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관의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지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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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플 양이 처음 등장하는 작품.

 

크리스티 자신도 마플 양이 수십 년을 걸쳐 사랑받을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대단히 연극적으로 보이는 푸아로에 비해서 마플 양의 생김새는 수수한 편에 가깝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모습은 시골 할머니의 느낌이지만, 이 책에서의 마플 양은 마냥 푸근한 모습은 아니다.

 

"나는 마플 양이 좋던데. 적어도 유머 감각은 있거든."

"그녀는 마을에서 가장 고약한 여자예요. 일어나는 일마다 사사건건 다 알려고 들고. 게다가 늘 최악의 결론만 내리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리젤다는 나보다 훨씬 어리다. 나 정도 살아 본 사람들은 모두 진실은 대개 최악이게 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구절도 있다.

 

마플 양은 상냥하고 사람을 끄는 매력을 가진 백발의 노처녀였다. 반면 위더비 양은 심술궂고 야단스러운 여자였다. 하지만 둘 중 더 위험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마플 양이었다.

 

겉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습관은 사람들을 질리게 하는 떄가 종종 있는 모양이다.

 

갑자기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플 양, 지금 우리 모두가 혀를 지나치게 함부로 놀리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라는 말을 익히 알고 계실 줄 압니다. 심술궂은 뒷공론으로 그 어리석은 혀를 함부로 휘둘러 수많은 해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런, 목사님."

마플양이 말했다.

"목사님은 정말이지 속세의 떄가 묻지 않은 순수한 분이세요. 저처럼 사람들의 품성에 대해 오랫동안 관찰하다 보면 사람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답니다. 감히 말씀 드리는데 객쩍은 수다와 잡담이 매우 고약하고 잘못된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종종 그 속에 진실이 있는 법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마플 양의 마지막 공격은 나의 급소를 찔렀다.

 

특히나 이 소설에서 마플 양의 집요함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고집스런 행동은 마플 양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다. 세인트 메리 미드라는 이 마을에서는, 마플 양 뿐 만 아니라 그 나이대의 모든 여자들이 온갖 소문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웨더비 양이 막 전화를 걸어왔어요. 레스트랭 부인이 8시 15분에 밖으로 나갔다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녀가 어디에 갔는지 아무도 모른대요."

"그걸 누가 알아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나?"

"하지만 헤이독 의사 선생님께도 가지 않았단 말이에요. 웨더비 양이 그건 확실하대요. 헤이독 의사 선생님 집 바로 옆에 사는 하트넬 양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는데 레스트랭 부인을 못 봤다고 분명히 말했다는군요."

"정말이지 대단한 미스테리로군."

내가 말했다.

"이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생존을 위한 영양분을 얻는지가 미스테리란 말이야. 누가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지 놓치지 않고 다 살펴봐야 하니 식사도 창가에 서서 해야 할 거 아닌가."

 

화자인 목사가 드물게 이성을 상실할 때가 바로 마플 양을 비롯한 마을 여자들의 이 일사분란하면서도 끈질긴 행위들을 접할 떄이다.

 

"그 쭈글쭈글한 노파는 자기가 이 세상의 알아야 할 것들을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평생 동안 이 마을 밖으로는 나가 보지도 못했으면서 말이야.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일이야. 저런 여자가 인생에 대해 뭘 알겠나?"

 

경찰서장인 멜쳇 대령의 평가이다. 멜쳇이라는 이름은 꽤 익숙한데, 아마 마플 양이 등장하는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에서 본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다면, 멜쳇은 마플 양에게 굉장히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었다. 이 사건 이후로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겠지.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진실에 도달하는 매우 확실한 방법이 있어요. 사람들이 통찰력이라 부르며 대단한 것인 양 떠들어 대는 것이죠. 하지만 사실 통찰력은 단어의 철자를 일일이 다 외우지 않고도 단어를 읽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일이에요. 어린 아이들은 할 수 없는 거죠. 경험이 거의 없으니까요. 하지만 어른들이라면 전에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단어를 알 수 있죠.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목사님은 아시죠?"

"알 것 같군요. 그러니까 어떤 것을 보고 다른 것이 연상된다는 말씀이시죠.그러니까 아마도 비슷한 종류의 일이 떠오른다는 거죠."

 

통찰력. 바로 이것이다. 마플 양 추리의 핵심. 사건에 접할 때마다 그녀가 이전에 겪었던 다른 사건을 통해 유추해내는 힘.

 

"아시겠지만 저처럼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져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은 취미가 필요한 법이랍니다. 물론 취미를 갖는 건 어렵지 않죠. 털실 자수며 바느질, 복지사업, 그림 그리기 등등 많이 있어요. 하지만 제 취미는...... 아주 옛날부터 그랬는데요...... 바로 인간의 품성에 대해 연구하는 거랍니다. 인간의 품성이란 너무나 다양하거든요. 그래서 매우 매력적이랍니다. 물론 기분 전환할 거리 하나 없는 이런 작은 마을에서도 연구에 필요한 훈련을 할 기회가 충분하답니다. 일단 사람들을 구분하는 거예요. 마치 새나 꽃을 분류하듯이 종, 속, 목 등으로 명확히 나누는 거예요. 물론 사람이다 보니 실수로 잘못 구분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실수가 줄어들어요. 그러고 나서 실험도 해보죠. 작은 과제를 정해 보는 거예요. (중략) 하지만 언젠가 정말로 큰 미스테리가 발생하면, 그떄도 이런 일들처럼 똑같이 해결할 수 있을까 늘 궁금하답니다. 미스테리를 제대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거죠. 논리적으로는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든 실용 모형 어뢰는 아무리 작아도 진짜 어뢰와 똑같이 작동하는 법이니까요."

 

이 책이 참 흥미로운게, 마플 양의 첫 등장이니만큼 그녀 자체에 대한 묘사와, 그녀의 추리 방식에 대한 설명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매 소설마다 반복했으면 결국 중언부언이 될 테니까.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책에서야 가장 범인일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범인인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실제로 그 규칙이 적용된 적이 없더라고요. 종종 아주 뻔한 것이 그대로 진실이랍니다. 제가 프로더로 부인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녀가 레딩의 손아귀에 놀아나서 그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고 있다는 결론을 피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요. 레딩 씨는 돈 한 푼 없는 여자와 야반 도주를 할 그런 젊은이가 아니에요. 그로서는 프로더로 대령을 없애야만 했을 거예요. 그래서 그를 없앤 거죠. 젊고 매력적인 남자지만 도덕관념이란 게 없는 사람이죠."

 

실제에서는 가장 범인일 것 같은 사람이 바로 그 범인이라는 결론. 어쩌면 크리스티의 문학이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저런 교묘한 장치들로 독자의 뒤통수를 치기란, 어쩌면 글쟁이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수도 있다. 그야말로 반전을 위한 반전. 하지만 크리스티의 소설에 매번 감탄하고야 마는 것은, 범인이 누군지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복잡함과 더불어 마지막에 범인이 밝혀졌을 때, 왜 그가 범인이어야 했는지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크리스티의 인간에 대한 통찰 떄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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