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포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우열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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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창옌은 빅 포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생각할 수 있다. 리창옌은 전체를 통제하고 움직이는 존재다. 그러므로 나는 리창옌을 1인자라고 지칭했다. 2인자는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를 상징하는 것은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두 선이 있는 S 모양, 즉 달러를 나타내는 모양이다. 또 두 줄과 별 하나도 그를 상징한다. 따라서 2인자는 미국인이라고 추정할 수 있고, 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3인자가 여성이고 프랑스인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상류층 요부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도 있으나, 어떤 것도 분명치는 않다. 4인자는......."

남자의 목소리가 떨리더니 멈췄다. 푸아로가 앞으로 몸을 숙여 재촉하듯 물었다.

"그래, 4인자가 뭐라고?"

푸아로의 눈은 남자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떤 압도적인 공포가 남자를 지배한 듯 보였다. 남자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뒤틀려 있었다.

"파괴자."

 

이 책을 읽기 전에 평점이 너무 낮아서 놀랬다. 물론 이 소설에 대한 박한 평가는 크리스티의 작품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실망스럽다는 것이지 작품 자체에 대한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이 소설에 대한 평을 읽으면서 빅 포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책이 어떤 이야기인지 대강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평들의 요지는 대부분 이 책의 설정에 대한 아쉬움이었으니까.

 

이 책은 영화로 치자면 첩보물이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크리스티의 작품들 중 가장 영화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책의 분량이 300쪽이 채 되지 않는 데다가, 속도감 있는 전개 때문에 읽는 내내 스릴있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줄거리의 스케일은 엄청나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이탈리아, 벨기에, 남미까지. 직접적으로 등장하든 간접적으로 묘사되든 이 소설은 전지구적인데, 의외로 요모조모 귀여운 구석도 있다. <커튼>에서 붉은 색 머리에게 이끌리는 헤이스팅스를 놀리며, 예전에 그것 떄문에 큰 위험에 빠질 뻔했다는 이야기를 푸아로가 하는 대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여기에서의 한 일화를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싶다. 또 푸아로의 쌍둥이 이야기도. 베라 로샤코프 백작 부인은 다른 작품에서 푸아로와 만났던 것 같은데 나중에 읽게 될 미지의 작품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러한 구성이 용두사미 같을 수도 있겠지만 '레닌과 트로츠키가 그냥 꼭두각시일 뿐이고 뒤에서 모든 행동을 조종하는 수뇌가 있다'거나 '마담 올리비에는 천재야. 퀴리 부부는 올리비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라는 대목에서는 작가의 포부(?)가 엿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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