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일의 기쁨과 슬픔 본문 中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합리적인 정신 상태에서도 안전한 출세길을 버리고 말라위 시골 마을에 먹을 물을 공급하는 일을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 인간 조건을 개선하는 면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고급 비스킷보다도 섬세하게 통제되는 제세동기가 낫다는 것을 알기에, 소비재를 생산하는 일을 그만두고 심장 간호사 일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러 해의 노동의 결과를 사방의 벽에 걸어놓고 한눈에 훑어볼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 우리의 모든 지능과 감수성을 한 장소에 모아둘 기회는 더군다나 찾아보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노력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물리적 상관물을 찾지 못한다. 우리는 거대하지만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집단적인 기획들 속에서 희석되고, 그러다 보면 작년에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더 깊은 수준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간 것이고, 도대체 무엇이 된 것인지 궁금해하다가 결국 퇴직 기념 파티 같은 분위기에 젖어 우리의 사라진 에너지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세상의 한 부분을 자기 손으로 바꾸는 장인에게는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 보일는지. 그는 자신의 작업이 자신의 존재로부터 발산되는 것을 볼 수 있고, 하루를 마치고 또는 한 생을 마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하나의 대상-그것이 네모난 캔버스든 의자든 도자기든-을 보며 그것이 그의 기술들의 안정된 저장소이고 그가 보낸 세월의 정확한 기록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금기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우리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현재를 역사의 정점으로 보는 것, 코앞에 닥친 회의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묘지의 교훈을 태만히 하는 것, 가끔씩만 책을 읽는 것, 마감의 압박을 느끼는 것, 동료를 물려고 하는 것, “오전 11:00에서 오전 11:15까지 커피를 마시며 휴식”이라고 적힌 회의 일정을 꾸역꾸역 소화해 나아가는 것, 부주의하고 탐욕스럽게 행동하다가 전투에서 산화해버리는 것-어쩌면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생활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참 좋아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전혀 무관한 대상들 사이에서 의외의 공통점을 잡아내거나 사소한 면에서 위대함을 찾아내고 반대로 거대한 부분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책은 작가의 다른 책에 비해 조금은, 조금은 실망한 구석이 있다. 물론, 알랭 드 보통이기에 가능한 실망이다. 책만 놓고 보아서는 10가지의 이질적인 직업들의 기쁨과 슬픔을 마치 생선살을 발라내듯이 차분하고 가지런하게 정돈하여 보여줄 수 있는 작가는 다시 없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보통이기에, 기대치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조금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생각해보다가 우연히 한 블로거의 글을 읽고 아하, 싶었다. 책 속의 직업 중 하나에 종사하는 블로거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장이 나오기 전까지는 감탄하며 책을 읽다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서술을 읽으며 불쾌함이 들었다고. 그 글을 읽자 대번에 이해가 되었다. 여태까지의 알랭 드 보통의 글들은 마치 유명한 요리사가 쓴 푸드 에세이라고 할까? 재료부터 요리를 만드는 과정까지 낱낱이 파악한 사람이 보기 좋게, 읽기 좋게, 독자에게 전달해주는 느낌이었다면, 이 글은 마치 유명한 맛집 블로거가 쓴 레스토랑 소개서같다는느낌이다. 어느 쪽이 더 낫다, 못하다 라고 비교할 필요가 없이 관찰자로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서술한 것과 직접 그 세계에 몸을 완전히 담그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든 상태에서 쓴 글은 차이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6장의 그림 부분과 다른 부분은 크게 차이가 났다. 아무래도 보통이 작가이고, 그러다보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창작을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한 묘사는 다른부분과는 다르게 따스함이 느껴진다. 일종의 편애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직업의 기쁨과 슬픔에만 몰두하고 억울해하고 열변을 토하고 떠들어댈 뿐, 다른 직업의 기쁨과 슬픔에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니까. 나부터도 책 제목을 보자마자 일의 기쁨은 money? 슬픔은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 이라고 단순화했던 사람이니까.

 

덧붙임

1년 반이 지나서야 이 리뷰를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우연히 포털 사이트의 한 웹툰 시리즈를 정주행하다가, 똑같이 '일의 슬픔과 기쁨'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를 보게 된 것이다. 아마도 웹툰의 작가도 이 책을 읽었을 것 같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제목의 책 아닌가. 더구나 지은이는 알랭 드 보통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에피소드에 이 책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으로 보아서 이 책에 대해서 특별히 감동을 받았다거나 인상이 남았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보통의 수많은 책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이 책은 인기를 끄는 책은 아니니까.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었으며, 좋아하는 일인데도 늘 일하기는 싫다고,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이 되는 순간 노동이 되어 버린다고, 이 웹툰 작가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마라고 단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웹툰 작가는 결론을 내린다. '놀고 싶으면 일을 하는 게 자연의 섭리'라고, 그러니 일을 한다고. 완벽한 해답은 아니지만 이것도 어떤 방식으로는 답이 될 지도 모르겠다. 일이 주는 자잘한 기쁨,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을 수많은 슬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실제 몸으로 움직이는 방식이 되든, 최면처럼 내 마음을 바꾸는 방식이 되든, 슬픔을 견딜 수 있게 최대한 줄여보거나 기쁨을 늘려서 슬픔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취미가 직업이 된다면 참으로 기쁘겠지만, 그 또한 어떤 면에서는 순수하게 나의 취미를 즐기지 못한다는 면에서는 슬프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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