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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평점 :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중단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계속 읽고 싶어서 중단할 수가 없었다. 이 부딪침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해 보니, 등장인물 때문에 답답해서 중단하고 싶다가도, 작가의 서술이 문학적으로 아름다워서 또 계속 읽고 싶어진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보바리 부인과 비슷한 상황 아닌가? 놓고 싶으면서도 놓고 싶지 않은, 빠져 나오고 싶으면서도 계속 있고 싶은. 만약 이게 작가의 의도였다면 이 작가는 정말 대단한 작가다.
불륜 소재야 문학에서 흔해 빠졌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역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이다. 거장이 쓴 소설, 문학적 가치가 높으면서도 현재까지 끊임없이 영상화 되고 있을 정도로 시대를 초월하여 대중에게 매혹적인 소설. 안나 카레니나도 마담 보바리도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 카레니나를 읽을 때와는 달리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주인공에게 연민이 들지 않아서 독자로서 참으로 힘들었는데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경우, 첫째, 남편이 무정하였다. 둘째, 불륜 상대인 애인이 유부녀인 여주인공을 진심으로 사랑하였다. 셋째, 남편 사이의 아이와 사생아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그러니까 읽으면서 이 여주인공이 여러 모로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데, 연민과 동정심이 들 수밖에 없는데, 마담 보바리의 경우 여주인공은 저 세 가지가 전부 결여되어 있다. 남편은 아내를 무지 사랑하지, 애인은 여주인공을 그저 자기 욕심으로 만나지, 소설 내내 자기 자식에 대한 책임은 전혀 안 느껴지지. 이러니까 도대체 마담 보바리를 어떻게 동정하겠나.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에 대한 환멸이 점점 증가하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읽다가 때려치고 싶다가도 묘사가, 서술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우니 또 읽고 싶은 것이다. 문자가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대화랄까. 1부만 쓰는데 1년이 걸렸고 전체를 완성하는데 4년 넘게 걸렸다고 했나? 아무튼 해설에 보면 긴 시간동안 쓰고 또 다듬고 그 과정에서 작가가 스트레스도 꽤 많았던 것 같은데 그래서 읽다 보면 문장 하나하나를 엄청 공들여서 썼을 것이라는 느낌이, 원문을 읽지 못하고 번역을 거쳐야만 읽을 수 있는 외국의 독자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된다.
처음에 읽으면서는 시대가 이 여자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요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자유롭게 연애하면서 보헤미안처럼 살다 가지 않았을까, 아니 결혼했어도 자기 일 하면서 가정과 일 양쪽 다 재미를 느끼면서 살지 않았을까, 싶다가도 점점 읽어가면서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아니다. 이 사람은. 어느 시대에 태어났어도 이렇게 살다 갔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소설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의 성질을 탐구하는 소설이겠구나. 이렇게 사는 사람, 요즘도 있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자기반성이나 성찰 없이 원망만 하면서. 이기적으로 굴면서. 가장 아껴야 할 사람들을 파괴해 가면서. 죽을 때까지 자기 연민에 빠져서 주변은 돌아보지도 않고, 헤아리지도 않고. 이런 사람은 요즘도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있다. 솔직히 다 읽고 나면 마담 보바리가 그의 애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나 하는 의문도 든다. 그저 자신의 권태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아, 그리고 이 표지 그림에 절대 속으면 안 된다. 이렇게 소박하고 순수한 얼굴이라니. 표지 그림 선정을 왜 이렇게 했을지 궁금하다.
392p
그때부터 그녀의 생활은 온통 거짓말투성이였다. 그녀는 자기의 사랑을 마치 베일로 감싸듯이 거짓말 속에 싸서 숨겼다.
거짓말이 이제는 어떤 필요, 광적인 습관, 쾌락이 되어버렸다. 이리하여 끝내는 그녀가 어제 어떤 길의 오른쪽으로 지나왔다고 말하면 사실은 왼쪽으로 지나왔다고 생각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410p
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어! 하고 그녀는 혼자말을 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고 한번도 행복했던 적도 없었다. 인생에 대한 이런 아쉬움은 대체 어디서 오는것일까? 의지하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썩어 무너직 마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 그러나 만일 어디엔가에 강하고 아름다운 한 존재가, 열정과 세련미가 가득 배어 있는 용감한 성품이, 하프의 낭랑한 현을 퉁기며 하늘을 향해 축혼의 엘레지를 탄주하는 천사의 모습을 한 시인 같은 마음이 존재한다면 그녀라고 운 좋게 그를 찾아내지 못하라는 법이야 있겠는가? 아! 턱도 없는 일! 사실 애써 찾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다 거짓이다! 미소마다 그 뒤에는 권태의 하품이, 환희마다 그 뒤에는 저주가, 쾌락마다 그 뒤에는 혐오가 숨어 있고 황홀한 키스가 끝나면 입술 위에는 오직 보다 큰 관능을 구하는 실현 불가능한 욕망이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