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여자 동서 미스터리 북스 9
윌리엄 아이리시 지음, 양병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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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ght was young, and so was he. But the night was sweet, and he was sour.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유명한 문장인지 인터넷을 찾아보면 금방 나온다.

로맨스를 품을 만큼 달달한 밤인데도 우리의 주인공은 젊음이 무색하게 기분이 쓰디쓰다. 첫 문장에서부터 낭만이 물씬 풍겨나온다. 그리고 역시 낭만적이다.
낭만적인 배경과 대조되는 우리의 주인공. 뭔가 사건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간질간질하다. 꼭 풍선이 터질 것 같이 아슬아슬하면서도 언제 터지나 하고 지켜보게 되는 마음이 된다.

잔인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 도시. 익명의 대도시라 대체 누가 범인인지 알기도 어렵다.

The Phantom Lady 라는 제목. 그리고 책을 넘기면 나오는 첫 문장.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세계로 보내는 초대장으로는 아주 훌륭하다.

바에서 만난 신비한 여인, 조용하지만 고급 요리가 나오는 레스토랑, 매혹적인 여배우가 등장하는 공연이 펼쳐지는 극장, 그리고 다시 바.
마치 하룻밤 꿈같은 이야기가 사형집행 전 150일 오후 6시라는 챕터에 펼쳐진다.
그리고 나서 차례는

사형집행 전 150일 심야
사형집행 전 149일 새벽녘
사형집행 전 149일 오후 6시로 이어지더니

시간을 급속도로 건너뛰어

사형집행 전 91일
사형집행 전 90일
.
.
.
로 이어진다.

이 책의 차례만 훑어봐도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참고로 책의 차례 중 마지막 챕터 3개는

사형집행 그날
사형집행 시간
사형집행 다음 1일 이다.

정교한 트릭을 기대한 독자라면 개연성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비판할 수 있다. 미국이나 서구권에서는 잊혀진 소설로 절판되었다는 이야기도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점점 조여오는 듯한 압박감, 매력적인 등장 인물에 대한 묘사, 그리고 등장 인물보다 더 고혹적으로 그려지는 배경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개인적인 평가다. 같은 동서미스터리북스에 있는 통과는 반대편에 위치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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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장석 동서 미스터리 북스 8
월키 콜린즈 지음, 강봉식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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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인 월장석을 포털 사이트에 쳐보면 국어사전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특정한 방향으로 푸른빛을 내는 알칼리 장석. 닦으면 달빛을 연상시키는 빛을 내며, 닦는 방법에 따라 묘안석 같은 빛이 난다.

 

그럼 또 묘안석은 뭐냐고 할 수 있는데 묘안석은 영어로 cat's eye. 방향에 따라 다른 색을 나타내는 특징을 가지는 보석인데 고양이의 눈을 떠올리면 바로 연상이 될 것이다. 방향에 따라 녹색으로도 흰색으로도 회색으로도 갈색으로도 보일 수 있는 보석.

 

즉 아주 신비로운 빛을 내는 보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월장석은 인도 사원의 보물이다. 당시 동양에 대해 서양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느낌을 이미지화한 결과일 것이다. 여러 각도로 볼 때마다 달라지니까 알기 어렵고, 신비스럽고, 그러니까 때로는 위험하게도 느껴지는 것은 월장석이기도 하고 당시 서양에서 바라 본 인도, 동양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그렇기에 이런 저런 이유로 인도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영국과 인도의 혼혈인도 등장하는데, 작가인 윌리엄 윌키 콜린스는 영국의 추리 소설가로 젊은 시절 홍차 장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홍차 문화는 시작은 동양이었지만 유럽에 건너온 후 영국에서 꽃피운 대표적인 문화다. 홍차가 가장 많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나라도 인도다.

이 책에서 인도인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묘사보다는 인간적인 면모가 많이 드러나는 이유는 어쩌면 그 이유일 수도 있겠다.

 

T.S 엘리엇은 이 책을 두고 "영국 최초, 최장, 최고의 추리 소설"이라는 평을 했다고 한다. 물론 현대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이후 아서 코난 도일에게 밀린 감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장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었고, 이렇게 두꺼운 책인데도 들고 다니는 것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매력 있는 소설이었지만, 전형적인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 않나 싶다. 이미 추리 소설 트릭에 많이 익숙해진 터라... 읽다 보면 아, 이 사람이 범인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오는 대목이 있다. 돈이 궁하다거나... 인물에 대한 배경 설명 중 특정 부분이 지나치게 생략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거나...

그래도 반전은 확실히 재미있다. 범인의 정체가 아니라 다른 반전이...

 

그리고 찾아보니 커프는 영국 추리소설 최초의 수사과장으로 불린다고 하며,  이 소설이 후대의 추리소설에 끼친 영향이나 선보인 트릭을 보면...
영국 시골 집을 배경으로 한 절도
내부인의 소행
훈제 청어(이 사람이 범인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더라-는 것)
전문적인 탐정
어리석은 지역 경찰
탐문 조사/심문
수많은 용의자들
가장 의심받지 않은 사람이 범인
밀실살인
범죄재현
막판 반전
등이 꼽힌다고 한다.

 

추리 소설의 기법을 가진 로맨스 모험 소설이라고 하면 요즘 독자들에게 더 잘 다가오려나?

 

아, 그리고 하나 더 추가! 집사 베털레지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내가 본 집사 캐릭터 중에서는 그야말로 원톱 집사다. 작가도 이 캐릭터에 공을 많이 들였을 것이다. 장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데 베털레지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이야기가 가장 많은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는 내 방으로 가서 땀에 흠뻑 젖어서 의자를 앉았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궁리를 했다. 이처럼 불안한 심정으로 있을 때 다른 사람 같으면 결국 흥분해서 정신을 못 차릴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우선 파이프에 불을 붙여물고 나서 <<로빈슨 크루소>>를 펼쳐드는 것이다.
읽기 시작한 지 5분도 안되어 다음과 같은 멋진 한 구절을 만났다.
-161페이지.
<위험에 대한 공포는 실제보다 몇만 배나 더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불안의 무거운 짐은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재액(災厄)보다도 훨씬 더 큰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것을 읽고도 <<로빈슨 크루소>>에 신뢰를 두지 않는 자는 머리의 나사가 헐거워진 사람이든가, 아니면 자만심으로 장님이 될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는 의논을 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모든 것을 믿어 주는 사람 위에 신의 자비는 약속되어 있는 법이다.

 

"이런 일이 앞으로도 죽 계속된다면,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 되어 버리겠는데요. 의심하고 엿보고 엿듣고....... 우리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프랭클린님? 머지 않아 우리는 모두 벙어리가 되고 말 겁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남의 비밀을 알려고 엿들을 것이며, 또 모두들 훤히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내가 런던에서 그 고약한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이곳에 왔을 떄는 벨린더 집안만큼 행복한 가정이 영국에 또 있을까 싶었을 정도였소. 그런데 한 번 보시오. 지금의 상태를! 서로 흩어지고 미워하고 공기까지도 수수께끼와 의혹으로 상해 있소! 핸커슬 외삼촌과 그 생일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던 '떨리던 모래'에서의 그날 아침 일을 기어갛고 있고, 베털레지? 월장석은 대령의 복수를 훌륭하게 수행했소, 베털레지. 더욱이 대령 자신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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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테일러스 동서 미스터리 북스 7
도로시 L. 세이어스 지음, 허문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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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독특하고 짜임새 있는 추리 소설이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
 
독서의 깊이가 얕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좌명종술 이야기만 나오면 정말 책을 던져버리고 싶었기 때문에;;
 
종 이야기가 초반에 나오다 말겠지 했는데 계속, 그것도 자세하게 나온다. 추리 소설은 읽으면서 점점 가속도가 붙으며 달려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종 이야기만 나오면 잘 나가다 잠시멈춤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맥이 좀 풀리는 느낌이 있었고...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나올 정도면 이건 반드시 사건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대충 스킵하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계속 눈을 부릅뜨고 읽었는데... 살짝 스포하자면... 그러니까 사건의 전모가 종하고 관련은 있는데 굳이 전좌명종술을 그렇게 자세하게 책에 상당 부분을 할애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냥 나만의 생각이다. 분명히 이 부분 때문에 좋아하시는 독자 분들도 있을 것이다. 
 
정작 범인은 누구일 것 같다는 느낌은 의외로(?) 빨리 온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는 서스펜스와 함께 어떻게 그 사람이 범인이 되었을까, 범인은 누구랑 연결이 되어 있을까? 다른 공범이나 피해자가 있을까? 뭐 이런 식으로 상상을 전개해 나가야 재미가 있을 텐데... 하도 종 얘기가 나오니 머리 안에서 완전히 다른 두 부분이 따로 뛰놀고 있는 느낌이었다. 눈으로 책은 읽어나가는데 계속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는 느낌...;;
 
저자는 옥스포드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이며, 신학자이자 언어학자이고 라디오 대본도 쓴 극작가이며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추리 소설 작가는 그녀의 수많은 부캐 중 하나인 셈이다. 전좌명종술에 대한 이 꼼꼼한 서술은 어쩌면 학자인 또다른 부캐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인생을 알게 되면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피터 윔지 경은...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저자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으면서도 그녀가 평생 그리기만 하고 만나지는 못했던, 혹은 스쳐지나갔더라도 인연으로 묶이지 못했던 이상적인 애인의 모습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 만하다. 매력을 느끼는 독자 분들은 많은 것 같지만 역시 아직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른 소설에서는 또 어떨지 모르지.

사족. 영화 살인의 추억과 약간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미치광이 등장하는 부분마다 향숙이를 반복해 말하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도시가 아닌 한적한 곳에서 벌어졌다는 점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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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미스터리 북스 6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오형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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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제목이 왜 통이야? 생각할 수 있는데 다 읽고 나면 알게 된다. 아, 이 작품의 주인공은 통이구나.

등장인물 소개에 나오는 사람들이 뭐가 있을 것 같은데 잠깐 나오다 말고, 심지어 수사하는 사람들도 계속 바뀐다. 만약 이 작품을 드라마나 연극, 영화로 만들면 보는 사람들이 오해하기 딱이다. 혹시 연기하는 배우가 사정으로 중도하차한건가? 이렇게.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죽 끌고 나가는 매력적인 탐정도 형사도 범인도 없고 오로지 통만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등장한다. 중반쯤 읽다보면 알게 된다. 아, 범인은 누구로구나. 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는 범인의 알리바이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가 관건이 된다.

아마 실제 사건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흔히들 말하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고 하는 상황. 노련하고 경험많은 수사관이라면 대체로 누가 범인이겠다는 판단은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는 일이 남는다.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을 죽 등장시키다가 마지막 장에서야 그들 중 이 사람이 범인이었어! 라고 이야기하는 다른 추리 소설에 익숙해져 있다면 이 소설이 살짝 지루하게 느껴질수도 있다. 그렇지만 알리바이를 검증해 나가는 장면이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하는 마지막 꼭지에서 '현실적 미스터리소설' 이라는 평가는 적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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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신부의 동심 동서 미스터리 북스 5
G. K. 체스터튼 지음, 박용숙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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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십자가
"범인은 창조적인 예술가이나 탐정은 비평가에 지나지 않지"

비밀의 정원
"두 가지 빛깔의 열매가 여는 나무가 있는 정원에 가까이 가지 말라.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사나이가 죽은 악마의 정원에는 문 앞에도 서지 말라"

기묘한 발걸음 소리
창문은 폭풍이 일 것 같은 일몰 뒤의 잔광에 여전히 물들어 있었다. 그런 다음 사나이는 마음을 정한 모양이었다. 한 손으로 카운터를 짚고 훌쩍 곡예사처럼 가볍게 뛰어넘어 신부 앞에 버티고 서더니, 굉장히 큰 손으로 상대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얌전히 굴어," 하고 재빠른 말로 속삭였다. "겁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만일……."
"내가 겁을 주고 싶군." 브라운 신부는 북처럼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없이 많은 구더기와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마르코 복음 제8장)로 놀라게 해주고 싶어."
"예치소 계원 치고는 이상한 놈 다 보겠군" 하고 상대가 말했다.
"나는 신부요, 프랑보우 씨. 당신의 참회를 들을 준비는 되어 있소." 브라운 신부는 말했다.
상대는 잠시 동안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버티고 서 있더니, 조금 뒤 비틀거리는 것처럼 뒤로 물러나 의자에 털썩 앉았다.

"참으로 묘한데요" 신부는 말했다. "도둑이나 집 없는 떠돌이 부랑자가 회개를 하는데, 한편에서는 돈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옳지 못한 생활을 그만두지 못하고 신께나 사람들에게나 죄값을 하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뭐 그건 그렇다 하고, 실례지만 당신은 내 영역을 약간 침해하고 있는 것 같소. 그가 뉘우쳤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 나이프와 포크를 보십시오. 당신네들은 참된 12 어부들이고, 여기 있는 것은 당신네들의 물고기 모양의 은식기입니다. 그러나 신께서는 나를 사람을 잡는 어부로 만들어 주셨소."
"당신은 그 사나이를 잡았습니까?"
대령이 얼굴을 찡그리고 물었다.
브라운 신부는 상대의 찡그린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소, 눈에 보이지 않는 갈고리와 긴 끈으로 잡았지요. 그 끈은 그가 세상 끝까지 방황하며 갈 수 있을 만큼 길게 해 두었지만, 힘주어 잡아당기면 그는 곧 돌아올 겁니다."

날아다니는 별
사람이란 선량한 생활이라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쁜 짓으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은 무리한 이야기야. 악의 길은 오로지 떨어져내릴 뿐이지. 친절한 남자가 술꾼이 되면 순간 잔혹해진다네. 정직한 사나이라도 사람을 죽이면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지.

보이지 않는 남자
말이라는 것은 모두 이렇게 쓰여지고 있소. 상대로부터 만족한 답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글자의 뜻으로 보면 엄밀하게 질문에 맞는 답이란 없는 법이오.

이즈레일 가우의 명예
"이것은 범죄 이야기가 아니오. 얼핏 보기에 색다르고 좀 비뚤어진 오로지 정직하기만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는 편이 좋겠소. 우리의 상대는 자신의 몫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는, 이 지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남자일 것이오. 그 남자의 종교였던 미개인의 산 논리에 대한 연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이 이야기요.

예기치 못한 일
"당신도 이것을 색다르다고 했고 나도 색다르다고 했소. 그런데 두 사람은 정반대되는 말을 하고 있소. 현대인의 머리는 언제나 두 가지 다른 생각을 혼동하고 있소. 다시 말해서 이상한 일이라는 뜻으로의 신비로움과 복잡한 것이라는 뜻으로의 신비로움을 한데 섞은 것이지요. 거기에 현대인이 기적을 믿지 못하는 이유의 절반이 있소. 기적은 놀랍기는 하지만 단순하오. 기적이기 때문에 단순한 것이오. 기적은 자연이나 인간의 의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닥쳐오는 대신 신, 또는 악마에게서 직접 닥쳐오는 힘이오. 그러므로 당신이 이 사건을 이상하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기적적이어서 옳지 못한 인도인이 작용케 한 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물론 이 사건이 영적 또는 악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오. 인간을 둘러싼 어떠한 영향력에 의해 괴상한 죄가 인간의 생활 속에 나타나는가는 다만 천국과 지옥만이 알고 있소. 그러나 지금 당장의 문제로 본 내 이야기의 요점은 이러하오. 만약 이 사건이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마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상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신비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다시 말해서 복잡하지는 않을 것이오. 기적은 질적으로는 신비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일어나기는 단순하지요. 그런데 이 사건은 매우 단순한 것과는 반대 형태로 일어났소."

살라딘 공작의 죄악
"다시 말해서 우리는 여기서 그림 뒤쪽에 있다는 겁니다." 브라운 신부가 말했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래도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디 다른 장소라야만 어떠한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어디든 다른 곳에서 진정한 가해자에게 징벌이 내리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아무래도 잘못 짐작한 사람에게 그것이 내릴 것 같습니다."
공작은 까닭을 알 수 없는 짐승 같은 소리를 지르며 그늘진 얼굴에 눈만이 야릇하게 빛나고 있었다. 신부의 마음에는 새롭고 기민한 생각이 소리도 없이 폭발했다. 살라딘은 재치가 넘쳐흐르면서도 엉뚱한 데가 있는데, 거기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과연 공작은 ……온전한 제 정신일까?
"예상 밖의 사람, 예상 밖의 사람……." 신부는 언제까지나, 사교적인 감탄치고는 너무 지나칠 정도로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다.
브라운 신부는 이윽고 제3의 진리를 가까스로 깨달았다. 눈앞의 거울에, 소리가 나지 않는 문이 열려 있고 거기에 폴이 그 창백하고 감동 없는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이 비쳐 있었다.

신의 철퇴
"어떻게 그것을 모두 알았지요? 당신은 악마요?"
"인간입니다." 브라운 신부는 엄숙하게 대답했다. "인간이기 때문에 이 마음 속에 온갖 악마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자, 들어 보십시오."

아폴론의 눈
"저러한 이교적인 스토익(스토아학파의 철학자)은," 브라운 신부는 차분하게 말했다.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실패하지요. 요란한 굉음과 비명이 바깥 거리에까지 전해져도 아폴론의 예언자님은 꿈틀하지도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도 않았소. 그것이 어떤 일인가는 알 수 없었지만, 카론이 그것을 미리 예기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당장 알 수 있었지요."

부러진 검
"현명한 사람은 어디에 나뭇잎을 감출 것인가? 숲 속일 것이다. 그러나 숲이 없을 경우에는 어찌하겠는가?"
프랑보우는 안타깝다는 듯이 소리쳤다. "글쎄요, 어떻게 할까요."
"나뭇잎을 감추기 위해 숲이 생기게 하겠지." 모호한 목소리로 신부가 말했다. "가공할 만한 죄악이지만 말이오."

세 개의 흉기
"만일 내가 살인을 한다면 죽이는 상대는 낙천주의자일 거요" 하고 덧붙였다.
"어째서입니까?" 마튼은 재미있어 하며 큰소리로 물었다. "당신의 말씀은, 세상 사람은 명랑한 것을 싫어한다는 뜻인가요?"
"세상 사람은 너털웃음이라면 좋아하겠지요. 그러나 언제나 맥없이 떠오르는 미소에 대해서는 싫증을 내지 않을까요? 어쨌든 유머가 없는 쾌활함이란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이니까요."
선로 곁의 바람을 세게 맞는 둑 위를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걷고 있었다. 죽은 암스트롱의 집이 길다란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있는 지점까지 오자 갑자기 브라운 신부는 마음의 부담스러운 생각을 진실하게 들고 나온다기보다 떨쳐버리려는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물론 술 그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내가 이따금 싫어도 느끼는 바로는 암스트롱 같은 사람은 슬픔을 맛보고 싶은 마음에 때때로 술이라도 한 잔 마시고 싶어졌던 것이 아닐까요?"

처음에는 흉기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제 와 보니 모두 나타났소. 찔러 죽이는데 쓰인 칼이 있고, 목을 졸라 죽이는데 쓰인 밧줄이 있고, 쏘아 죽이는데 쓰인 권총이 있으니. 더구나 피해자는 정말은 창문으로 떨어져 목이 부러뜨려졌는데도 말이오! 이것은 정말 묘하오. 첫째 불경제적인 이야기요"라고 말하고 신부는 바닥을 들여다본 채 풀을 뜯어먹고 있는 말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길더 경감은 진지한 생각을 말하려고 입을 열려 했으나,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바닥의 그로테스크한 인물이 다시 줄기차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있을 수도 없을 것 같은 사실이 세 가지 있소. 첫째로 이 융단에 뚫린 구멍인데, 이것은 여섯 발의 총알자국이오. 대체 융단에 총을 쏘아대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소? 취한 남자일지라도, 자기 쪽을 보고 히죽거리는 적의 골통을 똑바로 노릴 거요. 설마 상대의 발 밑에 대고 싸움을 걸거나 상대의 슬리퍼를 공격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다음에는 저 밧줄인데," 융단에 대해 처리한 신부는 짚었던 두 손을 들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무릎은 아직도 태연하게 땅에 댄 체 말을 이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 있었다 해도 상대의 목에 감으려다가 결국은 다리에 감는 그런 일을 누가 하겠소? 아무튼 로이스는 그다지 취하지 않았었소. 흠뻑 취해 있었다면 지금쯤은 푹 골아떨어져 있을 것이오. 그리고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저 위스키 병이오. 여러분도 추측해보면 알 일이지만 술꾼이 위스키 병을 잡으려고 다투다 그것을 손에 넣었는데 일부러 방구석에 내팽개쳐 속에 든 술을 절반은 엎지르고 절반은 남겨두었다니…… 그런 어리석은 흉내를 낼 술꾼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오."

"아니오, 미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브라운 신부는 모자를 집어들면서 말했다.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오. 아무리 피비린내 나는 큰 실수라도 죄와 달라서 인생을 해치는 일은 없는 것이오. 그건 그렇다 치고 이것으로 두 분은 행복해질 수 있겠군요.

낡은 우산을 든 얼뜨기 신부탐정
이 매우 키가 작은 로마 가톨릭의 성직자는 20년 가까운 옛날 시카고의 어떤 교도소에서 신자들을 위해 교도소 사목 신부로 있었던 일이 있다. 그는 웨섹스 주 코보울 교구의 신부이며 캠버웰의 성 프랜시스 자비엘회 성당에 속하기도 했으나 뒷날에는 런던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 신부는 도일의 홈즈와 나란히 추리소설의 탐정 중 쌍벽을 이룰 만큼 유명한데, 브라운을 사립 탐정인 홈즈와 마찬가지로 다루어도 좋을지는 조금 염려스럽다. 신부는 과연 탐정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탐정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일도 없거니와 탐정적 재능을 함부로 자랑하지도 않는다. 어디까지나 내성적이며 조심스러운 성격을 발휘하고 있으며, 이따금 범죄나 사건에 부딪쳐 부득이하게 탐정적 역할을 다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즉 신부로서는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기 때문이며, 또 죄인을 단호하게 법의 재판에 맡기려고도 하지 않는 점에 가톨릭 신부의 면목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확실히 수수께끼가 있고 트릭도 참신하고 풍부하여 일단 정통파 추리소설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은 일종의 독특한 본격소설이다.

영국 일류의 평론가이며 작가로서 이름을 날린 그는 1874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성 폴 학원에서 《트렌트 최후의 사건》을 쓴 E.C. 벤트리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다시 런던 대학 부속인 슬레이드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화가에 뜻을 두었으나 대성하지 못하고 그 대학에 재학 중이던 21살에 평론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 뒤 수없이 많은 정기 간행물에 건필을 휘둘러 정치론, 수필, 시, 문학평론 등의 영역에 걸쳐 활약했다. 그의 문학평론가로서의 면목은 《브라우닝 전》 《디킨즈 론》 《스티븐슨 론》 등에서 볼 수 있어 세상 사람들의 호평을 얻었는데, 한편 1천 페이지로 엮어진 길고 짧은 시를 보아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 자신은 시인으로서 가장 자신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추리소설적 작품으로는 1905년의 《기괴한 장사꾼 클럽》, 1908년의 《목요일의 사나이》가 있고 브라운 신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것은 이 책 《브라운 신부의 동심(1911년)》을 비롯하여 《브라운 신부의 지혜》 《불신》 《비밀》 《추문》 등 5권의 51편이 있다. 그리고 1927년의 《시인과 광인들》, 1936년 세상을 떠난 해에 간행된 《폰드 씨의 역설》 등이 있다.
통렬한 풍자와 가톨리시즘의 인생관을 그 바탕에 둔 브라운 신부 이야기는 추리소설의 시조인 포의 작품과 나란히 가장 문학적이고도 추리소설의 특징을 고도로 발휘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문학가로서보다는 브라운 신부의 창조자로서 길이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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