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 신부의 동심 동서 미스터리 북스 5
G. K. 체스터튼 지음, 박용숙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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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십자가
"범인은 창조적인 예술가이나 탐정은 비평가에 지나지 않지"

비밀의 정원
"두 가지 빛깔의 열매가 여는 나무가 있는 정원에 가까이 가지 말라.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사나이가 죽은 악마의 정원에는 문 앞에도 서지 말라"

기묘한 발걸음 소리
창문은 폭풍이 일 것 같은 일몰 뒤의 잔광에 여전히 물들어 있었다. 그런 다음 사나이는 마음을 정한 모양이었다. 한 손으로 카운터를 짚고 훌쩍 곡예사처럼 가볍게 뛰어넘어 신부 앞에 버티고 서더니, 굉장히 큰 손으로 상대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얌전히 굴어," 하고 재빠른 말로 속삭였다. "겁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만일……."
"내가 겁을 주고 싶군." 브라운 신부는 북처럼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없이 많은 구더기와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마르코 복음 제8장)로 놀라게 해주고 싶어."
"예치소 계원 치고는 이상한 놈 다 보겠군" 하고 상대가 말했다.
"나는 신부요, 프랑보우 씨. 당신의 참회를 들을 준비는 되어 있소." 브라운 신부는 말했다.
상대는 잠시 동안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버티고 서 있더니, 조금 뒤 비틀거리는 것처럼 뒤로 물러나 의자에 털썩 앉았다.

"참으로 묘한데요" 신부는 말했다. "도둑이나 집 없는 떠돌이 부랑자가 회개를 하는데, 한편에서는 돈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옳지 못한 생활을 그만두지 못하고 신께나 사람들에게나 죄값을 하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뭐 그건 그렇다 하고, 실례지만 당신은 내 영역을 약간 침해하고 있는 것 같소. 그가 뉘우쳤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 나이프와 포크를 보십시오. 당신네들은 참된 12 어부들이고, 여기 있는 것은 당신네들의 물고기 모양의 은식기입니다. 그러나 신께서는 나를 사람을 잡는 어부로 만들어 주셨소."
"당신은 그 사나이를 잡았습니까?"
대령이 얼굴을 찡그리고 물었다.
브라운 신부는 상대의 찡그린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소, 눈에 보이지 않는 갈고리와 긴 끈으로 잡았지요. 그 끈은 그가 세상 끝까지 방황하며 갈 수 있을 만큼 길게 해 두었지만, 힘주어 잡아당기면 그는 곧 돌아올 겁니다."

날아다니는 별
사람이란 선량한 생활이라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쁜 짓으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은 무리한 이야기야. 악의 길은 오로지 떨어져내릴 뿐이지. 친절한 남자가 술꾼이 되면 순간 잔혹해진다네. 정직한 사나이라도 사람을 죽이면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지.

보이지 않는 남자
말이라는 것은 모두 이렇게 쓰여지고 있소. 상대로부터 만족한 답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글자의 뜻으로 보면 엄밀하게 질문에 맞는 답이란 없는 법이오.

이즈레일 가우의 명예
"이것은 범죄 이야기가 아니오. 얼핏 보기에 색다르고 좀 비뚤어진 오로지 정직하기만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는 편이 좋겠소. 우리의 상대는 자신의 몫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는, 이 지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남자일 것이오. 그 남자의 종교였던 미개인의 산 논리에 대한 연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이 이야기요.

예기치 못한 일
"당신도 이것을 색다르다고 했고 나도 색다르다고 했소. 그런데 두 사람은 정반대되는 말을 하고 있소. 현대인의 머리는 언제나 두 가지 다른 생각을 혼동하고 있소. 다시 말해서 이상한 일이라는 뜻으로의 신비로움과 복잡한 것이라는 뜻으로의 신비로움을 한데 섞은 것이지요. 거기에 현대인이 기적을 믿지 못하는 이유의 절반이 있소. 기적은 놀랍기는 하지만 단순하오. 기적이기 때문에 단순한 것이오. 기적은 자연이나 인간의 의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닥쳐오는 대신 신, 또는 악마에게서 직접 닥쳐오는 힘이오. 그러므로 당신이 이 사건을 이상하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기적적이어서 옳지 못한 인도인이 작용케 한 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물론 이 사건이 영적 또는 악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오. 인간을 둘러싼 어떠한 영향력에 의해 괴상한 죄가 인간의 생활 속에 나타나는가는 다만 천국과 지옥만이 알고 있소. 그러나 지금 당장의 문제로 본 내 이야기의 요점은 이러하오. 만약 이 사건이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마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상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신비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다시 말해서 복잡하지는 않을 것이오. 기적은 질적으로는 신비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일어나기는 단순하지요. 그런데 이 사건은 매우 단순한 것과는 반대 형태로 일어났소."

살라딘 공작의 죄악
"다시 말해서 우리는 여기서 그림 뒤쪽에 있다는 겁니다." 브라운 신부가 말했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래도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디 다른 장소라야만 어떠한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어디든 다른 곳에서 진정한 가해자에게 징벌이 내리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아무래도 잘못 짐작한 사람에게 그것이 내릴 것 같습니다."
공작은 까닭을 알 수 없는 짐승 같은 소리를 지르며 그늘진 얼굴에 눈만이 야릇하게 빛나고 있었다. 신부의 마음에는 새롭고 기민한 생각이 소리도 없이 폭발했다. 살라딘은 재치가 넘쳐흐르면서도 엉뚱한 데가 있는데, 거기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과연 공작은 ……온전한 제 정신일까?
"예상 밖의 사람, 예상 밖의 사람……." 신부는 언제까지나, 사교적인 감탄치고는 너무 지나칠 정도로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다.
브라운 신부는 이윽고 제3의 진리를 가까스로 깨달았다. 눈앞의 거울에, 소리가 나지 않는 문이 열려 있고 거기에 폴이 그 창백하고 감동 없는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이 비쳐 있었다.

신의 철퇴
"어떻게 그것을 모두 알았지요? 당신은 악마요?"
"인간입니다." 브라운 신부는 엄숙하게 대답했다. "인간이기 때문에 이 마음 속에 온갖 악마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자, 들어 보십시오."

아폴론의 눈
"저러한 이교적인 스토익(스토아학파의 철학자)은," 브라운 신부는 차분하게 말했다.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실패하지요. 요란한 굉음과 비명이 바깥 거리에까지 전해져도 아폴론의 예언자님은 꿈틀하지도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도 않았소. 그것이 어떤 일인가는 알 수 없었지만, 카론이 그것을 미리 예기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당장 알 수 있었지요."

부러진 검
"현명한 사람은 어디에 나뭇잎을 감출 것인가? 숲 속일 것이다. 그러나 숲이 없을 경우에는 어찌하겠는가?"
프랑보우는 안타깝다는 듯이 소리쳤다. "글쎄요, 어떻게 할까요."
"나뭇잎을 감추기 위해 숲이 생기게 하겠지." 모호한 목소리로 신부가 말했다. "가공할 만한 죄악이지만 말이오."

세 개의 흉기
"만일 내가 살인을 한다면 죽이는 상대는 낙천주의자일 거요" 하고 덧붙였다.
"어째서입니까?" 마튼은 재미있어 하며 큰소리로 물었다. "당신의 말씀은, 세상 사람은 명랑한 것을 싫어한다는 뜻인가요?"
"세상 사람은 너털웃음이라면 좋아하겠지요. 그러나 언제나 맥없이 떠오르는 미소에 대해서는 싫증을 내지 않을까요? 어쨌든 유머가 없는 쾌활함이란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이니까요."
선로 곁의 바람을 세게 맞는 둑 위를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걷고 있었다. 죽은 암스트롱의 집이 길다란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있는 지점까지 오자 갑자기 브라운 신부는 마음의 부담스러운 생각을 진실하게 들고 나온다기보다 떨쳐버리려는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물론 술 그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내가 이따금 싫어도 느끼는 바로는 암스트롱 같은 사람은 슬픔을 맛보고 싶은 마음에 때때로 술이라도 한 잔 마시고 싶어졌던 것이 아닐까요?"

처음에는 흉기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제 와 보니 모두 나타났소. 찔러 죽이는데 쓰인 칼이 있고, 목을 졸라 죽이는데 쓰인 밧줄이 있고, 쏘아 죽이는데 쓰인 권총이 있으니. 더구나 피해자는 정말은 창문으로 떨어져 목이 부러뜨려졌는데도 말이오! 이것은 정말 묘하오. 첫째 불경제적인 이야기요"라고 말하고 신부는 바닥을 들여다본 채 풀을 뜯어먹고 있는 말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길더 경감은 진지한 생각을 말하려고 입을 열려 했으나,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바닥의 그로테스크한 인물이 다시 줄기차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있을 수도 없을 것 같은 사실이 세 가지 있소. 첫째로 이 융단에 뚫린 구멍인데, 이것은 여섯 발의 총알자국이오. 대체 융단에 총을 쏘아대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소? 취한 남자일지라도, 자기 쪽을 보고 히죽거리는 적의 골통을 똑바로 노릴 거요. 설마 상대의 발 밑에 대고 싸움을 걸거나 상대의 슬리퍼를 공격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다음에는 저 밧줄인데," 융단에 대해 처리한 신부는 짚었던 두 손을 들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무릎은 아직도 태연하게 땅에 댄 체 말을 이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 있었다 해도 상대의 목에 감으려다가 결국은 다리에 감는 그런 일을 누가 하겠소? 아무튼 로이스는 그다지 취하지 않았었소. 흠뻑 취해 있었다면 지금쯤은 푹 골아떨어져 있을 것이오. 그리고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저 위스키 병이오. 여러분도 추측해보면 알 일이지만 술꾼이 위스키 병을 잡으려고 다투다 그것을 손에 넣었는데 일부러 방구석에 내팽개쳐 속에 든 술을 절반은 엎지르고 절반은 남겨두었다니…… 그런 어리석은 흉내를 낼 술꾼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오."

"아니오, 미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브라운 신부는 모자를 집어들면서 말했다.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오. 아무리 피비린내 나는 큰 실수라도 죄와 달라서 인생을 해치는 일은 없는 것이오. 그건 그렇다 치고 이것으로 두 분은 행복해질 수 있겠군요.

낡은 우산을 든 얼뜨기 신부탐정
이 매우 키가 작은 로마 가톨릭의 성직자는 20년 가까운 옛날 시카고의 어떤 교도소에서 신자들을 위해 교도소 사목 신부로 있었던 일이 있다. 그는 웨섹스 주 코보울 교구의 신부이며 캠버웰의 성 프랜시스 자비엘회 성당에 속하기도 했으나 뒷날에는 런던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 신부는 도일의 홈즈와 나란히 추리소설의 탐정 중 쌍벽을 이룰 만큼 유명한데, 브라운을 사립 탐정인 홈즈와 마찬가지로 다루어도 좋을지는 조금 염려스럽다. 신부는 과연 탐정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탐정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일도 없거니와 탐정적 재능을 함부로 자랑하지도 않는다. 어디까지나 내성적이며 조심스러운 성격을 발휘하고 있으며, 이따금 범죄나 사건에 부딪쳐 부득이하게 탐정적 역할을 다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즉 신부로서는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기 때문이며, 또 죄인을 단호하게 법의 재판에 맡기려고도 하지 않는 점에 가톨릭 신부의 면목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확실히 수수께끼가 있고 트릭도 참신하고 풍부하여 일단 정통파 추리소설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은 일종의 독특한 본격소설이다.

영국 일류의 평론가이며 작가로서 이름을 날린 그는 1874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성 폴 학원에서 《트렌트 최후의 사건》을 쓴 E.C. 벤트리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다시 런던 대학 부속인 슬레이드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화가에 뜻을 두었으나 대성하지 못하고 그 대학에 재학 중이던 21살에 평론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 뒤 수없이 많은 정기 간행물에 건필을 휘둘러 정치론, 수필, 시, 문학평론 등의 영역에 걸쳐 활약했다. 그의 문학평론가로서의 면목은 《브라우닝 전》 《디킨즈 론》 《스티븐슨 론》 등에서 볼 수 있어 세상 사람들의 호평을 얻었는데, 한편 1천 페이지로 엮어진 길고 짧은 시를 보아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 자신은 시인으로서 가장 자신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추리소설적 작품으로는 1905년의 《기괴한 장사꾼 클럽》, 1908년의 《목요일의 사나이》가 있고 브라운 신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것은 이 책 《브라운 신부의 동심(1911년)》을 비롯하여 《브라운 신부의 지혜》 《불신》 《비밀》 《추문》 등 5권의 51편이 있다. 그리고 1927년의 《시인과 광인들》, 1936년 세상을 떠난 해에 간행된 《폰드 씨의 역설》 등이 있다.
통렬한 풍자와 가톨리시즘의 인생관을 그 바탕에 둔 브라운 신부 이야기는 추리소설의 시조인 포의 작품과 나란히 가장 문학적이고도 추리소설의 특징을 고도로 발휘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문학가로서보다는 브라운 신부의 창조자로서 길이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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