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여행책 - 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
박준 지음 / 엘도라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 책여행
세상 모든 괴짜들의 고향 Bookmark1 아웃사이더 예찬 ‘마이클 커닝햄’
몽상가의 여행법 Bookmark2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체 게바라’
달콤 쌉싸름한 에스프레소가 그리울 때 Bookmark3 파리카페 ‘노엘 라일리 피치’
나는 걸었다, 세계는 좋았다 Bookmark4 인도방랑 ‘후지와라 신야’
사람들이 인도를 찍은 사진은 다 비슷해 보인다고 하니 그가 빙긋 웃으며 말한다.
“보이는 대로 다 찍어서 그래. 인도는 어디를 찍어도 전부 사진이 되니까, 무엇을 찍지 않을까 하는 마이너스 작업에 의해서만 사진 찍는 사람의 시각이 드러나. 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처럼 양이 중요한 사회에서 살다가 인도에 온 사람에게 ‘찍지 않는 것도 표현’이라는 발상이 나오기는 어렵지. 인도 같은 곳에서 히피들처럼 날것의 행위만을 원칙으로 삼는 인간 앞에 서면, 행위를 표현과 결부시키려 드는 인간은 정말 꼴사나워. 나 같은 사람이지. 난 방랑자이고 싶었지만, 언제나 돌아갈 곳을 마련해주고 날것의 행위를 사진이나 글자로 얼버무리며 떠돌아다닌 거야.”
여행의 목적은 없다 Bookmark5 딸 그리고 함께 오르는 산 ‘제프리노먼’
새로운 시간을 찾아서 Bookmark6 야간열차 ‘에릭파이’
보헤미안의 정거장, 샌프란시스코 Bookmark7 보헤미안의 샌프란시스코 ‘에릭 메이슬’
가여운 외국인이 이제야 초원을 봤다는구려 Bookmark8 내일은 어느 초원에서 잘까 ‘비얌바수렌 디바, 리자 라이쉬’
도시에서 마음이 헛헛할 때 Bookmark9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은하수를 따라 별들의 벌판을 지나 Bookmark10 느긋하게 걸어라 ‘조이스 럽’
청춘은 방황이니까 Bookmark11 청춘, 길 ‘사진 베르나르 포콩/글 앙토넴 포토스키’
이 별에서 저 별로 지쳐 쓰러져갈 때까지 Bookmark12 길 위에서 ‘잭 케루악’
1만 개의 골목, 1만 개의 만남 Bookmark13 페스의 집 ‘수전나 클라크’
모든 존재는 여행을 한다 Bookmark14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거침없이 원하는 대로 놀라운 인생을 Bookmark15 프리다 칼로 ‘헤이든 헤레라’
내 옆에 있던 20대 여자 관람객이 눈시울을 붉힌다. 그녀가 프리다에게 자신의 상처를 투영하고 있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단지 프리다의 불행만을 떠올리고 있는 거라면, “그렇게 슬퍼하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프리다에 대해 말할 때 ‘그림으로 고통을 승화시켰다’는 식의 말이 상투적인 것처럼, 그녀가 당한 사고만으로 그녀를 불행한 여인으로 만드는 것은 당치 않다. 프리다는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니? 교통사고나 디에고의 외도로 인한 고통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야. 기쁨과 절망이 공존하긴 했지만 나는 원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어. 내가 당신보다 불행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야.”
고요한 모험 Bookmark16 on the road ‘한현숙’
# 여행책
잘 입고, 잘 먹고, 달콤하게 연애하고 Landmark1 크레모나
외롭지 않아, 고독한 거지 Landmark2 헬싱키
할렘 산책 Landmark3 할렘
난 할렘에 한번 가보지도 않은 채 선입견만으로 할렘의 흑인들을 범죄자로 간주했다. 할렘을 한 번 걸어보고 나서야 할렘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난센스인지 알았다. 정작 백인들이 나를 본다면 나는 백인 쪽에 가까울까 흑인 쪽에 가까울까?
붉은 구름 사이에서 보낸 하룻밤 Landmark4 교토
잘 노는데다가 고고하기까지 Landmark5 아바나
고흐, 그 보통의 삶 속으로 Landmark6 아를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그림을 그린 캔버스가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 이상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는 꿈이 있어요 Landmark7 앙코르와트
“지금은 모토돕이지만 나중에는 컴퓨터 일을 하면서 가족들을 돌보고 싶어요.”
캄보디아에는 거친 삶에 맨몸으로 맞서야 하는 현실이 나이와 상관없다. 그도, 유적지의 아이들도 어떤 식으로든 제 몫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내가 이들을 동정할 계제가 아니다. 꿈이 있는 그의 얼굴은 행복해 보인다.
노란전차를 타고 Landmark8 하코다테
사바이, 사누크, 사도아크 Landmark9 님만해민
일상을 예술가처럼 Landmark10 뒤셀도르프
사랑 후에는 무엇이 남을까 Landmark11 후지산
난 사랑의 끝까지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길을 걸어보고 싶어 하면서도 이 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사랑은 어차피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대개는 안 좋은 방향으로. 하지만 사랑이 변질된 것 같더라도 더 가봐야 하는 게 사랑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내년에도 남편과 벚꽃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단순한 의문문으로. ‘함께 보고 싶다’가 아니라 ‘과연 함께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때 내 인생이 조금은 좋아진다. 묘한 느낌이다. 내년에도 이 사람과 함께 벚꽃을 볼 가능성이 있다. 아주 희망에 찬 생각이라고 나는 기뻐한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함께 벚꽃을 볼 가능성이 있기에 가능한 기쁨이다. 나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란 말로 맹세한 사랑이나 생활은 어디까지나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목적은 아니라고 믿고, 찰나적이고 싶다. 늘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결정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남편과 같이 있다.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같이 있는 동안은 함께하는 생활을 마음껏 맛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헤어질 때가 오면 조금은 울지도 모르겠지만 ‘죽음이 우리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한다면, 아마 더 울지도 모르겠다.
카오산로드에 가서 실망했다는 독자에게 Landmark12 카오산로드
어떤 이들은 카오산로드에 맥도날드가 생긴 것을 보고 “카오산도 이제 상업화되었다”고 비아냥거린다. “순수했던 여행자들의 거리가 퇴색해버렸다”는 식이다. 하지만 맥도날드가 정말 여행자가 걱정할 문제일까? 맥도날드는 거대자본의 흐름을 보여줄 뿐이다. 사실 배낭여행 자체도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배낭을 매건 캐리어를 끌건 소비적 행위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은 이제 전지구적인 범위로 퍼져간다. 카오산로드와 배낭여행 역시 자본주의라는 큰 흐름 안에 연결점을 갖는다. 카오산이 변화를 겪은 것은 사실이나,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물론 변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건 또 다른 문제지만, 카오산이 여행자들의 바람대로 변화의 예외일 수는 없다. 나도 당신도 변할 것이다. 카오산이 변하듯 청춘도 어느 순간 지나간다. 그러니 변하는 것을 안쓰러워하기보다는 내 삶에서 변하지 않을 무언가를 찾는 수밖에! 나는 카오산을 떠올릴 때마다 어떤 정신, 에너지 같은 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내 마음속의 카오산로드는 단지 방콕의 북서쪽 방람푸의 좁은 거리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길을 나섰을 때 내가 걷고 있는 그 길이 바로 카오산로드다.
‘여기에 산다’는 여행 Landmark13 야쿠시마
가지도 않고 책만 읽고 마치 가본 것처럼 쓸 수 있을까? 이 책은 일종의 독후감이자 콩트이기도 하다.(콩트: 기지나 풍자가 풍부한 가벼운 내용의 짧은 이야기) 제시된 책을 전혀 읽지 않았기에 대체 작가가 어떻게 영감을 받아 어떤 식으로 풀어냈는지 궁금했다. 결국 집 근처의 북카페로 향해 여행의 기술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헨리 워즈워스, 시간의 점, 레이크디스트릭트 등 몇 개의 키워드만 가지고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뿜어냈다. 우리도 여행가기전 설레며 이런저런 공상을 하지 않나? 두근거리는 로맨스, 아찔한 위험 등. 막상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이 책은 오히려 여행의 가장 잔잔한 부분만을 보여준다. 장식이 화려한 케이크 중에서 가장 평범하고 단순한 부분만 애써 골라내 잘라 주는 것처럼.
여러 이야기 중 꽤나 많은 작가들이 박준의 여행에 ‘직접’ 등장한다. 마음에 드는 책을 읽었을 때 화자와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번씩은 해보는 공상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고 나서 18세기 영국의 시골을 걸으며 그녀와 이야기해본다거나 앤 시리즈를 읽으며 비슷한 상상을 해 본다거나. 단지 상상에 그치는 부분을 이렇게 ‘깜빡’ 속을 정도로 풀어내다니 그동안 수많은 독서와 여행으로 다져진 박준의 내공이 짐작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