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0 (완전판) - 푸아로의 크리스마스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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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대부호가 있다.

 

평생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지만 여자 관계는 복잡했고, 고압적이며 다소 잔인한 면도 있는 이 노인의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벗어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경제적인 면에 기대며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한다. 뭐가 되었든 공통점은, 자식 중 진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아버지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자식들을 모두 불러모은다. 같이 살면서 경제적인 지원은 얼마든지 받고 있지만 사생활은 없는 큰 아들 부부, 정치에 입문했지만 늘 돈이 부족한 둘째 아들 부부, 원하는 그림 공부를 하는 대신 경제적 지원이 끊긴 셋째 아들 부부, 그리고 철부지 한량인 넷째 아들과 이미 죽은 딸의 딸, 즉, 외손녀까지 합류한다.

 

숱한 여자들과의 스캔들로 부인은 물론 자녀들에게까지 상처를 주었고, 타고난 고집, 자존심, 의지력으로 평생을 버텨온 노인은, 온 가족을 불러놓고 일부러 유언장을 고치겠다고 하며 자녀들의 반응을 보고 즐긴다. 이 가운데 밀실 살인이 일어나고, 용의자는 네 아들과 세 며느리, 외손녀, 그리고 마침 집을 방문했던 오래된 노인의 친구의 아들과 하인들로 좁혀진다.

 

범인은 굉장히 의외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물로 범인을 설정한 것이 단순히 '반전을 위한 반전'이라고 작가를 비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미 앞에서 충분히 복선을 깔아놨기에. 읽으면서 뭔가 뚜렷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피살자의 행동 중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만약 범인이 그 사람이라면 설명이 완전해진다.

 

마치 살아있는 악마 같은 노인과 그로 인해 평생 상처받은 가족들. 신기하게도 결혼한 아들들의 아내들은 전부 현명하며 남편을 위한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반목하던 아들들의 갈등을 조장한 것이 오히려 아버지였으며, 죽을 떄까지 그들의 관계를 보고 즐겼고, 아버지가 죽자 다소나마 형제애가 회복되는 결말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그 노인이 죽어서 다행이라고, 살아있더라면 더 큰 비극을 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지만 그러기에는 결말에서 밝혀진 범인과의 관계가 너무 처참하여 또 멈칫하게 만든다. 어쩌면 큰 틀에서 인과응보라는 생각도 들고, 한 편으로는 평생에 가까운 시간 동안 복수를 위해 살았고 결과적으로 자기 파괴에 도달한 삶이 아깝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마치 드라마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드라마로 옮겨 놓으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고. 푸아로가 등장하며, 다양한 나이와 직업, 국적의 남녀가 등장하기 떄문에 적절한 캐스팅만이루어진다면 시각적으로도 꽤 흥미롭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TV드라마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다고.  가장 최근에 나온 작품은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2006년 4부작 시리즈인 것 같은데 그 전에도 나왔을 수도 있고. 역시 고전은 시대를 초월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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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말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영희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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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로도 마플 양도 할리 퀸 탐정도 베틀 총경도 등장하지 않는 소설.

창백한 말이 과연 무엇일까?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성경에 등장하는 한 구절에서 따온 말로 여기서는 왠지 으스스하고 주술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쓰인다.

 

살면서 겪는 가장 이상한 일 중 하나가 어떤 이야기를 한번 듣고 나서 24시간 이내에 우연히 그것을 다시 듣거나 마주치는 일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문장인데 여기서의 '어떤 이야기'가 '창백한 말'로 술집의 이름이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화자인 마크 이스터브룩은 작가이다. 첼시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구단인 첼시의 연고지가 아닐까 싶다. 옥스퍼드 동문인 코리건은 과학자로 북서부 경시청에서 법의학자로 일하고 있다. 그를 통해 고먼 신부의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이스터브룩은 자신의 대모를 비롯해서 주변의 사람들이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한국의 신내림이나 굿을 떠올리게 하는 으스스한 의식은, 결국 속임수일 뿐 확실한 살인 방법이 존재하며 아마도 그것은 약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혹시나? 혹시나? 하게 만든다. 마치 이스터브룩과 진저가 처음에는 확신을 가졌지만 나중에 마음이 약해졌던 것처럼.

 

크리스티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약사 자격증 또한 땄다고 한다. 당시에 간호사와 약사 자격증은 아마도 지금처럼 간호대학과 약학대학을 졸업한 사람에게 주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몇십 년 전이라서 아직 자격증이나 학제와 관련해 명확하게 성립된 부분이 없었을 것이고, 아마도 전시 중이었기 때문에 진입장벽도 낮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어쨌든, 크리스티의 작품 중 54편에서 독극물이 살인 수단으로 쓰였다. 이 책에서 쓰인 살인 병기는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탈륨이라고.

 

검색해보면 나오는 수많은 뉴스의 헤드라인에서 나란히 등장하는 단어는 중국. 탈륨은 무미, 무취하여 먹은 사람이 의식을 하지 못하며 소량만 먹어도 사망에 이를 정도로 독성이 강해 만약 검출될 경우, 피해자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 같은데, 1984년 이후 미국에서는 사용이 금지되어 일상생활에서는 접할 수도 없고, 일반인들이 구하기도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아마도 상대적으로 중국에서 탈륨 사고가 많이 일어났던 것 같고, 몇몇 사건을 보면 용의자가 유력한 집안의 자제인 경우 분명하지 못한 이유로 수사가 종결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역대 보았던 독극물 중 가장 위험한 것 같다. 

 

어쨌든, 이 소설은 과학적인 지식과 이른바 민간 신앙의 결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굿이나 무당과 같은 존재를 우리나라에서는 민간 신앙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아마도 유럽에서도 마녀와 같은 존재를 묶어서 지칭하는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정학히는 모르겠다. 흥미로운 것은, 동서양 문화의 민간 신앙에서 비슷한 점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 창백한 말의 세 여인이 행하는 의식도 우리나라의 굿과 비슷한 느낌이고, 소설 중간에 쌍둥이 중 둘째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다는 말도 나오는데, 그것은 왠지 몇 년전에 방송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덕만과 천명이 쌍둥이었고 그 중 덕만이 둘째였다는 것은 물론 작가의 상상력이었겠지만, 쌍음(여자 쌍둥이)은 감춰야 할 만큼 좋은 일이 아니며 그 중 둘째인 덕만이 선덕여왕이 된다는 것은 아마도 취재 중에 이런 미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작가가 의도적으로 넣은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크리스티답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크리스티 전집을 읽어나가고 있는 도중에는 색다른 느낌으로 분위기 전환이 되었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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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속의 고양이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수경 엮음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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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중 흔치 않은 학원물이다. 귀족 여학교가 배경으로 푸아로는 소설이 시작되고 나서 한침 지나야 등장한다.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중동의 젊은 왕이 고국의 선진화를 추구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인해 개혁이 쉽지 않다. 위험을 감지한 왕은 유사시를 대비해 고가의 보석들을 왕의 개인 비행사이기도 한 절친한 친구에게 맡기고, 쿠데타가 일어날 무렵, 친구와 함께 비행기로 고국을 탈출한다.

가장 안전하게 보석들을 보관하기 위해 고민하던 왕의 친구는 마침 중동에 딸과 함께 와 있던 누이의 짐 속에 누이도 모르게 보석을 숨기고, 이미 군부에서 비행기에 손을 써 놓은 것도 모른채 왕과 단둘이 비행기로 탈출하다 추락하여 사망한다. 자신의 짐 속에 보석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채 영국으로 돌아간 누이는, 딸 제니퍼를 전세계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다니는 사립여학교에 입학시킨다. 최고의 명문이던 이 여학교에서 별안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살인 사건과는 별개의 이야기들에 관심이 갔다. 라마트라는 작지만 중동에서 가장 부자라는 이 나라는, 물론 허구이다. 나는 개혁을 원하는 젊은 왕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태국을 떠올렸다. 율 브리너와 데보라 커의 <왕과 나>, 그리고 주윤발과 조디 포스터의 <애나 앤드 킹>에서 다루었던 시암 왕국의 개혁적인 왕. 물론 그는 이 책의 알리 유스프처럼 살해당하지는 않았다. 그는 반대 세력으로부터 국가를 지켰고, 당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강대국의 식민지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드물게 나라의 독립을 지켜냈다. 그러고 보면 사실 큰 공통점이 없기는 하다.

 

소설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밴시터트 선생의 이름이 엘리노어라는 사실도 흥미로웠고. 최근 개봉한 영화 <엘리노어 릭비>가 떠올랐다. 비틀즈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고, 주인공 여자의 이름이기도 한데 엘리노어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몇 십 년 전에 쓰여진 책에서 이렇게 동일한 이름을 발견하게 되다니. 우연치고는 신기하다.

 

에일린 리치라는 또 다른 선생이 말하는 장면에서는 역시 최근에 보았던 영화 <위플래쉬>의 J.K. 시몬스가 연기했던 플렛처 교수가 떠오르기도 했고. 바로 이 부분이다.

 

"왜 가르치는 게 좋을까요? 스스로 좀 더 크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기 떄문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이유는 아니예요. 제 생각엔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낚시와 같아요. 어떤 물고기를 잡게 될지 알 수 없고, 심지어 과연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하죠. 중요한 건 학생들이 보여 주는 반응이 어떤가에 있다고 봐요. 그런 때가 오면 너무너무 흥미롭지요. 하지만 항상 반응이 오는 건 아니죠."

아마도 영화 속 플렛처에게 광기에 가까울 정도의 강압적인 지도법에 대한 지나친 자기 확신을 빼고 좀 더 모성애적인 면을 첨가한다면, 리치 선생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푸아로는 굉장히 매력적인 탐정이라, 그가 등장하는 소설 속에서 그가 부각되지 않으면 확실히 재미가 없다. 단, 이 소설만 빼고. 줄리아의 철두철미하면서도 과단성 있는 모습은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꼭 푸아로가 그랬던 것처럼. 사소하지만, 줄리아의 어머니 엡손 부인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웠다. 책 전체에서 직접 나타나는 부분이 많지 않지만, 딸이 어머니의 기질을 물려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에는 무리가 없다. 짤막한 등장에도 아나톨리아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제시하고 그곳에서의 일화를 제시하여 인물의 특징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잊지 않는 크리스티는 참 섬세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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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죽음이 오다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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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존의 크리스티 소설과는 좀 다르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동일하지만, 무대가 20세기의 영국이 아니라, 기원전 2000년 경, 이집트 테베의 나일 강 서쪽 강가이다. 물려줄 유산이 많은 아버지와 세 아들, 사별한 딸과 그를 흠모하는 아버지의 부하, 젊은 계모 등 흐름은 우리가 늘 보던 소설과 유사하게 흘러간다. 이 소설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것, 인간이 품는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진보하고, 문명이 발달하더라고 결국 대동소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굳이 이 소설의 배경을 이집트로 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비슷한 내용이더라도 무대가 수천년 전 이국적인 공간으로 바뀌면서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재미가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4계절이 아니라, 농경생활에서 더 유용하게 계산되는 3계절이라는 것도 새롭게 안 사실이었고, 죽은 사람의 묘를 관리하는 것이 단순히 자손이 아니라, 묘지기라는 별도의 직업이 있으며 죽은 사람의 재산을 기증받고 그 대가로 그 사람을 공양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직업적인 묘지기는 꽤 많은 재산을 소유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책 앞에 나와 있듯이, 이 책은 크리스티의 친구였던 이집트 학자 스티븐 글랜빌의 요청에 의해 탄생했다.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추리 소설을 써 보라는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이 소설은 1945년에 발표되었다. 크리스티가 1930년 고고학자 맥스 맬로원과 재혼한 후 한동안 함께 이집트 등지를 여행했다고 손자가 서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 경험들이 이후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나 나일 강의 죽음 같은 작품들은 이전의 작품들의 주요 무대였던 영국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며, 그 배경 탓에 떄로는 신비롭고, 때로는 모호한 분위기를 쉽게 만들어낸다. 크리스티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나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미신 같은 것들은 예외없이 결말에서 전부 인간이 한 일이라고 밝혀지는데, 20세기 초반, 근현대의 영국 사람들이 애초에 그것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괴이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작품에서는, 역사와 신화, 민담과 전설의 구분히 모호했던 그 시대적 배경 떄문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맹목적인 믿음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이 작품은, 아마도 그녀의 재혼으로 인해 탄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한데, 당시 이집트 사회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떄문이다. 어쩌면 스티븐 글랜빌도 재혼한 남편을 통해서 알게 된 사람일 수도 있겠지.

 

무엇보다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8년간의 결혼 후 아이 한 명을 낳고 사별한 레니센브는, 딸 하나를 낳은 후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한 크리스티 자신의 분신이기도 할 것이다. 남은 일생을 혼자 살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인 한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보면서 문득문득 아이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자신에게 구애하는 남자 앞에서 왠지 머뭇거리게 되는 과정들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아마도 크리스티 자전적인 부분이 들어가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순수하고 사람을 잘 믿는 레니센브는 헤이스팅스의 변형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를 늘 걱정하는 호리는 푸아로, 할머니 에사는 마플 양이 변신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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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사람도 마찬가지야. 장식 문을 만들지. 속이려고. 자신의 나약함과 무능을 깨닫는 순간 자만과 허풍과 압도적인 권위로 장식된 근사한 문을 만들지. 그리고 얼마 후에는 정말로 그 존재를 믿는단다. 사람, 모든 사람은 그 문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하지만 레니센브, 그 문 뒤에는 벌거벗은 바위뿐이야....... 그래서 현실이 찾아와 진실의 깃털로 건드리면, 참된 자아가 모습을 드러내지. 카이트의 경우 온순함과 복종심은 그녀가 바라는 모든 걸 가져다줬어. 남편과 아이들. 아둔함은 그녀에게 손쉬운 삶을 선사했지. 하지만 위험이라는 형태로 현실이 찾아와 겁을 주자 본모습이 드러난 거야. 그녀는 변하지 않았단다, 레니센브. 그 힘과 그 무자비함은 늘 거기 있었어."

 

"네, 아마 두려울 거예요.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돼요. 집안사람들 모두 부들부들 떨면서 사원으로 달려가 부적을 사고, 해 질 녘에는 이 길을 걷지 않는 게 좋다고 떠들어요. 하지만 사티피가 비틀거리다 추락한 건 마술이 아니었어요. 두려움이었어요. 그녀가 저지른 사악한 짓으로 얻게 된 두려움 말이에요. 젊고 강하고, 삶을 즐기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건 나쁜 짓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사악한 짓을 한 적이 없고, 설령 노프레트가 절 미워했다 해도 그녀의 증오가 저를 해칠 수는 없어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그리고 어쩄건 늘 두려움 속에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그러니 저는 두려움을 극복하겠어요."

 

"그녀의 말이 거짓임을 본능적으로 느낀 게 아닐까? 그녀가 진심으로 널 도와주면서 자기가 떠벌리는 사랑이란 걸 보여 준 적이 있니? 상처 주고 화를 불어일으킬 말만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면서 가족간의 불화를 조장했잖아?"

 

"카이트는 지나치게 아둔한 여자야. 하지만 나는 늘 아둔한 여자를 의심했단다. 그들은 위험한 존재야. 오로지 자기 주변의 일만 보고 한 번에 하나만 알지. 카이트는 자기 자신과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 아빠인 소베크만 존재하는 작은 세상의 중심에서 살아왔어. 야흐모세만 제거하면 제 자식들이 부자가 된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문득 들었을 수도 있지. 소베크는 늘 임호테프의 눈에 마뜩찮았어. 경솔하고, 통제를 못 견디고, 순종을 모르지. 야흐모세는 임호테프가 의지하는 아들이었어. 하지만 야흐모세가 사라지면 임호테프는 소베크에게 의지해야 돼. 아마 카이트는 그렇게 단순한 생각을 했을 게다."

 

"전에 네가 노프레트의 등장이 악을 몰고 왔다고 말한 적이 있어. 그건 사실이 아니야. 악은 이미 가족들 마음속에 숨어 있었던 거야. 노프레트의 등장은 그걸 은밀한 곳에서 밖으로 끌어낸 것뿐이지. 그녀의 존재가 장막을 거둔 거야. 카이트의 온화한 모성은 자기 자신과 자식을 위한 무자비한 이기심으로 변했어. 소베크는 더 이상 쾌할하고 매력적인 젊은이가 아니라, 허풍 떠는 방탕한 약골이었고. 이파이는 매력적인 개구쟁이 소년에서 교활하고 이기적인 놈으로 변했지. 헤네트의 가식적인 헌신을 통해 그 독기가 명백히 드러나기 시작한 거야. 사티피는 악녀이면서 동시에 겁쟁이의 모습을 보였어. 임호테프 자신은 말 많고 거만한 폭군으로 퇴보했고......"

 

"성장이라는 것 때문인지도 몰라. 점점 더 다정하고 현명하고 훌륭해지지 않으면, 그 성장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사악한 마음을 품게 되지. 혹은 공간도 시야도 없이 삶이 너무 폐쇄적이거나 너무 침잠해서 그럴지도 몰라. 아니면 전염성 병충해처럼 차례차례 병에 걸리거나."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의 기질로 보아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었어. 하지만 야흐모세는 항상 소심하고, 쉽게 굴복하고, 반항할 만한 용기가 부족했지. 그는 임호테프를 사랑했기에 그를 기쁘게 하려고 열심히 일했지만, 임호테프는 착한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멍청한 느림보라고 생각했어. 아들을 무시했지. 사티피 역시 불한당처럼 온갖 조롱으로 야흐모세를 괴롭혔어. 감춰져 있던 한 맺힌 분노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서서히 무거워지기 시작했어. 온순해 보일수록 내면의 분노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던 거야. 그러다 야흐모세가 마침내 아버지의 동업자로 인정받아 근면과 성실에 대한 보상을 거두는 꿈에 부풀었을 떄, 마침 노프레트가 나타난 거야. 마지막 불꽃을 점화한 것은 노프레트, 어쩌면 노프레트의 미모였겠지. 그녀는 세 형제의 남성적 자존심을 건드렸어. 소베크를 바보라고 조롱해 아픈 곳을 찔렀고, 이파이를 남자 자격도 없는 건방진 꼬마로 취급해 성질을 돋웠고, 야흐모세를 남자도 아니라며 멸시했지. 사티피의 혀가 마침내 야흐모세의 인내심을 무너뜨린 건 노프레트가 온 뒤 부터였어. 자기가 남편보다 더 남자답다는 조롱과 모욕 떄문에, 결국 그의 자제력이 무너진거야. 그는 이 길에서 노프레트와 마주치자 인내심을 잃고 그녀를 던져 버렸어."

 

"하지만 일단 마음이 악을 받아들이면, 악은 옥수수 밭의 양귀비처럼 만개하는 법이야. 어쩌면 야흐모세는 평생 폭력을 선망하면서도 그걸 얻지 못했을 수도 있어. 그는 나약하고 순종적인 자신을 경멸했지. 아마 노프레트를 살해하고 나서 엄청난 힘을 느꼈을 거야. 우선 사티피에게서 그걸 꺠달았지. 자신을 위협하고 모욕하던 사티피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온순해졌으니까. 그러자 그토록 오랫동안 그의 마음속에 묻혀 있던 모든 불만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어. 지난번에 이 길 위에서 고개를 쳐든 뱀처럼. 소베크와 이파이는 야흐모세보다 한 놈은 더 잘 생기고, 다른 한 놈은 더 똑똑했어. 따라서 제거 대상이었지. 야흐모세가 집안의 통치자가 되어 아버지의 유일한 위안이자 의지가 돼야 하니까. 사티피의 죽음은 살인의 즐거움을 증폭시켰어. 그 뒤로 더욱 강해진 것이지. 이후부터 그의 탐욕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어. 그떄부터 철저히 악에 사로잡힌 거야."

 

그날 배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던 카메니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잘생기고, 강건하고, 쾌활한 그를 생각하며 그녀는 다시 피의 맥동과 가락을 느꼈다. 그녀는 지금 그를 사랑한다. 카메니라면 크하이가 그녀의 인생에서 차지했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으리라.

'함께 살면 행복할 거야. 그래, 우린 행복할 거야. 함께 살고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튼튼하고 예쁜 아이들을 키울 거야. 바쁘게 일하며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고, 나일 강에서 배를 타는 즐거운 날도 있겠지. 크하이와 함께했던 그런 삶이 다시 시작될 거야. 그 이상 뭘 더 바라겠어? 그 이상 뭘 더 원하겠어?'

 

호리와 함께하는 삶이 어떨지 짐작할 수 없엇다. 비록 다정하고 그녀를 사랑하지만, 헤아릴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아름다움과 풍요의 순간들은 함께 나누겠지만 일상의 삶은 어떨까?

 

"네 인생을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순 없어, 레니센브. 네인생이니까. 결정은 너만이 할 수 있는 거란다."

그녀는 아무런 도움도, 카메니처럼 금세 마음을 흔들어 놓는 말도 듣지 못한다는 것을 꺠달았다. 호리가 손마 잡아줬더라면....... 하지만 그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러자 두 가지 선택이 가장 간단한 말로 확연하게 떠올랐다. 쉬운 삶과 어려운 삶. 그녀는 몸을 돌려 구불구불한 길을 내려가, 이미 익숙한 평범하고 행복한 삶으로 돌아가고픈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예전에 크하이와 함께 누렸던 삶. 그곳은 안전했다. 늙어죽는 것 말고는 두려울 것 하나 없이, 일상의 기쁨과 고통을 나누는 삶.......

죽음. 그녀는 삶에 대한 생각들로부터 빙 돌아 다시 죽음에 이르렀다. 크하이는 죽었다. 카메니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그의 얼굴 또한 크하이의 얼굴처럼 그녀의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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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6 (완전판) - 엔드하우스의 비극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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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장 가능성 낮은 쪽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네, 헤이스팅스. 틀림없이 탐정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럴 거야. 실제 삶에서는 십중팔구 가장 가능성 높고 가장 확실한 인물이 점죄를 저지르는데."

 

푸아로와 그의 친구 헤이스팅스가 등장하는 작품. 헤이스팅스는 홈즈의 왓슨같은 그런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이 책에서 푸아로가 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여주인공이 헤이스팅스에게 당신은 왓슨이겠군요, 하고 말하는 대사도 나온다.

 

잉글랜드 남부 해변 마을인 세인트루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던 두 친구는 우연히 한 젊은 여자의 살인 미수 현장을 목격하면서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알고 보니 젊은 여자는 이미 세 번의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고, 푸아로가 개입한 후에도 여자의 숄을 두르고 있던 친척이 밤에 살해되기도 한다. 이상한 것은 이 젊은 여자는 딱히 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죽는다고 해도 이득을 보는 사람도 없고, 드러난 정황만 봐서는 특별히 누군가에게 앙심을 품은 일도 없는 것 같다.

 

황금가지의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차례차례 읽어나가고 있는데, 전집의 넘버링이 발표된 순서가 아니라, 아마도 그녀 작품 중 가장 많이 읽히고 유명한 작품들 순서로 배열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애거서 크리스티 말년의 작품들이 앞쪽에 있게 되는데, 간만에 크리스티의 초기 작품을 읽다 보니 주인공도 젊고, 또 서술해 나가는 크리스티의 문장들도 활기차서 힘이 넘쳐서, 인간의 심리 묘사에 집중하다 보니 다소 정적이었던 후기 작품에 비해 속도감이 있어서 읽기에 즐거웠다. 읽으면서 '그래, 이게 크리스티지' '이게 푸와로지'하는 감탄이 실시간으로 들 정도.

 

다만 아쉬운 것은 번역의 문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황금가지 뿐만 아니라 해문출판사에서도 전집이 나온 것 같다. 크리스티의 손자가 있는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과 직접 계약을 맺었다기에 황금가지 출판사의 편으로 보고 있는데, 군데군데 번역이 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전체를 다 본 것이 아니지만 몇몇 부분을 다른 출판사의 다른 번역가와 비교해보면, 황금가지 쪽이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나는 번역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감으로만 알 뿐이고 확신할 수는 없으며, 어쩌면 크리스티의 원문에 가장 충실하게 번역한 판이 또 황금가지 쪽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원문으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는 요즘이다. 번역가마다 원문에 충실하게 직역할지, 한국 상황에 맞추어 의역할지, 가치관과 소신이 다르고 독자들마다 또 선호하는 경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좀 심했던 게, 단순히 번역할 때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가 아니라가 기술적인 문제가 좀 많이 눈에 띄었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 바로 헤이스팅스가 푸아로에게 말을 할 때, 존대말과 반말이 뒤섞여있는 점이다. 즉, 동일한 인물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통일이 되어 있지 않는다. 영어라면 큰 차이가 없지만, 우리말로 옮길 때는 둘 중 하나를 확실히 택했어야 하지 않을까. 황금가지 출판사의 크리스티 전집에서, 헤이스팅스가 등장하는 다른 책들에서는 푸아로에게 존대를 하고 있다. 아마도 번역자가 권마다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 아닐까 싶다. 분명히 동일 인물인데 이 책에서만 대화의 톤이 달라진다는 것도 우습고, 이 책만 놓고 보더라도 어미가 자꾸 바뀌는 것도 우습다. 별 것 아닐 수 있겠지만 존대를 할 경우에는 푸아로의 영민함이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지며, 둘 사이의 나이 차를 의식하게 되고, 헤이스팅스는 푸아로에 비해 아직 세상을 잘 모르고 덜 여물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서로 말을 놓을 때는 둘의 관계가 좀 더 대등하게 느껴지고, 둘 사이가 비슷한 나이라고 느껴지며 동일한 나이의 헤이스팅스의 순수함이 돋보이며 상대적으로 푸아로가 영악하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이런 전집을 펴낼 때는 부담스럽더라도 출판사 측에서 전집을 한 사람의 번역가에게 맡겼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안 된다면 최소한 푸아로가 등장하는 모든 소설은 한 사람에게, 마플 양이 등장하는 소설은 또 한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몰아서 맡겼어야 맞다고 생각이 든다. 뭐가 되었든, 이 책만으로도 놓고 봤을 때, 두 사람의 대화가 오락가락 하는 것은 실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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