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포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우열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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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창옌은 빅 포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생각할 수 있다. 리창옌은 전체를 통제하고 움직이는 존재다. 그러므로 나는 리창옌을 1인자라고 지칭했다. 2인자는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를 상징하는 것은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두 선이 있는 S 모양, 즉 달러를 나타내는 모양이다. 또 두 줄과 별 하나도 그를 상징한다. 따라서 2인자는 미국인이라고 추정할 수 있고, 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3인자가 여성이고 프랑스인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상류층 요부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도 있으나, 어떤 것도 분명치는 않다. 4인자는......."

남자의 목소리가 떨리더니 멈췄다. 푸아로가 앞으로 몸을 숙여 재촉하듯 물었다.

"그래, 4인자가 뭐라고?"

푸아로의 눈은 남자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떤 압도적인 공포가 남자를 지배한 듯 보였다. 남자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뒤틀려 있었다.

"파괴자."

 

이 책을 읽기 전에 평점이 너무 낮아서 놀랬다. 물론 이 소설에 대한 박한 평가는 크리스티의 작품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실망스럽다는 것이지 작품 자체에 대한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이 소설에 대한 평을 읽으면서 빅 포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책이 어떤 이야기인지 대강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평들의 요지는 대부분 이 책의 설정에 대한 아쉬움이었으니까.

 

이 책은 영화로 치자면 첩보물이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크리스티의 작품들 중 가장 영화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책의 분량이 300쪽이 채 되지 않는 데다가, 속도감 있는 전개 때문에 읽는 내내 스릴있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줄거리의 스케일은 엄청나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이탈리아, 벨기에, 남미까지. 직접적으로 등장하든 간접적으로 묘사되든 이 소설은 전지구적인데, 의외로 요모조모 귀여운 구석도 있다. <커튼>에서 붉은 색 머리에게 이끌리는 헤이스팅스를 놀리며, 예전에 그것 떄문에 큰 위험에 빠질 뻔했다는 이야기를 푸아로가 하는 대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여기에서의 한 일화를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싶다. 또 푸아로의 쌍둥이 이야기도. 베라 로샤코프 백작 부인은 다른 작품에서 푸아로와 만났던 것 같은데 나중에 읽게 될 미지의 작품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러한 구성이 용두사미 같을 수도 있겠지만 '레닌과 트로츠키가 그냥 꼭두각시일 뿐이고 뒤에서 모든 행동을 조종하는 수뇌가 있다'거나 '마담 올리비에는 천재야. 퀴리 부부는 올리비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라는 대목에서는 작가의 포부(?)가 엿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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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관의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지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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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플 양이 처음 등장하는 작품.

 

크리스티 자신도 마플 양이 수십 년을 걸쳐 사랑받을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대단히 연극적으로 보이는 푸아로에 비해서 마플 양의 생김새는 수수한 편에 가깝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모습은 시골 할머니의 느낌이지만, 이 책에서의 마플 양은 마냥 푸근한 모습은 아니다.

 

"나는 마플 양이 좋던데. 적어도 유머 감각은 있거든."

"그녀는 마을에서 가장 고약한 여자예요. 일어나는 일마다 사사건건 다 알려고 들고. 게다가 늘 최악의 결론만 내리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리젤다는 나보다 훨씬 어리다. 나 정도 살아 본 사람들은 모두 진실은 대개 최악이게 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구절도 있다.

 

마플 양은 상냥하고 사람을 끄는 매력을 가진 백발의 노처녀였다. 반면 위더비 양은 심술궂고 야단스러운 여자였다. 하지만 둘 중 더 위험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마플 양이었다.

 

겉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습관은 사람들을 질리게 하는 떄가 종종 있는 모양이다.

 

갑자기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플 양, 지금 우리 모두가 혀를 지나치게 함부로 놀리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라는 말을 익히 알고 계실 줄 압니다. 심술궂은 뒷공론으로 그 어리석은 혀를 함부로 휘둘러 수많은 해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런, 목사님."

마플양이 말했다.

"목사님은 정말이지 속세의 떄가 묻지 않은 순수한 분이세요. 저처럼 사람들의 품성에 대해 오랫동안 관찰하다 보면 사람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답니다. 감히 말씀 드리는데 객쩍은 수다와 잡담이 매우 고약하고 잘못된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종종 그 속에 진실이 있는 법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마플 양의 마지막 공격은 나의 급소를 찔렀다.

 

특히나 이 소설에서 마플 양의 집요함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고집스런 행동은 마플 양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다. 세인트 메리 미드라는 이 마을에서는, 마플 양 뿐 만 아니라 그 나이대의 모든 여자들이 온갖 소문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웨더비 양이 막 전화를 걸어왔어요. 레스트랭 부인이 8시 15분에 밖으로 나갔다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녀가 어디에 갔는지 아무도 모른대요."

"그걸 누가 알아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나?"

"하지만 헤이독 의사 선생님께도 가지 않았단 말이에요. 웨더비 양이 그건 확실하대요. 헤이독 의사 선생님 집 바로 옆에 사는 하트넬 양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는데 레스트랭 부인을 못 봤다고 분명히 말했다는군요."

"정말이지 대단한 미스테리로군."

내가 말했다.

"이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생존을 위한 영양분을 얻는지가 미스테리란 말이야. 누가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지 놓치지 않고 다 살펴봐야 하니 식사도 창가에 서서 해야 할 거 아닌가."

 

화자인 목사가 드물게 이성을 상실할 때가 바로 마플 양을 비롯한 마을 여자들의 이 일사분란하면서도 끈질긴 행위들을 접할 떄이다.

 

"그 쭈글쭈글한 노파는 자기가 이 세상의 알아야 할 것들을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평생 동안 이 마을 밖으로는 나가 보지도 못했으면서 말이야.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일이야. 저런 여자가 인생에 대해 뭘 알겠나?"

 

경찰서장인 멜쳇 대령의 평가이다. 멜쳇이라는 이름은 꽤 익숙한데, 아마 마플 양이 등장하는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에서 본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다면, 멜쳇은 마플 양에게 굉장히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었다. 이 사건 이후로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겠지.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진실에 도달하는 매우 확실한 방법이 있어요. 사람들이 통찰력이라 부르며 대단한 것인 양 떠들어 대는 것이죠. 하지만 사실 통찰력은 단어의 철자를 일일이 다 외우지 않고도 단어를 읽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일이에요. 어린 아이들은 할 수 없는 거죠. 경험이 거의 없으니까요. 하지만 어른들이라면 전에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단어를 알 수 있죠.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목사님은 아시죠?"

"알 것 같군요. 그러니까 어떤 것을 보고 다른 것이 연상된다는 말씀이시죠.그러니까 아마도 비슷한 종류의 일이 떠오른다는 거죠."

 

통찰력. 바로 이것이다. 마플 양 추리의 핵심. 사건에 접할 때마다 그녀가 이전에 겪었던 다른 사건을 통해 유추해내는 힘.

 

"아시겠지만 저처럼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져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은 취미가 필요한 법이랍니다. 물론 취미를 갖는 건 어렵지 않죠. 털실 자수며 바느질, 복지사업, 그림 그리기 등등 많이 있어요. 하지만 제 취미는...... 아주 옛날부터 그랬는데요...... 바로 인간의 품성에 대해 연구하는 거랍니다. 인간의 품성이란 너무나 다양하거든요. 그래서 매우 매력적이랍니다. 물론 기분 전환할 거리 하나 없는 이런 작은 마을에서도 연구에 필요한 훈련을 할 기회가 충분하답니다. 일단 사람들을 구분하는 거예요. 마치 새나 꽃을 분류하듯이 종, 속, 목 등으로 명확히 나누는 거예요. 물론 사람이다 보니 실수로 잘못 구분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실수가 줄어들어요. 그러고 나서 실험도 해보죠. 작은 과제를 정해 보는 거예요. (중략) 하지만 언젠가 정말로 큰 미스테리가 발생하면, 그떄도 이런 일들처럼 똑같이 해결할 수 있을까 늘 궁금하답니다. 미스테리를 제대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거죠. 논리적으로는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든 실용 모형 어뢰는 아무리 작아도 진짜 어뢰와 똑같이 작동하는 법이니까요."

 

이 책이 참 흥미로운게, 마플 양의 첫 등장이니만큼 그녀 자체에 대한 묘사와, 그녀의 추리 방식에 대한 설명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매 소설마다 반복했으면 결국 중언부언이 될 테니까.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책에서야 가장 범인일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범인인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실제로 그 규칙이 적용된 적이 없더라고요. 종종 아주 뻔한 것이 그대로 진실이랍니다. 제가 프로더로 부인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녀가 레딩의 손아귀에 놀아나서 그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고 있다는 결론을 피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요. 레딩 씨는 돈 한 푼 없는 여자와 야반 도주를 할 그런 젊은이가 아니에요. 그로서는 프로더로 대령을 없애야만 했을 거예요. 그래서 그를 없앤 거죠. 젊고 매력적인 남자지만 도덕관념이란 게 없는 사람이죠."

 

실제에서는 가장 범인일 것 같은 사람이 바로 그 범인이라는 결론. 어쩌면 크리스티의 문학이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저런 교묘한 장치들로 독자의 뒤통수를 치기란, 어쩌면 글쟁이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수도 있다. 그야말로 반전을 위한 반전. 하지만 크리스티의 소설에 매번 감탄하고야 마는 것은, 범인이 누군지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복잡함과 더불어 마지막에 범인이 밝혀졌을 때, 왜 그가 범인이어야 했는지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크리스티의 인간에 대한 통찰 떄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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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사나이 할리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나중길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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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집의 제목은 신비의 사나이 할리퀸이다. 원제는 The Mysterious Mr. Quin. 할리퀸에서 퀸은 성이고 할리는 이름인가 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의 극중 이름이 할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이름은 영어권에서 남녀 구별없이 쓰이는 이름인가 보다. 할리퀸이라는 단어가 기시감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영국의 팬터마임에 등장하는 젊은 마술사나 연인 역의 정형으로, 보통 가면을 쓰고 화려한 얼룩무늬 의상에 목검이나 지팡이를 든 광대의 모습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도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마스크를 쓴 것 같았다'거나 '색유리 때문에 일곱 빛깔 무지개 옷을 입은 것 같았다'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이미 당대에 있던 할리퀸이라는 것에 대한 이미지를 크리스티가 차용한 것처럼 보인다.

 

할리퀸은 푸아로의 소설에 여러 번 등장하는 탐정이다. 이른바 연애 탐정으로, 그가 엮인 사건은 꼭 남녀지사가 빠지지 않는다는 정도는 책을 읽기 전에 알고 있던 상식이다. 이 책은 사실 할리퀸보다 새터스웨이트라는 사람의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새터스웨이트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일어나고, 어김없이 할리퀸이 등장하여 함께 사건을 풀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할리퀸은 새터스웨이트에게 격려도 하고, 때로는 자극도 하면서 그가 스스로 사건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마도 할리퀸은 처음부터 사건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왜 이 사내는 직접 해결하지 않고 새터스웨이트가 해결하도록 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길 법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할리퀸은 광대니까, 일정 역할만 하고 무대에서 사리져버리니 남은 일은 주연배우인 새터스웨이트에게 넘겨준다는 것까지 크리스티가 계산한 것일까.

 

푸아로하면 콧수염, 마플 양은 뜨개질하는 모습 등 크리스티의 탐정들은 외양이 인상적인데, 이 책의 할리퀸은 두드러지는 특징은 없다. 여기 책에서 묘사한 내용만 보자면 키가 크고 홀쭉한 사내로, 머리카락은 검고, 목소리는 부드러우며 높낮이가 없다. 거무스름하고 매력적인 얼굴을 가졌으며 소리내어 웃을 때는 그 웃음이 비웃음 같기도 하고, 구슬픈 울음소리 같기도 한 묘한 소리를 낸다. 그야말로 미스테리한 사나이다.

 

이 책에는 총 12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전에 <쥐덫>을 읽으면서 할리퀸의 이야기는 한 편을 보았는데, 그때의 느낌이 독특해서 할리퀸의 활약을 더 볼 수 있었으면 했었다. 이 단편집이 매력적인 것은, 단편의 제목들이 처음에는 그저 사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장치처럼 보이는데, 결국엔 사건을 풀어나가는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앞쪽에 실려 있는 <어둠 속의 목소리>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코르시카 섬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작 코르시카에서의 이야기는 뒤쪽의 <세상의 끝>인 걸 보면, 책에 실려 있는 단편집은 아마도 시간적 순서는 뒤죽박죽인 것으로 보인다. 기왕에 편집할 때, 시간적 순서를 조금 맞춰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퀸의 방문>

 

모든 면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여자였다. 이상하지만 그는 직관적으로 그녀가 매우 행복하든지, 아니면 매우 불행하든지 둘 중 하나일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 중 어느 쪽인지는 몰랐다. 그래서 초조했다. 게다가 묘하게도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 특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새터스웨이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포털이 자기 마누라를 끔찍이도 아끼는군. 그런데 가끔, 맞아, 가끔 마누라를 두려워하고 있어! 정말 재미있군. 보기 드물게 흥미로운 일이야.'

 

그러자 이브샴의 태도가 약간 변했다. 그것은 영국인의 기질을 연구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변화였다. 아까는 어딘지 모르게 삼가는 태도였는데, 이제 그런 모습은 그에게서 사라졌다. 퀸이 데릭을 알고 있다니 말하자면 그는 친구의 친구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믿을 수 있고 신분은 확실해진 것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새터스웨이트 씨. 당신은 연극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새터스웨이트는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꼭 어릿광대 연극을 보시도록 권하고 싶군요. 지금은 쇠퇴하고 있지만 한번 볼 만합니다. 그 상징성을 이해하기는 좀 어렵지만, 시대가 변한다고 상징성까지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 모두들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들은 어둠 속으로 성큼성큼 사라지는 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까도 그랬듯이 색유리 때문에 얼룩덜룩한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유리창에 비친 그림자>

 

"저는 마술사가 아닙니다. 범죄학자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위기의 순간이든 마음에 두드러지게 새겨지는 한 순간이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려도 그 순간은 잊혀지지 않고 마음에 남죠. 새터스웨이트 씨는 사건 현장에 계셨던 분들 가운데 가장 편견 없이 사물을 관찰하셨을 겁니다. 새터스웨이트 씨, 기억을 더듬어서 제일 강한 인상을 받은 순간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총소리를 들은 순간이었습니까? 처음 시체를 본 순간이었습니까? 아니면 권총을 들고 있던 스태버턴 부인을 본 순간이었습니까? 선입견을 완전히 떨쳐 버리고 말씀해 주시죠."

 

"제가 이 방에 들어왔을 때 당신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어떤 생각을 그토록 골똘히 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 비극과 무관한 생각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설령 미신 같은 생각이라 해도 괜찮습니다."

 


<어릿광대 여관>

 

"런던 경찰청에서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우리가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새터스웨이트가 날카롭게 물었다. 퀸은 특유의 몸짓을 하며 말했다.

"못 풀 까닭이 없죠. 시간은 흘렀습니다. 3개월이나요. 이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당시보다 시간이 흐른 뒤에 사실을 더욱 잘 파악할 수 있다니 참 특이한 생각이시네요."

새터스웨이트가 느리게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분별력이 생기는 법입니다. 한 사실을 다른 사실과 제대로 연관지어 바라볼 수 있게 되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건과 관련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관계가 없습니다. 분위기를, 젊은 하웰 부인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퀸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숙하게 말했다.

"분위기란 항상 중요하지요."

 

"사건 당일로 되돌아가 보기로 하죠. 실종 사건이 발생한 건 그날 아침이었습니다."

"아, 아니죠."

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적어도 상상 속에서는 시간을 초월할 수 있으니까 다르게 생각해 봅시다. 대위의 실종 사건이 백 년 전에 일어났다고 말입니다. 지금이 서기 2025년이라고 가정하고 그 사건을 되돌아보는 겁니다."

"참 이상한 분이군요."

새터스웨이트가 느리게 말했다.

"현재가 아니라 과거를 믿으시는데 왜죠?"

"아까 당신은 분위기라는 낱말을 사용했습니다. 현재에는 분위기라는 게 없습니다."

"그건 맞는 말일지 모릅니다."

새터스웨이트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예, 맞습니다. 현재는 아무래도...... 편협해지기 쉬운 경향이 있지요."

"편협! 아주 적합한 표현입니다."

퀸이 말했다.

새터스웨이트는 우스꽝스럽게도 고개를 약간 숙이더니 말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올해라는 시간은 너무 어려울 수 있으니까 지난해를 가지고 생각해 봅시다. 지난해의 일들을 간추려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표현력은 타고나신 분이니까."

새터스웨이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상대에게 좋은 평판을 얻고 싶었다.

"백 년 전은 화약과 세력 다툼의 시대였습니다."

그가 말했다.

"19224년은 십자 낱말 맞추기와 도적질의 시대였다고나 할까요?"

"아주 좋습니다."

퀸은 그의 말에 수긍했다.

"방금 말씀은 국제 사회가 아니라 이 나라에서 그랬다는 말씀이시겠죠?"

"낱말 맞추기에 대해서는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새터스웨이트가 말했다.

"그러나 도둑질은 유럽 대륙에서 끊이질 않았죠. 프랑스의 성에서 잇따라 발생한 유명한 도난 사건을 기억하시죠? 사람들은 단독범의 소행은 아니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허가까지 받고 당당하게 성 안으로 들어간 그 솜씨는 정말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곡예사들이 관련돼 있다는 설도 있었지요. 클론디니스 곡마단 말입니다. 저도 한 번 연기를 본 적이 있는데 기가 막히더군요. 어머니와 남매가 곡예를 펼쳤습니다. 근데 그들은 무대에서 좀 특이하게 사라지더군요. 아, 이거 얘기가 엉뚱한 데로 새어 버렸네요."

"그다지 많이 벗어나진 않았습니다. 단지 영국 해협 너머의 일인걸요 뭐."

"아까 여관 주인이 프랑스 부인들은 발가락조차 물에 젖는 걸 싫어한다고 했죠."

 

 

<하늘에 그려진 형상>

 

그는 퀸을 여태 세 번 만났지만 만날 때마다 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퀸이라는 이 이상한 사내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껏 알고 있던 사실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갑자기 새터스웨이트는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항상 구경꾼 역할을 맡았지만 퀸과 함께 있으면 때떄로 배우, 그것도 주연 배우가 된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전 단지 당신의 기대가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생각했을 뿐입니다. 결국 당신은 루이자 불라드가 어떤 의도에 따라 국외로 보내진 걸 밝혀냈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녀가 당신에게 해준 이야기 속에 반드시 있을 겁니다."

새터스웨이트는 따지듯 말했다.

"그래요? 그녀가 뭐라고 그랬는데요? 만일 법정에서 증언을 했더라면 어떤 말을 했을 것 같습니까?"

"아마 자신이 본 것을 말했겠죠."

"그녀가 뭘 봤죠?"

"하늘에 그려진 형상."

새터스웨이트는 퀸을 응시했다.

"그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게 하나님의 손일 거라는 미신 같은 생각을?"

"어쩌면 그것이 신의 손이었을지도 모르죠."

퀸이 말했다.

퀸의 심각한 태도에 새터스웨이트는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다.

"말도 안 되는 말씀을....... 그녀 자신도 기차에서 나온 연기라고 했잖습니까?"


 

<카지노 딜러>

 

새터스웨이트는 인생이라는 드라마의 진지한 연구가였지만, 자신의 연구 재료가 매우 다채롭기를 바랐다. 그는 실망감이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가치들은 변해 가는데 자신은 늙어서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5만 프랑짜리 수표잖아. 아시겠어요? 오늘 밤에 딴 돈입니다. 그녀가 가진 돈의 전부죠. 그 여자는 이걸로 제 담뱃불을 붙여준 겁니다! 제 동정을 받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자존심이 무척 센 여잡니다. 특이하고 대단한 여자입니다."

 

 

<바다에서 온 사나이>

 

부겐빌레아를 지나쳐 길 끝에 파란 바다가 보이는 하얀 길을 걸어 내려가자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꼴사나운 개 한 마리가 양지바른 길 한가운데에 서 있다가 하품을 하면서 길게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보였다. 개는 자못 기분이 좋은 듯 한 껏 기지개를 켜고 나서 그대로 눌러앉아 흡족하게 몸을 긁어 댔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서서 몸을 부르르 한 번 털고는 뭐 재미있는 게 없을까 궁리하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가에는 쓰레기 더미가 있었다. 개는 즐거운 기대감으로 코를 킁킁거리면서 쓰레기 더미로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개의 코는 틀림이 없었다. 예상대로 진동하는 부패물의 냄새! 개는 점점 커져 가는 기쁨으로 코를 킁킁거리다가 갑자기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달콤하고 맛 좋은 쓰레기 더미 위에 벌렁 드러누워 미친 듯이 몸을 굴렀다. 분명히 오늘 아침의 이 세상은 그 개에게는 천국이었다.

개는 마침내 지쳐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다시 길 한가운데로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왔다. 바로 그때, 아무런 경고도 없이 덜커덩거리는 차 한 대가 길 모퉁이를 난폭하게 돌더니 달려와서 개를 정면으로 치고는 그냥 지나가 버렸다.

개는 간신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잠시 동안 막연한 비난의 눈길로 새터스웨이트를 바라보다가 다음 순간 그대로 고꾸라졌다. 새터스웨이트는 개에게 다가가서 몸을 구부렸다. 개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는 생의 비애와 잔혹함에 치를 떨고는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개의 말없는 비난의 눈빛이 얼마나 생생하던지. 개의 두 눈은 마치 '아아, 이 빌어먹을 세상! 내가 믿었던 멋진 세상아, 넌 왜 내게 이런 짓을 한 거지?'하고 말하는 듯했다.

 

새터스웨이트는 그를 젊은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호텔에 있는 늙은이들과 비교할 때 실제로 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흔 고개는 훨씬 넘엇고, 한눈에 봐도 거의 쉰 살은 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젊은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렸다. 새터스웨이트는 그런 일에는 대체로 정확했다. 그 젊은이는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인상을 주었다. 완전히 자란 개들 중에도 강아지 같은 구석이 있는 놈이 있는 것처럼 이 낯선 남자에게도 그런 구석이 있었다.

 

"당신은 사후 세계를 믿죠? 저승에도 이승과 같은 소망과 욕구가 없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만일 그 욕구가 충분히 강하면 저승사자라도 발견되겠죠."

그의 목소리는 점점 가늘어지다가 사라졌다.

새터스웨이트는 조금 몸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호텔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로 오시지 않겠습니까?"

새터스웨이트는 말했다.

하지만 퀸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전 제가 온 길로 돌아가겠습니다."

새터스웨이트가 뒤를 돌아봤을 때, 퀸은 절벽의 끄트머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어둠 속의 목소리>

 

"별다른 이유는 없엇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저는 왔다가도 금방 사라지곤 하잖습니까."

이 말은 새터스웨이트의 마음에 무언가 추억을 일깨우는 듯했다. 조금 선뜩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기분 좋은 기대감을 느꼈다.

 

"하지만...... 하지만 클레이턴은 너무 나이가 많아요."

새터스웨이트는 잠시 잠자코 있었다. 어떤 환상이 그의 앞에 떠올랐다. 백발의 쇠약한 노파와 칸의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있던 빛나는 금발의 여자가 자매간이라니!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는 바론 집안의 자매가 서로 얼마나 빼닮았는지 기억해냈다. 두 사람이 다른 길을 걸어온 탓에 그토록 달라진 것이다.

그는 인생의 경이와 비애에 가슴이 저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헬렌의 얼굴>

 

새터스웨이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혼란스러웠다. 그는 사람들의 성격 분석에 실패한 적이 거의 없엇다. 그의 판단으로는 필립 이스트니는 그런 감상적인 요청을 절대 할 수 없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 젊은이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 시시한 부류가 틀림없었다. 질리언은 그런 요구가 자기가 차 버린 남자의 성격과 딱 맞는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새터스웨이트는 약간, 아주 약간 실망했다. 그 자신도 감상적인 남자여서 충분히 그런 부분을 이해했지만, 그는 다른 인간한테는 자신과는 좀 다른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이다. 게다가 감상 따위는 그의 세대에나 해당하는 전유물이고, 현대에선 이미 소용이 없어진 애물단지 같은 것이다.

 

새터스웨이트는 그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엇다. 그는 어쩄든 필립 이스트니에게 이상한 동료 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 그것은 한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에게 느끼는 감정, 감상적인 인간이 애인에게 품는 감정, 평범함 인간이 천재에게 느끼는 감정과 같았다.

 

그는 트로이의 헬렌을 생각했다. 마음씨 착하고 평범한 여자에게 아름다운 얼굴은 축복일지, 아니면 고통일지 그는 그것이 궁금했다.

 

 

<죽은 할리퀸>

 

이것이 애스파샤 글렌의 행동 방식이었다. 새터스웨이트는 마음속으로 이 버릇없는 아가씨의 태도와 지극히 여성스러운 면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애스파샤 글렌은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그녀는 그를 나이 많은 미술 애호가로, 아름다운 여자의 부탁에는 금방 마음이 움직이는 남자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새터스웨이트는 정중한 태도 이면에 날카로운 비판력을 갖추었다. 그는 사람들의 본모습을 상당히 잘 꿰뚫어 보는 재주가 있었다. 지금 그가 바라보는 사람은 일시적 변덕으로 그에게 간구하는 미인이 아니라, 그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자기 방식대로 물건을 손에 넣으려는 무자비한 이기주의자였다. 새터스웨이트는 애스파샤 글렌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를 꺾을 이유가 없다고 결심했다. 그는 「죽은 할리퀸」이라는 그림을 그녀에게 넘겨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좀 여쭤보겠는데요, 어째서 그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하셨나요?"

브리스토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 장소의 어떤 것, 그러니까 찬리 저택이 제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모양입니다. 비어 있는 큰 방, 바깥쪽의 테라스, 유령이나 그 밖의 것들에 대한 생각들 말입니다. 조금 전까지도 권총 자살을 한 찬리 경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만일 당신이 죽고 나서 당신의 혼이 계속 살아 있다면 이상하겠죠? 당신은 바깥 테라스에 서서 창문으로 죽은 자신의 몸을 들여다본다든가 다른 모든 걸 보게 될지도 모르죠."

 

"아니, 선생님 친구 분은 가 버리셨군요. 그분이 떠나는 것은 못 봣는데. 참 이상한 분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 양반은 왔다가도 금방 사라진답니다. 그게 그 사람의 특징 가운데 하나지요. 그의 출몰을 모를 때가 많아요."

새터스웨이트가 말했다.

"마치 할리퀸 같군요. 눈에 안 보이는 사람."
 

 

<날개 부러진 새>

 

그녀는 분명히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거기에 없었다.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타원형 식탁에 둘러앉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인물 같았다. 몸을 옆으로 돌리자 정말 아름다웠다. 아니, 아름다움 그 이상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식탁 너머로 한순간 그녀의 시선이 새터스웨이트의 시선과 마주쳤다. 바로 그때, 그가 찾고 있던 말이 퍼뜩 머리에 떠올랐다.

마력,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에게는 마력 같은 게 있엇다. 절반만 인간인 '숲속의 요정'인지도 모른다. 그녀에 비하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지나치게 세속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이상하게도 연민의 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불분명한 인간적 속성이 그녀한테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느낌을 표현할 말을 찾다가 간신이 찾아냈다.

새터스웨이트는 ''날개 부러진 새.'라고 생각했다.

 

메이벌 앤슬리를 죽인 사람은 로저 그레이엄이 아니다. 그녀한테서 달아날 수는 있었겠지만 그녀를 죽일 수는 없엇을 것이다. 그는 그여자를 두려워했다. 그는 그녀의 실체 없는 요정 같은 분위기를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홀린 걸 알고는 그녀한테서 등을 돌렸던 것이다. 그는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안전하고 이성적인 쪽을 택했고, 장래에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듯한 허황한 꿈을 버리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그는 분별력을 갖춘 젊은이다. 따라서 예술가이자 인생의 감식가인 새터스웨이트에게는 흥미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정말 간단한 일이었지요."

킬리는 말했다.

"그것이 이유요! 게다가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본 사람도 없죠. 나는...... 나는 사람들을 비웃어 주고 싶어서......."

 

"죽음이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입니까?"

"저...... 아마...... 그건 아니죠......."

새터스웨이트는 상상해 보앗다. 매저와 로저 그레이엄. 달빛을 받은 메이벌의 얼굴........ 잔잔하고 숭고한 행복감.......

"아닙니다."

퀸은 말했다.

"아닙니다. 죽음이 가장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새터스웨이트는 새의 날개처럼 보였던 그녀의 주름진 청색 비단옷을 기억해 냈다. 날개 부러진 새.......

고개를 들어보니 새터스웨이트는 혼자였다. 퀸은 더 이상 거기에 없었다.

그러나 퀸은 무언가를 남겨 두고 사라졌다.

좌석에는 흐릿하게 파란빛이 도는 돌을 대충 조각해 만든 새 한 마리가 있었다. 예술적인 가치는 그다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거기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미술품 감정가인 새터스웨이트의 판단이었다.

 

 

<세상의 끝>

 

새터스웨이트는 아직도 스케치를 살피고 있었다. 공작 부인은 모르겠지만 그는 그림의 배후에 있는 완벽한 기교를 알아보았다. 그는 놀랐고 동시에 기뻤다. 그는 처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칼튼 스미스 양, 이 그림 가운데 한 장을 파실래요?"

"5기니만 주시고 아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걸로 가져가세요."

처녀는 무심하게 말했다.

새터스웨이트는 잠시 망설이다가 선인장과 알로에가 그려진 작품을 골랐다. 그림의 전면에는 샛노란 미로사가 선명하게 채색되어 있었고, 주홍색 알로에 꽃이 그림 안팎으로 흔들리는 듯했다. 그것은 가시가 돋친 장방형의 선인장과 칼처럼 생긴 알로에가 기막히게 정확한 전체적 기조를 이루는 작품이었다.

그는 처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러한 작품을 얻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게다가 헐값에 귀한 작품을 샀습니다. 칼턴 스미스 양, 언젠가는 이 스케치를 매우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녀는 몸을 앞으로 숙여 그가 고른 그림을 살펴보았다. 그는 그녀의 눈에 새로운 빛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제야 비로소 진심으로 그의 존재를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힐끔 재빠르게 쳐다보는 눈빛에는 존경심이 어려 있었다.

 

"누구나 뭔가에 관심을 갖고 있지요. 물론 자기 본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죠. 그렇지만 부인 말씀대로 그 아가씨는 그런 성격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겐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성격이 강하죠.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처음엔 그것이 그녀의 예술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닙니다. 저는 그처럼 삶에 초연한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위험한 겁니다."

 

"칼턴 스미스 양은 여기를 '세상의 끝'이라고 부르는데 근사한 이름 같지 않습니까?"

퀸은 천천히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히 암시적인 이름이군요. 이런 곳에 오는 건 평생에 한 번 뿐일 겁니다.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장소죠."

"무슨 뜻이죠?"

나오미가 날카롭게 물었다.

퀸은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대개는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죠?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혹은 앞으로 가느냐 뒤로 가느냐. 그런데 여기서는 뒤에는 길이 있지만 앞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새터스웨이트는 퀸과 함께 있을 때에 자신이 연극 속에서 배역을 맡고 있는 듯한 느낌이 몇 번 들었다. 지금 그러한 착각이 무척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이건 꿈이다. 모두 각자의 배역이 있다. '내 오팔'이라는 말이 그가 등장해야 된다는 신호였다. 그는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는 스케치북을 돌려주었다.

"정말 훌륭해. 아주 비슷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림에는 저 친구가 가장무도회 복장을 하고 있는 거죠?"

아주 잠깐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쳤다.

"제겐 저분이 그렇게 보이거든요."

나오미 칼턴 스미스가 말했다.

 

 

<할리퀸의 오솔길>

"퀸 씨, 연인들을 위해 큰일을 하셨습니다."

퀸은 대답 대신 고개를 약간 숙였다.

"퀸 씨는 그들을 슬픔에서, 아니 그보다 더한 죽음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당신은 죽은 사람들의 대변자 역할을 해 오셨습니다."

"그건 제가 아니라 선생님한테 들어맞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상대가 말이 없자 새터스웨이트는 더욱 힘주어 말했다.

"나를 통해서 당신이 한 일입니다. 무슨 까닭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직접 행동하지 않더군요."

"직접 행동할 때도 있습니다."

이제 퀸의 목소리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새터스웨이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조금 떨었다. 그는 분명 오후의 날씨가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해는 여전히 밝았다.

 

존 덴먼은 금발에다 무뚝뚝하고 영국인 같았지만, 다른 두 사람은 머리도 검고 야위어 묘하게 어딘지 비슷했다. 그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뭐지? 아! 드디어 깨달았다. 발퀴레의 제1막이다. 서로 흡사한 지그문트와 지그린데, 거기에 이방인 훈딩. 그의 머릿속에서는 추측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퀸이 가까이에 있다는 의미일까? 하나만은 그도 굳게 믿었다. 그것은 퀸이 출현하는 곳엔 반드시 드라마가 펼쳐진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엔 어떤 것일까. 낡아빠진 진부한 삼각관계의 비극?

 

"옛날에 그 여자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콜롬비나 역을 맡아서 춤을 출 때도 완벽한 할리퀸을 찾지 못했답니다. 모르도프나 카스닌도 완벽하지 않았죠. 그 여자에겐 자신만의 상상이 있어요.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답니다. 언제나 꿈속의 할리퀸과 춤추고 있다고. 실제는 없는 남자와 말입니다. 할리퀸, 그 사람이 다가와 함께 춤춘다고 했어요. 그 여자가 연기하는 콜롬비나가 대단히 훌륭했던 건 바로 그러한 상상력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고 길의 끝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발견할까요?"

퀸이 빙그레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 그는 머리 위의 허물어진 오두막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신들이 꿈에서 본 집, 혹은 쓰레기 더미,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저는 한 번도 당신의 오솔길을 지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후회하십니까?"

새터스웨이트는 기가 죽엇다. 퀸이 갑자기 거대하게 보였다. 눈앞에는 어딘지 협박을 하며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기쁨, 슬픔, 그리고 절망이.......

그리고 그의 여린 마음은 깜짝 놀라 움츠러들엇다.

"후회하십니까?"

퀸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에겐 어딘지 소름이 끼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아, 아닙니다."

새터스웨이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기운을 되찾고 소리쳤다.

"그렇지만 저는 여러 가지를 봤습니다. 저는 인생의 구경꾼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봅니다. 당신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퀸 씨."

그러나 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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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인용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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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 때문에 끌렸다. Why didn't they ask Evans? 에반스는 누구이고, 여기서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 사고로 죽은 한 남자가 죽기 전 남긴 의문의 문장, 마지막으로 저 말을 들은 한 청년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어릴 적 친구이자 대부호의 딸과 함께 둘은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일단 크리스티의 소설에 등장하는, 늘 익숙한 탐정들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 소설은 집중하기가 조금 힘들기도 하다. 거기에 에반스는 대체 소설 중반까지 가도 등장하지 않으며, 새로운 인물, 새로운 사건이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일어나 컴컴한 동굴을 손전등에 의존하여 계속 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 동굴은 복잡하게 꼬여 있거나 여러 갈래로 길이 나 있는 것은 아니고, 어디가 끝인지는 모르지만 계속 계속 나아가는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왠지 우리가 책의 앞뒤 표지 사이에 들어 있는 것 같아. 다른 사람이 쓴 이야기 한가운데에 끼어 있는 거지. 매우 기묘한 느낌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약간 섬뜩한 느낌도 있어. 오히려 나는 책이라기보다 연극이라고 말하겠어. 우리는 마치 제 2막의 중간에 무대로 나온 것 같고, 그 연극에서 맡은 역이 전혀 없으면서도 그런 체하지 않아야 하는 거야. 게다가 더욱 힘든 것은 제 1막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른다는 점이지."

극 중 두 인물의 대화이다. 추적하면 할수록 막막해질 시점, 두 젊은이의 대화는 딱 나의 생각과 일치한다.

 

"그래, '그들은 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말이지. 보비, 우리가 많은 것을 발견하고 점점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는데도 부구하고 그 수수께끼의 에번스에게는 전혀 가까워지지 못한 것이 이상하지 않아?"

"나는 에번스에 대해 다른 생각이 들어. 에번스가 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느낌, 그 사람이 비록 출발점이 되기는 했지만 그 자신은 어쩌면 별로 중요하지 않으리라는 느낌 말이야. 이것은 어느 왕자가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 곁에 웅장한 궁전이나 사원을 짓는 웰스의 소설과 같은 거야. 그것이 완성되자 그 옆에는 작고 거슬리는 게 하나 있엇지. 그래서 그는 '저것을 치워라.'하고 명령해. 그렇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무덤 그 자체였지."

"가끔 나는 에번스가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러워져."

이 생각도 마찬가지. 마치 에번스는 맥거핀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티라면 충분히 그런 트릭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고. 그러나. 역시, 에번스는 단순한 맥거핀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 트릭이 가능한 것은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가는 나라이기 때문이겠지.

 

"맥베스 부인이 맥베스에게 온갖 살인을 저지르게 한 것은 인생이, 그리고 부수적으로 남편과의 사이가 매우 따분해졌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그는 자기 부인을 따분하게 하는 유순하고 얌전한 남자였음이 분명해. 그렇지만 난생 처음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나자, 그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된 기분을 느끼면서, 이전의 열등감에 대한 보상을 하기 위해 자기중심적인 기질을 발전시키기 시작하는 거지."

이 구절은 앞 뒤 배치된 내용이나 책 전체에서의 위치를 보았을 때 나중에 반전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냥 맥거핀이었다.

 

크리스티의 소설 중 손꼽힐 정도는 아니지만, 한번쯤 읽어보기에는 충분히 재미있다. 범인인 줄 알았는데, 아니였다가, 다시 범인인가? 하는 과정도, 그리고 거의 실수하지 않는 능숙한 탐정만을 보다가 편견과 순간적인 감정으로 위험해질 뻔한 평범한 이들이 하나하나 진행시키는 과정을 보는 것도 여태까지와는 다른 의미에서 흥미로웠다. 결정적인 장면에서 심각한 말더듬이인 친구 배저의 도움을 받는 과정은 마치 <앵무새 죽이기>의 클라이막스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도 있었고. 그러고보니 마플 양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소설이 <목사관 살인사건>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목사관이 이 목사관인가?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그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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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1 (완전판) - 파커 파인 사건집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시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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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는 대표적인 두 명의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작가이다. 벨기에 국적의 자신만만한 작가 에르퀼 푸아로, 영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미혼의 할머니인 마플 양.

 

이 책에서는 새로운 탐정이 등장한다. 파커 파인. 35년 동안 정부 기관에서 통계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을 했던 그는 은퇴 후 리치먼드 가 17번지에 개인 사무실을 연다.  뚱뚱할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덩치가 있고, 딱 품위 있을 만큼 머리가 벗겨졌으며, 두터운 안경 너머로 자그마한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믿음직한 분위기가 절로 풍겨 오는 탐정이다. 글쎄, 이 사람을 탐정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애매할 수도 있다. 잘생긴 청년과 데이트하는 장면을 남편에게 보여주어서 젊은 여성에게 쏠린 관심을 부인에게로 돌리게 한다거나(중년 부인) 권태로 몸서리치는 소령에게 추리 소설가 올리버 부인이 만들어낸 플롯으로 모험을 선사한다거나 (불만스러운 군인) 하기 때문이다. Are you happy? If not, consult Mr. Parker Pyne, 17 Richmond Street 라는 개인 광고의 내용을 볼 수 있듯이, 그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물론, 모든 사건이 이렇게 순순히 흘러가지는 않는다. 마치 기 드 모파상의 목걸이를 연상시키는 사건에서 의뢰인의 실체를 꿰뚫어보기도 하며 (괴로워하는 여인)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붙잡기 위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척 연기했던 남자가 아내가 돌아온 후, 정말로 그 여자에게 빠져버린 웃지 못할 일 (불행한 남편)이 생기기도 한다. 때때로 의뢰인을 행복하게 해 주는 방법은 위험한 경우도 있는데,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던 회사원에게 국경을 건너 소중한 물건을 온전하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기는데 (회사원), 물론 이 경우 회사원은 전달하고자 하는 물건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의뢰인의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좀 더 짜릿한 모험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기 위한 파커 파인의 배려이다.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의뢰인 뿐만이 아니다. 파커 파인 또한 법적 대응을 각오하면서도 은행에 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미망인을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 농부 아낙네로 살게 하기도 (부유한 미망인) 한다. 사건의 해결은 사무실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이스탄불로 가는 배 안에서 압지에 남아 있는 문구로 불안해진 아내가 파인 파커에게 의뢰하고, 파인 파커는 사실상 남편이 만들어낸 소동극을 해결하며 남편에게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도 (원하는 것을 다 가졌습니까?) 한다. 사막을 가로질러 바그다드로 가던 도중, 의문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고 (바그다드의 문) 바그다드를 떠나 페르시아로 향하는 과정에서 <푸아로의 크리스마스>나 마플 양이 해결했던 사건 중 하나인 <동행>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을 (시라즈의 집) 해결하기도 한다. 암만을 지나고 페트라에 도달하고 나서 발생한 진주 귀걸이 도난 사건 (값비싼 진주)과 나일 강을 타고 흐르는 배 위에서 벌어진 사건 (나일강 살인 사건)도 여행 중에 그가 해결한 사건이다. 유명세 때문에 휴가조차도 마음 놓고 즐기지 못하는 이 탐정, 그리스에 갈 때는 가명으로 여행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사칭하는 것을 보고 사기당할 위험에 빠진 모자 (델포이의 신탁)에게 도움을 준다.

 

중년 부인
불만스러운 군인
괴로워하는 여인
불행한 남편
회사원
부유한 미망인
원하는 것을 다 가졌습니까?
바그다드의 문
사라즈의 집
값비싼 진주
나일 강 살인 사건
델포이의 신탁

 

파커 파인이 등장하는 단편은 총 14편이라고 하는데, 그 중 12편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다른 두 편이 어떤 이야기일지 참 궁금한데, 아마도 이어지는 황금가지의 다른 시리즈에서 찾아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러고보니 파커 파인의 절친으로 등장하는 소설가 올리버 부인은 <창백한 말>에서도 등장했다. 그 소설에서는 직접 사건을 해결하지는 않아도 큰 힌트를 주게 되는데, 어떤 캐릭터인지 설명이 없어서 궁금했다. 이 책의 설명으로는 46권이나 되는 소설들이 영국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핀란드, 일본,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성공한 여류 작가이다. 그야말로 크리스티 자신의 분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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