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왜  이제서야 내가 읽었을까.

 

39쇄 돌파.

그 이후로 얼마나 더 책을 찍어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확인한 바로는 그렇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당시에 꽤 많은 친구들의 SNS 프로필 사진이 이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세계적인 감독 이안이 만든 영화가 개봉하여 좋은 평을 듣기도 했다.

 

왜 이 책을 내가 그동안 읽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내가 싫어하는 요소가 많아서?

 

아마도 취향이라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에, 나중에라도 교육으로 바뀔 여지가 없다. 그저 어릴 때 가졌던 이거 좋아, 저거 싫어, 의 개념이 커서까지 가는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이 책은 내가 어릴 때부터 선호하지 않았던 소설의 요소가 전부 들어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 수많은 세계 명작 동화 시리즈에서 내가 유일하게 싫어했던 책은 명견 래시였다. 사람처럼 말도 하지 못하고, 인간에 대한 태도가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바뀌지 않았기에 다른 이야기의 인간들처럼 질투하고 시기하고 고민하고 반성하고 사랑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없기에 지루하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이제는 약간 두꺼워진 세계 명작 전집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싫어했던 것은 시튼 동물기. 이건 마치 백과사전을 읽는 느낌이었다. 물론 백과사전도 나름대로 그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즐거움이 아니라 지식을 쌓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좀 더 두꺼워진 청소년 명작들 중에서 내가 또 싫어했던 것은 걸리버 여행기. 어린 시절 단 몇 쪽의 책으로만 구성되었던 내용이 차라리 좋았다. 내용이 길어지면서 긴 여행 동안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서만 지내야 했던 걸리버의 삶을 따라가며 누군가와 소통하지 못하고 그저 손님으로만 머무르는 것 같은 이야기에 지쳤다. 물론 이 책 전체가 훌륭한 우화이자 풍자이며 시대적 상황에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나중에 내가 다 자라고 나서 안 일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처럼 변화무쌍하지 않고, 처음의 태도가 끝까지 바뀌지 않으며, 인간과 언어로 소통하지 못하는 동물이 등장하면 나는 그 이야기가 금방 시들해졌다. 물론 키우는 동물과 어느 정도로 영혼을 교감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보지만, 인간과 인간 처럼 그 과정이 복잡다단하며 다사다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이런 독서 습관은 나만의 것이었던 모양이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동물 이야기를 좋아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내가 읽지 않은 이유는 이런 선입견 때문이다. 다수는 좋아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맞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떄문에.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가지고 있던 책에 대한 선입견은 전부 사실이 아니다. 이 책은 참 어마어마한 책이며, 거대한 은유이다.

 

이 책에 나오는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절대로 만만한 동물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파이에게 일관된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경계했다가, 달려들었다가, 복종했다가, 다시 반항했다가, 순응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그렇기 때문에 파이는 리처드 파커와 헤어질 떄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는 것이다. 꼭 인간과 인간 관계 같다. 환상이기는 하지만, 리처드 파커와 파이는 언어로 대화를 나누며 과거에 있었던 일들과 현재 상황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을 작가가 부여한 것에는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실수를 통해 목마름이라는 원래 이름 대신 호랑이가 새끼때 그를 잡은 사냥꾼의 이름을 얻게 된 에피소드를 일부러 정교하게 만들어 내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끝에 가서 알려지지만, 사실 리처드 파커는 단순히 호랑이가 아니며, 또다른 주인공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그 과정은 파이가 진술하는 과정에서 선박 회사쪽에서 나온 두 명의 일본인들의 대화를 통해 분명하게 서술된다.

 

리처드 파커는 누구였고, 파이가 만났다는 눈 먼 요리사는 누구였으며, 얼룩말은 누구였고... 이런 직접적인 대사가 나오면서 두 가지의 결말이 정확하게 제시가 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자연스레 실제 진실은 이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일각에서는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게 진짜고, 다른 하나가 픽션일 수 있다고. 어쩌면 둘 다 픽션이며, 제 3의 이야기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독자의 개인적 경험과 상황에 따라 특정 결말을 정할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결론은, 이거다. 처음 내가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그것, 그리고 대다수의 독자들이 생각하는 바로 그 이야기. 그렇다면 현실은 얼마나 잔인하고 악독하며 추악하고 나약한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아야 하는 것. 그렇게나 길게 1부에서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할애했고, 주인공이 사건 전후로 어떤 종교적 태도로 삶을 견지하는지를 보여준 이유는 그 떄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종교라는 것은 삶의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그리고 온 가족이 전부 죽고 혼자 바다에서 표류하면서 과연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구출된 이후로도 고아로서 낯선 땅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만 했던 파이, 그 소년에게 종교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하는, 떄로는 만들어서라도 무작정 믿어서라도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지 않으면 삶을 견디기가 힘들 수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영화가 있다.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아직 어려서 수용소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를 만들어서 들려준다. 만약 사실 그대로 알았더라면, 아들은 살아날 수 있었을까. 아버지의 하얀 거짓말 때문에 아이는 수용소에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아이에게도 아버지의 이야기가 오로지 허구이기만 했을까? 아이는 아버지의 말대로 이른바 미션을 훌륭히 수행했고, 끝까지 살아남아 승자가 되어 탱크를 탈 수 있었고 어머니를 만났다. 아이에게는 아버지의 그 이야기가 진실이었던 것이다.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 그러나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진실이 되었고 살아남을 수 있게 했다. 삶을 견디기 위해 파이가 믿을 수 있었던 것, 믿어야만 했던 것에는 종교 말고 또 한 가지가 있다. 파이가 만들어낸 이야기.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을 어쨌거나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게 예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위로가 아닐까, 인간으로서 삶의 의미가 종교에 있다면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어떤 이유와 설명을 한다면 그 부분이 아닐까, 작가는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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