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에서 보낸 여름방학 여름방학 시리즈 2
조인숙 지음 / 버튼티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별 점 네 개를 준 것은 객관적인 기준이라기보다는, 나의 사심이 상당히 작용했다는 것을 먼저 고백해야겠다. 사실 나도 얼마 전에 북유럽을 다녀왔다.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여행이었기에, 짐을 싸는 그 순간부터 설렜고, 다녀오고 난 지금도 아직 꿈에서 깨지 못한 채 환상에 젖어 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다녀왔던 한 달 간의 베낭 여행이 그러했듯, 또 일본어 한 마디도 못하면서 용감하게 오사카, 교토, 고베 자유 여행을 감행했던 시절이 그러했듯, 너무나 강렬해서 당시에는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그 기억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희미해진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이번 여행 또한 그러하리라는 것을 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흐릿해져 가는 기억만 붙들고 안타까워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춰보고자, 아직 내 몸의 일부가 그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 즈음에 열심히 다녀왔던 곳의 사진을 보고, 책을 읽고, 영상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고 여행의 이유가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북유럽이 궁금했을 뿐이다. 아이들에게 선진국의 교육을 느끼게 하려는 것도 세련된 디자인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없었다. 사소한 이유나 목적이 때로는 거창한 무언가를 더 앞설 때도 있으니까.

 

모든 것에는 떄가 있다.

무엇인가를 가장 하고 싶을 때, 정말 가고 싶을 떄, 너무 원할 떄가 그때라는 생각을 한다. 무엇이든 해보지 않고는 그 결과를 알 수 없듯 가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법이다.

 

나도 그랬다. 내가 왜 그리도 북유럽을 가고 싶어했던가? 자문해보면 명확한 이유가 사실 없다.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몇 배나 높고 세계적으로 복지, 평화, 청렴 지수가 늘 최상위권인 나라를 배우고 싶어서? 요즘 '핫'하다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어서? 이제는 가 볼 만큼 다 가봤기에 안 가본 나라 중 찾다 보니? 전부 아니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아주 사소했다. 거창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알았던 것은, 지금이 바로 북유럽으로 출발할 떄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패키지 여행을 다녀왔기 떄문에,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딸과 조카를 데리고 여행했던 것처럼 다채로운 경험을 하지 못했다. 점점 읽으면서 안타깝기도, 어떤 대목에서는 부아가 나기도 했다. 나도 현지인의 집에 숙박해보고 싶다, 나도 무민 월드와 레고랜드와 삐삐 박물관에 가고 싶다, 나도 영화 카모메 식당의 카하비라 수오미와 카페 알토에 가고 싶다, 속이 쓰렸다.

 

하지만 내 인생의 여백을 일부러 만들기 위해 간 여행에서 마치 리스트를 작성하고 뭔가를 꼭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동동거리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작가도 이야기한다.

 

꼭 사려고 마음 먹었던 바구니를 결국 사지 못했다.

꼭 가려고 다짐했던 삐삐마을을 안타깝게 가지 못했다.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듯 여행 또한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인정하자 신기하게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다음에 그 핑계로 다시 와야겠다는 야무진 다짐을 하자 오히려 힘이 났다.

 

그래, 내가 북유럽에 가서 그 곳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낀 점도 그랬다.

아둥바둥하지 않고, 물 흐르는 대로, 걱정 없이,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 같았던 그들의 모습을 보고, 한국에서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온 몸에 쫙 들어갔던 기합을 풀고,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그래, 다 잘 할 수는 없지. 다 해낼 수는 없지. 부족한 부분은 생길 수 밖에 없지.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이 순간을 느끼면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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