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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 - 수필가 배혜경이 영화와 함께한 금쪽같은 시간
배혜경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1월
평점 :
사람은 언제부터 영화를 만들고 봤을까. 영화가 나오기 전에는 라디오 방송을 들었겠지. 듣기만 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처음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는 라디오 스타는 모두 죽었다고 했지만, 라디오는 여전히 그대로다. 아니 지금은 보는 라디오로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라디오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도 텔레비전은 안 봐도 라디오 방송은 듣는다. 보는 라디오는 아니고 진짜 라디오로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이젠 라디오 방송도 꼭 라디오가 아니어도 들을 수 있다. 사람이 언제 영화를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찾아보면 나오겠지), 듣기만 하다가 보고도 싶어져서 만들지 않았을까. 사진이 나온 다음에 움직이는 영상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겠지. 그런 걸 생각한 사람 대단하구나.
옛날 영화 거의 본 적은 없지만, 그때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영화 필름을 틀어놓고 영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건 한국에만 있었을지 다른 나라에도 있었을지. 그것도 영화에서 봤던가. 나도 잘 모르겠다. 소리가 없는 건 없는대로 봐도 괜찮을 텐데, 영상을 보면서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재미있을지도. 사람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오래전 흑백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게 많을 거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도 있었겠지. 그걸 나중엔 책으로 내기도 하고, 지금은 영화 각본집이 나온다. 이것 전에는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했는데. 영화는 안 보고 시나리오만 본 적 있기도 하다.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그렇게 많이 본 건 아니어서 잘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영화도 그렇게 많이 보지는 않았다. 그저 어렸을 때 텔레비전 방송으로 해준 영화를 조금 봤다. 영화관에 아주 안 간 건 아니지만.
난 많은 걸 잘 못한다. 음식점이나 카페에 혼자 들어가지 못하고 영화관에도 혼자 못 간다. 그런 것도 혼자 못하다니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못한다. 그것 말고도 못하는 거 많구나. 그래도 문구점이나 책방과 우체국 그리고 가게(마트)는 간다. 우체국에서는 우표를 달라거나 문구점이나 책방에서는 찾는 걸 물어보기도 하지만, 다른 데서는 못 물어본다. 나 정말 바보구나. 어렸을 때도 못했지만, 지금도 못한다. 나이를 먹으면 좀 뻔뻔해지기도 한다는데, 난 그렇지 않다. 여전히 말을 못한다. 그런 걸 답답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사람 싫다. 말 못하는 걸 답답하게 여기다니. 사람이 무슨 말이든 하는 건 아니기도 하고, 말이 없는 사람도 있는 거 아닌가. 말이 없으면 조용해서 좋지 않나. 다른 사람 말도 안 하고. 왜 이런 말로 흘렀지. 영화 보러 영화관에 못 간다는 말을 해서구나. 앞으로도 그렇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이 책 《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을 누굴 보나요》는 배혜경이 쓴 영화 이야기다. 누군가한테 함께 보자고 말하고 싶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말한 영화에서 내가 본 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두세편 정도 될까. 두세편도 안 될지도. 영화가 아닌 책으로 본 것도 있다. 이것도 세편 정도구나. 어떤 영화는 듣거나 글을 보기도 했다. 영화를 안 봐도 영화 정보는 가끔 듣고 읽기도 한다. 그런 걸 보거나 읽는 것과 실제 영화를 보는 건 아주 다르겠지만. 이 책을 보면서 고흐를 말하는 영화 참 많다는 걸 알았다. 그나마 고흐는 편지나 다른 글을 봐서 아주아주 조금 안다고 해야겠구나. 그게 아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사람 삶은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 사람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겠지만. 어쩌면 그림이나 글을 알려고 작가 삶을 알려는 건지도. 그렇다 해도 그게 다가 아니기는 하다.
무엇보다 좋게 보였다고 할까, 영화를 배혜경은 딸과 함께 봤다는 거다. 영화를 보고 함께 이야기해서 좋았겠다. 책도 함께 보고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여러 가지를 함께 하고 이야기하고 지금도 하겠다. 엄마와 딸이 친구 같은 것도 좋을 듯하다. 영화를 그저 흘려 봐도 괜찮지만, 좀 더 깊이 봐도 괜찮겠지. 난 그런 적 없지만. 영화는 시나리오대로 찍지는 않을 거다. 어떻게 하면 어떤 걸 잘 나타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빛과 어둠을 담고 음악도 잘 고르겠지. 영화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영화는 영상뿐 아니라 음악도 참 중요하다. 음악이 없다고 해서 심심하지는 않겠지만, 음악이 사람 마음을 잘 나타내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음악과는 다른 음향도 있구나. 아무 소리 없는 공포영화보다 삐걱이거나 불안함을 나타내는 음향이 나오는 공포영화가 더 무섭겠지. 영화 잘 모르면서 이런 말을 하다니. 영화 글을 보다보면 카메라가 담은 걸 이야기하는 것도 있어서. 그런 것도 다 뜻이 있어서 그런다는 걸 알았다. 영화는 은유구나. 그런 영화만 있는 건 아니지만. 난 좀 쉬운 걸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이걸 생각하니 영화뿐 아니라 소설도 그렇다는 걸 알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삶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삶도 있겠지. 영화를 모르고 안 본다 해도 사람은 산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삶은 나름대로 괜찮겠지. 난 책으로 대신하지만. 책을 보고 영상으로 보면 조금 실망할 때가 많구나. 내가 상상한 게 나오지 않기도 해서. 어떤 상상을 했느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소설은 길고 영화는 짧아서 그렇겠다. 짧은 시간 안에 이것저것 담으려면 쉽지 않겠다. 그런 영화를 보고 그 안에 담긴 뜻을 알아내는 것도 멋지겠다. 배혜경은 그런 걸 잘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전 이야기와 2020년 이야기까지 자기 이야기를 영화 이야기와 함께 한다. 영화가 다가오고 영화에 다가가는. 책도 그렇지만 영화도 그걸 잘 보려고 하는 사람한테만 뭔가를 보여주겠지.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