 양보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가족에 소홀히 하거나, 내 자존심을 굽혀가면서까지 우정을 지킬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이런 가정은 좀 극단적이지만.

 

여기까지를 다 듣고 난 지인은 또 말했다.

 

막 중년으로 들어가던 시절, 이십년된 친구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던 시기에 이 책을 접했다고. 그리고 이 책이 인생의 책이 되었다고.

 

아직 나는 이 책의 가치를 잘 모르겠다. 아직은.

어쩌면 10년 뒤에는 나에게도 인생의 책이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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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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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의 중반부에서 우르술라는 막연하게 불안을 느꼈다고 나와 있다. 오랜 역사에서 비슷한 이름이 집요하게 되풀이되었고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가진 자는 내향적이고 머리가 좋은 반면, 호세 아르카디오라는 이름을 가진 자는 충동적이며 뱃심은 있으나 비극의 그림자가 따라다니다는 사실을 깨닫는 우르술라. 계속해서 헷갈리게 이름을 지은 것은 역사의 반복성을 느끼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고, 부모나 조부모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는 지역의 특징일 수도 있다. 작가의 고향인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 지역은 잘 모르지만, 그리스에서는 조상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는 경우가 많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이름이 현재에도 있다는 내용을 다룬 다큐를 얼핏 본 것 같은 기억이 있다.

 

2. 브라질을 제외한 남미는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남미 작가들이 나라를 떠나 교류를 하는 바탕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남미 독립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가 남미의 여러 나라를  독립시켰다. 콜롬비아만 하더라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가 전부 콜롬비아에 포함되었었다고 한다. 군부의 지배, 민중의 저항, 외세의 침략 등등을 소설 속에 잘 녹여냈다. 비슷한 키워드로 상징되는 한국의 근대사를 비교해 보면, 한국 독자들에게, 특히 민주화 이전의 한국을 경험한 세대에게는 더 인상적일 수도 있겠다. 온 가족이 모여 사는 대가족적에서 오는 분위기도 한국과 비슷하다.

 

3. 작가는 콜롬비아 사람이다. 작가의 원래 고향은 카리브해 연안의 작은 마을이고 대학은 수도인 보고타에서 다녔다고 한다. 보고타는 고원지대로, 이곳에 올 때마다 작가는 이방인이 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수도가 고원지대라는 것이 특이했는데, 특이하다고 느낀 것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의 시각 때문인 것 같다. 외세로부터 보호하려면 평지에 있는 것보다 어느 정도 높은 지대에 도시가 건설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마콘도가 세워진 것 자체가 이주로 인해 시작되었고, 마콘도로 오는 사람들, 마콘도에서 성장했지만 마콘도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어려운 작가의 심정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다.

 

4. 작가는 어린 시절 부모와 일찍 이별하여 조부모의 손에서 컸다고 한다. 작가의 외할머니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흔히 설명되는 이 책의 분위기는 꼭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ㅡ로 시작되는 우리나라 전설이나 민담 같기도 하다.

 

5. 중고등학교 시절 사회 시간에 국가가 형성되고 문명이 만들어지는 부분에 대해 공부했던 기억이 아주 어렴풋이 난다. 밑줄을 쳐가며 달달 외웠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아무리 쥐어짜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이 없어 슬프기는 하지만. 씨족에서 부족이 되고, 다시 여러 단계를 거쳐 왕국과 제국으로 이어지는 그 과정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아련하게 떠올랐다. 마치 한 문명의 흥망성쇠를 압축해놓은 듯한 이 책에서 나는 흥과 성보다 망과 쇠 쪽이 더 인상적이었다.

 

6. 하느님이 세월에 대해서 무명 한 마를 잴 때 터키인처럼 속임수를 쓰지 않던 옛날은 만사가 요즘과는 달랐다고 묘사하거나, 아우렐리아노 가문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가운데에서도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밤마다 사람들을 저택으로 불러 술마시고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보고 인간이 아니라 개가 죽은 것 같다고, 많은 고생을 하며 동물 엿을 팔아 지탱해 온 이 미치광이 집안의 운명이 타락의 쓰레기통이 되어간다는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7. 작가는 가장 싫어하는 인물을 콜럼버스로 꼽았다고 한다. 바나나 회사가 들어와 마콘도에 일대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의 핵심은 타락과 착취이며, 회사의 기사들이 노무자와의 약속을 회피하였고 역에 모인 수많은 노무자를 사살하였으며 회사의 핵심 인물은 마콘도 밖을 빠져나갔고 마을이 쇠락해진 과정을 보면, 작가의 생각이 뚜렷하게 읽힌다. 끊임없이 외부세력에 시달렸고 남미의 국가들과 그 안에서 발버둥 쳤던 남미 사람들의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

8. 백년 동안의 고독, 백년의 고독에서 백년은 쉽게 알 수 있다. 책을 읽기도 전에 맨 앞에 가계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고독은 무엇일까? 고독이라는 단어는 책을 다 읽은 내 기억이 맞다면 중반부에나 가서야 처음 등장한다. 문명의 번영 후에 쇠퇴가 오고 쇠퇴가 오기 바로 직전, 아무도 그 쇠퇴를 예상할 수는 없지만 뭔가 이전과는 달라졌다고 느끼는 바로 그 시기에, 등장인물들은 고독을 느낀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닮은 것 같아 약간 떨린다. 대체 고독이란 무엇인가? 누군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라고 하고 누군가는 인간은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그 시간을 잘 활용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현대인과 고독은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쌍의 묶음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에 응팔 열풍이 불었나 보다. 고독하기 전, 고독을 느끼기 전 시대의 이야기라서. 그 드라마의 말미에서 모여 살던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아이들은 성장했으며, 어른이 된 아이들은 그 시대를 그리워한다. 아마도 여기에도 고독은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9. 이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성경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누구를 낳았고 또 누가 누구를 낳았고... 이런 족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데다가, 100살 넘게 살았다는 이야기까지 합쳐지면 더더욱 그렇다. 개미떼나 홍수, 가뭄 등등은 성경에서 흔히 등장하며 사실과 전설이 뒤섞여 있다. 아이가 바구니에 탄 채로 강에서 떠내려왔다는 모티브나, 누군가를 죽이고 나서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는 장면 등등 수많은 장면들은 성경에서 그대로 모티브를 따온 것이 아닌가?

 

10. 성경 뿐 아니다. 이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은 그리스로마신화에도 빚을 지고 있다. 책 전편에 등장하는 근친상간의 모티브는 오이디푸스 이야기이다. 아마도 우리가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남미 지역에서 전해지는 전설, 민담, 설화의 상당 부분도 이 책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된다. 예전에 성경 속 아브라함의 열 두 아들들은 당시 유대인이 열 두 부족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중 열 한 번째 아들인 요셉이 결국 나머지 형제들을 전부 거둔다는 것은 열 한 번째 부족을 중심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해석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아브라함의 아들들처럼 이 책 속의 수많은 이야기들도 상징으로 읽어야 할까? 아님 정말 그 자체로 읽어도 되는 걸까?

 

11. 집안의 역사는 멈추지 않는 톱니바퀴이며 그 축이 필연적으로 서서히 마멸되는 일이 없다면 영원히 계속 회전하는 바퀴라는 본문 속 내용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한숨을 토해내면서 드는 생각 그대로다. 이 부분이 책의 종반부에 다다라 등장하는데, 부엔디아 가문의 백여년의 역사를 달음박치며 읽어나가다 저 대목에 다다르는 순간, 정말로 한숨이 토해지면서 내가 이 결말을 보기 위해 이토록 달려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허무함과 슬픔, 또 기쁨과 성취감이 묘하게 뒤섞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12. 갑자기 남미로 훌쩍 떠나고 싶기도 하다. 내가 알고 있는 남미에 대한 지식은 축구와 더운 날씨, 그리고 몇몇 유명인이 전부였다. 워낙 기초적인 지식이 없던 터라 이 책 한 권 만 놓고 보아도 전후를 비교해 보면 남미에 대한 내 감정은 천지 차이이다. 물론 잠깐 다녀온 여행으로 그 나라의 전부를 알 수야 없겠지만, 여태까지의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 잠깐의 머무름이더라도 일단 그 곳에 발을 디디고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그 곳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고 눈을 마주치고 공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치 그 나라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착각인 줄 알면서도, 그런 착각에 내가 빠져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다녀오고 나서 관련 나라의 자료를 찾아보면서 내 지식이 확장되면서 여행 당시의 감동이 증폭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손미나가 페루에 다녀와 쓴 여행기가 눈에 띈다. 다음엔 이 책을 읽어볼까? 아니, 작가와 애증의 관계였다는 페루의 작가 요사의 소설도 좋을 것 같다. 좋은 책은 책장을 덮고 난 뒤, 또 다른 책을 보고 싶게 만드는 생각을 들게 하는 책이라는 내 신조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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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24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ㅡ잘읽었었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알마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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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계의 계관시인.

영국 태생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태생으로 영국에 거주했던 빌 브라이슨이 묘하게 겹치는 지점이다.

 

유럽의 마인드를 가지고 미국에 정착했고, 그가 죽고나서야 밝혀졌지만 동성애자였으며, 살아있을 때 밝혔던 것처럼 그는 강박적인 부분도 있었다. 여러 모로 입체적이며 흥미있는 사람이다. 부모가 모두 의사이지만 그는 당대 의학계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환자에 접근했다는 점도 재미있다. 어쩌면 제대로 주류의 삶을 살 수도 있었던 사람이 평생 마이너를 지향하며 산 것이 아닌가 하고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 마이너란 그가 선택한 것이며, 메인스트림 내에 있는 마이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나는 인간이 어떤 부분을 상실하거나 손상당한 상태에서 그것을 이겨내고 새롭게 적응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책은 제 1부 상실, 2부 과잉, 3부 이행, 4부 단순함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뇌의 어떤 능력이 상실되거나, 과잉되거나, 이행되거나 단순해지는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가 스스로 밝혔듯 저자는 의사와 자연학자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고, 질병과 사람 양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론가이자 극작가며, 과학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 모두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또한 이 책은 연구서이며 이야기 혹은 임상 보고서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우리 인간도 몇 마디 말로 정의되기 힘든 존재이며, 다양한 면으로 복합적으로 설명 가능하며, 그것은 의사 앞에 선 환자도 똑같다. 히포크라테스 이후 환자를 인간 자체로서 중시하던 관습은 객관적인 과학의 성장과 함께 쇠퇴하였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전통의로의 회귀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사례 하나하나를 읽다 보면 이런 책을 쓰기 위해서는 글솜씨 이전에 환자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일에 대한 즐거움을 평생 놓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과정을 몇 십 년 해 왔다니. 이제 고작 사회 생활 시작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으면서 매너리즘에 빠져 버린 내가 부끄러워 견디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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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 제25회 시바타 렌자부로상 수상작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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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였다.

 

우메자와 리카

41. 유복한 부모 밑에서 성장해 평범한 가정을 꾸렸으나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은행에서 1억 엔을 횡령하고 도주 중.

 

오카자키 유코

리카의 여고 시절 친구. 갓 쓰기 시작한 비누 같은 청초함을 지닌, 정의로운 소녀로 리카를 기억한다. 과도한 근검절약파.

 

야마다 가즈키

리카의 전 남자친구. 욕심 없고 자기만의 고상한 품위를 지닌 여성으로 리카를 기억한다. 현재 낭비벽이 심한 아내와 갈등 중.

 

주조 아키

리카가 전업주부 시절 다녔던 요리교실 친구. 계산적이지 않고 따뜻한 사람으로 리카를 기억한다. 쇼핑중독으로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현재 독립 중.

 

히라바야시 고타

리카의 애인. 리카가 담당하는 VIP 고객의 손자. 가난한 고학생으로 자신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조부를 증오한다.

 

우메자와 마사후미

리카의 남편. 결혼하지 10년이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는데 노력도 하지 않고, 아내와의 관계에 큰 열정이 없다.

 

야마다 마키코

가즈티의 아내. 부유했던 친정의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현재의 생활수준을 비관하다 쇼핑중독에 빠져 큰 빚을 지게 된다.

 

등장 인물을 보면 한 눈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어떤 인물인지 주인공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주인공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에 돈에 대한 태도가 나온다.

 

유복, 평범, 근검절약, 낭비벽, 쇼핑중독, 가난한 고학생, 부유했던 옛 시절...

 

저 중에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돈을 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나의 태도는 어디에 해당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낭비하는 것의 반대가 근검절약이라면, 무조건 근검절약하는 것을 찬양할 수 있지만, 마지막에 다다라 유코의 일화가 소개되면서 무조건 근검절약하는 것도 또한 다른 의미에서 돈의 노예가 된 것임을 보여 준다.

 

은행원이 거액을 횡령했다는 뉴스는 종종 TV를 통해 접하게 된다. 그때마다 궁금했다. 도박 때문이었을까, 애인 때문이었을까, 마약을 한 것일까, 세상에 비밀은 없는데 잡힐 것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않았을까.

 

이 책은 어쩌면 그런 궁금증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바람난 기혼 직장인의 범죄로 요약할 수 있을 뉴스의 뒷면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촘촘히 들어가 있을지 생각해 본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산뜻하지 않고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는, 이 책 전체의 내용이 한 몫 하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보다 더한 이유는, 마음이 답답했기 떄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야무지고 똑똑했던 리카가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에 진출하고, 결혼을 하면서 인생이 어떻게 서서히 진창으로 들어가는지 서늘하게 느껴져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당연히 의문이 든다. 리카가 거액의 돈을 횡령하게 된 것은 그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마는 것인가. 만약 그저 우연이었다면 가슴 아픈 일이다. 다른 결말을 가져올 수 있었을 테니까.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라면, 그 또한 절망적인 일이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내용은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남는 개인의 이야기이다. 특히나 그 개인은 세차게 자신의 운명에 맞서고, 어떻게든 자신의 인생을 밝은 쪽으로 끌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결국 실패할지라도. 현재 나의 위치는 이전까지 내가 선택한 결과의 합이거나, 갈림길에서 내가 택한 방향으로 현재까지 걸어온 곳이다. 리카의 횡령도 우연히 일어난 일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결혼 생활, 일하던 도중 있었던 작은 일탈 등등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알아차릴 굵직한 사건 뿐 아니라, 그 사건 사이사이에 있떤 촘촘한 작은 사건들이 하나하나 쌓아올란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나는, 개인의 의지로 인생을 개척한다는 쪽이 마음에 든다. 그 편이 나에게 덜 절망적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고 나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리카가 너무 일찍 사회에 나오지 않았다면,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면, 아이가 있었다면, 차라리 이혼을 했다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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