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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진, 이동진의 시네마기행 ㅣ 탐사와 산책 16
오태진, 이동진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평론에서 가장 대중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평론가 이동진이 아직 조선일보 기자 시절일 때, 선배 기자와 함께 연재했던 기사들을 모은 책이다. 나는 잘 몰랐는데, 의외로 영화에 대한 서적은 많이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대중들에게 영화라고 한다면, 골치아프게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2시간여동안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라고 인식되기 떄문이 아닐까. 굳이 머리 싸매고 읽어갈 필요가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동진의 우직함이 더 빛나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국내 영화감독에 대한 그의 인터뷰집 2권을 보면 그 두께와 정성에 압도당할 지경이다.
이동진의 팬이라면, 초창기 시절 그가 썼던 글을 읽어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낯선 거리에서 영화를 만나다'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판되었는데 그 이후에 나온 여행기들이 '필름 속을 걷다',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여서 세 권의 여행기를 가만히 보면, 영화에 나온 장소를 찾아가 영화의 일부 장면을 충실히 재현했다는 점, 그리고 책이 전부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완결성을 느낄 수 있다. '필름 속을 걷다'는 아직 읽지 못했는데, 아마도 그 책을 읽으면 이동진이라는 사람의 변화의 과정을 좀 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 읽은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와 이 책은 동일한 사람의 글이지만 약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명확히 하자면 이 책은 오태진과 이동진이 함께 썼고, 뒤의 두 책은 회사를 나온 뒤 오롯이 이동진 혼자서 쓴 책이다. 아무래도 이동진이 쓴 유럽편에 시선이 더 많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유명인사라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세월을 두고 어떻게 변화했는지, <미생>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전쟁'속에서 쓴 글과 '지옥'에서 쓴 글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러자면 너무 센 거 같고, 금전적으로 지원을 받지만 나 자신을 드러내기 힘들었던 결과물과 자유롭지만 오히려 소소하게 신경쓸 부분은 훨씬 더 많은 가운데서 만들어낸 창작물과의 차이 정도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책은 크게 유럽편과 미국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유럽편을 이동진이 썼고, 반 이상에 해당되는 미국편을 오태진이 썼다. 이 책만 보면 둘 사이의 차이가 확 드러나는데, 오태진의 글이 좀 더 기사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둘 중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는 점이 아니라 이때부터 이동진의 글이 일반적인 기사와는 다르게 문학적 향기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쓴 책들을 보면 그 경향이 더 도드라지는데, 그래서 오히려 그 말랑말랑함에 더 거부감이 들었던 적도 있다. 개인적으로 딱딱 끊어지는 문장들에 정이 안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친 묘사를 하거나 감상을 담는 것은 내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나는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보다도 이 책에서의 이동진 스타일이 더 좋았다. '시네마기행', '낯선 거리에서 영화를 만나다', '필름 속을 걷다', '~어렴풋이 꿈을 꾸다'에서 책 제목만 보아도 시간의 변화에 따라 감성적인 면이 강조된다고 볼 수 있는데, '어렴풋이 꿈을 꾸다'는 그 제목이 너무 멜랑꼴리해서 책 읽기 전 약간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이 때의 사진들은 전문 사진기자가 당연히 동행해 촬영했고, 최근의 여행기는 이동진이 직접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이것또한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사진 때문만이라도 이 책이 나는 더 좋았던 것 같다. 작가 개인의 입장에서는 최근의 책이 더 애착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은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이니까. 그런데 그것이 나만의 감상이 아니라 모두의 감상이 되려면 지나치게 나의 감성을 강요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 사진가의 사진이 비록 정형화되어 있고 개성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여행지의 느낌을 가장 잘 전달해주고 책을 읽는 독자에게 사진 한 장만으로도 끌어당기는 힘이 크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뭐냐면, 여행기만 읽는 것으로는 절대 책을 완전히 감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을 열고 닫는 지점이 전부 영화이기 때문에, 소개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여행기가 재미있을 것이고, 그 영화를 본 적이 없다면 여행기가 지루할 것이다. 이동진이 소개했던 영화는 한 두 개만 빼고는 전부 재미있게 본 영화라서 그런지 여행기가 재미있었다. 특히 '베를린 천사의 시'의 베를린은 다른 책에서 잘 소개되지 않는 곳이라서 더 인상깊었다. '비포 선라이즈'의 오스트리아 빈을 읽으면서는 가지고 있던 'before sunrise&before sunset' 시나리오 집에 이동진이 언급한 부분을 밑줄을 치기도 했다. 절판된 게 여러모로 아쉬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