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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산문집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평점 :
즐거운 편지 /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오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떠올린 시이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 두 문장 사이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고 간절한 당신에 대한 마음이 압축된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니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다. 아마도 황동규 시인의 이 시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직 나는 '끌림'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병률의 이름 석 자는 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읽지 않았던 것은, 일종의 반발심리랄까. 모두가 열광할 때 시류에 편승하기보다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떄까지 기다리겠다는 마음? '끌림'이 이병률 시인의 첫번째 여행기라면, 이 책은 두번째 여행기라 할 수 있겠다. 지금의 작가를 있게 한 첫번쨰 여행기가 어떤 책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은 확실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끊임없이 그리워하는 모습을, 마치 매일 매일 일어나는 일상인 것처럼 다루고 있다. 누군가에 대한 그 마음이 정말 간절하지만 사소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수많은 나라, 다양한 문화 속에서 먹고, 자고, 글을 썼던 시간들을 그저 평범한 일상처럼 다루는 데에서 이 여행기가 특징이 있다. 어느 곳에는 어떤 명소가 있고, 거기를 가려면 어떤 교통편을 이용해야 경제적이며, 어떤 맛집과 어떤 문화 유적에 대한 구구절절한 소개가 아니라, 그저 잠시 일상을 떠나 몸도 마음도 가벼운 상태, 그 상태를 위한 최적의 방법으로 여행을 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지구 반대편,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야만 가능한 나라에서의 일들이 흥분되는 모험이라기보다는 편안한 주말 같은 느낌을 준다.
책을 읽다 보면 밑줄 치고 싶은 구절도 있고, 감동받은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속된 말로 오글거린다고 느껴지는 구절도 있다. 아마도 한참 내가 힘들고 외로웠던 시절, 이 책을 읽으면 눈물날 정도로 반가웠으리라. 그 당시, 이런 수많은 책들을 읽으며 위로를 받았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격언처럼, 그 시간 또한 지나가니, 외로움을 다룬 책을 절절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덤덤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슬플 때는 슬픈 음악을 듣고, 못 견디게 외로울 때는 외로움을 다룬 시를 읽으면 오히려 위로가 되듯이, 이 책 또한 그럴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또 슬픈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 것 또한 바이오리듬처럼 시기를 타는 때라, 언제 읽느냐에 따라서 이 책으로 느낄 수 있는 감동의 진폭이 차이가 날 수 있겠다. 몇 년 전의 나라면 별 다섯개를 줬겠지. 책도 사람도 타이밍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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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럭셔리하게 쓰는자,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나에게도 여행은 시간을 버리거나 투자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여행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게 있어 여행은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었다. 낯선 곳으로의 도착은 우리를 100년 전으로, 100년 후로 안내한다. 그러니까 나의 사치는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감히 시간을 사겠다는 모험인 것이다.
일상에서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게 시간이지만 여행을 떠나서의 시간은 순순히 내 말을 따라준다. 사실 여행을 떠나 있을 때 우리가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 쪽이질 않은가.
여행의 많은 순간순간들을 극한 지경으로 몰다보면 그 안에서 선명한 쾌감을 만난다. 막막히 갈 곳도 없고 깊은 밤이 되어 눈 붙일 데가 마땅하지 않아도 그 상황 속에서 서성이다보면 이상할 정도로 강렬한 그 무엇에 대한 애착도 느끼게 된다. 적어도 거지가 아니라 여행자라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이미 멀리 떠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세상 그 어떤 순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상태에 깊숙이 빠져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달라진 그 친구에게 사람들은 물었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바꾸어놓았느냐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넓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는 곳은 단지 세상의 조각에 불과했어. 나하고 정말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난 겨우 그 사실을 알았고 그건 충격이었지. 다른 기후 속에서 생각을 하고,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꿈을 살고 있었지. 나의 정반대 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 시간에 깨어나서 치열하게 뭔가를 붙들고 있었거든. 난 가능한한 세상의 모든 경우들을 만나볼 거야."
역시 축구의 왕국이라 그런지 어딜 가나 축구들을 하고 있다. 지갑 들고 다니듯 어디든 공 하나를 들고 다니는 것 같다. 땀을 식히려고 공터 나무 밑에 앉았는데 저기 건너편에서도 청년들이 열정적으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경사가 너무 심해서 한쪽 편이 심하게 불리해 보인다. 저건 뭐지? 저래가지고 무슨 축구야?
한쪽 편은 속도를 줄일 수 없었고 또다른 편은 속도를 낼 수도 없는 데다 공조차도 사람 말을 듣지 않았다 경사진 공터에서의 축구는 아무리 봐도 엉터리였다. 헌데,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양편이 서로 방향을 바꿔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쩔쩔매던 상대가 이번에는 훨훨 날고 있었다.
전반과 후반, 경사진 길과 평평한 길.
우리 인생도 그 둘로 나뉘어져 있다.
빵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는 유난히 빵집에 집착한다. 지내는 동안 빵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데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곳일 때 빵집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로인가. 흐린 날의 빵 굽는 향은 멀리 간다. 그 향을 맡은 공사장의 인부들도, 성당의 신부님도 하는 일 없이 기뻐지거나 괜히 빗방울이라도 후두둑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빵이 너무 커서 가슴팍에 안고 먹어야 하는 그루지아의 화덕 빵이나, 빵 굽는 냄새가 맡아지면 킁킁대며 빵집을 찾아야 하는 시리아의 골목 빵집, 맛이 얼마나 좋으면 한입을 베어 물고 걷다가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가 먹을 수 없는 양의 크루아상을 사게 되는 파리의 빵가게. 세상의 빵 냄새에 홀려 동물이 되는 것이 나는 좋다. 사실 빵이야 여행지에서 이렇게도 먹고 저렇게도 먹는 거라서, 빵에 눈을 많이 얹어서 먹은 기억이나 말라비틀어진 방을 석탄기차 난로에 구워서 먹은 기억까지 합하자면 빵에 대한 내 취향은 동물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비행기나 여행지의 숙소에서 작은 잼이나 버터가 나오면 하나씩 주머니에 넣어두는 끈적한 버릇까지 생겼다.
평범이란 말보다 큰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평범한 것처럼 남에게 폐가 되지 않고 들썩이지 않고 점잖으며 순하고 착한 무엇이 또 있을까.
나는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그를 불러 내 앞에 앉혔다.
오늘 떠난다고, 여기서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리투아니아의 '십자가 무덤'으로 기도를 하러 갈 거라 했다. 기도를 담은 어떤 물건이라도 좋으니 '십자가의 무덤'에, 너의 기도와 함께 내려놓고 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기도를 하면 어떤 식으로든 응답이 온다고 믿으면서 살고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나무든, 철사든, 종이든 십자가를 만들면 어떨까? 작아도 되고, 뭐 커도 되고......."
두시가 되었다. 청년은 나타나지 않았다. 배웅을 하러 나온 수사님께 청년을 보고 가야 한다고 했더니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사람 말을 듣는 아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혹시 많은 돈을 준다면 모르지. 십자가를 만들어서 나왔을지도."
내가 느릿느릿 그 마을을 떠날 때가지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나와의 약속을 어긴 것이 불편한 게 아니라, 그와 어울리지 않는 나의 일방적인 생각으로 그의 존재를 훼손시켰다는 기분이 들어 며칠이 괴로웠다.
당신이 맘에 든다. 내가 누군가를 맘에 들어한다는 것은 푸른 바다 밑, 심연 속으로 당신을 끌어내리고 싶어한다는 것. 그러면 당신은 눈을 뜨고 나를 보는지 아니면 두려움에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마는지 실험하고 싶은것. 그러니까 다시 말해 고속도로에서 속력을 내면서 옆자리에 앉은 당신에게 키스를 하고자 했을 때 당신이 나를 따라 눈을 감는지 아니면 두려워 정면을 보고 있는지 알고 싶은 거다.
(아... 이 부분은 책 전체에서 가장 오글거리는 부분이었다. 감정의 과잉 때문에 읽는 내가 감당하기가 힘든?)
몸이 안 좋아 목욕을 하다가 졸도한 노인과, 직접 내 손으로 입히면서 속사정까지 알게 된 그의 남루한 옷가지들과, 대저택의 장미정원. 이 셋의 서늘한 하모니 가운데 어느 하나도 커지거나 작아지면 안 됩니다. 옷이 깨끗해도 안 되고, 장미 정원이 작아도 안 되고, 또 몸이 건강한 노인이어도 안 됩니다. 아마도 그 가운데 하나라도 내가 본 그대로가 아니었다면 나에게 이토록 강렬한 불꽃처럼 기억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완벽히 혼자인 노인에게 그토록 완벽한 장미정원이 있으니 다행입니다.
나이만 있고, 나이 없는 사람이 되기는 싫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즈음이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넓이를 얼마나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넓이를 어떻게 채우는 일이냐의 문제일 텐데 나이로 인해 약자가 되거나 나이로 인해 쓸쓸로 몰리기는 싫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들어도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문장처럼 늘 이 정도로만 생각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우리는 시작에 머물러 있을 뿐, 충분히 먹은 것도 마신 것도 사랑한 것도, 아직 충분히 살아본 것도 아닌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