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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6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처음 얼마 동안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아주 열심히 일했다. 그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 식사 때까지 진찰하고 수술하고 심지어는 해산을 돕는 일까지 했다. 부인들은 그에 대해서, 신중하고 질병을, 특히 아이들과 여자들의 질병을 잘 진단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 일이 단조롭고 전혀 무익하여 그를 매우 권태롭게 만들었다. 오늘 서른 명을 진찰하면, 다음 날에는 서른다섯 명으로 늘어나고, 그다음 날에는 마흔 명으로 늘어나는 그런 생활이 매일매일 해가 바뀌어도 계속되었다. 그런데도 도시의 사망률은 줄어들지 않고 환자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마흔 명의 외래 환자를 아침부터 저녁 식사 때까지 꼼꼼히 치료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어서, 어쩔 수 없이 환자를 속이게 된다. 1년에 1만 2천 명의 외래 환자를 진단한다는 기록은, 정확하게 표현하면 1만 2천 명의 사람을 속인다는 뜻이다. 중환자를 병실에 입원시키고 과학의 규칙들에 따라 돌본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규칙은 있어도 과학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을 집어치우고 다른 의사들처럼 현학적으로 규칙들을 따르려 해도,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더럽지 않은 깨끗한 환경과 환기가 필요하며, 악취가 나는 소금에 절인 양배추로 끓인 수프가 아니라 영양가 높은 음식이 필요하며, 도둑놈이 아니라 훌륭한 조수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 죽음이 누구에게나 정상적이고 당연한 결말이라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 것을 막으려 한단 말인가? 어떤 장사치나 관리가 5년이나 10년을 더 산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의학의 목적을 약으로 고통을 덜어 주는 데서 찾는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고통을 무엇 때문에 줄이려 하는가? 첫째, 흔히 말하듯이 고통은 사람을 완성으로 이끈다. 둘째, 인류가 정말로 알약과 물약으로 자신의 고통을 경감시킬 줄 알게 된다면, 그전까지 온갖 불행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고 나아가 행복을 가져다주었던 종교와 철학을 아주 저버릴 것이다. 뿌쉬낀은 죽음을 앞에 두고 무서운 고뇌에 휩싸였고, 가난한 하이네는 중풍 때문에 몇 해 동안 누워만 있었다. 그런데 안드레이 에피미치나 마뜨료나 사비슈나와 같은 사람이 아프지 말아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들의 삶은 보잘것없으며, 고통마저 없다면 아메바의 삶같이 전적으로 공허할 것이다.
이런 생각들에 짓눌려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기운을 잃고, 병원에 매일 나가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