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은 내가 약한 것을 알고 와락 쳐들어왔어.

눈길 가는 곳 어디에나 사랑이었어.

빈자리가 없었어.”

 

사람이란 건 참 이상한 것이어서 내려갈 때까지만 해도 죽으면 어떻게 하지, 안 돼 살아야 해, 하고 마음속으로 온갖 기도를 하고 내려갔는데 막상 자기 집에 누워 사람들의 간호를 받고 있는 그를 보자 미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 입술이 다 터지고 까맣게 타들어간 그의 얼굴을 보자 정말 “사랑이란 게 뭘까?”하는 유명한 화두가 머릿속을 웅웅거렸다.

 

“그냥 내버려 둬. 죽으면 자기 팔자지. 수경 스님, 문 신부님 저렇게 무릎 아프고 힘드신데 무슨 사랑 타령이야, 이 나이에.”

내가 화를 내자 버시인이 정색을 하고 내게 말했다.

“우리가 어렸던 1980년대에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지. 하지만 수경 스님이 삼보일배하는 것도 L선배가 섬진강가에서 헤매는 것도 다 사랑이야. 네가 보기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

 

실내에서 하는 운동과 달리 산행이 몸에 좋은 까닭은 평소에는 전혀 쓰지 않는 근육을 쓸 수밖에 없는 자연의 불규칙성에 있다고 했던가. 산이 예찬 받는 이유 또한 그 불가해성이 삶과 닮아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멀리서 파도치듯 이리로 다가서는 산들은 생명으로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기 양의 배에서 새로 돋는 것처럼 보드랍게 초록빛 털들이 몽실거리며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생명의 고갱이 속을 걸어가며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는 이제 더는 말하지 않았다.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우리가 중학교 때 다 배웠고 L선배마저 이 지리산 자락에서 늦은 사춘기를 마쳤으니까 말이다.

 

그 사람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中

 

 

원래 청춘의 특징이라는 게 자기가 청춘인 줄 모르는 것에 있기도 하니 하는 수 없기는 하다.

 

그 여자네 반짝이는 옷가게 中

 

 

읽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내가, 내가, 많이 고갈되어 있었나 보다. 읽는 내내 나도 이런 친구 있었으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살라고 하면 못 살 것 같지만. 왠지 지리산에 가기만 하면 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내가 많이 지친 까닭일까. 이런 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공지영은 독자의 마음을 흔들고 공감하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쿨한 척, 시크한 척, 현실을 관조하고 거리를 두는 방식은 역시 나와 맞지 않는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 공지영은 단연 열정이다. 때론 흥분하고, 때론 성급하더라도 공지영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글 속의 장소로 데려가서, 공지영과 등장인물들과의 대화에 참여하게 하고, 사진으로만 나와 있는 음식을 맛보게 하고, 같이 지리산자락을 거닐게 한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지리산 사람들과 이미 친해진 것 같다. 힘들 때, 지쳤을 때, 바닥까지 고갈되었을 때, 어떠한 가식이나 거추장스러운 예의도 벗어놓고 달려가 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기댈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아니 그러한 장소가 이곳 서울, 단 한 평이라도 있다면, 그런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퍽퍽한 세상 살기가 얼마나 편안해질까. 거칠었던 호흡도, 불규칙했던 맥박도, 고르고 느긋해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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