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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지옥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0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07년 8월
평점 :
신곡-지옥편
미친 듯 재산을 모은 자는
재산을 잃을 때가 오면 오로지
재산만 생각하며 울부짖고 괴로워한다.-지옥편 1곡
어디 재산 뿐이겠는가.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에는 부도 명예도 집착도 다 들어갈 것이다.
한숨과 울음과 고통의 비명들이
별 하나 없는 어두운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처음 들은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언어들, 끔찍한 얘기들,
고통의 소리들, 분노의 억양들, 크고 작은 목소리들,
그리고 손바닥 치는 소리들이
마구 엉켜 아수라장을 만들었고
회오리바람에 휩쓸리는 모래알처럼
그 영원히 깜깜한 하늘에 떠돌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서 머리를 감쌌다.
“선생님! 지금 들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치욕도 명예도 없이
살아온 사람들의 슬픈 영혼들이
이렇게 비참한 꼴을 당하고 있다.
하느님께 반항하지도
복종하지도 않았고 단지 자신에게만 충실했던
저 사악한 천사들의 무리도 섞여 있다.
하늘은 그들을 쫓아냈다. 그들이 하늘의 빛을 가릴 테니까.
그러나 깊은 지옥도 그들을 거부하니, 그들을 보고
지옥의 자들이 우쭐해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지.”- 지옥편 3곡
이 부분의 묘사와 HELL canto 3 이라고 적힌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을 보면서 신과 함께 저승편을 떠올렸다. 그림은 영화보다는 실감나지 않는 구나, 영화에서 상상 속의 저승을 잘 그려냈구나, 신과 함께도 신곡의 영향을 받았겠구나 등등. 사실 신곡을 읽게 된 계기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읽으면서 신곡과 비교하여 인곡 이라는 평가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한번쯤은 신곡을 읽어보고 싶기도 했고. 인곡이라고 불리는 데카메론을 읽고 나서 바로 신곡으로 넘어 오는 것이 겁나기도 했고, 잠시 쉬어갈 겸 신과 함께 9권을 전부 읽게 되었다. 영화 두 편도 보았고. 예나 지금이나 사후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꺼지지 않는 것 같다. 신과 함께는 우리 나라 고유의 사후 세계 관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저승-극락-환생 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마 저승 편은 신곡 지옥편에 대응할 것이고, 천국편에 대응할 극락은 만화나 영화에서 그려지지 않았다. 연옥의 개념은 신곡 책만 봐서는 지옥에 가까운 모습이라 좀 더 가벼운 벌을 받고 있는 지옥의 느낌이었다. 신곡은 사실 죽죽 읽어나가기만 해서는 이 책의 10퍼센트 정도만의 이해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고, 중세 사람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에 대한 지식이 없이 이 책의 재미를 느끼기에는 힘들 것이다. 주석이 달려 있기는 한데 워낙 그 양이 방대해서인지 책 뒤쪽에 따로 실어 놓았다. 매번 책을 앞 뒤로 넘겨서 보는 것이 불편해서 어느새 멈추고 그냥 읽어나가기로 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셰익스피어의 책처럼 바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여기에는 모든 이교도 분파의 두목들과
추종자들이 누워 있는데, 네가 추측하는 것 이상으로
이 무덤들 안에 겹겹이 포개져 있다.
여기에는 비슷한 자들끼리 묻혀 있지.
무덤은 묻힌 자에 따라 더 뜨겁기도, 덜 뜨겁기도 하다.”
그러고는 그가 오른편으로 몸을 돌렸다. 우리는
끊임없는 고뇌와 높은 둔덕 사이를 지나갔다.- 지옥편 9곡
마지막 문장의 서술이 좋았다. 높은 둔덕 만큼이나 끊임없는 고뇌. 심신이 전부 극한 바로 직전까지 몰아쳐지는 과정인 것 같다. 이 때는 몰랐는데 신곡에서는 이런 표현이 참 많다.
“나의 몸에서
이렇게 가지가 꺾이는
무자비한 광경을 보러 온 영혼들이여.
그 가지들을 이 가엾은 나무 발치에 모아 주시오.
나는 처음의 수호신을 세례자로 바꾼
도시 출신이었고. 바로 그 일 때문에
수호신은 자신의 기술에 맹세코 그 도시를
파멸시키려 하고 있소. 만일 지금 아르노 강의 다리에
그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면,
아틸라가 남긴 잿더미 위에
도시를 새로 건설했던 시민들은
다시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오.
나는 내 집을 교수대로 만들었던 거요.”- 지옥편 13곡
이 부분은 주석의 설명이 필요하다. 페데리코 2세의 신하였던 자코모는 무료함을 달래려 뱃놀이를 하며 강에 돈을 쏟아 붓는가 하면 자기 집을 태우며 즐거워하는 등, 기질이 괴팍하고 방탕했다고 한다. 자기 집에서 목을 매 죽었다고 하는데 그처럼 피렌테도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고 있다는 말이다. 피렌체는 처음에 전쟁의 신 마르스를 수호신으로 섬기다가 나중에 세례 요한으로 바꾸었다. 주석에서는 단테가 6세기에 피렌체르르 침략한 오스트로고트 족의 왕 토틸라와 아틸라를 혼동한 것 같다고 하며, 당시에는 이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단테는 피렌체를 다스리는 6명의 행정장관 중 한 명이었는데, 피렌체와 교황의 갈등으로 순탄치는 않았다고 하며 외교관으로 로마에 갔을 때 쿠데타가 일어나 망명했다고 한다. 이후 죽을 때까지 피렌체로 돌아가지 못하고 베로나에서 사망했는데 시간이 흐른 후 피렌체에서 단테를 기리겠다며 빈 무덤을 만들었으나 베로나에서는 단테의 시신을 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이 부분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된 문장일 것이다.
길잡이의 말이 알고자 하는
나의 입맛을 돋우었기에
나는 더 많은 음식을 부탁했다.
그러자 그가 말을 시작했다.- 지옥편 14곡
말을 음식에, 입맛을 호기심이나 흥미에 비유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듯이 맛있는 이야기를 듣는 것. 생뚱맞지만 요즘 한참 유행 중인 ~의 맛 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각 나기도 하고. 어쩌면 먹지 못하면 사람이 죽는 것처럼, 이야기가 없어도 사람은 생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 부분을 꿰뚫고 단테가 이 구절을 썼다면 대단한 통찰력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나 나는 분명히 보았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머리가 잘린 몸체 하나가 다른 온전한 몸을 지닌
슬픈 무리와 함께 태연히 가고 있는 그 모습이.
그자는 자신의 잘린 머리를 초롱불처럼
양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그 머리는
우리를 쳐다보며 “아이고, 내 신세야!” 하고 말했다.
제 몸으로 제 등불이 되었으니,
하나 속에 둘이요 둘 속에 하나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그를 벌한 분만 아실 테지.-지옥편 28곡
개인적으로 지옥편 전체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