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
한상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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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원적인 외로움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각각의 사례는 잘 들었으나,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데에는 부족하다.

 

단순히 외로움을 제시하며 공감을 이끌어내고, 위로를 주며, 고찰을 유도하는 것은 소설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자기계발서라는 책 본연의 목적에는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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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권도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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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자신이 선정한 '베스트 10'에 속하는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독자로서 나는 그 정도까지는 꼽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매우 독특하며 참신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에르큘 포와로와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소설들처럼 철저하게 증거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건 정황에 상당히 의존한다. 어쩌면 그래서 크리스티가 일부러 그 어떤 탐정도 등장시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크리스티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격언에 의문을 품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택한 것 같다.

엄청난 재력가 부부와 2남 3녀. 11월의 어느날 어머니가 살해당하고, 작은 아들 재코가 범인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죽는다. 그런데 2년 뒤 방문객에 의해 재코의 알리바이가 입증된다. 당시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 즉시 남극으로 떠나면서 이 사건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없었던 캘거리는 귀국 후 우연한 기회로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고, 감옥에서 죽은 범인의 알리바이를 유일하게 입증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고민 끝에 직접 찾아가 가족들에게 사실을 밝히지만, 그들의 반응은 그의 예상과는 너무나 다르다. 아들이자 동생이며 오빠인 사람의 누명을 벗겨준 것에 대해 감사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족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의심에 휩싸인다. 사실 이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완전한 남남으로, 불임판정을 받은 부인이 5명의 아이를 전부 입양해서 만들어진 가족이었다. 어릴 때부터 불량했고 정서가 불안했던 재코가 범인이 아니라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이 피 한 방울 안 섞인 가족들 중 한 명이라는 뜻이 된다.

 

제목이 왜 누명일까 생각해봤는데, 죽은 자의 누명이 벗겨지면서 이 이야기가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재수사가 이루어지고, 당연히 당시의 증거는 전부 없어졌을 것이며 기억 또한 명확하지 않다. 결국 이후에 캘거리의 방문 후 일어난 사건과, 이런 저런 심리적인 추론으로 범인을 압박하여 자백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결말을 맺게 되는데, 아마도 작가는 추리 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반전일 수도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안전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나로서는 읽는 내내 몰입할 정도로 재미있었지만, 막바지에서 약간 실망해서 안타까웠다. 아무리 생전에 극악무도한 인물이었고, 어떤 경우에라도 정의는 존재해야 하며, 죄인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실제 범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단 한번도 바꾸지 않았는데, 정황을 알게 되고 나면 과연 밝혀진 이 진실이, 밝혀지기 전 모두가 믿고 있던 그 사실과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크리스티의 집필 의도는 꽤 성공적이라는 뜻일 테다. 아마도 사족처럼 느껴지는 성급한 로맨스는, 그것마저 없으면 캘거리의 방문이 차라리 없는 게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장치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작가의 입장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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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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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특이하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건지는 지명 이름이다. 영국 땅이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지배하에 있었던 땅이다.

히틀러의 독일군이 이곳에 진입하고, 패망하여 물러날 때까지 몇 년 동안, 이 섬 사람들은 독일군의 횡포에 시달리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강도는 점점 심해진다.

독일군의 여러 가지 강제적인 규정 가운데 한 가지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물자가 부족해지면서 독일군이 고기를 독점하기 위한 것으로, 어느 날 눈을 피해서 몇 명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돼지고기를 먹다가 독일군에게 들키게 된다. 자칫하면 처벌 받을 수 있는 상황,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은 북클럽, 이른바 독서 모임 중이었다고 이야기하며,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몇 번의 모임을 가지게 된다. 처음에 이렇게 시작했던 그들만의 책읽기는 단순히 독일군에게 보여주기위한 형식적인 모임에서 벗어나, 당시 견디기 힘들었던 삶을 지탱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위로하는 행사로 발전하게 된다. 그렇다면 감자껍질파이란? 물자가 부족해 먹을 게 워낙 없던 그 시절, 모임 때마다 감자껍질로 파이를 만들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대체 감자로 만든 파이도 아닌, 감자 껍질로 만든 파이란 어떤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고 먹어보고 싶지도 않다. 얼마나 그 시절의 삶이 고단했을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제목이다.

 

다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영국에서 유일하게 점령했던 건지 아일랜드에 대한 출판사의 설명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6월 15일, 영국 정부가 영국해협에 위치한 영국 왕실 자치령인 채널제도가 전략상 요충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군사적 방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건지 섬 정부는 우선 학령기 아동을 모두 대피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얼마 후, 독일군 정찰기는 건지 섬의 수도인 세인트피터포트에 정박한 호송선을 군대수송선으로 오인한 나머지 (사실 호송선은 영국 본토로 향하는 배에 토마토를 실어 나르기 위한 것이었다) 폭격을 가해 30~40명가량의 섬 주민이 사망한다.
그리고 1940년 6월 30일 독일군은 건지 섬에 상륙한다(그 후 며칠 만에 다른 채널제도 섬들도 점령된다). 이후 섬 전체가 영국을 점령하기 위한 교두보로 활용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점령당한 유일한 영국 영토로 점령은 1945년 5월 9일까지 이어진다.

 

 

전쟁이 끝나고 1년 후,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작가 줄리엣은 자신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는 책을 가지고 있는 건지 섬의 한 주민으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고, 곧이어 마을의 다른 사람들과도 편지 교환이 시작되면서 건지 섬의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가 알려지게 된다.

 

이 책은 작가의 유작이자, 유일한 작품이라고 한다. 평생 도서관과 서점에서 일하며, 지역 신문의 편집을 한 적도 있었던 작가는, 아마도 책을 사랑했고 수많은 작가들을 흠모했을 것이다. 1976년에 이 섬을 방문했던 작가는, 수십년간의 조사 과정을 끝낸 후 2000년경에야 집필을 시작했으며, 2008년, 책이 출간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사망하게 된다. 작가의 유일한 작품, 수십년간의 집필 과정, 죽고 나서야 출간된 책, 그리고 출간 직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 소설 밖의 이야기도 한 편의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물을 보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뜬 작가와, 종전되기 바로 직전에 사망한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삶이 겹쳐지고, 평생 출판할 가치가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과, 책을 사랑한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마음이 합쳐지면서 오는 감동은 먹먹하다.

 

문학이란, 삶을 버티게 해 주고,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게 해 주는 것. 알고 있는 사실이다. 충분히 머리로 알고 있는데, 이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확인해 가는 과정은 가슴이 시릴 정도이다. 엄연히 허구인데, 소설 속 이야기들이 진짜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생생한 묘사? 탄탄한 구성?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을 하다 보면 글쎄, 이런 식의 분석이 다 무슨 필요가 있나 싶다. 그 어떤 평론가들의 분석보다도 전쟁 당시 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감상이 더 와닿는 것처럼. 문학이란 그저 좋은 것, 그저 위로가 되는 것, 그저 힘이 되는 것, 그냥 그대로 삶의 일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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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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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왜  이제서야 내가 읽었을까.

 

39쇄 돌파.

그 이후로 얼마나 더 책을 찍어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확인한 바로는 그렇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당시에 꽤 많은 친구들의 SNS 프로필 사진이 이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세계적인 감독 이안이 만든 영화가 개봉하여 좋은 평을 듣기도 했다.

 

왜 이 책을 내가 그동안 읽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내가 싫어하는 요소가 많아서?

 

아마도 취향이라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에, 나중에라도 교육으로 바뀔 여지가 없다. 그저 어릴 때 가졌던 이거 좋아, 저거 싫어, 의 개념이 커서까지 가는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이 책은 내가 어릴 때부터 선호하지 않았던 소설의 요소가 전부 들어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 수많은 세계 명작 동화 시리즈에서 내가 유일하게 싫어했던 책은 명견 래시였다. 사람처럼 말도 하지 못하고, 인간에 대한 태도가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바뀌지 않았기에 다른 이야기의 인간들처럼 질투하고 시기하고 고민하고 반성하고 사랑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없기에 지루하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이제는 약간 두꺼워진 세계 명작 전집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싫어했던 것은 시튼 동물기. 이건 마치 백과사전을 읽는 느낌이었다. 물론 백과사전도 나름대로 그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즐거움이 아니라 지식을 쌓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좀 더 두꺼워진 청소년 명작들 중에서 내가 또 싫어했던 것은 걸리버 여행기. 어린 시절 단 몇 쪽의 책으로만 구성되었던 내용이 차라리 좋았다. 내용이 길어지면서 긴 여행 동안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서만 지내야 했던 걸리버의 삶을 따라가며 누군가와 소통하지 못하고 그저 손님으로만 머무르는 것 같은 이야기에 지쳤다. 물론 이 책 전체가 훌륭한 우화이자 풍자이며 시대적 상황에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나중에 내가 다 자라고 나서 안 일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처럼 변화무쌍하지 않고, 처음의 태도가 끝까지 바뀌지 않으며, 인간과 언어로 소통하지 못하는 동물이 등장하면 나는 그 이야기가 금방 시들해졌다. 물론 키우는 동물과 어느 정도로 영혼을 교감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보지만, 인간과 인간 처럼 그 과정이 복잡다단하며 다사다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이런 독서 습관은 나만의 것이었던 모양이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동물 이야기를 좋아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내가 읽지 않은 이유는 이런 선입견 때문이다. 다수는 좋아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맞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떄문에.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가지고 있던 책에 대한 선입견은 전부 사실이 아니다. 이 책은 참 어마어마한 책이며, 거대한 은유이다.

 

이 책에 나오는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절대로 만만한 동물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파이에게 일관된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경계했다가, 달려들었다가, 복종했다가, 다시 반항했다가, 순응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그렇기 때문에 파이는 리처드 파커와 헤어질 떄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는 것이다. 꼭 인간과 인간 관계 같다. 환상이기는 하지만, 리처드 파커와 파이는 언어로 대화를 나누며 과거에 있었던 일들과 현재 상황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을 작가가 부여한 것에는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실수를 통해 목마름이라는 원래 이름 대신 호랑이가 새끼때 그를 잡은 사냥꾼의 이름을 얻게 된 에피소드를 일부러 정교하게 만들어 내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끝에 가서 알려지지만, 사실 리처드 파커는 단순히 호랑이가 아니며, 또다른 주인공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그 과정은 파이가 진술하는 과정에서 선박 회사쪽에서 나온 두 명의 일본인들의 대화를 통해 분명하게 서술된다.

 

리처드 파커는 누구였고, 파이가 만났다는 눈 먼 요리사는 누구였으며, 얼룩말은 누구였고... 이런 직접적인 대사가 나오면서 두 가지의 결말이 정확하게 제시가 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자연스레 실제 진실은 이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일각에서는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게 진짜고, 다른 하나가 픽션일 수 있다고. 어쩌면 둘 다 픽션이며, 제 3의 이야기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독자의 개인적 경험과 상황에 따라 특정 결말을 정할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결론은, 이거다. 처음 내가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그것, 그리고 대다수의 독자들이 생각하는 바로 그 이야기. 그렇다면 현실은 얼마나 잔인하고 악독하며 추악하고 나약한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아야 하는 것. 그렇게나 길게 1부에서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할애했고, 주인공이 사건 전후로 어떤 종교적 태도로 삶을 견지하는지를 보여준 이유는 그 떄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종교라는 것은 삶의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그리고 온 가족이 전부 죽고 혼자 바다에서 표류하면서 과연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구출된 이후로도 고아로서 낯선 땅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만 했던 파이, 그 소년에게 종교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하는, 떄로는 만들어서라도 무작정 믿어서라도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지 않으면 삶을 견디기가 힘들 수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영화가 있다.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아직 어려서 수용소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를 만들어서 들려준다. 만약 사실 그대로 알았더라면, 아들은 살아날 수 있었을까. 아버지의 하얀 거짓말 때문에 아이는 수용소에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아이에게도 아버지의 이야기가 오로지 허구이기만 했을까? 아이는 아버지의 말대로 이른바 미션을 훌륭히 수행했고, 끝까지 살아남아 승자가 되어 탱크를 탈 수 있었고 어머니를 만났다. 아이에게는 아버지의 그 이야기가 진실이었던 것이다.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 그러나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진실이 되었고 살아남을 수 있게 했다. 삶을 견디기 위해 파이가 믿을 수 있었던 것, 믿어야만 했던 것에는 종교 말고 또 한 가지가 있다. 파이가 만들어낸 이야기.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을 어쨌거나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게 예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위로가 아닐까, 인간으로서 삶의 의미가 종교에 있다면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어떤 이유와 설명을 한다면 그 부분이 아닐까, 작가는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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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포스티노
마이첼 레드포드 감독, 마씨모 뜨로이지 외 출연 / 키노필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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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쓴 글 이외의 말로 그 시를 표현하지 못하네.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뿐이야.

 

 

 

해변을 천천히 따라 걸으면서

주위를 감상해 보게.

 

그럼 은유를 쓰게 되나요?

 

틀림없을 거야.

 

 

 

사람은 의지가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시란 시를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내가 그 나이였을때 시가 나를 찾아왔다. 그것이 겨울이었는지 강이었는지 언제 어떻게인지 난 모른다. 그건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고 침묵도 아니다.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뜻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고독한 귀로 길에서 그 곳에서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처음으로 운율을 깨닫는 순간, 멀미가 날 것 같다는 그 말, 그리고 마치 배가 단어에 이리저리 부딪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며 자기도 모르게 은유를 사용한, 바닷가에서의 노시인과 순수한 우체부와의 대화.

 

 

여러 모로 <시네마 천국>이 생각나는 영화다.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 풍경, 아름다운 음악, 영화나 시와 같은 예술에 대한 동경, 그러고 보니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 아저씨가 여기에서는 대시인 네루다로 등장한다. 또다른 주인공인 마리오 역의 배우는 이 영화가 유작이라고 한다. 로베르토 베니니와 함께 이탈리아의 국민 배우이자 감독이었다고 한다. 이 영화를 찍을 당시에 이미 병을 앓고 있었으나 불굴의 의지로 출연했고, 촬영 종료 12시간 후 사망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면 왠지 힘이 없고 아파 보이는데 무기력한 주인공을 연기한 것일 수도, 어쩌면 병마에 시달리던 배우가 마지막에 분투한 것일 수도 있겠다. 영화 속 주인공의 마지막, 그리고 실제 그 역을 연기한 배우의 마지막, 둘 다 슬프게도 닮아 있어서 더 마음이 아프다. 인생과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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