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너무도 이쁘게 핀 나팔꽃이 있어 나팔꽃씨를 받아 울집 행운목 화분에 뿌려 두었다.그리곤 잊고 있었는데 싹이 트고 벤자민을 감고 올라가 꽃이 하나 둘 피더니 급기야 씨도 맺고 다른 화분에서도 나팔꽃이 자라는 것이다.그렇게 우연하게 우리집에 온 나팔꽃씨는 그해 뒤로 십여년이 넘게 울집 화분 어딘선가 잊을만 하면 하나 둘 올라와 싹을 틔우고 꽃을 보여준다.고층에 위치한 관계로 실외기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서 핀 나팔꽃이 씨를 맺어 떨어진 것인지 아파트 화단에도 가끔 울집 나팔꽃이 '날 좀 봐줘!' 하고 피기도 한다. 푸른 빛의 울집 나팔꽃,올해는 주인장의 게으름 때문인지 아직 그 싹을 못 보고 있지만 잊을만 하면 언젠가는 다시 핀다.

 

내가 알고 있는 나팔꽃은 푸른빛 아니면 보라색계열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노란 나팔꽃' 이 있다면 어떨까? 노란 나팔꽃이 가진 특성을 뺀다면 색으로는 정말 이쁠 듯 하다. 울타리마다 노란 나팔꽃이 핀 것을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런데 '노란 나팔꽃' 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길래 무서운 금단의 꽃,몽환화라 불릴까? 소설은 두개의 프롤로그만으로도 큰 기대감을 불러 일으켜 빨리 그 결말을 맛보고 싶게 만든다. 첫번째 프롤로그에서는 출근시간에 갑자기 일본도를 들고 뛰어 나온 남자의 칼에 평범한 시민들이 죽음을 맞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리고 두번째 프롤로그에서는 매 해 '나팔꽃 축제'를 구경가는 소타네 가족,하지만 소타는 나팔꽃에 흥미도 없고 가기도 싫다. 가기 싫은 축제 구경이라 그런지 양말도 신고 오지 않아 발에 상처가 나게 되고 그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있다가 한소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짧은 첫사랑을 경험하게 된다.그런데 왜 갑자기 그녀는 연락을 끊은 것일까? 아버지의 협박이 있었을까? 아님 다른 이유에서일까?

 

"앞으로는 조심하거라. 세상에는 다른 사람이 불행에 빠지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는 것 같구나.슬픈 얘기지만."

 

아키야마 리노는 거리를 걷다가 그의 사촌 '나오토'가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왜 갑자기 그가 죽어야 하는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나오토의 가족도 그와 함께 한 멤버들도 그의 죽음을 둘러 싼 이유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미궁속으로 빠져든다.그리고 이어진 죽음,리노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살해를 당하게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집안에 정원에서 꽃을 가꾸는 취미로 살아가고 계신 할아버지,누가 무슨 이유로 그런 할아버지를 죽게 만들었을까? 아키야마 슈지의 죽음은 아무리 조사를 해도 그 끝을 알수 없는 길로 치닫고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는다.그러다 리노가 할아버지 정원에서 화분 하나가 없어진 것을 뒤늦게 발견하게 된다. 할아버지가 '노란 꽃' 이 피었다고 좋아했지만 블로그에는 올리지 못하게 했던 화분, 노란 꽃에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것일까? 할아버지는 연구소에서 이런류의 연구를 하던 분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식물'이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이란 이유가 되지만 노란 꽃의 정체 또한 오리무중이다.

 

슈지 노인의 죽음을 조사하는 하야세,그는 불륜으로 인해 아내와 아들 유카와 떨어져 홀로 지내고 있는데 슈지 노인이 아들의 억울함을 증명해준 적이 있어 그의 죽음에 대한 열쇠를 꼭 풀어야만 한다. 그의 아들은 다른이가 아닌 아빠가 살해범을 잡기를 원한다. 그리고 '노란 꽃' 의 열쇠를 찾으러 다니는 또 한사람 소타의 형 요스케,그는 소타와는 배다른 형이기도 하지만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형으로 이어진 가업이나 마찬가지인 경찰의 피와 무언가 집안의 비밀을 소타만은 알지 못하게 하며 그만의 조사에 나선다.모두에게 제외 된 인물과 같은 소타와 리노는 한 팀이 되어 그들만의 추리로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조사에 들어간다.정말 노란 꽃이 할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그리고 나오토가 죽은 후에 그룹에 멤버가 된 키보드 '이바 다카미' 그녀는 왜 또 사라진 것이며 살인사건에 그녀는 무슨 이유로 얽힌 것일까.

 

이 소설은 십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왔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에 대한 반감이 소타의 자신의 전공에 대한 상실감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올림픽 후보 선수로까지 나갈 정도의 월등한 수영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감을 잃어 자신의 길을 잃고 방황하는 리노를 보노라면 현재의 젊은이들을 보는 듯 하여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소타의 가족의 가족의 비밀과 아픔을 소타에게만은 전해주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한다.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아픔을 감싸고 나가야 하는 그 시간 속에서 혼자 외톨이처럼 느껴야 했던 소타의 방황은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고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비밀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더 단단해진다.그런가하면 비밀의 여인처럼 숨겨져 있던 '다카미' 또한 가족의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길에 흔들림없이 잘 걸어가고 있다.

 

'생존을 계속하면 허락받은 것일까.있는 것은 있는 대로 둔다는 게 내 생각이야. 거꾸로 말하면 사라지는 것은 사라지도록 둔다는 거지. 어떤 씨앗이 사라졌다는 것은 사라질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야.노란 나팔꽃이 사라진 것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야.'

 

누구나 힘들면 어디에 기대고 의지하고 싶어진다.그것이 자신을 헤치는 약물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순간의 쾌락으로 자신의 고통을 잊고 삶의 무게를 덜어내려는 이들이 점점 약물에 빠져 들고 자신까지 헤하는 이야기를 가끔 접하기도 하는데 그런 이들에게 몽환화는 음지의 꽃이라 할 수 있다.노란 나팔꽃에 얽힌 역사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에도시대에 가게 되고 그 시간에 얽힌 많은 이들의 삶과 죽음이 씨실과 날실로 얽혀 재밋는 그림을 그린다. 서로의 조사 방법은 달랐지만 노란 나팔꽃에 얽혀 있는 이들의 삶을 꿰뚫고 들어가다 만난 진실과 거짓처럼 히가시노 게이고는 또 한번 인간 내면의 그 깊은 바닥을 긇으며 삶의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지,각자의 무게가 다 다른 사람의 무게를 스스로의 힘으로 지고 나가며 이겨 나갈 것을 말하고 있다.버겁다고 내려 놓고 포기 하거나 멈추기엔 아깝고 살아 볼 가치가 있는 삶이다.

 

소설에서 그의 전공이나 취미가 식물학과 어우러져 멋진 그림을 그려낸다.두개의 프롤로그가 왜 필요했는지 하나 하나 장치를 풀어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약물에 의지해 자신을 해하고 타인까지 해하게 된 사회악과 같은 사건과 우연처럼 만났던 인연이 필연처럼 나팔꽃 때문에 다시 만나 지난 날 풀지 못했던 오해의 시간을 원점으로 돌리 듯 하지만 그들의 운명은 서로의 무게만큼 다시 간격을 둔다.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의 작가라 호불호가 나뉘는데 자신의 특기와 전공을 잘 살리면서도 끈기가 있는 작가여서 작품마다 읽게 된다.이 작품 또한 홀로 사는 노인인 아키야마 슈지의 죽음은 어떻게 보면 단순한 강도 살인사건으로 볼 수 있는데 노란 나팔꽃이라는 식물이 얽혀 들면서 역사적이면서 소타의 전공이 더해져 원전까지 더해지니 이야기는 더 풍성해지고 노란 꽃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하여 경찰과 요스케 그리고 소타와 리노와 비밀의 여인 다카미까지 모두가 함께 뛰고 있어 잠시도 쉴 틈 없이 읽게 된다.자살사건과 살인사건,노란 꽃의 역사와 비밀 그리고 삶의 무게와 진실이 나팔꽃 덩굴처럼 얽혀 몽환화처럼 피어난다.지금 삶의 무게가 무거워도 기꺼이 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