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나의 아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7
아서 밀러 지음, 최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켈러 (손에 든 편지를 보며) 이 편지가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면 이 편지는 대체 뭐란 말이오? 물론이지, 그 애는 내 아들이었어. 하지만 래리는 그들 모두가 내 아들이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내 생각에도 그들이 내 아들이었던 것 같군. 그들이 내 아들이었던 것 같아. 곧 내려오겠소. (집안으로 퇴장한다.)

아서 밀러라는 극작가는 문학에 큰 조예가 없는 나에게는 영화배우 메릴린 먼로의 남편으로 더 친숙하던 사람이다. 세일즈맨의 죽음 이외에 다른 작품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던 나에게 이 희곡은 여러 모로 읽으면서 재미있었다.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제목만 보더라도 아서 밀러가 어떤 의미로 작품을 썼는지는 비교적 명확하게 알 수 있는데 이 희곡은 제목만 봐서는 어떤 의미인지 잘 알기는 어렵다. 연극 막바지에 가서야 이 제목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배경이자 소재다. 자수성가한 사업가 조 켈러는 전쟁 발발 이후 전투기 부품 군납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던 중 결함이 있는 부품을 그대로 출하하는 바람에 21명의 조종사가 전투기 사고로 사망한다. 납품을 제때에 못 하면 계약이 취소되고, 그 경우 아들들에게 물려줄 사업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조는 병에 걸렸다는 핑계를 대고 출근하지 않은 채, 동업자에게 전화로 지시를 내린다. 재판 과정에서 조는 전화 통화의 증거 입증이 어려워 무죄가 되고, 그의 지시를 따른 친구이자 이웃인 스티븐은 감옥 형을 선고받고 가족과 관계가 단절된다. 조는 이런 과거를 묻은 채 사업에서 승승장구하며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스티븐의 딸 앤이 이들을 찾아온다. 그는 조의 둘째아들이자 전쟁에서 비행 사고로 사망한 래리의 약혼녀였고, 현재는 조의 큰아들인 크리스의 구애를 받고 있다. 조는 아버지와는 관계를 끊었다는 앤에게 출소 후 자신이 돌봐 줄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신경을 쓴다. 이러던 중 앤의 오빠 조지가 오랜만에 아버지를 면회했다며 나타나 잊으려 했던 과거를 폭로하게 되고, 둘째 아들의 죽음을 부정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죄를 부정하는 큰아들에게 앤은 약혼자 래리가 자신에게 쓴 편지를 보인다. 래리는 아버지에 의한 죄의식으로 스스로 비행 사고를 일으켜 자살하고, 그 계획을 사전에 편지로 약혼자에게 부쳤던 것이다. 아들의 사망이 사고가 아니라 자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조는 총으로 자살을 한다.

읽으면서 소름이 끼쳤던 것이, 최근 유행하는 드라마의 한 내용과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다(나는 이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고, 워낙 인기 있는 드라마라 줄거리는 기사를 통해 늘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대강의 내용은 파악이 가능하나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틀릴 수도 있겠다). 아마도 작가가 모티브를 따 왔을 수는 있겠다. 남의 아들은 망가지든 말든 내 아이의 행복만을 위해 달려가는 부모, 그러나 정작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아이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사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간다고 부모가 만족하고 있을 무렵 자식은 이때까지 부모가 자신을 위해 해 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자신을 얽매었다는 것을 어쩌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알려 준다. 무너져 버린 부모가 총으로 자살을 한다는 내용까지. 읽을수록 소름이 끼쳤다. 한편으로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의 미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이 놀랍도록 닮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후대에는 어떤 삶의 방식을 알려주어야 할지 갈수록 모르는 것만 늘어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5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박우수 옮김 / 민음사 / 200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단테의 가장 초기작품인 새로운 인생을 그대로 수록한 1부와, 단테와 로세티의 생애를 요약한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왜 두 작가를 같이 다뤘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로세티의 full name 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세티의 아버지부터 자식에게 단테라는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단테의 열렬한 팬이자 추종자였고, 이는 그 아들에게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 책의 서문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가 썼는데, 로세티의 초기 이탈리아 시인들에 있는 서문 중 새로운 인생과 단테 알리기에리에 관한 내용을 축약했다고 한다. 2부의 단테의 생애는 역시 평생 단테를 존경했던 조반니 보카치오가 썼고, 로세티의 생애에는 따로 누가 적었는지 별도 표시되어 있지 않아 아마도 옮긴이가 쓴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갓 아홉 살이 된 것 같고, 나는 거의 아홉 살이 끝나 갈 무렵에 그녀를 만났다. 그날 그녀의 의상은 매우 고귀한 색상인 은은하고 예쁜 주홍빛이었고, 어린 나이에 어울리게 허리띠가 달리고 장식이 되어 있었다. 진실을 말하자면 바로 그 순간 심장의 은밀한 방 안에 기거하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너무나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해서 가장 미세한 혈관마저도 더불어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생명의 기운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나보다 강한 신이 있구나. 그가 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모든 감각들이 자신이 지각한 것들을 가져가는 높은 방 안에 살고 있던 생명의 정령이 경이감에 가득 차서, 특히 눈의 정령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너희들의 축복이 출현했도다.” 그 순간 인간의 영양분을 관리하는 곳에 사는 수명의 정령은 울기 시작했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내 신세야! 이제부터 계속 시달리겠구나!”

작가가 9살에 역시 9살이던 베아트리체를 처음 봤을 때를 묘사한 부분이다. 바로 뒤에 나오는 “그녀는 평범한 인간의 딸이 아닌 신의 딸처럼 보였다”는 부분이 전혀 과장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앞의 서술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후에 단테가 자신의 사랑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엉뚱한 여성을 좋아한 것처럼 소문이 나도록 했다거나, 그가 경멸했던 “창가의 여인”과 결혼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까지 보고 나면, 대체 그에게 베아트리체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흔히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은 첫사랑을 할 때의 나 자신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들 이야기들을 하는데, 어린 나이에 영영 박제되어 버린 첫사랑이자 채워지지 않는 창작욕의 근원이었을까. 정략 결혼을 하고 따로 애인과 정부를 두었던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던 시기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단테의 이런 모습은 순수하다고까지는 볼 수 있겠지만, 지금의 시각으로는 자아도취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좋아하는 마음조차도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경애하는 그 대상이 알고 보니 나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을까. 단테를 위해서도 베아트리체는 마리아와 비등한 존재로 남아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단테도 나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첫 작품인 이 책을 시간이 흐르고 부끄러워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베아트리체가 죽고 난 후 다른 여성과 결혼하였고, 이 결혼에서 태어난 딸에게 후에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으며 이 따른 수녀가 되었다는 후일담을 들었을 때에는, 지나치게 넘겨짚는 것 같지만 베아트리체와는 전혀 관련도 없는 가족들에게까지 베아트리체의 힘이 미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는 다소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단테는 어쩌면 현실 세계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던 사람이 아닐까. 현실 세계에서는 만족하지 못했던 사람이 아닐까.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고전인 신곡이 그가 현실 정치에서 강제로 떨려져 나간 유배 기간 동안에 씌어졌다는 사실에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곡 - 천국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2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0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곡-천국편

그대는 이렇게 말할 거예요. 빛이 반사되는 건
맞지만, 반사된 빛은 더 멀리 뻗어 나가기
때문에 더 희미해진다고. 그러나

이런 반론쯤은 그대가 원하기만 한다면
인간의 기술의 원천인 실험으로
금방 물리칠 수 있어요.

거울을 세 개 들고서 그중 두 개를
그대로부터 같은 거리에 양쪽으로 두고
그 사이로 세 번째 거울을 당신 정면에

멀리 두고 나서 그것들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당신 등 뒤에 불을 켜 한꺼번에
세 거울에 비치게 하고 어느 거울에서 반사된 것이

그대에게 돌아오는지 살펴보세요. 가장 먼 곳에 있는
빛이 다른 두 거울에 비친 빛보다 그 양에서는 약하지만,
성질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관찰할 겁니다.

그렇다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속에서
눈[雪]이라는 실체가
그 본래의 흰색과 차가움을 포기하듯이,

그대의 지성도 깨끗하게 포기되겠지요.
나는 이제 아주 반짝거려서 그대 눈에는
별처럼 초롱초롱할 진실을 보여 주겠어요.-천국편 2곡

이 부분은 주석에 따르면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신곡을 읽는 내내 작가가 궁극적으로 이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거기에 오르기 위해 땅에서
발을 떼려 하지 않고, 내가 만든
규범은 쓰레기처럼 뒹굴고 있다.

수도원의 성벽은 이제 짐승의 소굴이 되었고,
수도승이 걸치는 옷은 부패한
밀가루를 담은 자루가 되었다.- 천국편 22곡

단테가 이 책을 쓸 무렵 종교가 얼마나 그 기능을 상실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지나온 일곱 개의 하늘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우리의 세계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작게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세상을 가볍게 보는 정신이
최고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것에
사고의 방향을 돌리는 사람이 진정 현명하다.-천국편 22곡

어쩌면 이 부분은 단테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일 것이다.


스승이 결론을 맺기 위해서가 아니라 논의하기 위해서
질문을 던질 때까지 조용히 생각에 잠겨
정신 무장을 하는 학생처럼,

나 역시 그녀가 말하는 동안
마음을 모아 내 논점을 정리하여
묻는 자에게 대답을 주기 위해 준비했다.-천국편 24곡

누가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고 연옥에 가는지는 사실 작가의 마음이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인물이며 로마시대의 역사적인 인물까지 작가가 마음대로 천국에도 보내고 지옥에도 보내고 연옥에도 보낸다. 작가 나이 9살에 처음 만났고 18살에 두 번째로 만났으며 작가가 25살이 되었을 때 사망했다는 베아트리체는 천국에서 작가의 길잡이로 등장한다. 그야말로 이상화의 극치다. 현실이 괴로운 만큼 나의 즐거움과 기쁨과 환희는 죽은 베아트리체의 세계에서나 있다는 것일까? 데카메론을 읽고 나서 신곡으로 넘어왔는데 두 작품의 연결성을 고려하더라도 어떤 부분에서 대조가 되는지는 알 것 같다. 베아트리체는 아내 젬마와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출생한 후에 사망했다고 하는데 팔자 좋은 귀족의 다소 답답하고 뜬구름 잡는 집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5남 1녀 중 유일한 딸의 이름을 후에 베아트리체로 개명했다고 하는 부분에서는 잠깐 비커밍제인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최소한 제인 오스틴은 연애라도 했었다. 단테는 1304년 지옥편을 구상하고 1320년 천국편은 완성 후 바로 배포되었으며 출판되었고 1321년 사망한다. 신곡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는데, 첫 번째 작품은 바로 작가가 베아트리체를 두 번째 만났다는 1283년부터 써 온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의 글들을 모은 새로운 인생이라고 한다. 다음 독서의 방향이 정해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곡 - 연옥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1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0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곡-연옥편

우리의 감각이 기쁨이나 고통에
사로잡혀 있을 때 영혼은
그 둘 중 하나의 감각에 쏠려서

다른 기능에는 완전히 무디어진다.
이는 우리 안에서 한 영혼이 다른 영혼과
함께 타오른다고 믿는 오류에 반대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것을 보거나 들으며 우리의 영혼이
거기에 완전히 사로잡힐 때
시간이 흘러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시간을 알아차리는 감각과, 영혼을
완전히 지배하는 감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데
전자는 영혼에서 풀려나 있고 후자는 매여 있다.-연옥편 4곡

어떤 일에 깊게 몰두해 있을 때면 시간이 가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 우리의 기분이 아주 좋아서 붕붕 뜨는 것과 같을 때에는 사소한 고민이 신경 쓰이지 않고 심지어 고통조차도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반대로 우리가 어떤 고통스러운 일에 맞부딪혀 깊이 침잠해 있을 때에는 마치 물속에 가라앉아 잠긴 사람처럼 보고 듣는 능력도 저하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현재 나는 어디에 몰두에 있는지,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지, 반대로 해내야만 하는 힘든 일에 압도당한 상태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나를 꾸짖었다. “무엇에 관심을 뺏겨
걸음을 늦추느냐! 그들 재잘거리는 소리에
신경을 써 무엇 하리!

내 뒤를 따르라! 저들은 떠들도록 내버려 두고,
바람이 불어쳐도 끝자락조차 흔들리지 않는
탑처럼 굳건하여라!

사람이란 생각에 생각을 겹쳐 놓다 보면
원래의 목표를 잃게 마련이니,
힘이 서로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연옥편 5곡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생각에 생각을 겹치다 보면 원래의 목표를 잃게 된다. 서로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원래의 목표가 무엇인지 간결하게 생각하자, 주변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신경을 쓰지 말자, 저들은 떠들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불어치는 바람에도 끝자락조차 흔들리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형제여, 내가 가리키는 이자는,”
하고 그가 앞에 있는 한 영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모국어의 가장 훌륭한 대장장이였소.

그는 사랑의 시와 산문에서
누구보다도 탁월했소! 리모주의 시인이 그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바보들은 내버려 두시오.

그들은 진실보다 소문에 고개를 쳐들고
예술의 원리나 이유를 알기도 전에
저들의 판단을 내리고 맙니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에 귀토네를 그런 식으로 판단하고
그 사람만 떠받들고 칭찬했지만,
이제는 누구나 진실을 받아들입니다.

당신이 넓은 은혜를 입어 지금
그리스토께서 주인으로 계시는
수도원에 들어갈 수 있는 큰 특권을 지녔다면,

나를 위해 주기도문을 해 주시오.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는 이곳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만 말이오.”-연옥편 26곡

이 구절에서 내가 끌렸던 것은 시인을 대장장이에 비유한 부분이었다. 시인이 대장장이라면 모국어는 철기구의 재료인 철이나 금속일 것이다. 시인이 노동자라니. 영화 패터슨이 생각나는 부분이었다. 주석에 따르면 단테는 기로 드 보르넬, 아르노 다니엘, 베르트랑 드 보른을 프로방스 3대 시인으로 인용했다고 한다. 여기서 가장 훌륭한 대장장이는 아르노 다니엘, 리모주의 시인은 기로 드 보르넬이라고 한다. 11곡에서 귀니첼리라는 시인을 언급했고, 연결하면 단테는 자기를 포함하여 시인들의 순위를 매기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면서 다소 오만이 엿보인다는 내용도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았기에 평생 망명하면서도 이런 대작을 써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지옥편을 읽고 난 후 연옥편을 읽으면 확실히 박진감은 떨어진다. 상대적으로 온화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여기에도 벌을 받는 사람들은 등장하고, 다만 간간이 여기에서는 구원되는 사람은 있는 것 같다. 지옥에 가고 연옥에 가는 사람들은 철저히 단테의 기준이기에, 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하나하나를 다 이해한다면 단테, 나아가 중세 사람들의 종교관, 세계관, 역사관을 알 수 있겠으나 그 정도에 도달하기에는 겉핥기식 지식 습득으로는 어림도 없다. 어쩌면 세월을 거쳐 반복해서 읽는다면 지식의 축적에 따라 매번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곡 - 지옥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0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0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곡-지옥편

미친 듯 재산을 모은 자는
재산을 잃을 때가 오면 오로지
재산만 생각하며 울부짖고 괴로워한다.-지옥편 1곡

어디 재산 뿐이겠는가.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에는 부도 명예도 집착도 다 들어갈 것이다.


한숨과 울음과 고통의 비명들이
별 하나 없는 어두운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처음 들은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언어들, 끔찍한 얘기들,
고통의 소리들, 분노의 억양들, 크고 작은 목소리들,
그리고 손바닥 치는 소리들이

마구 엉켜 아수라장을 만들었고
회오리바람에 휩쓸리는 모래알처럼
그 영원히 깜깜한 하늘에 떠돌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서 머리를 감쌌다.
“선생님! 지금 들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치욕도 명예도 없이
살아온 사람들의 슬픈 영혼들이
이렇게 비참한 꼴을 당하고 있다.

하느님께 반항하지도
복종하지도 않았고 단지 자신에게만 충실했던
저 사악한 천사들의 무리도 섞여 있다.

하늘은 그들을 쫓아냈다. 그들이 하늘의 빛을 가릴 테니까.
그러나 깊은 지옥도 그들을 거부하니, 그들을 보고
지옥의 자들이 우쭐해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지.”- 지옥편 3곡

이 부분의 묘사와 HELL canto 3 이라고 적힌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을 보면서 신과 함께 저승편을 떠올렸다. 그림은 영화보다는 실감나지 않는 구나, 영화에서 상상 속의 저승을 잘 그려냈구나, 신과 함께도 신곡의 영향을 받았겠구나 등등. 사실 신곡을 읽게 된 계기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읽으면서 신곡과 비교하여 인곡 이라는 평가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한번쯤은 신곡을 읽어보고 싶기도 했고. 인곡이라고 불리는 데카메론을 읽고 나서 바로 신곡으로 넘어 오는 것이 겁나기도 했고, 잠시 쉬어갈 겸 신과 함께 9권을 전부 읽게 되었다. 영화 두 편도 보았고. 예나 지금이나 사후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꺼지지 않는 것 같다. 신과 함께는 우리 나라 고유의 사후 세계 관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저승-극락-환생 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마 저승 편은 신곡 지옥편에 대응할 것이고, 천국편에 대응할 극락은 만화나 영화에서 그려지지 않았다. 연옥의 개념은 신곡 책만 봐서는 지옥에 가까운 모습이라 좀 더 가벼운 벌을 받고 있는 지옥의 느낌이었다. 신곡은 사실 죽죽 읽어나가기만 해서는 이 책의 10퍼센트 정도만의 이해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고, 중세 사람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에 대한 지식이 없이 이 책의 재미를 느끼기에는 힘들 것이다. 주석이 달려 있기는 한데 워낙 그 양이 방대해서인지 책 뒤쪽에 따로 실어 놓았다. 매번 책을 앞 뒤로 넘겨서 보는 것이 불편해서 어느새 멈추고 그냥 읽어나가기로 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셰익스피어의 책처럼 바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여기에는 모든 이교도 분파의 두목들과
추종자들이 누워 있는데, 네가 추측하는 것 이상으로
이 무덤들 안에 겹겹이 포개져 있다.

여기에는 비슷한 자들끼리 묻혀 있지.
무덤은 묻힌 자에 따라 더 뜨겁기도, 덜 뜨겁기도 하다.”
그러고는 그가 오른편으로 몸을 돌렸다. 우리는

끊임없는 고뇌와 높은 둔덕 사이를 지나갔다.- 지옥편 9곡

마지막 문장의 서술이 좋았다. 높은 둔덕 만큼이나 끊임없는 고뇌. 심신이 전부 극한 바로 직전까지 몰아쳐지는 과정인 것 같다. 이 때는 몰랐는데 신곡에서는 이런 표현이 참 많다.


“나의 몸에서
이렇게 가지가 꺾이는
무자비한 광경을 보러 온 영혼들이여.

그 가지들을 이 가엾은 나무 발치에 모아 주시오.
나는 처음의 수호신을 세례자로 바꾼
도시 출신이었고. 바로 그 일 때문에

수호신은 자신의 기술에 맹세코 그 도시를
파멸시키려 하고 있소. 만일 지금 아르노 강의 다리에
그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면,

아틸라가 남긴 잿더미 위에
도시를 새로 건설했던 시민들은
다시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오.

나는 내 집을 교수대로 만들었던 거요.”- 지옥편 13곡

이 부분은 주석의 설명이 필요하다. 페데리코 2세의 신하였던 자코모는 무료함을 달래려 뱃놀이를 하며 강에 돈을 쏟아 붓는가 하면 자기 집을 태우며 즐거워하는 등, 기질이 괴팍하고 방탕했다고 한다. 자기 집에서 목을 매 죽었다고 하는데 그처럼 피렌테도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고 있다는 말이다. 피렌체는 처음에 전쟁의 신 마르스를 수호신으로 섬기다가 나중에 세례 요한으로 바꾸었다. 주석에서는 단테가 6세기에 피렌체르르 침략한 오스트로고트 족의 왕 토틸라와 아틸라를 혼동한 것 같다고 하며, 당시에는 이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단테는 피렌체를 다스리는 6명의 행정장관 중 한 명이었는데, 피렌체와 교황의 갈등으로 순탄치는 않았다고 하며 외교관으로 로마에 갔을 때 쿠데타가 일어나 망명했다고 한다. 이후 죽을 때까지 피렌체로 돌아가지 못하고 베로나에서 사망했는데 시간이 흐른 후 피렌체에서 단테를 기리겠다며 빈 무덤을 만들었으나 베로나에서는 단테의 시신을 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이 부분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된 문장일 것이다.


길잡이의 말이 알고자 하는
나의 입맛을 돋우었기에
나는 더 많은 음식을 부탁했다.

그러자 그가 말을 시작했다.- 지옥편 14곡


말을 음식에, 입맛을 호기심이나 흥미에 비유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듯이 맛있는 이야기를 듣는 것. 생뚱맞지만 요즘 한참 유행 중인 ~의 맛 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각 나기도 하고. 어쩌면 먹지 못하면 사람이 죽는 것처럼, 이야기가 없어도 사람은 생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 부분을 꿰뚫고 단테가 이 구절을 썼다면 대단한 통찰력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나 나는 분명히 보았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머리가 잘린 몸체 하나가 다른 온전한 몸을 지닌
슬픈 무리와 함께 태연히 가고 있는 그 모습이.

그자는 자신의 잘린 머리를 초롱불처럼
양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그 머리는
우리를 쳐다보며 “아이고, 내 신세야!” 하고 말했다.

제 몸으로 제 등불이 되었으니,
하나 속에 둘이요 둘 속에 하나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그를 벌한 분만 아실 테지.-지옥편 28곡

개인적으로 지옥편 전체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묘사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