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
이지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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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선물입니다.' 
사고를 당하여 한번 크게 병원신세를 가져본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덤으로 사는 삶인지를 알게 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지난날보다 더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알차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선씨 그녀, 의사도 포기한 삶이었지만 스스로 이겨 고치에서 벗어나 화려한 날개짓을 하고 있는것 같아 참으로 가슴 따듯해지고 감동적이면서 눈물을 머금고 읽어 나가다 너무 목이 메어 중간에 책을 덮고 말았다. 나 또한 큰 사고를 07년엔 산행사고로 간신히 빗겨간 생과사의 길에서 행운적으로 생의 길을 선택받게 되었고 09년엔 교통사고로 아차 하는 순간, 죽음이 눈 앞에 왔지만 정말 운명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병원신세를 오래도록 지며 내게 주어진 삶은 '이제부터는 덤이야, 감사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느꼈어.' 라며 남편이나 그외 친구들에게도 많이 하던 말들이 생각나고 병원에서 혼자서 고통과 싸웠던 시간들이 생각나 계속 읽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옆에 간병인으로 남편이나 가족들이 있다고 해도 환자의 고통을 모두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고통은 정말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그런면에서 그녀가 10여년 동안 감수했을 고통과 통증 그리고 사고전과 사고후의 변화에 긍정적이면서 선물처럼 받아 들이며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듯 하여 너무도 감사했다.

사고가나면 사고나기 그 전 시간으로 시계를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 '만약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정말 몇 번이고 생각해 보기도 하며 '왜 유독 내게만 이런 일이...?' 하며 자책해 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여울을 지나 더 큰 바다로 향하는 힘을 안겨주기 위한 시험의 길인지도 모른다. 달게 받으면 고통 또한 내겐 그저 한때 내리고 마는 소나기와 같다. 하지만 그 고통을 내 전부로 여겨 그 긴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 삶은 햇빛이 비치지 않는 것처럼 암흑으로 변해 버리고 만다. 내 혼자만 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가족의 삶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변하고 만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것은 고통과 지금 현재를 받아 들이는 환자의 마음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면 그때부터 고통은 잘게 부서져 나가기 시작이다. 날마다 한가지씩 희망과 감사를 찾다보면 내 삶이 모두 감사이고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희망이고 감사가 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작은 일들이 환자 당사자에게는 너무도 큰 감사가 되어 삶을 더 보람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지선 그녀, 너무도 잘 고통의 터널을 벗어난 듯 하여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주고 싶다. '오빠, 나 이러고 어떻게 살아. 나 죽여줘.' 진심이었을 것이다. 사고 당시 몸 전체의 반 정도가 3도 화상에 의사도 포기한 생명이었는데 그녀만이 홀로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생을 쥐었다. 사고 이전으로 똑같이 되돌릴 수 없겠지만 두 개의 얼굴, 두 개의 삶으로 나뉜듯 하겠지만 너무도 대단하게 아픔의 고치를 벗어버린듯 하여 대견하고 정말 곁에 있다면 안아 주고 싶은 그녀이다. 물론 곁에서 늘 함께 재활치료를 해 준 '오까' 도 있고 그녀를 24시간 바늘처럼 따라다녔던 엄마의 정성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그녀가 있겠지만 환자 자신이 강인한 마음을 먹지 못한다면 고통은 영원히 벗어버릴 수 없다. 내가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는 동안 함께 있던 어느 젊은 아줌마 환자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 스스로 심한 천식증세도 보이며 같은 방 식구들은 물론 간호사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숨도 쉬지 않고 죽으려 하듯 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희망적인 말을 해주며 다독여주니 그녀 스스로 호흡을 천천히 뱉어내기 시작하고 마음의 문을 열며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다졌다. 그런 그녀가 밥도 잘 먹고 애들도 병원에서 잘 돌보며 하루빨리 병원생활을 마감해야 겠다며 다짐하던 웃는 얼굴이 생각난다. 스스로 희망을 찾지 않는다면 옆에서 아무리 희망을 찾아 주어도 본인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런면에서 스스로 파도를 이겨내며 큰 바다로 항해를 나가는 것과 같은 삶의 변화를 열심히 시도해 나가며 노력하는 그녀의 변화된 삶의 이야기는 우리에겐 '희망이고 감사' 이다. 

'사고구나... 사고가 났었구나!. 내가 다친거구나... '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그 기분은 놀람이나 당황스러움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내가 사고의 피해자이고 사고나던 순간이 계속 떠오르면서 그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재활하는데도 진전이 없다. 공포, 눈만 감으면 떠 오르는 사고의 순간을 빨리 자신에게서 떨쳐버리는 것이 새로운 내 삶을 받아 들이고 사는데 더 도움이 된다. 교통사고이후 나 또한 한동안 차가 많이 오가는 길에 나가면 움츠러 들어 한발짝도 꼼짝할 수 없음을 느꼈다. 빨리 그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몸은 머리와 다르게 행동해서 한동안 고생을 했는데 차츰차츰 잊어가며 늘 새로운 '오늘' 과 악수하다 보니 그 또한 내 삶이 일부이며 넘고 나면 또 다른 '눈' 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보지 못하던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단계였는지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자신을 비관하고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받아 들이며 어떻게 살아갈까를 변화된 내가 가질 수 있는 새로운 눈에 적응하여 나를 새롭게 변화시킨 그녀의 이야기는 정말 대단하다. 정상인들도 하기 힘든 일을 거뜬히 소화해 내는 그녀를 누가 30여번의 성형수술 중독자라고 할 수 있을까. 좋은 말로 중독자이지 그녀의 살기 위한 몸부림은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힘든 순간은 지나고 이제 웃을 수 있는 희망만 있다고 생각을 하면 나 자신 또한 변화할 수 있다. '귀엽다' 라며 자신을 받아 들이는 행복한 그녀의 모습이 낯설거나 이상한 사람이 아닌 '이지선' 으로 우뚝 설 수 있어 나 또한 희망을 충전할 수 있는 책이라 좋았다. 정말 영화였다면 영화속 주인공으로 잠깐 분했었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영화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라 더 마음이 아프고 따듯해지고 삶에 더 감사해야 됨으 느끼게 해 주는 그녀의 이야기에 눈가가 촉촉해졌다.

'모든 생명에는 사명이 있다고 믿습니다. 정말 전쟁터와 같았던 중환자실에서 살아서 나오면서 제가 전우라고 부르는 그분들의 소중한 생명을 기억하며 저는 이제 숨 쉬는 동안 제게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내리라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내 피부보다 더 단단한 피부를 가지게 되어서 그런가 그녀의 마음과 다짐이 당차고 단단해졌다. 그녀는 사고이전으로 되돌아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느끼고 받아 들인 세상이 다르기에 지금의 삶에 더 감사하게 된 그녀가 정말 멋지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었던 순간에도 나를 사랑해준 이들 때문에 나는 나를 감히 버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 싸움의 승리가 결국 나의 것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한참 이쁘게 꾸미고 가꾸고 자신이 삶보다는 다른 것에 더 신경쓸 나이에 그녀는 스스로 벗어나야 할 커다란 고통의 터널을 지나서인지 참으로 야무지고 누구보다 단단하게 여물어졌다. 그녀가 펼칠 앞으로의 멋진 그림이 기다려진다. '지선아, 사랑해.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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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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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라는 것이 어디서 오느냐? 를 자세히 살표보는 거예요. 결국 외로움은 우리가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 생겨납니다.'  법륜스님의 주례사라 하지만 주례사 보다는 남녀사이에 아니 부부간에 정말 보약같은 말씀이 담겨 있어 공감을 하며 읽었다. 이제 결혼을 결심한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결혼생활이 어느정도 지나고 한참 밋밋하다고 아니 내가 함께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그외 감정들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면 좋다. 외로움 또한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 생겨난다고 하지만 모든것은 사람사이에 감정이 교류하는 '마음' 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랑 또한 달라진다고 본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결심한 결혼을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본다. 마음을 얻지 못하고 믿음만으로도 살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면 모두를 취하지 못한 것처럼 언젠가는 금이 갈 수 있다. 

우리도 처음 결혼을 결심하고 우리 의사와는 상관없이 남자쪽에서 궁합을 보았다. 좋지 않다며 그리 좋은 표정들이 아니었지만 난 그런것을 믿지 않기에 그 궁합이 어떻게 변할지 보여주겠다며 남편과 결혼을 하고 지금은 이십여년을 바라보고 있지만 무리없이 잘 살고 있다. 그렇다면 결혼을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궁합' 때문에 헤어지거나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는 듯 하다. 그런 일로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는듯 한데 그게 상관이 있는 사람들에겐 필요하겠지만 서로의 마음이 중요한듯 하다. 서로 굳게 믿는다면 미래는 자신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결혼을 하기 위하여 남자나 여자에 많이 따지는 것은 인물 재력 능력등 겉모습에 치중을 많이 한다. '사랑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살아 보면 사랑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사랑만 있으면 모든게 가능하리라 보며 무모하게 결혼을 서두르기도 한다.그러다 보면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날 수 있다. 남들은 정말 쉽게 결혼을 한듯 한데 유독 나만은 무척이나 결혼이란 것이 어려운 관문처럼 여겨지고 결혼이란 환상이 점점 깨지게 된다. '사람들이 복 많다고 하는 일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릅니다. 돈도 있고, 인물도 괜찮기 때문에 이런 남자는 이성 문제가 끊이질 않습니다.' 욕심을 낸 부분이 있다면 그에 대한 댓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왜 얼굴도 보지 않고 결혼을 해도 잘 살았을까? '시집가면 죽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죽었다 생각하고 시집을 가보니 그래도 생각보다 살 만하니까 웃고 사는 거예요. 반면 요즘은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좋은 일이 생기겠지.' 라고 기대하고 갑니다. 하지만 결혼해서 함께 살아 봐도 별볼일없으니까, 괜히 결혼했다고 후회하는 겁니다.' 너무 많은 부분을 기대했기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거기에서 오는 틈을 메우지 못하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지만 결혼은 어쩌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그 믿음이 깨지지 않기 위해서는 배려하고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여자는 남자가 돈 벌어오는 기계로 남자는 여자를 돈만 아는 사람으로 취급을 하다보면 서로의 콩깍지는 금방 벗겨지고 환상이 깨지면서 서로의 단점을 장점으로 채워나가지 못하여 힘든 결혼생활을 하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주는 행복과 불행은 달라집니다. 자기의 삶을 늘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늘 놀이로 생각하세요. 이게 가능할 때 인생도 행복해집니다.' 서로 단점만 보여 나의 결혼생활은 남들과는 다르게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앞으로는 '행복만들기' 를 하며 살면 된다. 행복과 불행은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 모든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데 너무 자신을 너무 높은 곳과 비교 하며 산다면 그사람은 영원히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밑을 보고, 나보다 못한 아래를 바라보면서 서로에게 행복한 순간이 없다면 하나씩 만들어가며 산다면 자신도 행복해 질 수 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우리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불행한 순간들이 있다. 보여지는 겉모습만으로 모두를 평가할 수는 없다. 무척 힘들게 사는것 같지만 마음이 여유롭고 행복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들 사이엔 믿음이 강하다.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또 다른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마인드' 를 가진다면 인생이 무한히 행복해 질 수 있다.

'이렇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괴로움이 끊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바로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그사람은 늘 불행하고 괴롭고 자신이 제일 못나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양손에 쥐고 있는 욕심을 내려 놓고 마음을 비우는 순간,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는듯 세상이 달라 보인다. 그런 순간을 나 또한 여러번 느꼈다. 쪼들리고 있지만 부모님께 조금 보태드려야 할 때, 그 돈은 내것이 아니고 아예 없었던 돈인듯 그냥 얼른 이체 시켜 드리고 나면 한결 가볍다. 세상의 짐을 모두 벗어 버린듯 홀가분하다. 비록 쪼들리며 조금 부족하게 살아야 하지만 마음은 행복하다. 하지만 욕심을 내고 있다면 결코 보탬을 드릴 수가 없다. 내것이 아니라고 비우는 순간, 행복은 내게로 온다. '무엇을 선택하든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욕심을 부릴수록 과보는 클 수밖에 없어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얻으려고 할수록 큰 화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상대에게 받으려는 마음부터 줄여야 합니다.' 요즘은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들도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자식들에게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자식들은 부모님에게서 유산을 조금이라도 더 물려받기 위하여 앞에서는 잘하는듯 하면서도 뒤에서는 계산을 한다. 하지만 얻으려고 하지 않고 진심에서 우러나 한다면 '현대판 고려장' 같은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부부사이에도 마찬가지이고 물론 부모와 자식간에도 마찬가지일터 모두의 사이에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결혼하는 사람들이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고 흔히 착각하기 때문에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한 겁니다. 단지 내가 사랑할 뿐이에요.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이지, 내가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를 좋아하고 사랑하니 내가 행복할 분인 거에요.'  내가 사랑한다고 상대가 사랑해줄 것이라, 아님 사랑을 강요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무리하게 요구한다는 것은 마찰을 빗게 된다. 하지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베푸는 사랑은 언젠가는 자신에게 사랑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이렇듯 이 책에는 좋은 말들이 너무도 많다. 사랑에 아니 결혼생활이나 그외 남녀사에 양념이 되고 맛을 가미할 수 있는 다양한 말씀이 김점선 화가의 이쁜 그밀과 함께 하니 더 좋다. 책장에 꽂아 놓고 생각날때마다, 아니 마음이 더러워졌다고 생각이 들 때 꺼내어 읽어 본다면 좋을 듯 하다. '인간도 이와 같이 흔적을 남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처럼 비린내가 나는 사람도 있고, 향을 쌌던 종이처럼 향내가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나간 인생은 다 흘러가 버린 줄 알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쌓이게 됩니다.' 흔히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하는데 아이들이 내 못난 것을 따라하기 전에 향내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욕심을 버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며 좀더 행복을 만들어 가기 위하여 노력하며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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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 도종환의 산에서 보내는 편지
도종환 지음 / 좋은생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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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선이 앙증맞게 귀여운 봉오리를 손끝으로 가만히 건드려보다가 나도 이제는 내 빛깔을 조금 낮추기로 합니다. 강렬한 빛에서 담담한 빛깔로 옮겨가기로 합니다.' 정말 그 산방에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언젠가 티비에서 '집배원과 시인' 인가 하는 제목으로 작가의 일상이 나온적이 있다. 한참이나 그 속에 갇혀 눈을 떼지 못하고 보았던 적이 있는데 사람이 드문 곳에서 그가 세상소식을 접하는 것은 '집배원' 과의 소통이었다. 그 집배원 아저씨는 세상소식만 물어다주는 반가운 사람이 아닌 '정' 까지 듬뿍 나누어 주기도 하였는데 글 속에도 그 나눔의 정이 나타나있다. 자연속에서 산다는 것은 자신을 자연과 맞추어 사는 것인지 모든것들의 주인양한다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빛깔을 낮추지 못한것, 덜어내지 못한것으로 본다.

나 또한 산행을 못하는 체력이라 산을 즐긴지는 얼마되지 않는다. 처음 첫발부터 천천히 갈 수 있는 곳까지 오르며 다른 사람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 아닌 내게 전적으로 나를 중심으로 하며 리듬을 맞추어 가다보니 나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자연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내 눈 높이를 낮추어야 볼 수 있는 자연에 반하기 시작하면서 산은 그야말로 내 전부처럼 느껴져 가지 못할때는 몸살이 날 정도이고 한번 다녀오면 한마디로 저질 체력 때문에 몸살이 나는 사이클을 반복하면서도 다시금 산으로 향하는 것은 자연속에 있으면 겸허해지고 나 자신이 너무 작고 모두가 대등소이해지며 철마다 그들이 가르쳐주는 것들은 정말로 엄청났다. 초보 산행꾼에게도 산과 자연을 그렇게 다가왔으니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에게는 자연은 어떠할까. 그의 글을 읽다보면 내가 느끼고 보았던 것들이 모두 담겨 있는듯 하여 너무도 좋았다.

이 책은 가을이 깊어 지고 있는 나무숲 의자에 앉아 가을바람과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읽었다. 정말 자연속에서 자연과 벗하며 살고 자연의 이야기로 쓰여진 글들을 읽다보니 그대로 그 순간에 놓여있는것만 같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그 속으로 들어간듯한 이상한 감정이입에 빠져 들게 되었다. 한참 지금 산에 분홍빛 노란빛 물봉선이 피어 있는 시기라 그런지 그의 글들은 내 눈 속에 풍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듯 하여 산으로 달려 가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는 날마다 다섯알씩 밤을 나누어 먹는 다람쥐도 친구이고 주인이 없는 집에 내려와 마당을 헤집어 놓은 산짐승도 친구가 될 수 있고 가끔 산나물을 뜯으러 오르내리는 분들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곳이며 아침이면 자명종처럼 노랫소리로 아침잠을 깨워주는 산새 또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도회지에서 가졌던 욕심이 필요할까. 두 손안에 쥐었던 것도 놓아야 비로소 자연을 자연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산방, 그곳이 왠지 부럽기만 하다. 무엇이 이유가 되었건간에 누구나 마지막 소망은 '전원생활' 이 로망처럼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몸도 마음도 자연과 더불어 살찌우는 시인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처럼 느껴졌다.

' '선생님, 그냥  두 글자로 된 거요.' . 나는 어묵, 튀김, 라면,김밥, 만두.. 이런 두 글자들을 떠올리다. '그래, 좋다. 사줄게.' 하고 대답을 하고 학교 근처 식당으로 몰려갔는데 문을 들어서며 큰 소리로 음식을 주문하는 미란이의 목소리, '아줌마, 우리 탕슉!' ' 정말 '빵' 터졌다. 요즘 아이들을 어찌 당하랴. 두 글자 정확하게 맞다. 삶이란 내가 예견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외도 있는 것이다. 자신이 세상에서 선생님을 했다고 하여 자연속에서도 모두가 그를 '선생님' 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아직 그런 마음을 버리지 못하였는지 새소리마져도 '선생선생선생..' 하고 지저귀는듯 듣는다. 자연속에서는 그가 꼴찌일 수 있다. 선배들에게 배워야 하고 자연에게 배워야 그 속에서 정착하고 그들의 일부가 되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 속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에서 내가 가졌던 지위와 부는 자연속에서 아무가치도 없다. 두발로 흙위에서 서기 까지는 내 온전한 힘과 그들과 적절히 힘의 균형을 맞추어야 하지 내가 가진 어깨의 힘이 아닌것이다. 

'상처없이 어찌 봄이 오고, 상처 없이 어찌 깊은 사랑이 움트겠는지요.'
'처음 이 산에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는 황량하고 스산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입을 꽉 다물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봄을 맞을 때는 너무도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맞은 봄이라 진달래꽃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 번째 봄을 맞을 때는 뒤뜰의 산벚나무를 보며 '절망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듯/ 희망도 무서워할 줄 알' 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번째 봄을 맞으면서는 소생의 힘에 대해 생각했고 고마워 봄 햇살에 절했습니다. 이제 또 봄을 맞으며 나는 다시 고요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무들처럼 자신의 표피를 벗어내며 더 단단해져 가는 방법을 그가 봄을 맞으며 깨달아가는 과정속에 모두 담겨 있다. 그의 글들을 읽다보면 정말 마음이 '청안' 해 진다. '그러나 돌아오면 늘 잘 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산방에 와 있으면 마음이 다시 청안해집니다. 맑고 편안해집니다. 이 숲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나를 부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끄러운 소음이 적당히 길들여진 사람이 적막한 숲에 적응하며 살기란 힘든 것이다. 한 두번 산행을 하거나 산에 갈때는 물론 좋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곳에서 자연과 적응하며 자연에 순응하며 산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하고 힘든 것이다. 하지만 자연속에서 몸은 점점 자연과 닮아가고 자연과 같이 해마다 나이테를 가지듯 편안해져 가는 그의 글 속에서 문득 지금의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며 너무 많은 것을 욕심내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 내 짐을 내려 놓듯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다. 다람쥐가 밤 알 다섯개를 먹기 위하여 찾아 오는 툇마루에 앉아 그와 생강나무꽃차를 한 잔 마시며 많은 대화가 아닌 눈빛만으로도 족할 그런 시간을 나눈 듯한 마음이 맑아지는 산방 이야기는 마음이 때를 씻어 준것처럼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숲 초대장을 받고 바로 달려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아니, 이 녀석들이 진짜, 이렇게 마당을 파 헤쳐 놓으면 어떻게 해,' 하고 잔소리를 칩니다. '누가 여기에다 똥을 싸놓았어.' 하고 주위를 둘러 보지만 아무도 손드는 녀석이 없습니다.' 자연과 내가 살아가는 길은 기생이 아닌 '공생' 이다. 가끔 마당에 와서 똥을 싸 놓아도 밭을 헤집어 놓아도 그녀석들의 터전에 내가 들어와 사는 것이기에 나의 일부를 내어주며 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아야지 그들의 길을 막으며 살 수는 없는 것이다. 헛웃음만 나오는 부분을 읽다가 마당에서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니 웃음이 그치지 않고 나왔다. 누가 손들겠는가. 내 마음을 비워야지. 마음을 비우는 방법을 그들이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 창밖에는 풀풀 눈발이 날리는데 나는 배춧국 한 그릇에 이 저녁이 행복합니다. 다른 이들은 어디서 무얼 먹으며 행복을 찾고 있을까요.' 나 또한 요즘 친정엄마가 주신 시래기로 시래깃국을 끓여 먹으며 국 한사발로 행복을 느끼고 있다. 내가 족하면 세상이 다 내것이 되는 것이지 나의 행복은 남이 가치를 따져 준다고 행복도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모든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처럼 작은 것 하나에도 늘 감사를 잊지 않는 그의 삶을 보며 나의 하루를 되돌아 보게 되었다. 나의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그리고 간접적이지만 그의 숲의 초대되어 '배춧국' 한사발 먹고 나온 듯한 개운함과 포만감이 일시에 몰려오는 행복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더 가을 숲에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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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새 박스/새 봉투 인증샷 찍고 적립금 받자!

파란 봉투에 담겨 온 '스님의 주례사' 외 봉투의 쓰임

 

이달의 포토리뷰에 <민화에 홀리다>가 올라 2만원 마일리지가 들어 오고 책장 사진을 올리는 포스트에서인가 5000원 마일리가 들어온 것이 있었다. 이렇게 뜻하지 않은 마일리지가 생기면 새 책을 구매한다. 그동안 눈 여겨 본 책들을 얼른 카트에 넣었다. 

 

청소년 문학인 <빵과 장미> 그리고 화가 김점선님의 그림의 함께 들어가 있는 법륜 스님의 <스님의 주례사>는 이 가을에 욕심을 비우기에 딱 알맞는 책인듯 하여 카트에 넣었다. 그리고 윤대녕 작가의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작가의 책들은 구매해 놓거나 소장하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아직 기회가 되지 않고 있다. 전작 <대설주의보>도 읽어 본다고 하고 기회를 놓쳤다. 이번에는 꼭 작가의 작품을 맛봐야 할 듯 하다. 

  

  

  

새로 바뀐 <알라딘 파란 봉투>는 참 신선하다. 색상도 그렇고 여러 빛깔의 알라딘 램프와 그외 무늬도 그렇고 이쁘다. 이것저것 맘에 드는데 '알라딘 고객님의 주문입니다. 소중하게 배달해주세요.' 라는문구 때문일까 더욱 맘에 든다. 왠지 내 자신이 소중해 지는것 같으면서 소중한 것이 들어가 있을 것만 같다.  

 

파란 봉투의 쓰임... 인터넷 서점에서 오는 비닐봉투는 그냥 버리기에 아깝다. 난 여러모로 사용을 하는데 강아지들의 집에 겉에 붙여 바람과 한기를 막는데 사용한다. 지금도 붙어 있지만 약간 지저분한듯 하여 사진은 패스. 그리고 소나무 좌탁이 거실 한가운데 있는데 잘 글킨다. 그런 긁힘을 방지하는데 이 봉투는 요긴하게 쓰인다. 과일쟁반이나 그외 것들을 올려 놓으면 정말 좋다. 좌탁에 물도 베어들지 않고... 이 봉투를 모아 놓았다가 다용도로 사용을 하는데 '알라딘 파란봉투' 는 색상때문일까 더욱 이뻐서 자주 사용할 듯 하다.  

먼저 구매한 책은 '파란 상자' 에 담겨 왔는데 세 권의 책은 '파란 봉투' 에 담겨 왔다. 아마도 상자와 봉투의 다른점을 고객이 직접 느껴보게 한 듯 하기도 하고 얼마되지 않는 책은 봉투에 보내도 받는 이에겐 편하고 좋다. 버릴때는 '재활용' 으로 분리해서 버리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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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 길 내는 여자 서명숙의 올레 스피릿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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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 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삼면이 바다이고 국토의 70%가 산이라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우리나라에는 왜 포장길인 찻길만 있고 걷기여행을 하는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같은 길은 없을까? 하며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그런데 나의 그런 생각을 바로 뒤엎는 '제주올레' 길이 열리고 우리나라엔 정말 '걷기 신드롬' 처럼 '걷기여행' '00 올레길' 이 여기저기 만들어지고 나타나고 그야말로 한국인 하면 '빨리빨리' 인데 음식에서도 슬로푸드가 유행이듯이 여행에도 그저 비행기 타고 '슝' 다녀오는 여행이 아닌 차를 타고 '쭉' 다녀오는 여행이 아닌 나의 발걸음 한 걸음으로 국토를 수 놓듯 자연과 이웃과 들꽃과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여행길' 이 생긴 것이다. 걷기 여행의 새로운 지평을 연 (주)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씨의 올레길을 만들기까지의 역사라고 할까 배경이나 그외 올레길을 만들기 위하여 함께 한 사람들과 올레길에 깃든 사람이야기와 올레길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그런 전반적인 것을 읽을 수 있어 '올레길' 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재기재기 와리지 말앙 꼬닥꼬닥 걸으라게(빨리빨리 서둘지 말고 천천히 걸어라).' 라는 제주도 말이란다.
제목의 '꼬닥꼬닥' 이 무슨 뜻일까, 꼬꼬댁도 아니고 무슨 말일지 궁금했는데 '천천히' 라는 말이라니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지만 전혀 새로운 나라의 말처럼 들린다. 그래도 말이 너무 이쁘다. '세상일에 무지한 '퇴역기자'의 무모한 도전이었다.' 고향이 제주였던 그녀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제주에는 자연이 더 아름다운데 하며 생각하여 일을 내게 된 사연, 우리나라는 무조건 길이라면 포장하고 보고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혀 놓고 본다. 그야말로 '하이웨이' 의 길이지 먼지가 폴폴 날리는 흙길을 찾기란 유명한 관광지라면 더욱 찾기 힘들다. 그런 곳에서 다른 힘을 빌리지 않고 흙길과 돌길로 자연이 살아 숨쉬는 길을 찾고 만들어 내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그 모든 이야기를 읽으며 때론 큰소리로 웃고 때론 목울대가 꽉 막히도록 눈물이 솟았다. <테초에 할망이 있었다> 라는 책에서도 제주도 신화속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읽고 웃었는데 제주도는 여자와 바람 돌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제주도의 탄생설화속 사람도 '할망' 이다. 그곳에 여성의 힘으로 '올레길' 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무언가 더 의미있는 일처럼 다가왔다.

'미션 임파서블이야! 우리가 정글 특공대도 아니고!'
제주에 관한 책은 몇 권 있는데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 와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에서 부록처럼 다룬 '제주 올레길 걷기여행' 을 읽고 그외엔 '제주 올레' 는 사 놓기만 하고 읽지 않아 올레길에는 매체를 통해 듣거나 본것 외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내게 올레길을 만든 그녀의 지난 기억들을 되살려 놓은 이야기는 눈물이었고 감동이었다. 8코스에 해병대길이 있다면 13코스에는 '특전사길' 이 있다. '뜻하면 이루어진다' 라는 말처럼 길을 내야 하는데 장비도 사람도 만만하지 않은 참에 딱 200여명의 특전사들이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그녀의 뜻을 이루어주게 되었다. '정말이지 하늘에서 딱 떨어진 것 같아요!.' '원래 특전사는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낙하산 타고요.' 이 부분 읽으며 '빵' 터졌다. 맏는 말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그들에 의해 아름다운 길이 또 하나 열린 것이다.

올레 마스코트 '간세' 탄생기.
'이 조랑말은 서이사장이 지중해보다 아름답다고 자랑하는 제주의 바다색으로 표현하고, 이름은 올레의 콘셉트 '간세다리(게으름뱅이)' 에서 따온 '간세' 로 부를 것이다. 장소를 설명하는 '설명 간세' 에는 안장을 얹겠지만, 방향을 가리키는 '방향 간세' 는 텅빈 그대로 놔둘 것이다. 간세의 여백은 구름과 하늘과 바다와 오름이 채우거나 풀들이 자랄 것이다. 재료는 전적으로 친향경 소재를 이용해서 만들겠다...' 산티아고에는 방향표시를 조개껍데기를 노란색으로 칠해 놓은 것을 보고 넘 이쁘다 했는데 매체에서 제주 올레길에는 방향표시를 해 주는 것이 제주 조랑말에서 따온 파랑색 디자인이 이쁘다 했는데 그 과정이 상세히 나와 있어 마음이 흐뭇해졌다. 뜻이 통하면 혼자의 힘보다는 여러갈래의 물이 보태지듯 물줄기는 점점 굵어지는 것인가보다. 제능기부를 해 주는 사람들도 늘고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도 늘고 아름다운 우리의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아직은 우리 자연을 지키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처럼 거침없는 급물살이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앉아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빠져 들게 했다.

그녀의 밥상에 수저를 얹어 놓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만큼 '제주 올레' 는 우리모두가 바라고 있었던 아니 언젠가는 실행이 되어야 할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필두로 하여 동생들을 비롯한 탐사대원들의 노고도 정말 대단했지만 그녀와 함께 했던 여러 분야의 전문인들 또한 자신의 일을 제처 놓고 와서 올레길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뜻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이젠 불도저식 개발이 아닌 친환경적이고 자연을 생각하는 후손에게 물려주어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일을 해야한다는 것에 일침을 가하는 그녀의 도전은 무모하기 보다는 서로가 살 수 있는 윈-윈 을 해야 한다는 좋은 예로 거듭난 듯 하다. 그녀의 특공대, 대포동의 뭐운 여자들, 올레의 비전에 투자를 한 여자들이 부럽기만 하다. '이제 그만 자요! 우리 근무시간이 넘 길어요. 눈 뜨면 출근, 눈 감으면 퇴근이란 말예요.' 라는 말처럼 그녀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제주의 올레' 가 '우리의 올레' 로 거듭났을 것이다.

그 길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다른 이야기도 속속 들어왔지만 '한비야' 님과의 이야기엔 더 솔깃했다. <그건 사랑이었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책들을 정말 감동적이게 읽었는데 <그건 사랑이었네>가 그 길에서 쓰여졌다니 다시금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어느 해였던가. 아는 언니가 이끌고 간 모임에서 그녀, 한비야와 우연히 만났다. 첫 인상은 한마디로 '별로' 였다(그녀도 내가 '별로' 였다고 회상했다. 너무 딱딱하고 엄숙해 보였나다.)' 정말 읽다가 '빵' 터졌다. 몇 번 다시 읽어도 정말 웃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그런 그녀들이 지금은 서로를 걱정해주는 친구가 되었다. 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얼굴로 와서 올레길을 걷고 추억을 쌓았지만 그들이 마지막 돌아갈때는 모두가 하나 '치유 올레' 를 안고 간다는 것이다. 다리가 불편한 분들도 휠체어를 타고 그 길 위에 서고 이별여행을 온 연인들은 올레길 덕분에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가족간에 틈이 있던 분들은 틈을 없애는 길이며 마음에 병을 얻는 이들은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올레길' 인 듯 하다. 나 또한 딸들과 한번 걸어보고 싶은 길이다. 고등학생인 딸들은 수능에 시달리느라 마음과 몸이 무척이나 지쳐 있다. 대한민국에 학생들은 심신이 피로하지 않은 학생이 없겠지만 그녀들과 힘든 사춘기를 보내고 있고 마음을 터 놓고 진지한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한 듯 하여 수능이 끝나면 한번 걸어보자 하였다. 나의 꿈이지만 꼭 이루고 싶다. 안된다면 남편과 함께 걸어도 좋을 길이다. '맛난 것을 먹을 때 생각나면 사랑하는 사람이란다. 그보다 한 차원 높은 경지는 뭘까? '멋진 경치를 볼 때 생각나는 사람' 이다.'

서로가 윈-윈하는 올레길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차근차근 여행하면 정말 아름다운 곳이 많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여행보다는 '해외파' 들이 많아서 지역경제에도 큰 타격일텐데 '올레' 가 어쩌면 지역경제를 살리는 길일 수도 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를 걷기위해 스페인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제주 올레' 나 그외 지역의 올레길을 걷는 이런 여행을 한다면 지역경제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거기에 사람이 그리운 분들인 할망들에게 '할망 숙소' 를 만들어 정도 나누고 용돈도 보탤 수 있고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 외갓집에 온 듯한 할머니의 푸근함에 여행은 더 색다른 맛으로 기억될 것이다. 블로그등 개인의 웹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어디가 뜨고 나면 한동안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역에서도 또한 발빠르게 대처하여 좀더 신경을 써서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 들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준다면 서로가 사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길을 만들어 놓기만 하면 다가 아니다. 관리하고 앞으로 더 좋은 길로 거듭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게 관리해야 하고 정말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한가지 한가지 풀어 나가는 그녀만의 방식이 너무 좋다. 혼자서 좋은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하고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올레길' 을 보듬고 쓰다듬는 그녀가 너무 대견하다. 올레길을 찾는 여행객중에 '여자가 51%' 라고 한다. ' 길을 나서기 전에 여자는 남자보다 두려움도, 망설임도, 걱정도 많다. 그러나 정작 발걸음을 떼어 놓는 순간, 여자들은 낯선 여행지 낯선 길에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상황에 놀라우리만치 잘 적응한다. 계급장과 원장의 힘에 기대지 않고, 인간적으로 소통하는 데 익숙한 여자들은 혼자서도 밥을 잘 먹고, 길동무도 빨리 사귄다. 그대, 떠나기를 두려워 말라. 바람에 걸리지 않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떠나라. 바람이 그대의 친구가 되고, 들꽃이 그대의 연인이 되어주리니. 떠난 자만이 목적지에 이르는 법이다.' 라는 말처럼 이 책을 읽고나면 여자인 나, 빨리 가방을 싸서 떠나고 싶다. 그 길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다. 그리고 강인한 제주 할망도 만나고 저마다 추억을 간직한 이들도 만나고 나만의 추억도 만들어 오고 싶다. 그녀 혼자가 아닌, 올레길을 함께 하려는 이들이 있고 그 길을 지키고 보듬으려는 열린 마음을 가진 이들이 있기에 올레길은 앞으로 우리만의 길이 아닌 세계의 길이 될 듯 하다. 올레길로 인해 제주의 자연이 새롭게 느껴지고 새롭게 다가오는, 우리가 잊고 있던 아니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 하나 되새겨질 때가 아닌가 한다. 너무도 좋은 글들과 가슴 뭉클한 사연들이나 일들이 많아 접어 놓고 밑줄 그어 놓은 부분들이 많다. 한자리에 앉아 잡는 순간부터 모두 읽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기가 아쉬웠던 책이다. 내가 지금 떠나지 못하지만 책으로 충분히 다녀온듯한 간접경험을 정말 충분히 하게 해주고 삶이란 것을 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 책이다. 더불어 '제주의 허파인 곶자왈' 등 올레길로 인하여 제주의 자연이 더 지켜지고 더이상 훼손이라는 것에서 멀어지길 바라며 전작인 <제주 걷기 여행>을 읽어야 할 듯 하다. 그녀를 보지 않았어도 그녀를 경험하지 않았어도 '이심전심' 처럼 그녀를 훔뻑 느끼고 푸근한 그녀와 한번 올레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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