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기욤 아레토스 그림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단지 원수의 화를 돋우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들은 오히려 자국인 프랑스보다도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인기가 있다고 한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책 제목이 흥미를 끌어 언젠가 꼭 읽어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어쩔 수 없는 게으름 때문에 이제야 읽게 되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구판은 절판되고 개정판이 나왔단다. 생각보다 꽤 오래된 책이구나 하며 읽었는데도 안에 담긴 내용은 전혀 구식이 아니다. 아마도 상대적이면서 동시에 절대적이기 때문에 10년이 넘어서도 고루한 책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지금쯤 접하게 된 것이 다행이다. 예전에 읽었더라면 이 책의 내용을 좇아가는데 급급했을 것 같은데 지식과 경험이 쌓인 지금은 여유 있게 이 백과사전의 ‘상대적’인 부분에 집중하여 읽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검열은 여전히 존재하는가?’ 항목에서는 과거에는 검열 때문에 정보가 소수에게만 집중되고 대중에게 차단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검열이 사라진 요즘은 오히려 정보의 과잉으로 인해 범람하는 정보 중 일부만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진보나 도전은 나타날 수 없고 기성에 묻혀 버린다. 검열을 없앰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검열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잘 알고 있던 상식(절대적)을 뒤집어서 그 이면(상대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뼈대에 대한 이야기도 이와 유사하다. 뼈대가 안쪽에 있으면 살은 수없이 상처를 입고 회복되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을 통해 근육이 단단해지고 섬유의 저항력이 증가한다. 살이 진화하는 것이다. 반면에 뼈대가 겉에 있으면 외부의 위험에 쉽사리 다치지는 않는다. 대신 일단 외부 위험에 노출되면 피해는 치명적이다. 안쪽에 있는 살이 그동안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면서 물렁물렁해졌기 때문이다. <출중한 지력>이라는 갑각을 뒤집어쓰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견고해보이지만 일단 상반된 견해가 그들의 껍질을 뚫었을 때, 그 타격은 말할 필요가 없다. 반면 아주 사소한 이견, 사소한 부조화에도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비록 모든 것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더라도 정신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어떤 공격에서도 배우는 것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정말 독창적이면서도 많은 예민한 이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부분이다.




광기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우리 모두는 매일 조금씩 미쳐가고 있으며 그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란다. 특히 작가는 편집증과 정신분열에 사로잡혀 있음을 느끼는데 그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삶을 끌어올리려고 한다는 말. 멋지다.




인간의 사고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각도에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작가의 관점도 놀랍도록 새롭다. 이 말이 요즘이 아니라 10년도 더 전에 나왔다고 생각하니 작가의 역량일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와 한국의 차이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모기의 숨은 곳을 점점 알아내기가 어려워진다는 관찰을 통해 단 몇 년 만에 모기의 변이가 일어났다고 추론하는 것이나 박테리아에 관한 이야기, 가장 평범한 것이 오히려 비범한 것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렘수면의 경우, 방해받을 때마다 꿈의 내용은 전부 달라졌지만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며 아마도 방해받은 뇌가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되풀이 하는 것 같다는 연구내용도 재미있다. 멕시코 원주민을 위해 끝까지 싸운 스페인 사람 구에레로의 이야기나 십자군 전쟁의 이면도 흥미 있었다. TV 프로인 '서프라이즈'를 보는 느낌?




그 밖에도 수없이 많다. 처음 엄마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생후 8개월쯤이 최초로 사람이 겪는 불안이라는 것. 이방인에 대한 공포, 소중한 존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 고독에 대한 두려움 등이 전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도 재미있다. 자연은 다윈의 말처럼 좋은 것이 지배하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도.(좋고 나쁜 것의 기준도 애매할뿐더러 자연의 힘은 다양성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잉크가 물에 번지는 현상으로 파동을 설명하면서, 사물의 세계에서는 두 개의 파동이 만날 때 빚어지는 다양한 모습이 고정되지 않고 곧 섞여 버리지만, 생명의 세계에서는 그 만남이 고착화될 수도 기억 속에 머물 수도 있다는 대목은 작가의 과학적 지식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통해 설명한 여러 개의 현실은 얼마 전에 읽은 ‘다시 한번 리플레이’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했다. 호르몬과 페로몬에 대한 비교, 페로몬을 통해 개미는 인간과 다르게 동일한 감정을 똑같은 정도로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인간의 공감이라는 것은 결국 이성에서 나올 뿐 이라는 부분도 곰곰이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끝없는 상상력으로 독자를 늘 감탄시키는 그의 원천이 여기서 나오나보다. 잡식성으로 여러 정보를 얻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하여 뒤집어보는 그의 창조적 습관. 군데군데 다소 황당하거나 개미에 대한 그의 지나칠 정도로 넘치는 애정이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책 구절구절 마음에 드는 모든 구절을 옮기려면 거의 책의 절반을 써야 할 것 같다.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




수피즘 철학에서 함께 있기란, 벗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런 말도, 행위도 없이 그저 함께 앉아 있는 것이다. 서로를 바라보아도 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마음 쓰거나 떠벌릴 필요 없이 그저 함께 있음을 말없이 즐기는 것이 행복을 얻는 방법 중 으뜸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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