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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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길을 가다가 너무도 이쁘게 핀 나팔꽃이 있어 나팔꽃씨를 받아 울집 행운목 화분에 뿌려 두었다.그리곤 잊고 있었는데 싹이 트고 벤자민을 감고 올라가 꽃이 하나 둘 피더니 급기야 씨도 맺고 다른 화분에서도 나팔꽃이 자라는 것이다.그렇게 우연하게 우리집에 온 나팔꽃씨는 그해 뒤로 십여년이 넘게 울집 화분 어딘선가 잊을만 하면 하나 둘 올라와 싹을 틔우고 꽃을 보여준다.고층에 위치한 관계로 실외기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서 핀 나팔꽃이 씨를 맺어 떨어진 것인지 아파트 화단에도 가끔 울집 나팔꽃이 '날 좀 봐줘!' 하고 피기도 한다. 푸른 빛의 울집 나팔꽃,올해는 주인장의 게으름 때문인지 아직 그 싹을 못 보고 있지만 잊을만 하면 언젠가는 다시 핀다.

 

내가 알고 있는 나팔꽃은 푸른빛 아니면 보라색계열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노란 나팔꽃' 이 있다면 어떨까? 노란 나팔꽃이 가진 특성을 뺀다면 색으로는 정말 이쁠 듯 하다. 울타리마다 노란 나팔꽃이 핀 것을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런데 '노란 나팔꽃' 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길래 무서운 금단의 꽃,몽환화라 불릴까? 소설은 두개의 프롤로그만으로도 큰 기대감을 불러 일으켜 빨리 그 결말을 맛보고 싶게 만든다. 첫번째 프롤로그에서는 출근시간에 갑자기 일본도를 들고 뛰어 나온 남자의 칼에 평범한 시민들이 죽음을 맞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리고 두번째 프롤로그에서는 매 해 '나팔꽃 축제'를 구경가는 소타네 가족,하지만 소타는 나팔꽃에 흥미도 없고 가기도 싫다. 가기 싫은 축제 구경이라 그런지 양말도 신고 오지 않아 발에 상처가 나게 되고 그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있다가 한소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짧은 첫사랑을 경험하게 된다.그런데 왜 갑자기 그녀는 연락을 끊은 것일까? 아버지의 협박이 있었을까? 아님 다른 이유에서일까?

 

"앞으로는 조심하거라. 세상에는 다른 사람이 불행에 빠지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는 것 같구나.슬픈 얘기지만."

 

아키야마 리노는 거리를 걷다가 그의 사촌 '나오토'가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왜 갑자기 그가 죽어야 하는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나오토의 가족도 그와 함께 한 멤버들도 그의 죽음을 둘러 싼 이유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미궁속으로 빠져든다.그리고 이어진 죽음,리노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살해를 당하게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집안에 정원에서 꽃을 가꾸는 취미로 살아가고 계신 할아버지,누가 무슨 이유로 그런 할아버지를 죽게 만들었을까? 아키야마 슈지의 죽음은 아무리 조사를 해도 그 끝을 알수 없는 길로 치닫고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는다.그러다 리노가 할아버지 정원에서 화분 하나가 없어진 것을 뒤늦게 발견하게 된다. 할아버지가 '노란 꽃' 이 피었다고 좋아했지만 블로그에는 올리지 못하게 했던 화분, 노란 꽃에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것일까? 할아버지는 연구소에서 이런류의 연구를 하던 분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식물'이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이란 이유가 되지만 노란 꽃의 정체 또한 오리무중이다.

 

슈지 노인의 죽음을 조사하는 하야세,그는 불륜으로 인해 아내와 아들 유카와 떨어져 홀로 지내고 있는데 슈지 노인이 아들의 억울함을 증명해준 적이 있어 그의 죽음에 대한 열쇠를 꼭 풀어야만 한다. 그의 아들은 다른이가 아닌 아빠가 살해범을 잡기를 원한다. 그리고 '노란 꽃' 의 열쇠를 찾으러 다니는 또 한사람 소타의 형 요스케,그는 소타와는 배다른 형이기도 하지만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형으로 이어진 가업이나 마찬가지인 경찰의 피와 무언가 집안의 비밀을 소타만은 알지 못하게 하며 그만의 조사에 나선다.모두에게 제외 된 인물과 같은 소타와 리노는 한 팀이 되어 그들만의 추리로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조사에 들어간다.정말 노란 꽃이 할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그리고 나오토가 죽은 후에 그룹에 멤버가 된 키보드 '이바 다카미' 그녀는 왜 또 사라진 것이며 살인사건에 그녀는 무슨 이유로 얽힌 것일까.

 

이 소설은 십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왔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에 대한 반감이 소타의 자신의 전공에 대한 상실감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올림픽 후보 선수로까지 나갈 정도의 월등한 수영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감을 잃어 자신의 길을 잃고 방황하는 리노를 보노라면 현재의 젊은이들을 보는 듯 하여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소타의 가족의 가족의 비밀과 아픔을 소타에게만은 전해주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한다.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아픔을 감싸고 나가야 하는 그 시간 속에서 혼자 외톨이처럼 느껴야 했던 소타의 방황은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고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비밀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더 단단해진다.그런가하면 비밀의 여인처럼 숨겨져 있던 '다카미' 또한 가족의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길에 흔들림없이 잘 걸어가고 있다.

 

'생존을 계속하면 허락받은 것일까.있는 것은 있는 대로 둔다는 게 내 생각이야. 거꾸로 말하면 사라지는 것은 사라지도록 둔다는 거지. 어떤 씨앗이 사라졌다는 것은 사라질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야.노란 나팔꽃이 사라진 것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야.'

 

누구나 힘들면 어디에 기대고 의지하고 싶어진다.그것이 자신을 헤치는 약물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순간의 쾌락으로 자신의 고통을 잊고 삶의 무게를 덜어내려는 이들이 점점 약물에 빠져 들고 자신까지 헤하는 이야기를 가끔 접하기도 하는데 그런 이들에게 몽환화는 음지의 꽃이라 할 수 있다.노란 나팔꽃에 얽힌 역사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에도시대에 가게 되고 그 시간에 얽힌 많은 이들의 삶과 죽음이 씨실과 날실로 얽혀 재밋는 그림을 그린다. 서로의 조사 방법은 달랐지만 노란 나팔꽃에 얽혀 있는 이들의 삶을 꿰뚫고 들어가다 만난 진실과 거짓처럼 히가시노 게이고는 또 한번 인간 내면의 그 깊은 바닥을 긇으며 삶의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지,각자의 무게가 다 다른 사람의 무게를 스스로의 힘으로 지고 나가며 이겨 나갈 것을 말하고 있다.버겁다고 내려 놓고 포기 하거나 멈추기엔 아깝고 살아 볼 가치가 있는 삶이다.

 

소설에서 그의 전공이나 취미가 식물학과 어우러져 멋진 그림을 그려낸다.두개의 프롤로그가 왜 필요했는지 하나 하나 장치를 풀어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약물에 의지해 자신을 해하고 타인까지 해하게 된 사회악과 같은 사건과 우연처럼 만났던 인연이 필연처럼 나팔꽃 때문에 다시 만나 지난 날 풀지 못했던 오해의 시간을 원점으로 돌리 듯 하지만 그들의 운명은 서로의 무게만큼 다시 간격을 둔다.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의 작가라 호불호가 나뉘는데 자신의 특기와 전공을 잘 살리면서도 끈기가 있는 작가여서 작품마다 읽게 된다.이 작품 또한 홀로 사는 노인인 아키야마 슈지의 죽음은 어떻게 보면 단순한 강도 살인사건으로 볼 수 있는데 노란 나팔꽃이라는 식물이 얽혀 들면서 역사적이면서 소타의 전공이 더해져 원전까지 더해지니 이야기는 더 풍성해지고 노란 꽃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하여 경찰과 요스케 그리고 소타와 리노와 비밀의 여인 다카미까지 모두가 함께 뛰고 있어 잠시도 쉴 틈 없이 읽게 된다.자살사건과 살인사건,노란 꽃의 역사와 비밀 그리고 삶의 무게와 진실이 나팔꽃 덩굴처럼 얽혀 몽환화처럼 피어난다.지금 삶의 무게가 무거워도 기꺼이 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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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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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어느 작은 틈은 검푸른 어둠에 싸여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러므로 비밀이다.' 라는 띠지의 문구가 소설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프롤로그의 ' "소소한 풍경"의 화자는 ㄱ이다' 라는 첫 문장에 의문부호를 하나 더 추가하게 된다.'ㄴ과 ㄷ의 이야기를 화자인 ㄱ에게서 듣는다.' 등장인물이 남자1호,그리고 집주인 ㄱ과 더플백을 메고 온 남자 ㄴ 그리고 연변에서 온 아가씨인가 했는데 탈북녀인 ㄷ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가가 화자가 되기도 하고 데스마스크의 주인인 ㄴ이 그리고 ㄱ이 이끌어 가기도 하는 독특한 구성의 소설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마다 선호하는 플롯이나 트릭이 있고 이번 소설은 어떻게 풀어냈을까 궁금한 것이 독자의 몫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정말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선인장은 잎이 가시거든요.전 가시가 좋아요.그래서 선인장을 기르지요."

 

저자의 소설은 <은교> 이후로는 오래간만이다.<은교>라는 소설도 놀라웠는데 이 소설 또한 놀랍다고 해야하나.저자의 소설로는 <촐라체>나 <나마스테>가 오래도록 여운이 남아 다른 소설들이 조금 덜 들어 오기도 했는데 <소소한 풍경>의 먹먹함에 또 한참 그 기억속에 머물 듯 하다. 아픔을 가진 사람들,아니 결핍을 가진 자들의 사랑은 어떨까? 사랑은 사랑으로 치유된다고 했던가. 소설속에 ㄱ,ㄴ,ㄷ은 모두 결핍을 가진 이들이다. 등장인물 ㄱ은 어린시절 오빠의 죽음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대학 첫 수업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과 동거로 이어졌지만 그야말로 동거로 끝난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부모님이 포도밭을 일구시던 소소로 돌아간다. 부모님 또한 오빠처럼 그렇게 일찍 그녀의 곁을 떠나고 그녀 곁엔 아무도 없다.그런 그의 집에 삽으로 우물을 파겠다는 ㄴ이 오고 그 뒤를 이어 ㄷ이 무거운 가방을 이끌고 들어오게 된다.모두 아픔을 간직하고 마음 한구석 가족에게 혹은 사람에게 사랑의 결핍을 가진 이들이다.그들이 소소에서 한덩이리가 되어 서로 사랑하고 사랑 받는 자가 되어 그들만의 비밀을 간직하며 그야말로 소소하게 살아가는 풍경을 자아낸다.

 

그런데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가 등장하게 되고 그들이 이루어냈던 덩어리가 결코 소소하지 않음이 드러나게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어느 시인의 싯귀처럼 그들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그저 평범함에 그쳤던 이들의 삶이 하나 하나 부표처럼 물 위로 떠 올라 데스마스크 속에 숨겨진 자신의 이름이,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 한다.어떻게 보면 그들의 동거는 비정상적이며 한 캔버스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재료들 같은데 왜 그들은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서로의 결핍을 채웠던 것일까? 오빠의 죽음에 이은 부모님의 죽음으로 세상에 홀로 떨어지게 된 ㄱ의 결핍을 채워주지 못한 남자1호,ㄱ은 남자1호에게 어제 신다 버리는 운동화보다 못한 삶일지 모르지만 ㄴ에게는 더없이 공감을 나누고 마음을 채워줄 수 있으며 눈빛만 봐도 아니 쳐다보지 않아도 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느낄 정도의 서로 거울과 같은 존재가 된다.그들 사이에 끼어 든 ㄷ이라는 존재는 그들을 밀어내기 보다는 사이에 끼어 함께 뭉쳐 덩어리로 거듭난다.정말 이상한 조합이지만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나르시시즘에 빠지듯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듯 하나의 덩어리 속에 위험하게 빨려 들어간다.

 

'무슨 다급한 일이 있었는지 교문 쪽을 향해 뛰다시피 걷는 남자의 뒷모습은 햇빛 속이라서,그냥 흰빛이다. 오빠의 유골처럼.'

 

ㄱ에게는 ㄴ혹은 ㄷ이 사랑의 마중물과 같은 존재라면 ㄴ에게는 ㄱ이 혹은 ㄷ이 마중물과 같은 존재이고 ㄷ에게는 ㄱ과 ㄴ이 또한 마중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 서로의 우물 속의 깊이 깊이 빠져 들게 된다. 그들의 덩어리가 위험하다고 어느 순간 터져버릴 것만 같은 풍선과 같은 느낌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점점 알 수 없는 마법의 나라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여행하게 토끼를 찾아 여행하는 것처럼 그들의 비밀의 빗장을 자꾸 풀어봐야 할 것만 같은 느낌 속에서 허우적 거리게 된다.그렇다면 '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의 주인은 살해 된 것일까? 아님 자살일까? 아니 살아 있었을까? 왜 그의 죽음을 확인도 하지 않고 우물을 메웠어야 했을까? 소설의 시작은 장르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연신 '데스마스크'에 집중하게 되어 범인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ㄴ을 죽음으로 몰고 간 범인이 있을까.

 

'손가락 하나가 버튼을 눌러 세탁기는 다시 돌아가고,손가락 하나가 버튼을 눌러 나 역시 우물 속 숨겨진 물길 따라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세탁기 안으로 흘러내려갔답니다. 오랫동안 꿈꾸던 그 세례의 길로요.'

 

문득 결핍의 끝은 어디일까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처참하도록 인내해야 했던 그들의 결핍이 한순간 소소에서 사랑이라는 사랑 받을 수 있다는 존재로 거듭나면서 순간 어둠속에 있을 것만 같은 '비밀의 길'을 찾아 떠나야 했던 슬픈 나르시스 같은 삶 그리고 죽음,그가 남긴 마지막 자신의 존재는 모두의 삶을 다시금 재조명 해보게 만든다.풍경 속에는 아름다운 삶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도 사랑도 죽음도 존재한다는 것을,그것이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인것을 보여주는 듯 하여 허망하면서 먹먹하다.유독 내 자신에게만 닥친 것과 같은 깊은 슬픔,그러나 어느 삶에나 다 존재한다는 것을.ㄱ의 인생에도 ㄴ의 삶에도 그리고 ㄷ의 아름답고 청아한 웃음 속에도 존재한다.끄집어내지 못하고 우물 속에 갇혀 있는 슬픔일 뿐이지 누구에게나 한줄기 결핍과 슬픔의 우물은 존재한다.그것을 퍼 내거나 메우는 것은 자신의 문제이다.과거의 아픔으로 얼룩진 상흔을 꾹꾹 밟고 일어나 훌훌 털고 전진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다. 지금 우물 속 자신의 모습을 향해 뛰어 들지 못하는 것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을 만드는 것과 같은 아직 퍼내지 않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ㄴ의 죽음을 논하기 보다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ㄱ의 행보에 우물안을 벗어나 파란 하늘아래 놓인 것과 같은 개운함으로 소설을 놓을 수 있음이 다행이다.

 

소설 <은교>도 파켝이었다면 파격인데 <소소한 풍경> 또한 파격이라 할 수 있을 듯 한 삶과 죽음이다.읽고 잊어버리면 그만인데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처럼 어느 순간 불쑥 떠오를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 좀더 깊게 빠져들면 선인장의 가시에 찔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소설 <나마스테>에서는 '세상이 화안해져요'라는 문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데 이 소설에서는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많다. "나는 불완전한 인간이에요!" '고독은 정적의 알집이다.' '방문하기엔 좋지만 체재하기엔 불편한 장소가 정적이다.''그해 겨울, 플롯에서 비어져 나온 또 다른 풍경이다.' '육체란 본래 멍청해서 그 어떤 영광도 알아보지 못한다.' 우물에는 비밀이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그만의 한문장이 따로 떨어져 나와 좀더 깊이 있는 느낌을 준다.그리고 감성의 골을 후벼판다.그의 소설에 좀더 독하게 달려들라는 말처럼 그의 언어는 긴 메아리가 되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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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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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강경을 소개하는 여행프로에 가끔 나오시는 것을 몇 번 본 듯 하다.그것이 아마도 <소소한 풍경>을 구상하는 그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사랑하며 사랑 받는 자만 있는 소소의 이야기,그 비밀의 문의 빗장을 풀고 나니 허망하고 먹먹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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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vs. 알렉스 우즈
개빈 익스텐스 지음, 진영인 옮김 / 책세상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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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세간을 떠들썩 하게 만든 '진주 운석' 사건,그로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운석에 대한 것들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한동안 진주는 운석사냥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그런가하면 운석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또한 이목을 끌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우주에서 떨어진 스톤로또에 대한 사람들이 기대치가 운석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주에서 떨어지는 운석에 그것도 자신의 욕실에서 머리에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물론 운석을 발견할 확률보다 더 불가능한 확률일 것이며 이런 경우가 정말 존재할까 싶은 그런일이 소설 속에 그려진다.

 

욕실 천장을 뚫고 날아든 운석을 맞기 전에는 '알렉스 우즈'는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그렇지 않다면 평범하지 않은 소년이었다. 이목이 그렇다는 것이다.그의 엄마는 영혼에서 보내는 메세지를 해석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타로점을 보는 일로 생계를 꾸려가며 혼자 힘으로 우즈를 키우고 있다.그에겐 생물학적인 아버지는 거론된 적이 없기도 하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그는 고양이 루시퍼를 언니처럼 여기고 살고 있고 집안에서 생식이 가능한 것은 고양이 루시뿐이다.그 속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던 소년이 열 살에 욕실천정을 뚫고 날아든 운석에 맞으면서 그의 삶은 180도 변했다고 볼 수 있다. 이주일여 코마 상태에 빠져 있던 그는 천국인지 현세인지 모를 세상을 향해 눈을 뜬다.그것이 운석을 머리에 맞고 이주일이 지나고 난 후이기도 하지만 그의 머리엔 영광의 상흔이 남게 되었다.그로 인해 간질을 앓게 되고 학교에서는 왕따아닌 왕따와 같은 삶을 살게 되기도 하고 간질로 인해 학교를 쉬게 되면서 책과 친하게 되고 과학과 의학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러다 다시 학교에 가게 되지만 그의 무력함은 나아지지 않고 축구부 친구들에게 늘 표적이 되어 힘겨운 학교생활을 이어가던 중에 짖꿎은 축구부친구들의 장난에 피터슨이라는 사람의 온실에 숨어들게 되고 월남전 참전용사이며 숨어 살 듯 하는 피터슨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다.

 

"그래,뇌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한테 그 사람만의 우주를 만들어주지. 우리가 아는 것, 보고 만지는 것, 느끼고 기억하는 것 모두가 뇌 안에 담겨 있어. 말하자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우리한테 만들어준 거야. 뇌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거야.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은 무섭다고 하지.하지만 오히려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까."

 

머리에 운석을 맞고도 살아 남았으니 우즈는 그야말로 지역의 명물중에 주요인물이라 할 수 있다. 외톨이 생활을 하는 피터슨마져 '알렉스 우즈'를 알 정도로 지역에서 그의 사고는 유명세를 타고도 남았다.그런 그가 피터슨의 온실에 뛰어들어 유리도 깨고 온실을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발뺌을 한다. 이 소년의 말을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우즈의 엄마는 피터슨에게 우즈의 도덕적이 교육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켜달라고 한다.용서의 의미에서 말이다.그렇게 하여 피터슨과 우즈의 만남은 우연이 필연인 것처럼 연결고리가 이어지게 되었다. 피터슨으로 말할것 같으면 불행이란 불행은 모두 그에게 수렴한듯이 인생 자체가 불행과 같은 사나이다. 아내도 몇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자식도 없다. 월남전으로 입은 피해로 인해 한쪽 다리마져 정상이 아니다.그런 그는 <커트 보네거트>라는 작가를 좋아해서 그가 유기견센터에서 데려 온 개의 이름마져 '커트'다. 커트가 유일한 그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는 처지에 우즈가 그의 삶에 끼어 든 것이다.월남전에 참전했기 때문에 그는 평화주의자이며 그의 힘이 필요한 곳에 편지를 써서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피터슨이 괴팍한 은둔자라고 한다면 우즈는 운석에 맞고 뇌수술을 거친 후에 사람들은 그가 무언가 모자란 듯이 바라본다.하지만 가끔 잠깐씩 일어나는 간질증세만 빼고 그는 지극히 정상적이며 또래보다 조금 높은 독서열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운석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이기도 할 것이다. 운석이 아니었다면 과학과 우주 의학에 관심이 생겼을까.평범한 십대처럼 그도 평범한 십대로서의 관심에 이끌렸을 것이다.그런 그가 운둔자 피터슨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삶은 많이 변하게 되고 그도 <커트 보네거트>라는 작가에 빠져 '커트 보네거트 세습 교회'라는 독서회도 만들게 되고 불치병에 결려 '자살' 혹은 '안락사'를 하려는 피터슨을 도와 그의 안락사를 도와주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미 비포 유>라는 소설을 생각나게 했다.그 소설 또한 평범한 삶을 살던 젊은 사업가가 뜻 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전신마비가 되면서 안락사를 선택하지만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지만 그를 도와준 간호조무사를 통해 안락사를 하게 된다. 자신의 삶이고 죽음인데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은 당사자가 아닌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안락사를 옹호하는 소설처럼 비취질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이나 <미 비포 유>나 읽다보면 당사자의 선택을 받아 들이고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운석이 집 천장을 부수고 들어오는 건 날마다 있는 일은 아니지."

 

처음엔 운석에 맞은 평범한 십대 소년의 이야기가 그려져서 평범한 아니 환상문학인가 했는데 심오한 뜻을 가진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작가의 처녀작이라는 것에 놀랐다.그런가하면 진주운석 사건이 있었기에 좀더 이야기에 더 빠져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소년 또한 자신에 머리에 떨어진 '금속돌'을 팔았다면 로또를 맞은 것처럼 거금을 손에 쥐어 현재의 삶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하지만 소년은 자신의 운석이 놓여야 할 자리를 잘 알고 박물관에 기증을 한다.자신만의 운석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운석에 맞아 뇌수술을 받고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그는 그만의 긍정의 힘으로 독서에 빠져들게 되고 그의 삶은 우물안과 같은 지구가 아닌 우주를 생각하게 되고 삶과 죽음이 그 끝을 알 수는 없지만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고 시작된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인간의 삶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우주의 삶에서 탄생이 있고 그 끝이 있다. 그렇게 하여 운석이 자신에게 왔듯이 은둔자 피터슨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별 볼일 없는 삶일지 모르지만 그에게 맞는 삶이 있고 죽음이 있음을 죽음을 겪어 본 소년은 알게 된다. 너무 이른 나이에 경험한 뜻하지 않은 생과 사의 진정성에 피터슨이 선택한 죽음 또한 옳다고 보는 소년 우즈,그의 삶과 우주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며 저자 때문에 알지 못했던 작가를 한 명 또 알게 되어 그의 작품을 검색해 보고 다음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커트 보네거트> 소설속에서처럼 그의 작품을 가지고 독서회 정도는 가지 않겠지만 한번 읽는다면 우즈처럼 빠져들게 될까? 어떻게 보면 우즈의 엄마가 보는 타로점처럼 우연처럼 뽑아 든 카드가 마법의 세계로 이끌 듯 빠져들며 소설에 집중하게 만든다. 처음 뽑아 든 카드게 불행이었지만 그 끝은 결코 불행이라 할 수 없는 심오한 감동과 여운을 안겨주면서 저자를 기억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과 <미 비포 유>를 함께 읽어보면 더 좋겠고 안락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피터슨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생은 책임질 수 없지만 죽음이란 그와는 달라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읽으며 한동안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던 시간을 뒤로 하며 갑자기 내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고 내 삶은 바른 길로 잘 가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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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외인구단 - 곧 죽어도 풀스윙, 힘 없어도 돌직구
류미 지음 / 생각학교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흔히 야구를 인생과 같다고 한다. 9회말 2아웃에야 비로소 다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야구,인생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무언가 다 끝난 듯 하다가고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게 인생이기도 하다. 끝나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야구도 인생도 정말 결과를 미리 짐작할 수 없다. 그렇다고 청소년기 그야말로 사고를 치고 문제아 취급을 받는 아이들을 끝까지 문제아로 낙인을 찍어야 할까.아직 9회말 2아웃이 오지도 않았는데 그 아이들을 어른들의 잣대로 그냥 열외시킬 것인가.감독도 아이들도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저자도 나름의 아픔을 간직한 '외인구단'이다. 그들의 희망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애들한테 더 좋지 않을까요. 각기 다양한 사연을 가진 학생들이 참여하거든요. 선생님도 이런 아픔이 있는데 너희들을 만나기 위해 멀리서 온다. 이러면 우리 친구들도 더 좋아할 것 같은데요."

 

야구에 한번쯤 빠져 보았던 이들이 많을 것이고 지금도 야구 시즌에는 여기저기서 한동안 출렁출렁한다.나 또한 여고시절에는 '고교야구'에 빠졌었고 그리고 프로야구에 한참 빠져 들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렇다고 무척이나 야구에 대하여 모든 것을 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배트에 공이 맞으며 나는 '딱' 하는 소리가 좋아서 그냥 야구에 빠져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 친구들과 동대문 야구장을 가게 되었고 그 느낌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 기억의 편린 속에서 야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한다.

 

내가 너희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야구가 아니라 인생이야. 내가 야구를 시작한 게 중학생 때야. 프로야구 선수 중에 중학생 때 시작해서 프로 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아냐. 내가 말하려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야구에서 그런 근성을 배우란 말이야. 근성을 배우는 데 야구만 한 게 없어. 나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야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야구 하면서 다 같이 어울리는 법도 배우게 되지. 학생도..."

 

그리고 때맞추어 나온 영화 '외인구단' 을 보러 친구와 함께 극장을 찾았다. 그때는 멀티플렉스가 아니라 정말 극장이라 할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외인구단이라는 영화를 보며 후끈한 열기 속에서 한동안 친구와 '까치와 엄지'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그래서였을까 저자가 풀어내는 야구 이야기는 쉽고 그리고 점점 '푸르미르야구단'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의사인 저자는 아이들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아이들은 그런 것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보다는 어른들의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어른들의 틀에 아이들을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어제까지의 일들은 전부 괜찮단다.모든 것을 해도 다 괜찮아.다만 자신을 죽이지만 말아."

 

왜 이 책을 읽으며 '주홍글씨'가 생각이 났을까? 스스로 가슴에 찍은 낙인을 떼어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홍글씨를 달아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이들은 야구로 하나가 되어 점점 성장을 하고 변화를 하여 나간다.그것이 비단 아이들의 변화뿐일까? 아무것도 모르고 서로 어쩌면 서로 각자의 개성이 뛰어나 하나로 뭉쳐질 것 같지 않던 아이들이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책을 읽는 순간에도 야구장의 함성은 전파를 타고 나오고 야구의 계절이 돌아 왔음을 실감하며  한번 야구장을 찾아 봐야겠다는 옆지기의 말을 좀더 현실감 있게 받아 들이게 된다. 구회말 투 아웃,아직 그 순간이 아이들에게는 오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미래를 미리 어른들의 잣대로 낙인 찍듯이 결정하지 말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아직 해야할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것처럼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하나가 될 수 있을까에서 우리도 뭉치면 하나가 될 수 있다.아니 희망을 일구어낼 수 있다는,그들의 희망을 읽은 듯 하여 기분이 좋다. 우리집은 중학교가 고등학교가 앞 뒤로 있다. 저녁시간이면 중학교 빈 운동장에 고등학생들이 저녁을 얼른 먹고 모여 힘차게 축구를 한다. 그 젊음이 좋아 난 한참동안 창을 열고 그들의 모습을 내려다 볼 때가 있다. 경쟁을 벗어 버리고 모두가 축구라는 운동 하나로 뭉쳐 열기를 내뿜으며 힘차게 뛰는 모습을 보면 참 좋다. 승부라기 보다는 그들은 운동장 안에서 교실안에서 배우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충전하고 있는 듯 하여 뿌듯하기도 하다.야구하나로 자존감을 회복하는 아이들,그들에게서 희망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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