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속의 고양이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수경 엮음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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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중 흔치 않은 학원물이다. 귀족 여학교가 배경으로 푸아로는 소설이 시작되고 나서 한침 지나야 등장한다.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중동의 젊은 왕이 고국의 선진화를 추구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인해 개혁이 쉽지 않다. 위험을 감지한 왕은 유사시를 대비해 고가의 보석들을 왕의 개인 비행사이기도 한 절친한 친구에게 맡기고, 쿠데타가 일어날 무렵, 친구와 함께 비행기로 고국을 탈출한다.

가장 안전하게 보석들을 보관하기 위해 고민하던 왕의 친구는 마침 중동에 딸과 함께 와 있던 누이의 짐 속에 누이도 모르게 보석을 숨기고, 이미 군부에서 비행기에 손을 써 놓은 것도 모른채 왕과 단둘이 비행기로 탈출하다 추락하여 사망한다. 자신의 짐 속에 보석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채 영국으로 돌아간 누이는, 딸 제니퍼를 전세계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다니는 사립여학교에 입학시킨다. 최고의 명문이던 이 여학교에서 별안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살인 사건과는 별개의 이야기들에 관심이 갔다. 라마트라는 작지만 중동에서 가장 부자라는 이 나라는, 물론 허구이다. 나는 개혁을 원하는 젊은 왕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태국을 떠올렸다. 율 브리너와 데보라 커의 <왕과 나>, 그리고 주윤발과 조디 포스터의 <애나 앤드 킹>에서 다루었던 시암 왕국의 개혁적인 왕. 물론 그는 이 책의 알리 유스프처럼 살해당하지는 않았다. 그는 반대 세력으로부터 국가를 지켰고, 당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강대국의 식민지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드물게 나라의 독립을 지켜냈다. 그러고 보면 사실 큰 공통점이 없기는 하다.

 

소설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밴시터트 선생의 이름이 엘리노어라는 사실도 흥미로웠고. 최근 개봉한 영화 <엘리노어 릭비>가 떠올랐다. 비틀즈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고, 주인공 여자의 이름이기도 한데 엘리노어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몇 십 년 전에 쓰여진 책에서 이렇게 동일한 이름을 발견하게 되다니. 우연치고는 신기하다.

 

에일린 리치라는 또 다른 선생이 말하는 장면에서는 역시 최근에 보았던 영화 <위플래쉬>의 J.K. 시몬스가 연기했던 플렛처 교수가 떠오르기도 했고. 바로 이 부분이다.

 

"왜 가르치는 게 좋을까요? 스스로 좀 더 크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기 떄문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이유는 아니예요. 제 생각엔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낚시와 같아요. 어떤 물고기를 잡게 될지 알 수 없고, 심지어 과연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하죠. 중요한 건 학생들이 보여 주는 반응이 어떤가에 있다고 봐요. 그런 때가 오면 너무너무 흥미롭지요. 하지만 항상 반응이 오는 건 아니죠."

아마도 영화 속 플렛처에게 광기에 가까울 정도의 강압적인 지도법에 대한 지나친 자기 확신을 빼고 좀 더 모성애적인 면을 첨가한다면, 리치 선생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푸아로는 굉장히 매력적인 탐정이라, 그가 등장하는 소설 속에서 그가 부각되지 않으면 확실히 재미가 없다. 단, 이 소설만 빼고. 줄리아의 철두철미하면서도 과단성 있는 모습은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꼭 푸아로가 그랬던 것처럼. 사소하지만, 줄리아의 어머니 엡손 부인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웠다. 책 전체에서 직접 나타나는 부분이 많지 않지만, 딸이 어머니의 기질을 물려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에는 무리가 없다. 짤막한 등장에도 아나톨리아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제시하고 그곳에서의 일화를 제시하여 인물의 특징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잊지 않는 크리스티는 참 섬세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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