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는 연인들을 위한 초콜릿
케이 알렌보 지음, 이나경 옮김 / 홍익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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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시 열 살이 되기

내가 만약 열 살 소녀의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모든 일들은 가장 좋은 쪽으로 개선될 텐데. 진심으로 다시 어린아이가 되기를 갈망하면서, 나는 그 날 하루 동안은 다시 열 살짜리 소녀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몇 가지 기본적인 규칙들을 정했다. 무슨 물건을 사더라도 지폐로 계산하지 않기, 누구와 만날 약속도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기.

그때부터 나는 내 마음의 어린 부분을 내 일상생활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기술을 배웠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매직펜으로 무지개를 그리고, 만화를 읽는다. 때때로 담요로 만든 텐트 안에 들어가 달콤한 잠에 빠지기도 한다.

 

운명의 바로 그 버스

“한 번도 신기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 때 플린트에서 좀 더 일찍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도 있었고, 좀 더 늦게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도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버스를 탔잖아.”

운명이란 그렇게 오묘한 것이다. 나는 그 앞의 버스도, 혹은 그 뒤에 도착한 버스도 타게 돼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를 만나게 된 내 삶은 하늘에서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난 오로지 바로 그 버스를 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절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꽃처럼

“어떤 사람은 내가 쓴 시를 의심했던 선생님처럼 처음부터 축복과도 같은 존재이기도 하단다. 감추어진 축복이지. 너희들에게 도전해오는, 그리고 가끔은 굉장히 불친절하게 도전해오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절대 놓치지 않도록 하거라. 그의 도전을 한 번 이겨낼 때마다, 너희들의 인생은 바뀌게 되는 것이란다.”

“자존심을 지키면서 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러기 위해서 싸워야 하고, 뛰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이라는 축복을 소중히 여기도록 하거라.”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

이같이 평범한 교훈을 배우는 과정은 너무 힘들었지만, 이때 얻은 것들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인기란 극히 피상적인 관념일 뿐이다. 일단 내가 ‘이거면 됐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신경 쓰는 건 정말이지 쓸데없는 짓이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또 나 자신을 믿는다면, 나는 이미 성공한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

그때 내게 상처를 입혔던 사람들을 아직도 증오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상처를 받으면서, 내가 많이 성장했음은 분명히 알고 있다.

하나하나 성취해 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증오의 다른 일면이 수용임을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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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기욤 아레토스 그림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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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단지 원수의 화를 돋우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들은 오히려 자국인 프랑스보다도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인기가 있다고 한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책 제목이 흥미를 끌어 언젠가 꼭 읽어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어쩔 수 없는 게으름 때문에 이제야 읽게 되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구판은 절판되고 개정판이 나왔단다. 생각보다 꽤 오래된 책이구나 하며 읽었는데도 안에 담긴 내용은 전혀 구식이 아니다. 아마도 상대적이면서 동시에 절대적이기 때문에 10년이 넘어서도 고루한 책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지금쯤 접하게 된 것이 다행이다. 예전에 읽었더라면 이 책의 내용을 좇아가는데 급급했을 것 같은데 지식과 경험이 쌓인 지금은 여유 있게 이 백과사전의 ‘상대적’인 부분에 집중하여 읽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검열은 여전히 존재하는가?’ 항목에서는 과거에는 검열 때문에 정보가 소수에게만 집중되고 대중에게 차단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검열이 사라진 요즘은 오히려 정보의 과잉으로 인해 범람하는 정보 중 일부만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진보나 도전은 나타날 수 없고 기성에 묻혀 버린다. 검열을 없앰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검열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잘 알고 있던 상식(절대적)을 뒤집어서 그 이면(상대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뼈대에 대한 이야기도 이와 유사하다. 뼈대가 안쪽에 있으면 살은 수없이 상처를 입고 회복되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을 통해 근육이 단단해지고 섬유의 저항력이 증가한다. 살이 진화하는 것이다. 반면에 뼈대가 겉에 있으면 외부의 위험에 쉽사리 다치지는 않는다. 대신 일단 외부 위험에 노출되면 피해는 치명적이다. 안쪽에 있는 살이 그동안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면서 물렁물렁해졌기 때문이다. <출중한 지력>이라는 갑각을 뒤집어쓰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견고해보이지만 일단 상반된 견해가 그들의 껍질을 뚫었을 때, 그 타격은 말할 필요가 없다. 반면 아주 사소한 이견, 사소한 부조화에도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비록 모든 것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더라도 정신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어떤 공격에서도 배우는 것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정말 독창적이면서도 많은 예민한 이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부분이다.




광기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우리 모두는 매일 조금씩 미쳐가고 있으며 그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란다. 특히 작가는 편집증과 정신분열에 사로잡혀 있음을 느끼는데 그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삶을 끌어올리려고 한다는 말. 멋지다.




인간의 사고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각도에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작가의 관점도 놀랍도록 새롭다. 이 말이 요즘이 아니라 10년도 더 전에 나왔다고 생각하니 작가의 역량일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와 한국의 차이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모기의 숨은 곳을 점점 알아내기가 어려워진다는 관찰을 통해 단 몇 년 만에 모기의 변이가 일어났다고 추론하는 것이나 박테리아에 관한 이야기, 가장 평범한 것이 오히려 비범한 것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렘수면의 경우, 방해받을 때마다 꿈의 내용은 전부 달라졌지만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며 아마도 방해받은 뇌가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되풀이 하는 것 같다는 연구내용도 재미있다. 멕시코 원주민을 위해 끝까지 싸운 스페인 사람 구에레로의 이야기나 십자군 전쟁의 이면도 흥미 있었다. TV 프로인 '서프라이즈'를 보는 느낌?




그 밖에도 수없이 많다. 처음 엄마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생후 8개월쯤이 최초로 사람이 겪는 불안이라는 것. 이방인에 대한 공포, 소중한 존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 고독에 대한 두려움 등이 전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도 재미있다. 자연은 다윈의 말처럼 좋은 것이 지배하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도.(좋고 나쁜 것의 기준도 애매할뿐더러 자연의 힘은 다양성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잉크가 물에 번지는 현상으로 파동을 설명하면서, 사물의 세계에서는 두 개의 파동이 만날 때 빚어지는 다양한 모습이 고정되지 않고 곧 섞여 버리지만, 생명의 세계에서는 그 만남이 고착화될 수도 기억 속에 머물 수도 있다는 대목은 작가의 과학적 지식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통해 설명한 여러 개의 현실은 얼마 전에 읽은 ‘다시 한번 리플레이’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했다. 호르몬과 페로몬에 대한 비교, 페로몬을 통해 개미는 인간과 다르게 동일한 감정을 똑같은 정도로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인간의 공감이라는 것은 결국 이성에서 나올 뿐 이라는 부분도 곰곰이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끝없는 상상력으로 독자를 늘 감탄시키는 그의 원천이 여기서 나오나보다. 잡식성으로 여러 정보를 얻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하여 뒤집어보는 그의 창조적 습관. 군데군데 다소 황당하거나 개미에 대한 그의 지나칠 정도로 넘치는 애정이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책 구절구절 마음에 드는 모든 구절을 옮기려면 거의 책의 절반을 써야 할 것 같다.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




수피즘 철학에서 함께 있기란, 벗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런 말도, 행위도 없이 그저 함께 앉아 있는 것이다. 서로를 바라보아도 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마음 쓰거나 떠벌릴 필요 없이 그저 함께 있음을 말없이 즐기는 것이 행복을 얻는 방법 중 으뜸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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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버스
존 고든 지음, 유영만.이수경 옮김 / 쌤앤파커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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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들이 서점을 점령했던 적이 있었다. 특히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에는 (전적으로 내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열풍이 절정에 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는 물론이고, 신간 코너까지 휩쓸었다기보다는 차라리 넘쳐흘렀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자기계발서의 유형도 점점 세분화되어서 그 유명한 ‘마시멜로 이야기’를 필두로 한 우화 형식의 자기계발서, 예수나 정조 등 역사 속 인물을 현대적 관점으로 조명한 자기계발서들이 쏟아졌고, 이번엔 대상 독자를 쪼개서 여성을 위한 자기계발서, 10대를 위한 자기계발서, 샐러리맨을 위한 자기계발서, 팀장을 위한 자기계발서, 초등학생을 위한 자기계발서... 각종 자기계발서가 범람하다 이제는 자제된 듯한 분위기다. 아무튼 그 때는 유명한 자기계발서의 문장 하나쯤은 전부 대학생들 미니홈피에 있었고 베스트셀러가 된 자기계발서는 다시 다듬어져 ‘초딩’마저도 읽을 수 있게 그림책이나 만화책 버전으로 나오기도 했다. 결국 그 많은 자기계발서의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고, 문제는 책을 읽기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도 실천하지 않는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일부 독자들부터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면서 마치 광풍과도 같았던 바람은 순식간에 가라앉은 것 같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라 한때 자기계발서 중독증에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흠뻑 심취해서 읽었었고, 그 중 몇 권은 뿌듯해하면서 샀고, 감명 깊은 문장은 블로그에 옮겨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은 어떤 자기계발서를 봐도 다소 냉소적인 면이 없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렇게 읽어댔는데도 정작 ‘나’라는 사람은 크게 바뀐 게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좀 씁쓸해서 그랬나보다.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고, 보관함에 보관해서 한 번씩 볼 때마다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막상 읽어보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설 연휴에 세배도 차례도 다 끝내고, 할 일이 없어진 친척집에서 올림픽 중계를 보다가 중간 중간 짬이 날 때 읽었는데, 아마도 이런 이유들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이 책을 앞으로도 읽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에너지 버스’가 나왔을 때는 한참 자기계발서들이 쏟아질 때였다. 비슷비슷한 내용, 식상한 전개 등 고만고만하게 느껴지는 책들 사이에서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로 남고 후속까지 나왔다면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내용을 깔끔하게 다듬고 보기 좋게 정리해 실용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이런 책들은 다 읽고 나서 ‘또 속았다’가 아닌 ‘나쁘지 않다’라는 느낌만 주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에너지 버스’는 후하게 채점한다면 B+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또 한 번 더 속는다고 하더라도 그 속은 것 때문에 책을 읽은 후 단 며칠만이라도 정말 ‘에너지’가 넘치게 생활할 수 있다면, 속은 게 크게 대수일까 하는 너그러운 마음도 생기게 된다.




사람들이 왜 골프에 빠지는지 아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프를 치고 난 후,

형편없었거나 실수를 했던 샷은 잊어버립니다.

대신 그 날 멋지게 날렸던 한 방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 그 순간의 짜릿하고 강렬한 느낌 덕분에

또 다시 골프장을 찾게 되고 서서히 골프에 중독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그날 일어났던 안 좋은 일이나 잘못한 것들을 곱씹으며 잠자리에 든다 해도,

당신은 전혀 다른 걸 기억하며 잠을 청하십시오.

그날 있었던 가장 즐거운 일, 유쾌한 전화통화, 회의에서 멋지게 발표했던 순간,

고객의 사인을 받아낼 때의 그 쾌감,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었던 한 마디의 대화….

그 멋진 성공의 기억이 내일도 더 멋진 성공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인생에 중독됩니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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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세트 - 전10권 삼국지 (민음사)
나관중 지음, 이문열 엮음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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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도원에 피는 의(義)

 

 

2권. 구름처럼 이는 영웅

 

<데운 술이 식기 전에>

그래도 여전히 원소는 허락하려 들지 않았다. 조조와 원소의 차이점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조조가 능력만 있으면 출신이나 경력이나 세상의 평판 따위는 무시하고 사람을 쓴 것에 비해 원소는 그렇지가 못했다. 원소는 언제나 인간 그 자체보다도 가문이나 직위, 경력 따위 등 그에게 부가된 사회나 제도의 인정을 중시했다.하지만 그런 것들에 의지해 사람을 판단하고 쓰는 일은 평화로운 시대를 유지하는 데는 몰라도 어지러운 시대에 대처해 나가는 데는 힘이 되기 어렵다. 평화로운 시대는 종종 굳은 사회, 멈추어진 사회와 같은 뜻이어서 기존의 지식과 공식으로도 그럭저럭 풀어갈 수 있다. 그러나 움직이는 사회, 변화하는 사회와 일치하기도 하는 난세(亂世)에는 그 굳어버린 지식과 시효가 지나가버린 공식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어쩌면 뒷날 조조와 원소의 다툼에서 승패를 결정한 것들 가운데 중요한 것은 그런 두 사람의 차이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낙양에는 이르렀건만>

수레를 멈추고 묻는 동탁의 어조에는 이미 역정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자기 생각에 젖어 남의 기분을 헤아리지 못하는 게 또한 재주 있고 학식 많은 이들의 단점이다. 오경과 주비도 그와 같아서 동탁의 마음속은 헤아려보지도 않고 제 생각만 드러내기에 바빴다.

 

<어제의 동지, 오늘의 적>

사회의 밑바닥에서부터 혼자 힘으로 성취를 거듭해 온 사람에게는 명문의 귀공자라면 무턱대고 깔보는 경향이 있다. 공손찬이 바로 그런 경우로 한미한 집안에서 나, 오직 재주와 담력만으로 제후의 열(列)에 오른 그에게는 원소가 한낱 물정 모르는 어린애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유비는 원소의 여러 성격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숨어 있는 힘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나이도 세력도 벼슬도 다른 제후들보다 나은 것 없는 원소가 지난번 기의(起義)에서 아무 반대 없이 맹주로 추대된 일이며, 한복(韓馥)이 갖다 바치듯 기주를 원소에게 넘겨준 것 따위가 바로 그 숨겨진 힘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었다. 유비에게는 오히려 공손찬이야말로 전력(全力)을 다해야만 간신히 원소로부터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중략...참으로 묘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어떤 사람과는 매일 얼굴을 맞대고 지내도 언제나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처음 만나도 오래전부터 다정하게 지내온 사이처럼 친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조운을 처음 보는 유비의 마음이 그랬다. 분명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얼굴이건만 넓은 얼굴과 서글서글한 눈매는 아직 스물이 못 찬 나이와 아울러 오랜만에 헤어져 있던 친아우를 대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을 주었다. 공손찬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그의 무예나, 한눈에 날래고 힘깨나 씀을 알아볼 수 있는 늠름한 체격에서 느껴지는 훌륭한 장수감으로서의 욕심은 다음의 일이었다.

 

<천하를 위해 내던진 미색(美色)>

공포정치가 계속되기 어렵다는 것은 인간의 감각이 가진 마비란 특성 때문이다. 다른 감각과 마찬가지로 공포감도 거듭되면 마비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공포를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쪽은 거듭될수록 보다 강력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걸 개발해야 하는데, 그것은 다만 보다 잔혹해지고 야만스러워지는 길뿐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이미 공포감이 마비된 이들에게는 효과도 없이 이용하는 쪽만 광란적인 가학 심리로 몰아넣어, 적대 세력에겐 한층 설득력 있는 대의명분을 무기로 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는 데 공포 정치의 한계가 있다.

공포 정치의 결말이 위험스럽다는 것은 언제나 공포 정치가 비극적으로 끝난다는 데 있다. 정당한 승계가 아닌 권력의 상실은 대개 비극적이긴 하지만 공포 정치의 종말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 사용한 잔혹하고 야만적인 수단에 의해 무대에서 굴러 떨어지기 때문이다. 역사에서는 아주 희귀한 예로 비극적인 결말을 모면한 경우가 있지만, 그 행운이란 것도 결국은 죽음이란 자연의 비극적 결말이 적대 세력이나 더 참을 수 없게 격분한 민중들의 동해(同害) 보복을 앞당겨 대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큰 도적은 죽었으나>

평소 아랫사람의 실수에 관대하던 동탁이었다면 여포도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전에 이미 작은 실수로 자기에게 창까지 던진 동탁이라 여포로서는 용서를 기대하기 어려웠으리라. 거기다가 정적(情敵)으로서의 미움까지 겹쳐 마침내 여포는 극단적인 배반으로 나가게 된 듯하다....중략...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되는 것은 사사로운 이익으로만 뭉친 무리의 특징이다. 동탁과 이유가 각기 그 아랫사람들의 배반으로 비참한 최후를 마친 것은 이미 보았거니와 호적아의 일은 더욱 한심한 배반의 연쇄로 이어졌다. 먼저 우보가 이각을 배반했으며 다시 호적아가 그 우보를 배반했으며 이제는 그 졸개들이 또 그 호적아를 배반한 것이다. 대저 무리를 이룸에 반드시 대의(大義)가 필요한 까닭이 이에 있다....중략...왕윤이 더욱 소리 높여 이각과 곽사를 꾸짖어 죽음을 재촉했다. 이에 이각과 곽사는 왕윤을 누각 아래로 끌어내 죽이고, 사람을 보내 그 가족까지 몰살시켰다. 일찍이 왕윤이 채옹을 죽일 때 마일제가 한 말이 그대로 들어맞은 것이었다. 비록 정의일지라도 지나치게 독선에 흐르면 화가 따른다는 이치를 마일제는 이미 헤아리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연못을 떠나 대해(大海)로>

생각하면 공손찬은 유비란 용이 자란 연못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연못은 다 커버린 유비에게는 너무 좁았다. 그가 구만리 창천으로 솟구치기 위해서는 몸과 뜻을 더 키울 보다 깊고 넓은 바다가 필요했다. 그 바다로 가기 위해 유비는 먼저 공손찬이란 연못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소패는 물론 서주조차 그 같은 바다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곳이 그 바다로 가는 한 물줄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3권. 헝클어진 천하

 

<풍운(風雲)은 다시 서주(徐州)로>

「비록 계교일지라도 왕명(王命)으로 내려온 이상 어길 수가 없소이다.」유비가 엄숙하게 대답했다. 한조(漢朝)에 대한 충성심을 잘 드러낸 말이기도 하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그 또한 훌륭한 계교이기도 했다. 동탁의 무리는 물론 조조까지 이미 야심을 드러내고 함부로 왕명을 비는 이상, 진정으로 한실(漢室)을 떠받드는 인물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고 백성들의 사랑도 한층 많이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공(前功)은 호색(好色)에 씻겨가고>

하지만 그 일의 해석은 비정과 이기에서만 구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일세의 영웅 조조를 지나치게 비하시킨 감이 있다. 첫째로 아들을 사지(死地)에 버려둔 채 뒤 한번 돌아보지 않은 것은 비정이 아니라 눈부신 냉철함일 수도 있다. 조조가 살아가면 원수라도 갚을 수 있지만 조앙이 살아가면 원수는커녕 제 한 몸도 보존하기 어렵게 된다. 조조가 없는 패잔병들로는 장수의 끈질긴 추격을 끝내 벗어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뒷날의 행적으로 보아 그걸 헤아리지 못할 조조는 결코 아니었다.이기로 해석되는 부분도 실로 영웅에게나 가능한 매서운 결단으로 볼 수 있다. 그 경우 아들을 대신해 죽는 것은 세상의 범부(凡夫)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인정에 끌리지 않고 자기 목숨의 무게와 아들의 목숨이 가진 무게를 냉정히 헤아려 결단하는 것은 범부로서는 오히려 어려운 일이다. 조조는 그때 이미 사사로운 아비뿐이 아니었다. 가깝게는 흩어져 장수의 군사들에게 개 몰리듯 하고 있는 장졸들을 수습해 그들을 각자의 아비에게로 살려 돌려보내야 할 주장(主將)이었고, 멀게는 제세안민(濟世安民)의 뜻을 펼쳐야 할 영웅이었다. ...중략...「지금 적병이 뒤따라오고 있어 언제 여기를 덮칠지 모르는 일이오. 먼저 준비부터 하지 않으면 어떻게 적을 막을 수 있겠소? 승상께서 나를 그릇 생각하고 계신다 할지라도 그걸 밝혀 바로잡는 것은 작은 일이요, 적을 몰아내는 것은 큰 일이니, 작은 일은 먼저 큰 일부터 해놓은 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오.」

 

<천자(天子)의 꿈은 수춘성(壽春城)의 잿더미로>

이때 허도로 돌아와 있던 조조는 새삼 전위(典韋)에 대한 추모의 정이 이는지 그를 기려 크게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그의 어린 아들 전만(典滿)을 중랑(中郞)으로 삼고 자기의 부중(府中)으로 거두어들여 길렀다. 제사에는 정성을 다하고 그 아들을 거둠에는 인정을 다하니 장수들은 다시 한 번 감복하여 조조를 위해 죽는 일을 마음속으로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자기를 따르는 군사들의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 뒷날 법령의 형태로까지 나타나는 전몰자(戰歿者) 원호정책(援護政策)의 시작인 셈이었다....중략...원술의 실수란 비슷한 시기에 너무도 많은 적을 만든 일이었다. 충분히 자기 사람으로 잡아둘 수 있던 손책을 잃은 것으로부터 원래 공손찬과 함께 자기편이었던 유비를 적으로 삼은 데다 다시 여포와 원수가 되고 이번에는 조조까지 건드리고 말았다.물론 난세에 있어서는 친함과 멀어짐이며 모이고 흩어짐이 한가지로 무상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원칙은 있다. 마지막 둘이 남을 때까지는 적보다 친구가 많아야 한다는 것과, 강한 적 하나보다는 약한 적 여럿이 더 무섭다는 것이다. 그런데 원술은 그걸 어기고 말았다. 세력이 커지면서 생긴 오만과 섣부른 칭제(稱帝)가 가져온 화였다....중략...만약 이 일을 계략으로 본다면 실로 간·흉·계·독(奸凶計毒)이 다 포함된 무서운 계략이었다. 유비는 그 둘을 죽임으로써 조조의 환심을 사는 한편, 그대로 두면 여포의 힘을 더할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그 졸개를 거두어 자기의 힘에 보탰다. 거기다가 살해의 방식도 자기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악용한 비열한 암살(暗殺)이었다. 유일하게 유비를 변호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들 둘이 백성들을 약탈한 일이었지만, 그것도 당시로서는 반드시 죽을죄가 아니었다.그런데도 이상한 일은 한결같이 유비의 그 같은 행동을 의롭게 해석하고 믿는 것이었다. 평소의 그를 둘러싸고 있는 크고 환한 품격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조조도 그랬다. 마음 한구석에는 석연치 못한 데도 있었으나 그를 사로잡는 것은 유비를 믿고 싶은 기분이었다....중략...일반으로 조조의 간교함과 표독스러움을 말할 때 먼저 손꼽는 게 전에 여백사(呂伯奢)의 가족을 몰살한 일과 창관(倉官) 왕후(王垕)를 죽인 일을 든다. 자신의 안전이나 이득을 위해 죄 없는 사람을 죽였다는 것, 그것도 특히 자기편을 죽였다는 데서 온 섬뜩함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에는 전쟁보다 더한 게 없고, 권력 추구의 길이란 자기편을 희생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는 법이다. 뒷사람이야 이러니저러니 말을 달리해도, 권력 추구를 위한 전쟁에 나선 사람이라면 그 본질에 있어서 조조와 다를 바 무엇이겠는가. 어떤 때는 거창한 대의(大義)로 가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실 자체를 말살시키거나 거꾸로 미화하여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조조처럼 번득이는 임기응변의 재능이 있고 그때같이 필요에 쫒길 때 과연 그 같은 수단을 쓰지 않을 동양적 영웅이 몇이나 되겠는가.만약 있었다면 그런 계책이 떠오르지 않아서였고, 떠올라도 자신을 억눌러 쓰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도 잘못되어 권력 추구의 길에 들어선 성자(聖者)거나, 그 한순간의 감상(感傷) 때문에 몰락해 버렸을 범부(凡夫)일 것이다. 요컨대 간교함과 표독스러움이 있었다면 권력 추구의 길 자체에 있고, 굳이 조조를 비난하려 든다면 그 같은 방도 외에 다른 방도가 또 있었을 때에 한해서이다. 대저 영웅이란 간교함[奸]과 흉포함[凶]과 꾀많음[計]과 표독스러움[毒]을 다 품어야 한다던가....중략...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는 것은 죽은 왕후(王后)를 잊지 않는 조조의 마음이다. 그 앞으로도 그 뒤로도 조조가 항장(降將)을 남김없이 죽이거나 빼앗은 성을 그처럼 철저하게 파괴하고 약탈한 적은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틀림없이 죄 없는 부하를 죽이지 않으면 안되도록까지 자기를 몰아간 그들 네 장수의 저항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미움 탓이었으리라.

 

<스스로 머리칼을 벰도 헛되이>

십만의 용맹한 장졸 마음 또한 십만일세. 한 사람의 호령으로는 다스리기 어려우나 칼 뽑아 머리칼 베어 그 목을 대신하니 보게나, 조조의 이 간드러진 속임수를.

어떤 머리 빈 서생이 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오히려 심한 것은 그의 비뚤어진 눈이다. 실로 얼마나 절묘한 조조의 용인술(用人術)이며 군중 통제의 극치인가. 그런데도 기껏 그걸 속임수로만 보았다면 그 같은 안목의 서생이 보낸 삶이란 뻔하다. 일생을 초야에 묻혀서도 제 한 몸 추스르기조차 힘겨웠을 것이다....중략...뒷날 조조가 쓴 계략의 요체를 허허실실(虛虛實實)로 보는 사람이 많다. 만약 그들이 옳게 본 것이라면 이번에도 조조는 멋진 허허실실의 계략을 펴고 있는 셈이었다. 얼른 보아서는 지나치게 감상적인 행동 같지만, 조조는 그곳에서 잃은 장수와 조카와 자식과 생전에는 이름조차 몰랐던 군사들이며 죽은 말까지도 마음껏 슬퍼하는 동안 한편으로는 놀라운 사기앙양의 계책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조조의 장졸들은 머릿수는 많아도 한결같이 패전으로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조조가 새삼 일 년 전에 죽은 장수와 무명사졸(無名士卒)들에게 애절한 정성을 바침으로써 은연중에 감사(敢死)의 분위기를 부추겼고, 또 그들 모두를 죽인 게 장수의 군사들이었음을 일깨움으로써 적에 대한 두려움을 적개심과 복수감으로 바꾸게 했다.

 

<꿈은 다시 전진(戰塵) 속에 흩어지고>

보통 아내를 삶아 바친 유안의 일은 옛사람의 과장이거나 속임수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대수롭지 않은 음식물을 유비에게 바친 걸 극도로 미화(美化)한 것이거나, 아니면 원래 미워하던 아내를 유비 핑계로 살해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과장이나 속임수가 아니라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지금에조차도 행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이 대의(大義)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이 아끼는 것일수록 더 귀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그 시절의 대의는 그것이 충(忠)의 일종이건, 아니면 단순히 어떤 위대한 인간에 대한 흠모이건, 어쨌든 한 사람을 섬기면 그를 위해 모든 걸 바치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아내란 가축이나 소유물처럼 여겨지고 또 식인(食人)의 예(例)조차 그리 희귀하지 않던 전란의 시대였던 만큼 그런 일이 반드시 없었던 것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대의의 내용은 달라졌지만,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서 아내나 자식들을 죽음보다 고통스런 처지에 빠뜨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가까운 예를 들어, 자유 또는 평등의 대의에 몸 바친 사람의 경우에도 적의 손에 떨어진 그의 처자가 겪어야 할 고통은 종종 순간적인 죽음 뒤에 그 시체의 허벅지살 몇 근이 도려진 유안의 아내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다.

 

<가련하다 백문루(白門樓)의 주종(主從)>

부드러움과 너그러움과 의의 사람으로 불리는 유비에게는 조조에게 여포를 죽이도록 충동한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사람들이 오히려 유비를 두둔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여포의 반복 무쌍함과 표리부동 때문이리라. 하지만 어떤 때는 음험하다고 느껴질 만큼 깊은 유비의 심지를 감안할 때 반드시 그것이 천하 사람과 함께 하는 공분(公憤)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유비가 두려웠던 것은 여포의 사람됨이 아니라 조조의 사람됨일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해, 여포가 살아나 조조를 배신하고 자립(自立)함으로써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게 두려운 일이 아니라 끝내 조조의 치밀한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그 용맹으로 조조의 무서운 어금니나 발톱 노릇을 하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비가 조조의 사람됨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는 허도로 돌아간 뒤의 행동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급한 불길은 잡았으나>

어떤 종류의 감상적인 인간에게는 그 같은 조조에게서 비정(非情) 이상의 섬뜩한 계산을 느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아들 앙(昻)과 조카 안민(安民),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맹스럽고 충직한 전위(典韋)를 죽게 한 장수(張繡)였다. 육수(淯水) 가와 남양성(南陽城) 아래서 두 번이나 자신을 패주시키고 몇 번이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었던 그를 조조는 기꺼이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벼슬까지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 현실의 냉혹함과 당시의 천하 형세를 고려한다면 오히려 돋보이는 것은 조조의 정신적인 크기이다.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여 큰일을 그르친 일은 예와 이제를 통해 얼마나 자주 보는 정치적 실패의 예(例)인가. 그런데 조조는 그런 감정을 절제함으로써 두 가지의 큰 이득을 얻고 있다. 하나는 원소와의 싸움에서 부족한 자신의 힘을 보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크고 작은 적들에게 자신의 관용과 아량을 효과적으로 선전한 일이었다. 사랑하는 혈육과 아끼는 부하를 죽이고 자신의 목숨까지 노렸던 장수도 그토록 쉽게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조조를 보고 누구든 궁지에 빠지기만 하면 항복을 생각할 것은 뻔했고 실제로도 조조는 그 뒤 군웅(群雄)들 가운데서 많은 항복을 받아낸 사람이 되었다....중략...뒤에도 거듭되듯 재사(才士), 특히 빼어난 문사(文士)에 대한 조조의 비정과 냉혹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 자신은 거기에 관해 말한 적은 없으나 그 같은 이상심리(異常心理)의 바탕을 헤아려볼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중략...조조는 평생을 싸움터를 누볐으나 한번 창을 기대놓고 붓을 잡으면 호연한 기백과 높은 품격의 시들을 쏟아냈다. 그러니만큼 글에 대한 조조의 자부심 또한 대단했을 것이고 또 대개는 무장(武將)들과 병략가(兵略家)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그라 그 자부심은 실제 이상으로 자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따금씩 나타나 그의 문학적 자부심을 건드리는 부류가 바로 재사, 특히 문사들이었다. 세상에서 사람을 상처 입게 만드는 일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음험하고 치열한 원한을 품게 하는 것은 문학적인 인간의 글에 대한 자부심을 건드리는 일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만약 작가나 시인에게 사람을 마음대로 죽일 권한이 있다면 평론가, 특히 엄격한 평론가나 작가의 문학적 자부심에 상처를 입힐 만한 천재는 종종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리라. 그 다음 조조가 예형을 죽게 한 또 하나의 감정적 배경이 될 수 있는 것은 정치의 독기이다. 조조의 일생은 그대로 정치적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정치적 투쟁은 철두철미하게 힘의 원리에 지배되고 승리는 통상으로 상대를 제거하는 형태로 확인되었다. 그런 원리와 형식에 익숙해 온 조조가 은연중에 글의 무력함에 대한 경멸과 문학적 도전에 대한 정치적 대응의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고 해서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즉 조금이라도 자기의 문학적 자부심을 건드리는 일이 있으면 서슴없이 정적(政敵)처럼 제거해버렸는데 그 같은 예는 예형뿐만 아니라 뒷날에도 몇 번이고 거듭 볼 수 있다. 역시 건안칠자의 하나였던 공융을 죽인 일이나 천하의 재사 양수(楊修)를 죽인 일도 같은 예가 될 것이다. 여기에 비해 서둘러 허망한 죽음으로 줄달음쳐 간 예형의 내면도 음미해 볼 만하다. 좋게 해석하면 그의 죽음은 지성인의 결백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그때까지 학문과 이상의 고고한 세계에 있다가 갑작스레 정치 무대로 끌려나온 그에게는 조조를 비롯한 당시의 관료 사회가 보인 적의와 냉대가 견딜 수 없이 치욕적으로 느껴졌을 것이고 그들에 의해 주도되는 세상도 절망적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거의 정신적인 파탄이라고 할 만큼 외곬으로 죽음을 향해 달려간 그의 행위는 나약한 지성의 한계일 수도 있다. 그의 눈에는 조조와 그의 집단이 지닌 정의 없는 힘이 단순한 두려움이나 불안 이상의 전율이었으리라. 그리고 아울러 거기에 대처할 길 없는 지성의 나약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면서 그게 삶 전체에 대한 절망으로 번졌다고 이해해서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 요컨대 힘으로 맞설 자신이 없어지자 그대부터 그는 살아서 불의를 보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죽음의 길만 찾았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조조는 예형의 죽음마저 그대로 두지 않았다. 유표가 항복해 오지 않는 데다 어쨌든 자신이 사자로 보낸 예형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걸 핑계로 유표를 치려들었다. 미워해 죽게 만든 인간의 죽음마저 정치적 목표에 활용할 수 있는 게 또한 조조였다.

 

 

4권. 칼 한 자루 말 한 필로 천리를 닫다

 

<자옥한 전진(戰塵), 의기(義氣)를 가리우고>

여기서 또 한 번 볼 수 있는 것은 조조와 원소의 대비이다. 조조는 장수(張繡)에게 쫒길 때 아들의 말을 뺏어 타고 달아나 목숨을 건지고 뒷날을 기약했다. 그런데도 원소는 어린 아들의 병으로 마음이 흔들려 실로 얻기 힘든 기회를 놓쳐버리고 있는 것이다. 조조가 던져졌던 상황이 원소보다 더 극한적인 것이었고, 또 감상적인 이들에겐 원소의 그 같은 다감함이 훨씬 인간적으로 보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천하를 다투는 싸움터에 발을 들여놓은 한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입장에서 볼 때 원소의 그 같은 다감함은 치명적인 약점이 될 뿐이다....중략...관우에 대한 조조의 그 같은 믿음과 애정에 대해서는 몇 가지 상반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조조를 나쁜 쪽으로만 몰아가는 쪽은 그 또한 관우를 얻기 위한 계략과 술수의 측면으로 몰아갈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조조가 거기서 무릅써야 할 위험의 크기를 헤아린 쪽은 그 결정이 조조의 넓은 도량과 대담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 같은 결정 뒤에 숨은 조조의 내면 동기이다. 젊은 날의 때 묻지 않은 이상, 충성과 의리에 대한 티 없는 열정이 이미 그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냉혹한 투쟁의 현장에 던져진 그때까지도 조조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미욱하리만큼 그 이상과 열정에 매달려 있는 관우를 보자 그토록 앞뒤 없는 믿음과 애정으로 되살아난 것임에 틀림없었다. 조조의 인간적인 매력이 다시 한 번 찬연하게 빛을 뿜고 있는 대목이다.

 

<드높구나 춘추(春秋)의 향내여>

관우는 자부심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무예와 덕성은 물론 외모에 대해서도 자부심에 차 있었다. 자부심이란 종종 그것이 성실한 인격의 뒷받침이 있는 한 자기 상승의 원동력이 된다. 사실 관우를 한낱 떠도는 협객(俠客)에서 천하가 알아주는 충의지사(忠義之士)로 길러간 것은 바로 그런 자부심이 바탕된 자기 발전의 부단한 노력이었다. 하지만 또한 자부심은 종종 자신의 능력과 이상을 혼동시키기도 한다는 데서 그 소유자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기도 한다. 관우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생을 그 자부심 때문에 부침을 되풀이하는데 그날 그를 아득한 슬픔과 비관의 정조(情調)에서 끌어낸 것도 그 자부심이었다....중략...『연의(演義)』에서 가장 정채(精採)있는 부분은 종종 정사(正史)에 없거나 지은이가 꾸며낸 부분이 된다. 그런데 이 대목만은 정사에 일치하면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는 부분이다. 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는 조조의 정성을 다한 후대와 이미 손에 넣은 것이나 다름없는 부귀와 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무릎 꿇을 땅 한 치 없이 남의 식객(食客) 노릇이나 하고 있는 옛 주인을 찾아 관우는 멀고 험한 길을 떠나고 있다.뒷날 사람들은 흔히 관우를 그릴 때 등 뒤에 세우는 청룡도와 함께 손에 책 한 권을 들게 했다. 그 책은 바로 공자가 지어 난신과 적자들의 가슴을 서늘케 했다는 『춘추(春秋)』이다. 관우는 일생 그 책을 지니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되풀이 읽었다고 하는데 명분을 존중하고 대의를 앞세우는 그의 정신은 바로 거기서 길러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으로 그런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 지금 유비를 찾아 떠나는 이 대목이 된다. 진정 아름답고 드높은 춘추의 향내였다. 아니, 관우 그는 춘추를 일관하는 정신의 한 살아 숨 쉬는 화신(化身)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다시 이어진 도원(桃園)의 의(義)>

「무릇 남의 우두머리 된 자로서 지녀야 할 덕성 중에 가장 으뜸은 뜻을 하나로 정해 가벼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원본초는 뜻을 정하기에 더딜 뿐만 아니라 한번 정한 것도 변덕이 죽 끓듯 뒤바뀐다. 거기다가 이제는 그 변덕이 널리 알려져 남에게 이용되기까지 하니 그 끝을 보는 듯하다. 잠시나마 내가 곤궁한 몸을 의지했던 사람이니 실로 안됐구나!」...중략...그러나 어쨌든 조운이 원래 유비의 사람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금세 천하를 삼킬 듯한 기세를 보이는 주인을 마다하고 기껏해야 객장(客將)이거나 부장(副將)에 지나지 않는 유비를 마음의 주인으로 정하고 죽을 때까지 변함없는 충성으로 섬겼다. 조조가 갖은 공을 다 들이고도 끝내 관우를 제 사람으로 만들지 못했음에 비해 유비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조운을 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실로 무서운 느낌이 들 정도로 엄청난 유비의 사람을 끄는 힘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조조가 지혜에서도 병법에서도 세력에서도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 유비를 끝내 꺾지 못하고 죽은 강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아깝다, 강동의 손랑(孫朗)>

비록 그 이름은 전하지 않지만 평소 그들을 거두어준 허공에 대한 의리로 보면 실로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얼핏 보면 소의(小義)로 이해될 수도 있으나 때로 역사는 그들에 의해 바꾸어지기도 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가 그런 이들을 충신 명유(明儒)와 나란히 적은이래 중국의 거의 모든 기전체(紀傳體) 정사(正史)가 한결같이 협객열전(俠客列傳)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실로 그러한 까닭이리라.

 

<양웅(兩雄) 다시 관도(官渡)에서 맞붙다>

뒷날의 얘기지만 재주는 있어도 행실이 단정치 못한 곽가를 진군(陳群)이란 대신이 탄핵했을 때, 조조는 진군의 엄정함을 칭찬하면서도 곽가의 재주는 재주대로 아꼈다. 그런데도 원소는 청렴함이란 자[尺]로 허유의 재주(계략)까지 재고 있는 것이다. 물론 평화로운 시대라면 원소의 태도가 옳을 수도 있겠으나 불행히도 그들의 시대는 난세였고 그것도 베느냐 베이느냐의 전장이었다.

 

<하북(河北)을 적시는 겨울비>

「장합과 고람은 이미 여러 번 그 주인을 바꾼 적이 있습니다. 지금 그 두 사람이 항복해 왔다고는 하나 거짓인지 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그러자 조조가 웃으며 하후돈의 말을 받았다.「주인이 옳지 못하면 떠나는 것은 정한 이치다. 지난날 은(慇)나라가 포학하니 미자(微子)는 떠났고, 초(楚)가 강포하니 한신(韓信)은 한(漢)으로 돌아섰다. 내가 둘을 은혜로 대한다면 설령 딴마음을 품고 왔더라도 달라질 것이다.」...중략...조조는 원소가 버리고 간 금은보화며 비단으로 군사들에게 골고루 상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서책과 문서를 뒤질 때였다. 편지 한 묶음이 나왔는데 모두가 허도에 있는 대신들이나 자신의 부하 장수들이 원소와 몰래 주고받은 것이었다.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말했다.「모조리 이름을 밝혀내 죽여야 합니다. 이런 자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조조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원소의 세력이 강할 때는 나조차도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그랬을 진대 하물며 딴 사람들이겠느냐?」그러고는 명을 내려 묶음도 풀지 않은 채 모두 태워버리게 한 뒤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앞으로 이 일은 두 번 다시 입 밖에 내지 않도록 하라.」실로 우리는 조조의 일생 전체를 통해, 아니 이 이야기(『삼국지』) 전체를 통해 가장 광채 있는 부분 중의 하나를 보고 있다. 다만 승자의 관용으로 돌려버리기에는 너무도 휘황한 영웅정신의 광채이다....중략...원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천하를 차지할 인물로는 결함이 많은 사람이었으나 한편으로는 뛰어난 점도 많았다. 지난날 한낱 청년 장수로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만한 권세를 쥐고 있던 동탁에게 분연히 <천하는 동공(董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소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던 순간의 개결한 용기나 북방의 효웅 공손찬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절박한 처지에 떨어질 때마다 보여준 과단성 같은 것들은 참으로 볼만했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이긴 자의 편이다. 그는 끝내 진 자가 되었기에 결함은 더 크게 그려지고 장점은 빛 없이 묻혀버렸을 것이다.

 

<이제는 형주(荊州)로>

간혹 유비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 중에는 그가 끊임없이 친구와 적을 바꾸는 걸 들어 그 교활이나 변화무쌍함을 나무란다. 실제로도 그것이 꼭 주종(主從) 관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유비는 일생을 통해 적어도 대여섯 번은 의지했던 사람을 배반에 가까운 형식으로 버리고 있다. 그러나 또 하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구에게나 반갑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점이다. 여포가 겨우 주인을 두 번 바꾸고 표리부동한 사람으로 가는 곳마다 배척되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유비의 오고 감이 그와는 달랐으리라는 짐작은 가능하다. 다시 말해 조조나 원소, 여포등과 맺었던 관계는 떠나도 배신을 따질 수 없을 만큼의 어떤 동맹 관계거나, 아니면 유비가 떠나도 비난받을 쪽은 언제나 상대방이었다는 뜻이 아닐는지. 그리하여 새로 맞는 쪽으로 보면 그의 과거에 대한 꺼림칙한 감정보다는 오히려 그가 이끄는 집단의 유별난 결속력이 반가웠던 것은 아니었는지.

 

<마침내 하북도 조조의 품에>

「그대는 전에 격문을 쓰면서 나의 죄만 따질 것이지 어찌하여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까지 욕이 미치게 했는가?」조조가 짐짓 매서운 얼굴로 물었다. 진림이 태연하게 대답했다.「화살이 시위에 올려진 이상 날아가지 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말하자면 자신이나 자신의 글은 원소의 활시위에 얹힌 화살과 같은 것으로 원소가 조조를 향해 쏘면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었다. 한낱 글의 장인(匠人)으로서 화살을 만드는 장인이 화살을 대듯 글을 빌려주었다는 말도 되고, 자신의 처지가 바로 그 화살 같았다는 말도 되지만 어쨌든 재치 있으면서도 씁쓸한 대답이었다. 재치 있다는 것은 그러한 비유로 가볍게 자신의 책임을 벗어던진 까닭이요, 씁쓸하다는 것은 힘 앞에서 종종 자신의 진의(眞意)에 관계없이 글을 빌려주어야 하는 문사(文士)의 처지를 너무도 부끄럼 없이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중략...「나는 너와 너의 글을 이번에는 내 활 시위에 얹으려 한다. 원소를 위해 했던 것처럼 나를 위해서도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주겠느냐?」세상의 원한 중에서 얼른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무섭고 끈질긴 것 중의 하나는 글로 맺어진 원한이다. 그런 점에서는 놀랄 만한 조조의 아량이며, 한편으로는 비정하리만큼 현실적인 조조의 정치 감각이었다....중략...기주가 대강 안정되자 조조는 몸소 원소의 무덤을 찾아가 제사를 드린 후 두 번 절을 했다. 그리고 곡을 하는데 듣기에도 몹시 슬퍼서 내는 곡소리였다....중략...하지만 이 일에 대한 뒷사람의 해석은 대개 조조에게 이롭지 못하다. 기껏해야 간웅의 눈물이요, 더 나쁘게는 고양이 쥐 생각이라거나 아니면 이긴 자의 뒤틀린 거드름 정도로 여길 뿐이다. 아무리 『연의(演義)』의 저자들이 한 방향으로만 몰아댄 탓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치다. 엄밀한 의미에서 원소야말로 조조 일생의 가장 큰 적이었다. (중략) 한 적과 오래 싸우다 보면 쌓이는 미움 못지않게 정도 자란다. 거기다가 그들은 젊은 날부터의 친구였고 때로는 좋은 동맹군이었다. (중략) 따라서 조조가 원소를 위해 흘린 눈물은 어떤 면에서든 진실할 수도 있었다....중략...손톱에 박히는 가시는 알아도 염통에 쉬스는 줄은 모른다더니 원담이 바로 그랬다. 발 딛고 설 기주가 없어진 마당에도 분하고 미운 것은 다만 제자리를 뺏은 아우일 뿐이었다....중략...강이 얼어서는 군량을 운반할 길이 없는지라 조조는 그곳 백성들을 시켜 얼음을 깨고 군량 실은 배를 끌게 하라 영을 내렸다. 그러나 그 영(令)을 들은 백성들은 추운 겨울에 얼음을 깨고 배를 끄는 일이 싫어 모두 달아나버렸다.「달아난 놈들은 모두 잡아 목을 베어라!」성이 난 조조가 다시 그렇게 영을 내렸다. 잠시 몸을 피했다 돌아오면 될 줄 알았던 그곳 백성들은 그 소문을 듣자 더럭 겁이 났다. 모두 숨었던 곳에서 나와 조조의 영채로 몰려가서는 목숨을 빌었다.「만약 너희들을 죽이지 않으면 내 군령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를 모두 죽이면 이번에는 내가 너그럽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만다. 하는 수 없다. 너희는 지금 빨리 산 속 깊이 숨어 내 군사들에게 붙들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 다시 붙들려 올 때는 나도 너희들을 구해 줄 수 없다!」법가(法家)와 유가(儒家)의 원리를 교묘하게 배합한 조조의 멋진 처신이었다. 이에 백성들은 고단한 도망길에 들어서면서도 한결같이 조조의 너그러움에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높이 솟는 동작대(銅雀臺)>

간신히 역주(易州)로 돌아간 조조는 전에 그 싸움을 말렸던 조홍(曺洪) 등에게 무거운 상을 내리며 말했다.「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까지 나아가 요행 싸움에는 이겼다. 하지만 비록 싸움에는 이겼다 해도 이것은 하늘이 도와준 덕분이지 이치에 맞아 그리 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싸움을 앞서 말린 그대들이야 말로 내게 옳은 계책을 일러주었던 것이다. 이 상은 그 때문에 내리는 것이니 뒷날에도 내게 좋은 말로 이르는 걸 어렵게 여기지 말라.」실로 밝은 포상이었다.

 

 

5권. 세 번 천하를 돌아봄이여

 

<다시 다가오는 초야(草野)의 인맥(人脈)>

「명공께서 마음으로 미워하는 자에게 이 말을 주십시오. 그랬다가 이 말이 그 주인을 해친 뒤에 타신다면 명공께는 아무 일 없을 것입니다.」유비는 그 말을 듣자 적이 실망스러웠다. 남을 해치는 방법이 너무도 간교하고 비정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선복이 자신의 사람됨을 그 일로 떠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공이 내게로 와서 처음 가르치는 일이 정도(正道)가 못 되니 이 어쩐 일이오? 나에게 이롭게 하려고 남을 해치는 일을 하게 하려드니 이 비(備)로서는 차마 그 가르침을 받을 수 없구려.」유비는 짐짓 낯빛을 바꾸며 꾸짖듯 말했다. 그제야 선복이 웃으며 속을 털어놓았다.「사군께서 너그럽고 덕스럽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얼른 믿을 수가 없어 그런 말로 한번 시험해본 것뿐입니다. 아무쪼록 노여워하지 않으시기를 빕니다.」그러면서 속으로는 홀로 중얼거렸다.(당신의 그 같은 대답이 지혜에서 나왔다면 당신은 무서운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의 덕성에서 나왔다면 당신은 더욱 무서운 사람이다.)

 

<드디어 복룡(伏龍)의 자취에 닿다>

「아니된다. 다른 사람을 시켜 어머니를 죽이게 하고 그 아들을 쓴다는 것은 어질지 못한 것이다. 또 그를 붙들어 두는 것은 모자간의 도리를 끊는 짓이나 마찬가지로 의롭다 할 수 없다. 우리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질지 못하고 의롭지 못한 일을 할 수는 없다.」어떻게 보면 냉혹하고 비정한 정치의 장에서 윤리나 도덕을 앞세우는 것이 어리석은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은 그것대로 훌륭한 정치적 책략이 될 수도 있다. 유비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으니, 그 자리에서는 물론 뒷날 그 얘기를 전해들은 사람치고 유비의 인품에 감동하지 않은 이는 하나도 없었다.

 

<와룡선생(臥龍先生)>

「첫째로 그는 성취가 너무 더디네. 지금이 동탁의 시절만 돼도 그의 세력이 미약한 것이 이토록 한심스럽지는 않을 것이네. 그러나 20년이 지난 뒤도 아직 남의 식객 노릇이나 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일세.」...중략...「그러면서도 한사코 남의 밑에는 들지 않으려는 건 또 무언가?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네. 그리고 다음은 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어서도 일의 무겁고 가벼움과 급하고 급하지 않음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일세. 세상은 그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보고 있으나 실은 그가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일세. 관우․장비며 조운․손건․미축 등이 그를 받들고 있으나 이는 협객들의 의리와 인정이 아니면 인척의 정일 뿐 엄숙한 주종이나 군신(君臣)의 도리는 아닐세. 언제나 사사로운 의리와 인정에 얽매여 일의 큰 줄기를 못 살피는 게 그를 둘러싼 무리의 특징이지. 그리하여 사람의 유능함도 거기에 밀려나니 어떻게 인재를 얻을 수 있겠는가? 또 요행 인재를 얻는다 해도 어찌 그가 그 와중에서 자신의 슬기와 재주를 마음껏 펼쳐 볼 수 있겠는가?」...중략...「거기다가 유현덕은 아직 자신이 무엇 때문에 수고는 많아도 얻는 게 없는지를 모르고 있네. 다시 말해 아직도 자신을 위해 무예와 용맹이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 못지않게 머리를 써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더란 말일세. 언제나 있는 사람들끼리 머리를 맞추어 의논해 보고 거기 따라서 그때그때 일해 나가다가 되면 되고 안 되면 그만이라는 식이지. 지난번에 유현덕을 만났을 때 나는 한꺼번에 형주의 힘을 두 배로 키울 수 있는 방책을 일러주었으나 그는 내 이름조차 묻지 않았네.」

 

<삼고초려(三顧草廬)와 삼분천하(三分天下)의 계(計)>

아마도 그 하루의 일은 흔히 삼고초려(三顧草廬)라고 불리는 고사(故事)의 백미를 이루는 부분일 것이다.연의를 지은 이가 제갈량의 교우관계, 형제며 인척들을 교묘하게 끌어내어 극적으로 구성한 것일 테지만, 그리고 제갈량이 먼저 유비를 찾아갔다는 기록이 몇 군데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유비가 세 번 제갈량을 찾은 사실만은 거의 확실하다. 그리고 거기서 유비 특유의 대인(對人) 투자 방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드러난다.조조가 정확한 상벌과 능력에 따른 훈작에 의해 부리는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두려움을 아울러 느끼게 했던 것에 비해 유비는 끈끈한 인정과 몽롱한 충의에 호소하여 아랫사람들로부터 혈연에 버금가는 애정과 오랜 벗 같은 믿음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높이 이는 장강(長江)의 물결>

「경승은 나를 은의와 예절로 대해 왔습니다. 어찌 그 위태함을 틈타 이 땅을 뺏을 수 있겠습니까?」유비가 그렇게 대답했다. 약점인 동시에 장점이기도 한 그의 성격 그대로였다. 공명이 속으로 탄식하며 말했다.(참으로 너그럽고 의로운 주인이로구나!)그 때문에 자신이 헤쳐가야 할 어려움이 암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와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에서 우러난 중얼거림이었다.

 

<얻는 자와 사는 자>

(나는 가는 곳마다 백성들을 위해 제도를 고치고 세금을 덜었다. 무언가를 베풀려고 애쓰고 도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백성들은 고마워할지언정 나를 좋아하고 따르지는 않았다. 나는 그럼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사려(買) 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오랜 경험으로 결국 그러한 사고팔기에서 보다 큰 이득을 보는 것은 사려고 애쓰는 쪽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유비는 다르다. 나는 한 번도 그가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백성들에게 베풀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제도를 고쳐 백성들을 편하게 할 안목도, 세금을 줄여 그들의 짐을 덜어 줄 만한 재력도 없었다. 그가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껏 원래보다 더 나쁘게 만들지 않았다는 것 정도이다. 오히려 부양을 받고 도움을 입는 것은 언제나 그쪽이었다. 그러면서도 백성들은 그를 좋아하고 따른다. 그는 민심을 사는 게 아니라 얻고 있다.......나는 처음 그것이 그의 오랜 곤궁과 불운에 대한 백성들의 단순한 동정이거나 그가 의지하고 있는 한실(漢室)의 낡은 권위가 발하는 후광(後光)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사고팔았던 사람들의 사이는 거래가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나 주고받았던 사람들의 사이는 그 주고받음이 끝나도 이어지는 그 무엇이 있다. 나는 어떤 이득을 위해 백성들의 마음을 사려 했기 때문에 더 큰 이득에 내몰리면 그들을 팔아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애초에 이득을 사지 않았기에 이득으로 팔아버릴 수가 없다.내가 유비라면 처음부터 백성들을 데리고 떠나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그들이 굳이 따라오더라도 버리고 떠났을 것이다. 지금쯤은 강릉성에 들어 성벽을 높이고 녹각(鹿角)을 둘러 세워 다가오는 적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비는 코앞에 닥친 싸움에는 거추장스럽기만한 그들 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아직 길 위에서 늑장을 부리고 있다. 그는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강릉성을 얻고자 하고 있다.

물론 나도 그와 같은 치세(治世)의 원리가 있으며, 때로 그것은 내 자신이 믿는 원리보다 더 효과적임을 안다. 어쩌면 시절이 지금과 같지만 않았더라도 나 또한 그 원리를 따랐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난세다. 어지럽고 들떠 있는 백성들의 마음속에 성 하나를 얻는 것보다는 몇 만의 군사를 몰아 땅 위의 성 열 개를 얻는 게 훨씬 쉽다. 이제 나의 철기(鐵騎)가 태풍처럼 휘몰아 가면 그대가 백성들의 마음속에 쌓고 있는 성은 먼지가 되어 흩어져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유비, 새삼 그대가 두려워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빛나구나, 당양(當陽)벌의 조운(趙雲)과 장비(張飛)>

그러나 유비는 아두를 받자마자 땅에다 내던지며 소리쳤다.「이 보잘것없는 것아, 너 때문에 하마터면 훌륭한 장수 하나를 잃을 뻔하였구나!」어찌 보면 비정(非情)을 느낄 만큼이나 철저하고 몸에 배인 유비 특유의 아랫사람에 대한 아낌과 사랑이었다.

 

<와룡(臥龍)은 세치 혀로 강동(江東)을 일깨우고>

교묘한 말재주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강동에서 그리 알려지지 않은 보질의 자(字)까지 공명이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르긴 하되 공명은 아마도 그 자리에 나올 법한 사람들에 관해 미리 세밀하게 알아 두었음이 분명했다....중략...역시 실용(實用)과 임기응변에다 지조까지 내세워 눌러버리니 정덕추같은 서생(書生)이 어찌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밖에 다른 사람들도 공명의 말이 워낙 물 흐르듯 하니 모두 낯빛이 변할 정도로 놀라고 감탄했다....중략...「저 역시 그 일로 공명을 나무랐습니다. 그런데 공명은 오히려 주공께서 남의 헤아림을 받아들여줄 줄 모른다며 웃었습니다. 공명이 비록 조조를 깨뜨릴 계책을 지녔다 한들 어찌 그것을 가볍게 말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주공께서는 그 계책을 묻지 않으시니 이야기가 빗나가 그리 된 것입니다.」손권도 겉보기와는 달리 그 말을 금세 알아들었다. 성난 기색을 거두고 기쁜 빛까지 띠며 노숙의 말을 받았다.「원래 공명은 좋은 계책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나를 격동시켰구려. 그것도 모르고 나는 한때의 얕은 안목으로 그를 대했으니 하마터면 큰 일을 그르칠뻔하였소이다.」그러고는 곧 노숙을 내보내 공명을 다시 불러들이게 했다. 뒷날 수성(守成)의 명주(明主)로 알려지기에 족한 인물됨이었다.

 

 

6권. 불타는 적벽

 

<오가는 사항계(詐降計)로 전기(戰機)는 무르익고>

「도독께서는 잠시 말씀을 뒤로 미루십시오. 이 양(亮)도 한 계책을 생각해본 게 있으니 각자 자기의 계책을 손바닥 안에 쓴 뒤 한꺼번에 펴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의 계책이 같은지 같지 않은지를 먼저 알아본 뒤 의논을 해나가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공명은 이미 주유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짐작했으나 그걸 말해 다시 주유의 시기와 경계를 사게 되는 게 싫어 그렇게 말했다. 공명의 재주에 감복해 도움을 구하고는 있지만 아랫사람처럼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게 되는 게 떨떠름하던 주유는 그 말에 기꺼이 따랐다....중략...아무리 훌륭한 전략이라도 그때그때 살아 움직이는 상황과 정확하고도 적절하게 부합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승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때그때의 상황을 주도하여 전략이 그 최대의 효능을 드러내도록 이끌어가야 한다.

 

<서량(西涼)에 이는 회오리>

조조의 이 같은 처사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이미 곳곳에서 보여온 조조의 의(義)에 대한 태도이다. 그가 입은 혹독한 왜곡에도 불구하고, 의로운 인물이면 손해를 입어가면서까지 관대함을 베풀고 불의한 인물은 아무리 이익을 주어도 용서하지 않았던 조조의 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앞의 대표적인 예가 관운장에 대한 조조의 후대였다면 뒤의 예로 대표적인 것은 묘택의 일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제 조조의 치세가 완전히 안정되었다는 점이다. 세상이 어지럽고 형세가 불안정할 때는 남의 불의를 부추기는 한이 있더라고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즉 적에게는 얼마든지 배반을 권장하고 또 그렇게 하여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자는 상으로 격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이 안정되면 더욱 필요한 것은 법과 윤리가 된다. 조조가 묘택을 죽인 것은 더 이상 백성들의 불의를 권장해 가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와 안정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도 있다. 


 

7권. 가자 서촉으로

 

<발톱 잃고 쫓겨 가는 젊은 범>

「마음이 교만해지면 모든 일에 준비가 없게 마련, 나는 그 틈을 타 교묘한 이간책(離間策)을 쓰는 한편으로 우리 군사의 힘을 모아 두었다가 하루아침에 적을 쳐부순 것이다. 이는 바로 <빠른 우레는 귀를 가릴 틈도 없다()>라는 계책이다. 군사를 부리는 데에 있어서의 변화는 결코 하나뿐이 아님을 그대들도 언제나 잊지 마라.」

 

 

<서천(西川)은 절로 다가오고>

한 권력체계가 붕괴하기 시작하면 그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 조짐이 나타나게 마련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 체계를 지탱하고 있던 지식인 계층의 이반(離反)이다. 이른바 눈 푸른 학자들이 말하는 <지식인의 탈주> 또는 <충성의 전이(轉移)> 현상이 그것이다.

...중략...상대편이 감동되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그 편에서 스스로 바치게 만드는 것, 보기에 따라서는 음험한 계략 같기도 하지만 유비에게는 어쩌면 타고난 인품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서쪽으로 뻗는 왕기(王氣)>

「지금 물하고 불 사이처럼 나와 맞서고 있는 것은 조조요. 조조는 성급한데 나는 너그럽고, 조조는 거친 힘으로 다스리는데 나는 어짊을 으뜸으로 삼으며, 조조는 속임수를 잘 쓰지만 나는 충직함으로 그를 갈음하고 있소이다. 모든 것이 조조와 생판 다르기 때문에 지금 이만큼이라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이오. 만약 이번 일이 작은 이로움을 얻고자 큰 의로움을 저버리는 것이 되면 나는 결코 할 수가 없소.」

어디까지가 책략이고 어디까지가 덕성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그 둘이 묘하게 뒤섞인 말이었다. 더구나 서천은 유비를 둘러싼 집단에게는 반드시 차지해야 할 땅이라 결국 일은 그쪽으로 밀려나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유비의 반대에는 종친의 땅을 힘으로 빼앗았다는 세상의 비난을 아랫사람에게 전가시키려는 의도까지 숨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중략...미리 생각해 둔 게 있었던지 유비가 그렇게 대꾸했다. 심복 중에도 심복, 핵심 중에도 핵심만 골라 형주를 지키게 하고 비교적 늦게 얻은 사람들만 데리고 서천을 치러 가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은 것이 유비와 조조의 대비이다. 통상으로 조조가 원정을 떠날 때 보면 한 둘 미더운 사람을 골라 근거지(주로 許昌)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이끌고 나갔다. 요즈음의 기업에 비유하면 새로운 업종을 진출할 때 거기다 전력을 투자하는 셈이다.

거기에 비해 유비는 그 최초의 기업 확장이라고 볼 수 있는 이번의 서천(西川) 진출에서, 주력은 고스란히 원래의 기업인 형주에 남겨 놓고 그 동안 쌓인 여력(餘力)만을 쏟아붓고 있는 셈이었다.

 

<새끼 봉은 땅에 떨어지고 누운 용은 하늘로 솟네>

유비의 눈부신 용인술(用人術)이었다. 자신의 공을 가로채려 하다가 일을 망친 위연을 오히려 황충이 나서서 변호해 주었다니 누군들 황충의 너그러움에 감격하기 않겠는가. 그 말을 들은 위연은 진정으로 뉘우치며 황충에게 잘못을 빌었다.

황충은 황충대로 감격이 컸다. 나이도 잊고 젊은 위연을 갉아 유비에게 옹졸함을 보였는데도, 유비는 없는 말을 지어내 가며 자신의 너그러움을 드러내 위연으로 하여금 마음에서 우러난 잘못을 빌도록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또 무거운 상까지 내려 자신이 세운 공은 공대로 추어주니 황충은 위연에게 느꼈던 노여움을 아니 잊으려야 아니 잊을 수가 없었다.

 

<서천(西川)엔 드디어 새로운 해가 뜨고>

「그대는 하나만 알고 다른 둘은 모르시는구려. 지난날 진(秦)이 법을 거칠고 모질게 써서 백성들은 모두 그걸 원망하고 있었기에 고조계서는 너그러움과 덕으로 그 법을 줄이셨고.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그때와 같지 않소이다. 유장이 어둡고 약해 덕으로 다스리지도 못하면서 그 형벌마저 위엄이 없어 군신의 도리가 차차 어지러워졌던 것이오. 총애하는 자만 벼슬을 높이니 벼슬이 높아질수록 남을 해치고, 무턱대고 따르는 자에게만 은덕을 베푸니 은덕을 받는 자는 거만해졌소. 유장이 망한 것은 실로 그 때문이었던 것이외다.」

 

<장강(長江)을 뒤덮는 호기(豪氣)>

「나는 이제 법령으로 위엄을 세워 그게 지켜지는 게 오히려 은덕이 됨을 알게 할 것이며, 또 벼슬에는 한도를 두어 벼슬이 오르면 그게 영화로운 것임을 알게 할 것이오. 은덕과 영화로움을 아는 게 되살려지면 아래위는 절로 절도가 있게 되게 마련이니 이로써 다스리는 도리는 뚜렷해질 수 있을 것이외다.」

 

<한중(漢中)이 떨어지는 불길은 장강(長江)으로>

여기서 다시 한 번 드러나는 것은 일생을 통해 거의 예외가 없었던 조조의 금기(禁忌) 가운데 하나이다. 조조는 아직 군웅(群雄)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도 사욕에 눈이 멀어 주인을 판 자는 자신에게 아무리 큰 이익을 갖다 주어도 용서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의 벗이며, 힘에 겨운 원소를 이겨내는 데 뺄 수 없는 공을 세운 허유(許悠)조차도 끝내는 제 명에 죽지 못했다.

...중략...조조는 거의 일관되게 사욕으로 주인을 팔아먹은 자는 죽였고, 아무리 자신에게는 매섭게 저항해도 그 주인을 위해 힘을 다한 이는 되도록 해치지 않으려고 했다.

간혹 끝내 항복하지 않아 죽인 적이 있지만, 그때조차도 상대의 깨끗한 이름을 지켜주기 위해서였고, 또 그 뒤에는 후한 장례를 잊지 않았다. 조조를 순전히 권모술수의 사람으로만 몰아붙일 수 없게 만드는 남다른 품성의 하나였다.

 

 

8권. 솥발처럼 갈라진 천하

 

 

<가름나는 한중(漢中)의 주인>

 

「조조가 이번에 와서 이토록 쉬 싸움에 지고 만 까닭은 무엇이오?」

그러자 공명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조조는 사람됨이 의심이 많습니다. 비록 병법에 능하다 해도 의심이 많으면 싸움에 지기 쉽습니다. 저는 이번에 조조의 그 의심을 건드려 이길 수 있었지요.」

 

 

 

<유비 한중왕(漢中王)이 되다.>

 

얼핏 보아서는 조조의 순간적인 분노가 양수를 죽인 것 같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다. 양수는 전부터 그 재주만 믿고 함부로 나서다가 여러 번 조조가 싫어하는 걸 건드렸다.

 

보통 양수의 죽음은 공융의 죽음과 나란히 놓여지나 조금만 더 세심히 살피면 거의 연관이 없다. 재주는 공융만했는지 모르지만, 인물의 격(格)에 있어서는 훨씬 못 미쳐 보인다. 그는 조조의 주관적인 금기(禁忌)를 범해서가 아니라, 군국(軍國)의 객관적인 치도(治道)를 어겨 처형되었다는 편이 옳다.

 

 

 

<빛나구나, 관공의 무위(武威)>

 

뒷사람은 그런 방덕을 조조의 충신으로 치나 가만히 살펴보면 그의 목숨을 앗아간 것 또한 자부심의 병이나 아니었던지 모르겠다.

처음 싸움터에 나올 때부터 그는 이상하리만큼 관운장과의 경쟁 의식에 들떠 있었다. 스스로를 관운장과 같은 높이로 끌어올려놓고 시작한 그 싸움에서 한껏 부풀어난 자존심은 여지없이 지고 난 다음에도 끝내 스스로를 낮추려 들지 않았다.

촉에 항복해도 용서받을 만한 큰 핑계가 둘씩이나 있었건만 오히려 목숨을 버리는 쪽을 택한 것은, 아무래도 이제 겨우 이태 남짓한 조조의 후대에 대한 보답으로는 지나쳤던 듯 싶다.

 

 

 

<패어드는 관공의 발밑>

 

「주공께서는 이 여몽을 쓰시려면 여몽만 쓰시고, 숙명을 쓰시려면 숙명만 쓰십시오. 어찌하여 지난날 주유와 정보를 좌우(左右: 정사(正史)에서는 좌`우 도독으로 썼으나 앞에서는 大`副로 함께 썼음) 도독으로 함께 쓰시어 겪으셨던 어려움을 하마 잊으셨습니까? 그때 비록 모든 결단은 주유에게 맡기셨으나, 정보는 오래된 장수로서 젊은 주유 밑에 서게 되니 아무래도 그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뒷날 주유의 재주를 알고서야 비로소 정보는 주유를 따르게 되지 않았습니까? 지금 이 여몽은 재주가 주유에게 미치지 못하고 숙명은 주공과 가깝기가 정보보다 더합니다. 서로 화합하여 일을 치러내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듣고 나니 손권도 크게 깨닫는 게 있었다. 여몽을 대도독(大都督)으로 삼아 강동의 모든 군사를 맡아 거느리게 하고 손교는 뒤에서 군량과 마초만 대주도록 했다. 두 사람에 군권(軍權)을 나누어 주어 생기는 폐단을 막기 위함이었다.

 

 

 

<아아, 관공이여 관공이여>

 

널리 인정되고 있는 대로 관공을 일생 동안 이끈 의기의 원천은 춘추였다. 공자의 의(義) 개념이 투영된 그 역사책은 죄를 짓고 숨어다니는 한 젊은 무부를 매혹시킴으로써 이윽고는 중국 민중의 가슴속에까지 세월이 가도 바래지 않는 이념미의 한 원형을 제공한 셈이었다. 사실 관우의 삶을 살피면 가장 빛나는 부분은 오관참장(五關斬將)처럼 의와 연관을 맺는 부분이다.

때에 따라서는 전통적인 충성의 형태로, 때에 다라서는 협객 사회의 의리로, 그리고 더러는 신용 있는 채무 관계나 분명한 은원으로 나타나는 관공의 의는 본질적으로 소박한 보수주의에 뿌리하고 있다.

더 큰 정의에서 보면 후한의 사회는 부패와 타락으로 이미 충성의 근거를 상실했지만 전부터 충성해 왔으니 충성을 계속 바쳐야 했다. 그 선악을 불문하고 조조에게서는 받은 게 있으니 갚았고, 유비는 먼저 주인을 삼았으니 끝까지 주인일 수 밖에 없었다.

관공에게는 변혁의 필요성이나 민중의 개념은 거의 고려 밖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오히려 변혁을 갈망하고 기대 심리에 빠져있는 그 민중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민중의 움직임에 민감했고 어느 정도는 혁명 의식에 유사한 정신과 실천력까지 보인 조조가 갈수록 격하되어, 명대(明代)의 어떤 경극(京劇) 배우는 조조역(役)을 하다가 성난 관중에게 맞아 죽었을 정도가 된 것과 더불어 뒷사람에게 묘한 전도감(顚倒感)을 느끼게 하는 현상이다.

할 일 없는 문사(文士)의 터무니없는 추측일는지 모르긴 하되, 혹 그것은 역사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중국 민중들의 본능 속에 거듭 쌓여온 변혁에 대한 불신과 경계 때문이 아니었을까. 보다 거창하고 본질적인 의를 내세우고, 달콤한 실리(實利)로 그들을 앞뒤 없이 꾀어댔던 그 수많은 역사의 새 아침들이 기껏 나라의 이름과 제실(帝室)의 성씨(姓氏)가 바뀐 것으로 끝나고 말았을 때의 실망과 분노가 핏줄을 따라 대대로 전해진 게 아니었을까.

진수는 관공을 폄(貶)하는 뜻으로 그걸 집어냈지만 관공의 끝 모르는 자부심도 관공의 삶과 인격에 민중적인 매력을 더해 주었음에 분명하다. 벌거숭이 힘의 지배를 받는 난세(亂世)일수록 자부심같은 고급한 정신의 사치는 지켜내기 어렵다. 그때그때 강자를 만날 때마다 허리를 굽혀야만 살아갈 수 있는 민중들에게는 관공의 그 터무니없는 자부심이 차라리 시원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니, 조조와 손권 같은 인물들에게까지 <쥐새끼 같은 무리들!>이라고 서슴없이 내뱉는 관공의 그 끝 모를 자부심은 그대로 아름다움이요 신비이기까지 했을 것이다.

 

 

 

<조조도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비정한 힘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원리라고는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그대로 실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원수를 잊는 데는 너그러움과 참을성이 필요하고, 벗을 버리는 데는 그 나름의 용기와 과단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범인(凡人)들의 경우에는 용케 원수를 잊기는 해도 벗을 버리지 못하거나, 벗은 어떻게 저버렸지만 지난날의 원수를 잊지 못해 일관성을 가지지 못한다.




 

9권. 출사표

 

 

10권. 오장원에 지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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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카사노바 - 한번 찍은 고객은 반드시 사로잡는 작업의 정석
김기완.차영미 지음 / 다산북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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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년도: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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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레스로 인한 상품의 부패를 막기 위해 흡연과 알코올 충전을 수시로 하고 있음.

 

연애와 마케팅의 공통점

1. 열정으로 시작한다.

2. 고객을 제대로 간파해야한다.

3. 전략적으로 다가가되 전략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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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방심은 금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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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론과 실제가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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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당신이나 당신의 브랜드를 사랑하게 된 고객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만일 모든 여자들이 똑같은 얼굴, 똑같은 성질, 똑같은 마음씨를 갖고 있다면 남자는 절대로 부정한 행동을 하지 않을뿐더러 사랑을 하는 일마저 없었을 것이다.

-카사노바Casanova

 

목표고객이 정해지면 이전의 성공방식과 관점을 떨쳐버리고 원점에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 마케팅의 성공 열쇠는 과거가 아닌 지금의 목표고객이 쥐고 있으므로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해야한다.

 

모든 걸 다 걸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걸지 말라.

하지만 모든 것을 어떻게 거느냐가 문제였다.

- 카사노바Casanova

 

지금 내가 이렇게 화가 나는 건 이동준이라는 남자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남자를 만나고 있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상대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 연애와 마케팅은 분명 통한다. 이 두가지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 것이 흥미로웠다. 전공자들이 보기에는 얄팍한 지식에 불과해도 나같은 문외한에게는 쉽고 재미있게 마케팅에 관한 책 한 권을 읽었냈다는 사실로도 뿌듯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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