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5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박우수 옮김 / 민음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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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테의 가장 초기작품인 새로운 인생을 그대로 수록한 1부와, 단테와 로세티의 생애를 요약한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왜 두 작가를 같이 다뤘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로세티의 full name 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세티의 아버지부터 자식에게 단테라는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단테의 열렬한 팬이자 추종자였고, 이는 그 아들에게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 책의 서문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가 썼는데, 로세티의 초기 이탈리아 시인들에 있는 서문 중 새로운 인생과 단테 알리기에리에 관한 내용을 축약했다고 한다. 2부의 단테의 생애는 역시 평생 단테를 존경했던 조반니 보카치오가 썼고, 로세티의 생애에는 따로 누가 적었는지 별도 표시되어 있지 않아 아마도 옮긴이가 쓴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갓 아홉 살이 된 것 같고, 나는 거의 아홉 살이 끝나 갈 무렵에 그녀를 만났다. 그날 그녀의 의상은 매우 고귀한 색상인 은은하고 예쁜 주홍빛이었고, 어린 나이에 어울리게 허리띠가 달리고 장식이 되어 있었다. 진실을 말하자면 바로 그 순간 심장의 은밀한 방 안에 기거하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너무나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해서 가장 미세한 혈관마저도 더불어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생명의 기운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나보다 강한 신이 있구나. 그가 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모든 감각들이 자신이 지각한 것들을 가져가는 높은 방 안에 살고 있던 생명의 정령이 경이감에 가득 차서, 특히 눈의 정령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너희들의 축복이 출현했도다.” 그 순간 인간의 영양분을 관리하는 곳에 사는 수명의 정령은 울기 시작했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내 신세야! 이제부터 계속 시달리겠구나!”

작가가 9살에 역시 9살이던 베아트리체를 처음 봤을 때를 묘사한 부분이다. 바로 뒤에 나오는 “그녀는 평범한 인간의 딸이 아닌 신의 딸처럼 보였다”는 부분이 전혀 과장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앞의 서술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후에 단테가 자신의 사랑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엉뚱한 여성을 좋아한 것처럼 소문이 나도록 했다거나, 그가 경멸했던 “창가의 여인”과 결혼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까지 보고 나면, 대체 그에게 베아트리체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흔히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은 첫사랑을 할 때의 나 자신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들 이야기들을 하는데, 어린 나이에 영영 박제되어 버린 첫사랑이자 채워지지 않는 창작욕의 근원이었을까. 정략 결혼을 하고 따로 애인과 정부를 두었던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던 시기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단테의 이런 모습은 순수하다고까지는 볼 수 있겠지만, 지금의 시각으로는 자아도취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좋아하는 마음조차도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경애하는 그 대상이 알고 보니 나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을까. 단테를 위해서도 베아트리체는 마리아와 비등한 존재로 남아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단테도 나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첫 작품인 이 책을 시간이 흐르고 부끄러워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베아트리체가 죽고 난 후 다른 여성과 결혼하였고, 이 결혼에서 태어난 딸에게 후에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으며 이 따른 수녀가 되었다는 후일담을 들었을 때에는, 지나치게 넘겨짚는 것 같지만 베아트리체와는 전혀 관련도 없는 가족들에게까지 베아트리체의 힘이 미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는 다소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단테는 어쩌면 현실 세계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던 사람이 아닐까. 현실 세계에서는 만족하지 못했던 사람이 아닐까.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고전인 신곡이 그가 현실 정치에서 강제로 떨려져 나간 유배 기간 동안에 씌어졌다는 사실에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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