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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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제 오랜 세월 공부 열심히 한 덕에 학위를 받게 되네요. 앞길에 대한 문제로 생각이 많을 대입니다. 음악의 길로 갈 것인지, 음악과 학문을 병행할 것인지, 그리고 귀국을 할 것인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그곳에서 당분간 사는 것이 좋은지 고민을 하게 되겠군요. 그런 문제에 나는 별로 도움을 줄 만한 실력이나 혜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나 자신이 비슷한 고민으로 젊은 시절 오랫동안 잠 못 이룬 경험도 있지요. 그 당시 내가 귀국하지 못하고 미국에 머물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나를 적극적으로 필요로 한 곳이 바로 미국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산다는 것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었고 10년 뒤, 아니 1년 뒤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 당시의 결정이 옳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생각은 내가 아마추어라는 의식이었습니다. 나는 아직 장인이 아니다, 나는 아직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공부를 하는 데 제일 많은 기회를 주는 곳이 어디인가, 그런 의문도 컸습니다.

그런 말 들었지요? 사람은 결혼을 해도 후회하고 결혼을 안 해도 후회한다는 말, 후회 안 하는 인생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그 후회의 양과 질이 문제이지요. 천천히 잘 생각해서 모든 일을 결정하세요. 내가 혹 몇 마디 여기에 보태도 된다면, 조 군이 힘들여 공부한 생명공학을 아마추어라는 생각으로 겸손히 더 공부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잠을 좀 덜 자고 내가 감당해야 할 팔자라고 생각하고, 윤석 군이 가진 음악적 재질과 열정, 그 황홀을 버리지 말라는 말도 건네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되도록 너무 늦기 전에 고국에 정착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이유는 명확히 말할 수는 없어요.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후회를 덜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토리노에 도착한 그 날, 영국의 학교로부터 거절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박사 후 과정도 없이 교수 자리를 지원하는 것이 난센스라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학회장에 들어서서부터 예전에 학회에 다닐 때 그렇게 재미있고 궁금하던 기분은 난데없이 사라지고, 노벨 화학상까지 탄 슈퍼스타급 연구자의 기조발표도 가서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지요. 그래서 일주일 내내 계속 토리노 시내를 돌아다니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논문심사가 끝나고 시작된, 아니 사실 그간 잠시 잊고 있던 질문과 그 질문들에 대한 답과, 그 답에 대한 100여 가지는 되는 것 같은 이유들을 하나씩 들추어보면서 결국 결정을 내렸습니다. 연구를 그만두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말이지요.

이곳에 10년, 20년을 산 것도 아니고, 고국에서 쫓겨나듯 오거나 고국이 싫어서 망명을 온 것도 아니고, 그저 여태까지 해보지 않은 공부를 좀 더 해보겠다고 자진해서 온 길이었는데....... 왜 지금 하던 연구를 그만두려는 걸까, 무엇보다 왜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걸까, 수없이 되뇌어보았습니다. 이건 급작스럽게 내린 결론일까. 아니면 여태껏 축적되어온 무언가가 결국 때가 되어 드러난 것뿐일까. 정말 로잔과 연구자로서의 인연이 다 되어서 떠날 ‘때’가 된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요. 하다못해 가족들에게나 교수님에게도 납득할만한 이유를 드려야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굳이 중심에 있는 이유 하나를 끌어내보았는데, 그동안 그리 짧지만은 않았던 20대 말과 30대 초반의 외국 생활 동안 저의 내부에 끊임없이 쌓여온 어떤 내상이 이제 역으로 서서히 저를 무너뜨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자가진단을 비로소 하게 되었습니다.

 

과학과 예술의 두 가지 길을 병행시키는 것은 지난한 일이기는 하지만 한평생을 걸어볼 만한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묘한 보완 작용을 할 것입니다. 내가 만일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시인의 길을 오래전에 포기했을 것입니다. 나는 편한 것을 좋아하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인간에게 고난과 인내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시인의 삶이란 당치 않은 것이지요. 내가 만약 시인이 아니었다면 나같이 감정적이고 선병질적으로 외로움을 감당하지 못하는 몸으로 외국의 의사 생활을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건방진 말이지만 나는 의사로서 오랜 세월 동료 의사나 의대생의 애정과 존경을 받아왔고, 내가 살던 도시에서는 나의 은퇴를 아쉬워하며 여러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일제히 소식을 방영하기도 했지요. 윤석 군이 혹 힘들다고 소리를 가끔 지를 수는 있어도 두 가지 전공을 함께 이어가면 생의 끝에 절대로 후회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나에게는 있습니다.

 

언젠가 마음속으로 누군가가 네가 사는 목표가 뭐냐는 질문을 한다면, 저는 ‘knowing’이라고 대답하리라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알아가는 것. 깨달아가는 것. 무언가들 수동적으로 배운다기보다는 자극에 반응하는 내 내부의 앎.

 

12년간 공학자로 살아왔지만, 공학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들은 사람들을 감동시키지도, 위로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남은 하나, 음악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럽의 생활에서 비판적으로 그러나 깊게 깨달은 것은 ‘지금’의 중요성입니다. 왜, 영어로도 현재를 ‘present’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주어진 선물. 이 순간순간의 기쁨, 행복, 즐거움을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놓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앞만 보고 인내하고 달려가라는 프로그래밍만 되어 있지, 왜 지금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의대 본과 2학년이 되자마자 썼던 글로 의사이면서 문학자였던 사람들을 모은 글이지요. 시인이며 비뇨기과 의사인 독일의 고트프리트 벤, 소아과 의사이자 시인이었던 미국의 윌리엄 윌리엄스,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 영국 시인 존 키츠, 독일 소설가 한스 카로사 등 수십 명의 의사 문인을 열거하면서 썼는데, 편집자분들은 역사적 기록물이라고 농담을 하곤 합니다. 사실 나에게는 학생 시절, 의사가 된 뒤에도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사람 중에서 괜찮은 글쟁이도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사전을 뒤지고 땀 흘려가며 이름을 추려냈던 슬프고 불안에 찬 시절의 산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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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열정 용기 사랑을 채우고 돌아온 손미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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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펴낸 책으로는 세 번째 책이고, 내가 읽은 책으로는 두 번째 책이다. 내가 읽은 “스페인 너는 자유다”에서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까지 그녀에게는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늘 자유로운 곳을 꿈꾸던 그녀가 다시 가슴이 뜨거워지기를 바라는 순간이다. 아니운서 시절부터 많이 좋아했었고, 그렇기에 그녀가 처음 펴낸 책도 기꺼이, 즐겁게 읽었다. 그 책이 좋다고 말하는 나에게 면전에서 책 별로라고 말해 버린 사람이 있어서 무안함과 함께 오히려 뻗대듯이 그 책이 더 좋아진 까닭도 있다. 개인적으로 참 힘들었을 그녀, 근의 책에는 이젠(물론 그 전에도 그랬지만) 따스함이 넘쳐난다. 타인에 대해... 그리고 그녀 자신에 대해!

주면에 스페인을 많이들 가도 아르헨티나에 가는 것은 보지 못했다. 마라도나, 축구, 탱고, 라그리아, 아사도, 엄마찾아 삼만리, 경제위기. 이 책 안에서 밖에서 아르헨티나를 나타내는 몇 가지 키워드들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본래 하고 있는 일 말고도 예술적인 직업을 하나 더 갖는다는 것이었다. 식당 메뉴에 ‘이 가격은 음식을 다 드시고 나가실 때 바뀔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까지 적혀 있던 때가 있을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시절, 말도 못하는 스트레스를 예술로 승화시킨 결과라고. 손미나의 말처럼 “인생을 살다보면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아픔과 상처를 떠안은 채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잃었는가를 생각하고 후회할 것이 아니라, 남겨진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새로운 삶을 빚어나갈 것인가’하는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신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모른다. 한 번 크게 넘어졌다고 해서 그대로 영영 주저앉아버리는 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 될 테니까.”

알파치노 주연의 ‘여인의 향기’에서 “스텝이 엉키는 것, 그게 탱고야.”라는 대사가 있었다. 이해는 안 되지만 마음에 남았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는 인생길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절망하는 것은 아닌지, 작은 것들을 포기하지 못해 결국 삶 전체를 포기해 버리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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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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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본문 中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합리적인 정신 상태에서도 안전한 출세길을 버리고 말라위 시골 마을에 먹을 물을 공급하는 일을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 인간 조건을 개선하는 면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고급 비스킷보다도 섬세하게 통제되는 제세동기가 낫다는 것을 알기에, 소비재를 생산하는 일을 그만두고 심장 간호사 일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러 해의 노동의 결과를 사방의 벽에 걸어놓고 한눈에 훑어볼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 우리의 모든 지능과 감수성을 한 장소에 모아둘 기회는 더군다나 찾아보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노력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물리적 상관물을 찾지 못한다. 우리는 거대하지만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집단적인 기획들 속에서 희석되고, 그러다 보면 작년에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더 깊은 수준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간 것이고, 도대체 무엇이 된 것인지 궁금해하다가 결국 퇴직 기념 파티 같은 분위기에 젖어 우리의 사라진 에너지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세상의 한 부분을 자기 손으로 바꾸는 장인에게는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 보일는지. 그는 자신의 작업이 자신의 존재로부터 발산되는 것을 볼 수 있고, 하루를 마치고 또는 한 생을 마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하나의 대상-그것이 네모난 캔버스든 의자든 도자기든-을 보며 그것이 그의 기술들의 안정된 저장소이고 그가 보낸 세월의 정확한 기록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금기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우리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현재를 역사의 정점으로 보는 것, 코앞에 닥친 회의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묘지의 교훈을 태만히 하는 것, 가끔씩만 책을 읽는 것, 마감의 압박을 느끼는 것, 동료를 물려고 하는 것, “오전 11:00에서 오전 11:15까지 커피를 마시며 휴식”이라고 적힌 회의 일정을 꾸역꾸역 소화해 나아가는 것, 부주의하고 탐욕스럽게 행동하다가 전투에서 산화해버리는 것-어쩌면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생활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참 좋아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전혀 무관한 대상들 사이에서 의외의 공통점을 잡아내거나 사소한 면에서 위대함을 찾아내고 반대로 거대한 부분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책은 작가의 다른 책에 비해 조금은, 조금은 실망한 구석이 있다. 물론, 알랭 드 보통이기에 가능한 실망이다. 책만 놓고 보아서는 10가지의 이질적인 직업들의 기쁨과 슬픔을 마치 생선살을 발라내듯이 차분하고 가지런하게 정돈하여 보여줄 수 있는 작가는 다시 없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보통이기에, 기대치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조금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생각해보다가 우연히 한 블로거의 글을 읽고 아하, 싶었다. 책 속의 직업 중 하나에 종사하는 블로거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장이 나오기 전까지는 감탄하며 책을 읽다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서술을 읽으며 불쾌함이 들었다고. 그 글을 읽자 대번에 이해가 되었다. 여태까지의 알랭 드 보통의 글들은 마치 유명한 요리사가 쓴 푸드 에세이라고 할까? 재료부터 요리를 만드는 과정까지 낱낱이 파악한 사람이 보기 좋게, 읽기 좋게, 독자에게 전달해주는 느낌이었다면, 이 글은 마치 유명한 맛집 블로거가 쓴 레스토랑 소개서같다는느낌이다. 어느 쪽이 더 낫다, 못하다 라고 비교할 필요가 없이 관찰자로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서술한 것과 직접 그 세계에 몸을 완전히 담그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든 상태에서 쓴 글은 차이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6장의 그림 부분과 다른 부분은 크게 차이가 났다. 아무래도 보통이 작가이고, 그러다보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창작을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한 묘사는 다른부분과는 다르게 따스함이 느껴진다. 일종의 편애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직업의 기쁨과 슬픔에만 몰두하고 억울해하고 열변을 토하고 떠들어댈 뿐, 다른 직업의 기쁨과 슬픔에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니까. 나부터도 책 제목을 보자마자 일의 기쁨은 money? 슬픔은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 이라고 단순화했던 사람이니까.

 

덧붙임

1년 반이 지나서야 이 리뷰를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우연히 포털 사이트의 한 웹툰 시리즈를 정주행하다가, 똑같이 '일의 슬픔과 기쁨'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를 보게 된 것이다. 아마도 웹툰의 작가도 이 책을 읽었을 것 같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제목의 책 아닌가. 더구나 지은이는 알랭 드 보통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에피소드에 이 책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으로 보아서 이 책에 대해서 특별히 감동을 받았다거나 인상이 남았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보통의 수많은 책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이 책은 인기를 끄는 책은 아니니까.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었으며, 좋아하는 일인데도 늘 일하기는 싫다고,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이 되는 순간 노동이 되어 버린다고, 이 웹툰 작가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마라고 단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웹툰 작가는 결론을 내린다. '놀고 싶으면 일을 하는 게 자연의 섭리'라고, 그러니 일을 한다고. 완벽한 해답은 아니지만 이것도 어떤 방식으로는 답이 될 지도 모르겠다. 일이 주는 자잘한 기쁨,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을 수많은 슬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실제 몸으로 움직이는 방식이 되든, 최면처럼 내 마음을 바꾸는 방식이 되든, 슬픔을 견딜 수 있게 최대한 줄여보거나 기쁨을 늘려서 슬픔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취미가 직업이 된다면 참으로 기쁘겠지만, 그 또한 어떤 면에서는 순수하게 나의 취미를 즐기지 못한다는 면에서는 슬프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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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 개정신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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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아니 이른 새벽, 잠은 오지 않고 외로워 미칠 것 같다.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자니 너무 힘들고, 밖에 나가자니 무섭고, 누군가에게 전화로 문자로 위로받고 싶은데 미안해서, 또 답문이 바로 안 올까봐, 민망해서, 연락도 못하겠다. 그 모든 것을 무릅쓸 만한 사람도 없다. 남들도 다 이런 건지, 아니면 내가 유독 예민한 건지, 외로움이라는 것이 비록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 잘 알지만 이렇게 자주 강하게 느낀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지, 과연 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죽기 전에 만날 수나 있을지, 끝끝내 못 만난다면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외로울 때마다 찾게 되는 책이 공지영의 책들이다. 그러나 이 책만큼은 지금의 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녀의 소설이나 여타 산문집과는 달리, 이 책은 그녀 자신의 넋두리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녀의 딸이나 독자들로 청자를 한정시켜 놓았기 때문에 이전의 책들이 쏙쏙 마음에 와 닿았다면, 이 책은 그녀의 감정이 흐르는 대로 흘러 한참 어지러운 마음의 내가 귀 기울이기는 힘들다. 마치 술에 취해, 감정에 취해, 힘들게 늘어놓는 친구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 것처럼. 그 이전의 책들이 독자를 위로한다면, 이 책은 작가가 자신을 위로하며 쓴 글 같다. 나의 일로도 번잡스러운데 남의 가슴앓이까지 들어주기에는 지금의 나는 너무나 벅찬 것 같다. 남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스킬이 필요하고, 남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으려면 정제된 말보다는 두서없을지언정 쏟아지는 말들로 인해 내 마음이 풀어지는 법인데, 이 책은 후자인 것 같다. J는... 그녀 자신이거나, 아니면 작가 스스로 위로받고 싶은 어떠한 존재가 아닐까. 많은 독자들에게 공지영이 그래왔듯이.

 

 

 

 

 

 

 

 

 

 

 

나를 버리고, 빗물 고인 거리에 철벅거리며 엎어진 내게 일별도 남기지 않은 채 가버렸던 그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지요. 그가 죽는다는데 어쩌면 그가 나를 모욕하고 그가 나를 버리고 가버렸던 날들만 떠오르다니. 저 자신에게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리고 그의 죽음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지만 그러나 그것 역시 진실이었습니다. 죽음조차도 우리를 쉬운 용서의 길로 이끌지는 않는다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이토록 끈질기며 이기적이란 것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다만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직 다 용서할 수 없다 해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입니다. 우리 생애 한 번이라도 진정한 용서를 이룰 수 있다면, 그 힘겨운 피안에 다다를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이별로 향하는 길이라 해도 걸어가고 싶습니다.

 

저는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만, 그리하여 슬퍼지고 말았습니다.
책을 덮고, 살아온 모든 생애의 힘을 다해서 오래도록 움켜쥐고
있었던 손을 폈습니다.
내가 움켜진 많은 것들..
결혼에 대한 집착, 행복한 가정에 대한 집착. 돈에 대한 집착.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집착,
심지어 도덕적으로 옳고 착하기까지 해야 한다는 그 끔찍한 집착까지!
그러고 나자 마지막으로 억울하고 가련한 희생자가 되고 싶은
저의 교활한 얼굴이 드러났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지요.
그것은 제가 그토록 경원하던 무책임한 삶의 다른 이름이었으니까요.
제 온 몸에서 푸릇푸릇한 녹즙들이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던 나날이었습니다.

 

신이 저를 사랑하시고 제가 진실에 가까이 근접하기를 원하셨다면
고만고만한 행복에 제가 머무르도록 허락하셨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완전을 향해 나아가고자 할 때,
불완전함만큼 더 큰 동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래오래 앓았고
그러나 이제는 회복기에 들어선 환자처럼 담담하고 맑아지고 있습니다.
씩씩해지고 많이 웃을 수 있습니다.
가끔 달리기도 하고
아이들과 자전거도 탑니다.
J,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은총이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진정한 외로움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 끝에 찾아 왔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거리를 기웃거리는 외로움과는 다른 것입니다. 자신에게 정직해지려고 애쓰다보면 언제나 외롭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럴 때 그 외로움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당하면 외로움이고 선택하면 고독이라고. 우리는 한참 웃었습니다만 외로우니까 글을 쓰고, 외로우니까 좋은 책을 뒤적입니다. 외로우니까 그리워하고 외로우니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어떤 시인의 말대로 외로우니까 사람입니다.

 

내가 남들보다 예민하고 내가 남들보다 감정의 폭이 격렬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에는 남들이 잘 안 쓰는 피아노 건반의
가장 낮은 옥타브부터 높은 옥타브까지 모두 두드리며 사는 부류들이 있는데
제가 그 부류에 속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글도 쓰고 그래서 남들 표현 못하는 것을 표현하는 줄 알면서도
가끔은 그것이 참 원망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생애 동안 우리는 대개 낮은 건반을 두드리는 일이
높고 경쾌한 건반을 두드리는 일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그냥 인정해버리자
저는 저 자신을 비로소 얼마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친구에게
"그러지마. 이건 진짠데 난 남들보다 더 많이 아파해"
하고 담담하게 말할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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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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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내가 약한 것을 알고 와락 쳐들어왔어.

눈길 가는 곳 어디에나 사랑이었어.

빈자리가 없었어.”

 

사람이란 건 참 이상한 것이어서 내려갈 때까지만 해도 죽으면 어떻게 하지, 안 돼 살아야 해, 하고 마음속으로 온갖 기도를 하고 내려갔는데 막상 자기 집에 누워 사람들의 간호를 받고 있는 그를 보자 미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 입술이 다 터지고 까맣게 타들어간 그의 얼굴을 보자 정말 “사랑이란 게 뭘까?”하는 유명한 화두가 머릿속을 웅웅거렸다.

 

“그냥 내버려 둬. 죽으면 자기 팔자지. 수경 스님, 문 신부님 저렇게 무릎 아프고 힘드신데 무슨 사랑 타령이야, 이 나이에.”

내가 화를 내자 버시인이 정색을 하고 내게 말했다.

“우리가 어렸던 1980년대에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지. 하지만 수경 스님이 삼보일배하는 것도 L선배가 섬진강가에서 헤매는 것도 다 사랑이야. 네가 보기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

 

실내에서 하는 운동과 달리 산행이 몸에 좋은 까닭은 평소에는 전혀 쓰지 않는 근육을 쓸 수밖에 없는 자연의 불규칙성에 있다고 했던가. 산이 예찬 받는 이유 또한 그 불가해성이 삶과 닮아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멀리서 파도치듯 이리로 다가서는 산들은 생명으로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기 양의 배에서 새로 돋는 것처럼 보드랍게 초록빛 털들이 몽실거리며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생명의 고갱이 속을 걸어가며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는 이제 더는 말하지 않았다.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우리가 중학교 때 다 배웠고 L선배마저 이 지리산 자락에서 늦은 사춘기를 마쳤으니까 말이다.

 

그 사람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中

 

 

원래 청춘의 특징이라는 게 자기가 청춘인 줄 모르는 것에 있기도 하니 하는 수 없기는 하다.

 

그 여자네 반짝이는 옷가게 中

 

 

읽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내가, 내가, 많이 고갈되어 있었나 보다. 읽는 내내 나도 이런 친구 있었으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살라고 하면 못 살 것 같지만. 왠지 지리산에 가기만 하면 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내가 많이 지친 까닭일까. 이런 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공지영은 독자의 마음을 흔들고 공감하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쿨한 척, 시크한 척, 현실을 관조하고 거리를 두는 방식은 역시 나와 맞지 않는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 공지영은 단연 열정이다. 때론 흥분하고, 때론 성급하더라도 공지영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글 속의 장소로 데려가서, 공지영과 등장인물들과의 대화에 참여하게 하고, 사진으로만 나와 있는 음식을 맛보게 하고, 같이 지리산자락을 거닐게 한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지리산 사람들과 이미 친해진 것 같다. 힘들 때, 지쳤을 때, 바닥까지 고갈되었을 때, 어떠한 가식이나 거추장스러운 예의도 벗어놓고 달려가 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기댈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아니 그러한 장소가 이곳 서울, 단 한 평이라도 있다면, 그런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퍽퍽한 세상 살기가 얼마나 편안해질까. 거칠었던 호흡도, 불규칙했던 맥박도, 고르고 느긋해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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