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참 특이하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건지는 지명 이름이다. 영국 땅이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지배하에 있었던 땅이다.

히틀러의 독일군이 이곳에 진입하고, 패망하여 물러날 때까지 몇 년 동안, 이 섬 사람들은 독일군의 횡포에 시달리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강도는 점점 심해진다.

독일군의 여러 가지 강제적인 규정 가운데 한 가지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물자가 부족해지면서 독일군이 고기를 독점하기 위한 것으로, 어느 날 눈을 피해서 몇 명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돼지고기를 먹다가 독일군에게 들키게 된다. 자칫하면 처벌 받을 수 있는 상황,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은 북클럽, 이른바 독서 모임 중이었다고 이야기하며,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몇 번의 모임을 가지게 된다. 처음에 이렇게 시작했던 그들만의 책읽기는 단순히 독일군에게 보여주기위한 형식적인 모임에서 벗어나, 당시 견디기 힘들었던 삶을 지탱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위로하는 행사로 발전하게 된다. 그렇다면 감자껍질파이란? 물자가 부족해 먹을 게 워낙 없던 그 시절, 모임 때마다 감자껍질로 파이를 만들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대체 감자로 만든 파이도 아닌, 감자 껍질로 만든 파이란 어떤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고 먹어보고 싶지도 않다. 얼마나 그 시절의 삶이 고단했을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제목이다.

 

다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영국에서 유일하게 점령했던 건지 아일랜드에 대한 출판사의 설명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6월 15일, 영국 정부가 영국해협에 위치한 영국 왕실 자치령인 채널제도가 전략상 요충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군사적 방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건지 섬 정부는 우선 학령기 아동을 모두 대피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얼마 후, 독일군 정찰기는 건지 섬의 수도인 세인트피터포트에 정박한 호송선을 군대수송선으로 오인한 나머지 (사실 호송선은 영국 본토로 향하는 배에 토마토를 실어 나르기 위한 것이었다) 폭격을 가해 30~40명가량의 섬 주민이 사망한다.
그리고 1940년 6월 30일 독일군은 건지 섬에 상륙한다(그 후 며칠 만에 다른 채널제도 섬들도 점령된다). 이후 섬 전체가 영국을 점령하기 위한 교두보로 활용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점령당한 유일한 영국 영토로 점령은 1945년 5월 9일까지 이어진다.

 

 

전쟁이 끝나고 1년 후,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작가 줄리엣은 자신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는 책을 가지고 있는 건지 섬의 한 주민으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고, 곧이어 마을의 다른 사람들과도 편지 교환이 시작되면서 건지 섬의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가 알려지게 된다.

 

이 책은 작가의 유작이자, 유일한 작품이라고 한다. 평생 도서관과 서점에서 일하며, 지역 신문의 편집을 한 적도 있었던 작가는, 아마도 책을 사랑했고 수많은 작가들을 흠모했을 것이다. 1976년에 이 섬을 방문했던 작가는, 수십년간의 조사 과정을 끝낸 후 2000년경에야 집필을 시작했으며, 2008년, 책이 출간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사망하게 된다. 작가의 유일한 작품, 수십년간의 집필 과정, 죽고 나서야 출간된 책, 그리고 출간 직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 소설 밖의 이야기도 한 편의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물을 보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뜬 작가와, 종전되기 바로 직전에 사망한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삶이 겹쳐지고, 평생 출판할 가치가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과, 책을 사랑한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마음이 합쳐지면서 오는 감동은 먹먹하다.

 

문학이란, 삶을 버티게 해 주고,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게 해 주는 것. 알고 있는 사실이다. 충분히 머리로 알고 있는데, 이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확인해 가는 과정은 가슴이 시릴 정도이다. 엄연히 허구인데, 소설 속 이야기들이 진짜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생생한 묘사? 탄탄한 구성?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을 하다 보면 글쎄, 이런 식의 분석이 다 무슨 필요가 있나 싶다. 그 어떤 평론가들의 분석보다도 전쟁 당시 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감상이 더 와닿는 것처럼. 문학이란 그저 좋은 것, 그저 위로가 되는 것, 그저 힘이 되는 것, 그냥 그대로 삶의 일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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