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호세 무뇨스 그림 / 책세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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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해가 까뮈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이방인' 출간 7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내가 이방인을 읽은 것은 학창시절에 물론 읽었고 그 후에 나이가 들고 다시 이방인을 구입하여 읽어 보았다. 하지만 이 책은 특별하다.70주년과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판>으로 그래픽노블으 거장 호세 무뇨스의 흑백으로 탄생한 새로운 '이방인'이 함께 접목 되어서인가보다.어느 화가의 화보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도 하며 까뮈의 <이방인>을 색다르게 좀더 내용에 집중하며 읽게 만든 듯 하다.호세 무툐스의 '뫼르소'는 '까뮈'를 닮은 듯도 하고. 어찌되었든 그림과 함께 읽는 특별한 맛의 '이방인'은 좀더 머리에 속속 들어오며 '뫼르소'를 그 법정에서 구해내야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게 했다.그가 왜 부조리와 싸우지 않고 자신의 죽음을 순수히 받아 들인 것인가. 어느 구석에도 자신은 없다. 실존하면서 실존하지 않는 인물처럼 뫼로소는 그렇게 죽음앞에 서게 된다.

 

 

선박회사 일하는 뫼로소는 피곤한 가운데 어머니의 부고를 받았다. 셀레스트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겨우 차를 타고 어머니가 계시던 양로원에 가는 길에 길에도 차 안에서 몹시 지친듯 잠에 빠져 들었었다.그런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남의 일처럼 받아 들여졌고 그는 어머니의 시신도 보지 않고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않은채 장례를 치르고 만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한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고 해도 어떻게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까지 보지 않을수 있단 말인가.양로원에서 사귄 어머니의 애인인 페레스 영감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도 그 먼길을 와 애도했건만 그는 남의 일처럼 담담하고 방관자의 입장이 된다. 그리곤 그의 집에 돌아와 뜨거운 태양이 시위라도 하듯 바닷가를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전에 함께 일하던 마리를 만나게 되고 둘은 정사를 나누게 된다. 그의 어머니의 장례를 어제 치뤘다는 믿겨지지 않을만큼 그는 무감각하다.

 

 

그가 어머니를 보내 드리고 그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이웃에 사는 살리마노 영감은 악연처럼 그렇게 구박하던 개를 잃어 버리고 개의 빈자리가 컸던지 울부짖는다. 그런가하면 이웃에 사는 레몽은 그에게 함께 살던 여자문제를 그에게 털어 놓으며 그와 친구가 되자고 한다. 레몽의 정부였던 여자를 떼어 놓기 위하여 뫼르소에게 편지를 부탁하고 그는 혼쾌히 편지를 써 준다. 그들의 작전은 바로 이어졌고 레몽은 그녀를 마구 때리다 경찰이 들이닥치고 뫼르소는 증인으로 경찰에 불려가게 된다. 분명 그는 이웃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표시하며 일을 해주었는가 하면 회사에서는 착실하다는 것을 인정 받아 파리발령을 제의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왜 '살인'을 해야 했을까. 어머니의 죽음부터 이어진 일련의 일들이 그를 어느 죽음의 그물 안으로 몰아 넣듯 그동안 그가 보여주었던 일들이 그에게는 마이너스르 작용을 한다. 왜 어머니의 시신을 한번도 보지 않았을까?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렸다면..아니 그 다음날에 마리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다면 폐륜으로 낙인이 찍히지 않았을까.

 

 

'레몽이 권총을 주었을 때, 그 위로 햇빛이 번쩍 반사되어 미끄러졌다.'

어머니의 죽음과 아랍인을 바닷가에서 권총으로 쏴 죽게 만든 그 순간까지 죽음은 이어지고 있고 마지막 그의 죽음까지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인데 소설 속은 온통 뜨거운 햇빛과 파란 하늘 그리고 바다가 펼쳐진다. 음산함이 펼쳐지는 가운데 죽음이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눈 돌릴만한 큰 사건이 없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가운데 일어난 살인사건, 한 발을 쏘아 죽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 배에 네 발을 '탕탕탕탕' 꽂아 넣는다.운명 교향곡의 네 번의 쾅쾅쾅쾅처럼 그는 네 발을 처음 한 발과 시간차를 두어 쏜다.왜 그랬을까? 아랍인이 칼을 빼 들었고 그가 권총을 한 발 쏘았다면 정당방위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네 발을 연이어 쏘았으니 이것은 명백한 살인이다. 그렇다고 그가 아랍인을 죽일만한 명명백백한 이유도 없다. 그저 레몽의 정부를 혼내 주었다는 이유로 그와는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들이었는데.

 

 

뫼르소의 단조로운 일상은 감옥에 가서도 이어진다. 도무지 자신이 갇혀 있는 것에 대하여 별 생각이 없는 듯한 그,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하여 반론을 하던가 분노를 하던가 자신 안에 숨죽이고 있는 '진실'을 끄집어 내야 하는데 그는 방관하고 있다. 법정 어디에서도 감옥 어디에서도 그는 없다. 그저 '사형'은 당연히 자신의 것인양 남의 일인것처럼 법정에서 방관하는 뫼르소, 그들이 말하는 어머니의 장례부터 하여 이어진 일들에 대하여 좀더 자신을 드러내고 확실하게 말을 했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그 사회가 그의 진실을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 미리 포기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사회는 진실한 한사람의 시민을 죽였다는 것인가. 다수가 한사람을 죽이는 일은 간단하지만 개인이 다수를 이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힘든 일이다.하지만 뫼르소는 자신의 변호하거나 분노하지도 않았다는 것,남의 일처럼 달관하여 방관만 했다는,이방인과 같은 시선으로 삶과 죽음을 그렇게 받아 들였다는 것이 분노하게 만든다.

 

 

뫼르소와 함께 했던 이들은 그가 살인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 온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개개인이 법과 싸우기에는 너무 힘이 작다. 아니 그들의 힘은 법 앞에서 무참히 짖밟히듯 무너지고 만다. 한마디 제대로 말을 해 보지 못하고 거짓의 손을 들어야만 하는 소수의 힘은 뫼르소를 '죽음'으로 이끌고 가게 만든다. 진실을 위해 단두대에 머리를 맡긴 뫼르소, 현실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고립당한 채 그가 형장으로 걸어가며 간직한 진실은 누구를 위한 진실인가? '호세 무뇨스'의 흑백의 그림이 주는 무거움과 흡인력 때문에 더욱 작품에 빠져 들며 읽었던 특별판 <이방인>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책이며 소장해야할 책인듯 하다. 태양, 모든 것을 소생하게 하기도 하지만 죽게도 만드는,진실도 단숨에 뒤엎어 죽음으로 치닫게 만드는 태양의 힘을 강렬히 느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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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코틀러의 굿워크 전략 - 세상과 소비자의 마음을 얻고, 함께 성장하라!
필립 코틀러 외 지음, 김정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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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이윤을 추구하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착한 소비를 부추기는 착한 기업 탐스 슈즈를 읽고 참 공감을 많이 했는데.. 굿 워크 전략..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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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권은 밤에게 작가정신 소설락 小說樂 3
이신조 지음 / 작가정신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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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1초씩,1분씩 흐르지 않는다.아니,밤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흐르는 것은 낮의 시간이다. 밤의 시간은 웅덩이처럼 고인다.이슬처럼 맺힌다. 안개처럼 퍼진다.' 나는 낮 시간보다 모두가 잠든 밤 시간을 무척 좋아한다. 위의 글을 읽으며 정말 정지한 듯 멈추고 말았다. 내가 느낀 혼자 있던 그 밤의 느낌이 너무도 잘 담겨 있다. 난 식구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혼자 깨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 시간엔 '영혼'이 깨어나는 것처럼 너무도 좋다. 조용한 침묵과도 같은 시간에 나 혼자 밤을 차지하고 있는 듯 고요하고 정지한 듯한 시간, 그 시간은 정말 내 곁에서 웅덩이처럼 고인다. 밤은 나와 하나가 된다. 몽롱하게 밤의 늪에 빠져드는 시간,비로소 나로 깨어나는 시간처럼 아늑하다.

 

스물 두 살,한참 멋부리고 자신을 알아갈 시간에 그녀는 <아침부동산>이라는 계부의 중개인사무소에서 일을 한다.그녀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생부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외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살았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를 낳아 놓기만 했지 엄마로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아니 호적상 엄마의 동생으로 살아오다 계부가 생기도 시골에서 서울로 옮겨오며 그녀도 성씨를 바꾸어야 했다. 잠시의 안정도 그녀에게 호사였을까 다시 엄마의 죽음으로 시골로 내려와 할머니와 할게 되고 할머니가 중병에 걸리셔서 병간호에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완전한 자신의 뿌리를 잃었다.혼자 남겨진 그녀 시골을 떠나지 못하고,아니 왜 떠나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곳에서 작은 회사에 다녀보기도 했지만 그녀에게 위안이 된 곳은 아무곳도 없었다.그러다 계부가 나타나고 '아침부동산'에서 일하게 되면서 세상을 알게 되고 배우게 된다.

 

자신의 뿌리를 잃어버려서인지 그녀는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 그런 밤에는 그녀만의 의식처럼 매물로 나온 빈집에 들어가 그녀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람들이 떠난 집을 청소하고 그녀만의 하루 잠자리로 설정을 한다.집이란 무엇일까? 밤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별거 아닌 시간이지만 자신의 뿌리를 가져보지 못한 그녀에게 집이란 위안이지만 늘 겉돌기만 한다. 그런가 하면 숙며을 취해야 하는 시간에 야행성 올삐미처럼 편의점을 순례하고 빈집을 순례한다.자신만의 자신 안에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녀, 그녀에게 어느 날 찾아온 신입생 남학생, 그의 뒤를 한번 캐보기로 한다. 그는 누구인가? 맘에 들어하는 방이 있지만 다른 곳에 안주했다는 그가 편의점 야간알바를 하고 있다. 서로 사무적인 대화만 하다가 점점 의식하지 않게 되고 타성에 빠질 무렵,그가 다닌다는 전문대에 갔다가 투박하고 겨울 한 철을 함께한 검은 외투와 투박한 부추가 맘에 걸린다. 밤과 집에 안주하지 못하여 패스트푸드로 일관하던 삶이 그녀를 비대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클 것만 같던 검은 외투가 이젠 버겁게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쌍둥이 할머니들이 장독대집에 안주하게 되고 그녀들의 집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곳에 있는 '나이트룸'에서 그동안 잊고 있던 자신과 만나게 된다. 뿌리 없이 지금까지 흘러가듯 살아 온 자신,나이트룸에서는 온전하게 밤을 맞이할 수 있다. 나이트룸에서 위안을 얻던 그녀,그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신입생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난 다음날 나이트룸은 사라지고 말았다. 양재쌍둥이할머니도 떠나고 그 집은 헐리고 빌라가 신축되고 그녀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게 된다. 삶은 그렇게 흘러가 그녀도 이젠 밤마다 빈집을 찾기 보다는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패스트푸드가 아닌 자신이 만든 음익을 먹으며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하루하루를 만들어 나간다.

 

그녀가 뿌리를 잃어 간 그 시간에 밤과 낮의 균형이 깨진 듯 낮시간의 그녀보다 밤시간의 그녀는 '도둑고양이'처럼 민첩하게 밤과 어둠에 적응하여 잘 돌아다닌다. 하지만 낮은 무료하고 낮잠이 쏟아지고 집주인이 있는 집을 타인에게 중개를 하며 스물 둘의 그녀가 한물간 아줌마처럼 술술 능숙하게 고객을 대하고 있다. 낮의 시간은 고치안게 갇힌 나비와 같다고 보면 밤의 시간은 고치를 벗어나 훨훨 날아 다니는 것과 같은 그녀, '낮은 비둘기의 시간이고 밤은 고양이의 시간이다.' 밤은 빛나는 고양이의 눈처럼 빛을 발혀야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온전한 가정과 온전한 부모를 가져보지 못한 그녀가 이제 세상을 바로 보고 자신을 바로 보고 그 세상안에 자신의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다. 어머니의 자궁과 같이 아늑하고 포근한 밤의 시간을 누리지 못한 그녀가 이제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밤 시간에 적응해 가고 있다. 그 자궁 안에서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낮 시간을 갖게 되기까지 지금까지의 밤의 시간은 산고의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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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라, 생각하라 - 지금 여기, 내용 없는 민주주의 실패한 자본주의
슬라보예 지젝 지음, 주성우 옮김, 이현우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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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옛 유고연방이었던 슬로베니아 태생으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파리 제8대학에서 정신분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독보적인 철학으로 '동유럽의 기적'혹은 라캉 정신분석학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세계적인 석학이며,철학자로는 드물게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 인문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각주에 인용되고 있다...그는 SF 소설,할리우드 영화, 모차르트와 바그너의 오페라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 예술을 철학과 접목시킨 독특한 문화 비평을 내놓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문학을 좋아하지 않고 철학에도 문외한이라 그런지 내겐 낯설고 어렵다. 몇 번을 '작가소개'를 읽어 보았다. 대강 이해를 하겠는데 그에 대한 다른 책을 읽어보거나 이 쪽에 관심이 없어서그런지 자꾸 겉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말이지만 동전의 양면성처럼 두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 자본주의,그는 우리가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라면서 우리가 두 가지 유토피아의 종말을 겪었다고 말하고 있다.70여년을 버티던 '정치적 유토피아' 곧 현실 사회주의의 종말과 10여년을 구가했던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유토피아의 종말이라고 규정한다.

 

'공산주의가 1990년에 붕괴된 체제를 가리킨다면,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그 공산주의자들은 오늘날 가장 효율적이고 무자비한 자본가들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오늘날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자본주의를 가졌지만,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필요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본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민주주의에 반대하고 있다는 협박을 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혼은 끝났다. 변화는 가능하다.' -지젝의 월가시위점령 연설 전문 중에서

 

'페르시아어에는 '와 남 니하단'이라는 멋진 표현이 있다. '누군가를 살해하려면,시체를 묻은 다음 그 위에 꽃을 심어 시체를 숨겨라' 는 뜻이다. 2011년,우리는 아랍의 봄에서 월가점렴시위까지,그리고 영국 폭동에서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이데올로기적 광기까지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을 목도하고 경험했다.' 멋진 표현이라 했지만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시체를 숨기기 위하여 그 위에 꽃을 심었다는,어느 영화에서도 이런 표현이 나왔다.그렇다고 진실이 완전범죄로 덮힐까? 언제든 진실을 드러나게 되어 있다.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우리에게도 '촛불시위'라는 것이 한 때 있었다. 멈추어 현세를 생각한 사람들이 함께 행동한 소리 없는 아우성과 같은 촛불시위, 분노는 어느 순간에 일순간 함께 끓어 오르는 것이 현대인듯 하다. 한사람이 일어나면 함께 들불처럼 일어나 겁잡을 수 없이 행동하는 시대이다. 민주주의 시대라고 하지만 과연 지금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가끔 하게 한다. 자본주의는 점점 빈부의 차를 부추기고 있고 자본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쌍둥이 빌딩도 누군가의 분노로 사라질 수 있는 세상이다. 2012년은 영화 <2012> 한바탕 '지구종말'이라는 소리 소문 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흔들어 놓았다. 울집 막내는 그 날이 생일이었는데 막내는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왜 자기 생일에 지구가 종말을 하는지,지구가 종말 한다는데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억울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누려본 삶은 자신은 다 누리지 못하고 죽는 다는 것이 너무도 억울하다고 했다.그래서 함께 영화를 보았고 <2012>에 지구의 종말은 오지 않았고 지금 이렇게 우리는 숨을 쉬고 있다. 지구가 종말하면 자본주의도 종말할까.내용 없는 민주주의와 실패한 자본주의라고 하지만 진화하는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기에 무어라 단정하긴 힘들지만 '멈추어 생각하라'라는 깊게 새겨야 할 듯 하다.

 

'기억하라.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니다.체제 그 자체가 문제다. 그것은 사람들을 부패하게 만든다. 적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시위에 물타기를 하기 위해 행동에 돌입한 가짜 친구들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카페인 없는 커피,알코올 없는 맥주,지방 없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 투쟁을 무해한 도덕적 저항으로 만들고자 할 것이다...그 공산주의자들은 오늘날 가장 효율적이고 무자비한 자본가들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라.오늘날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자본주의를 가졌지만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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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먹고 싶어 푸른숲 새싹 도서관 7
고토 류지 지음, 하세가와 토모코 그림, 고향옥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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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1학년' 시리즈로 나온 요 책 참 재밌다. 구로사와와 신이 그리고 고지마 마리아등 1학년 학교 초년생인 개구장이들이 학교에서 우왕좌왕 사회를 배워나가고 있다. 단체생활을 통해 친구를 사귀고 어우러지고 개인이 아닌 이제 모두가 함께라는 그 속에서 좌충우돌 부딪히며 겪는 일들이 참 재밌고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그 중에서 제일 귀엽고 깜찍하고 모두의 대장처럼 우왕좌왕 웃음뿐 아니라 감동까지 준다. 신이는 구로사와를 미워해야하나 친구를 하지 말아야 하나 하지만 친구의 단점만 보고 가려진 장점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친구가 되어가는 이야기.

 

'내 맘대로 먹고 싶어' 이 편은 '급식'에 관한 이야기다.급식당번이 되어 친구들에게 밥을 나누어주는 배식친구를 뽑아야 하는데 구로사와는 '붕숭아학당'의 맹구처럼 '저요 저요~~' 하면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난 후에 선생님의 제지속에 그날 배식당번이 된다. 배식당번이 되면 어떻게 해야하나? 늘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만 먹던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배식을 하면서 배우게 되는 배식예절이라고 할까. 그날 급식메뉴는 '카레'다. 카레냄새는 무척 진하고 배가 고플 때 카레냄새를 맡으면 배고픔이 더욱 진동을 한다. 참고 참고 참았던 배고픔,구로사와는 급식실로 3교시가 끝나고 달려간다. 4교시가 끝나야 점심인데 구로사와는 그것도 모르고 급식실로 달려간 것이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구로사와가 민망할까봐 모른채 하기로 했는데 카레냄새에 배고픔이 더욱 진동하여 선생님과 아이들은 급식실로 달려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구로사와와 아줌마들이 아주 사이좋게 웃고 있다. 구로사와는 어디를 가나 모두를 웃게 하는 웃음제조기인가보다.

 

점심시간,기다리고 기다리던 카레를 먹게 되는 시간인데 구로사와는 자기 맘대로 카레를 퍼준다. 그리고 자기는 여러번 카레를 퍼서 먹는다. 맛있게 맛있게.먹어도 먹어도 맛있는 구로사와,괜찮을까? 다섯번이나 맛있게 퍼먹고 화장실에 간 사이 마리아는 구로사와보다 더 많은 일곱번을 갖다 먹고는 아무렇지도 않다. 화장실에 다녀 온 구로사와가 카레를 더 먹으려 했는데 바닥이 났다.더 먹을 수 있는데... 이쁜 마리아가 자신보다 더 먹다니.그렇게 많이 먹고 탈이 안날까 했는데 역시나 구로사와가 보이지 않는 사이 양호실에 가 있다. 많이 아픈걸까? 그런데 선생님과 친구들을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나오는 녀석,그런 구로사와의 밝은 모습을 보고 신이는 자신도 다음엔 구로사와처럼 '배식맨'으로 변신하여 친구들에게 똑같이 급식을 나누어 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후식으로 나누어주는 딸기를 구로사와에게 전해주어 맛있게 먹게 한다.

 

미워할 수 없는 개구장이 1학년 신입생들이 좌충우돌 이야기는 정말 웃게 만든다. 담임선생님의 중재 때문에 혹시나 선생님이 구로사와만 편애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아니라는 사실,모두에게 관심이 필요한 친구들이지만 유독 다른 친구들보다 튀는 구로사와에게는 선생님의 관심이 더 필요한 것 뿐.정말 미워할 수 없는 친구들이다. 정말 귀엽다. 특히나 구로사와를 통해 점점 활달해지고 자신감을 찾는 '신'이 어떻게 구로사와와 친구들과 함께 더욱 재밌는 '1학년'을 보내게될지 궁금하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아이들의 신입생 시절 생각도 나고 이런 시간이 내게도 있었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정말 오래전 이야기지만 신입생 시절은 어느 시절이나 재밌다.구로사와 정말 귀여운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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