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벅을 좋아하나요?
안치 민 지음, 정윤희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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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은 중국 소작농들을 모욕했고 이는 결국 중국을 모욕한 것이다.' '펄 벅은 중국인을 혐오하므로 우리의 적이다.' 라는 문구로 '미국 문화 제국주의자' 라고 비판하던 그녀의 삶을 다시 들여다 본다는 작가 자신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작가로서의 삶이 아닌 '인간 펄 벅' 의 삶을 좀더 리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이었지 않나싶다. 내가 펄 벅의 <대지>를 읽은 것은 중학교때였다.도서관에 박혀 이해도 잘 하지 못하며 굵디 굵은 책을 손에 들고 소설속에 빠져 들며 읽었던 기억이 나고 그 굵은 무게감과 고전은 다이제스트가 아닌 원서 번역본으로 읽는 맛이 재밌다는 것을 알고는 여고시절 다시 한 번 읽었지만 지금 그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왕릉일가의 처절하게 가난했던 삶이 얼핏 생각나기는 하지만 세세하게는 기억을 못하기도 하고 펄 벅에 대하여도 그리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에도 두어번 오고 펄 벅 재단이 설립됐다는 이야기도 들은듯 한데 그녀의 자세한 삶에 대하여는 알지 못하기에 소설에 좀더 집중하여 읽을 수 있었다.

원래 등잔밑이 어둡다고 <대지>를 읽어보지 않고 조국의 명령에 의해 그녀가 '미국 문화 제국주의자' 라고 세뇌를 받았던 그녀가 펄 벅 노벨문학상 작가의 삶을 어떻게 그려낼까 했는데 역사와 나름 잘 얽히게 하여 재밌게 풀어냈다. 펄을 좀더 가깝게 들여다보기 위하여 작가는 '윌로우' 라는 한 여자를 창조해 낸다.펄의 삶도 파란만장 하지만 윌로우 삶 또한 펄과 그리고 역사와 함게 얽혀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조국인 미국에서 산 시간보다 제2의 조국인 중국에서 산 시간이 더 많은 파란눈의 이방인 펄,그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위로 아들이었지만 중국인들이 걸리는 병에 걸렸는지 모두 죽고 그녀와 밑으로 여동생만 살아 남는다. 그녀는 먼저 아들들과는 다르게 씩씩하게 자라난다.검은 모자속에 노란 머리를 감추고 언덕을 뛰어 다니고 윌로우와 함께 하며 검은 머리의 중국인이 되는 것이 가장 소원이었던 그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선교사인 아버지의 가정에 무심함 때문에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엄마와는 다르게 펄은 중국이라는 나라가 좋았다. 그녀가 밟고 있는 땅이 좋고 사람이 좋고 문화가 좋고 그녀는 겉모습은 이방인이었지만 그 내면 깊숙한 뿌리는 온통 중국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는 그녀를,아니 외국인을 가만두지 않았다. 유교와 불교가 강한 나라에서 기독교가 뿌리를 내린다는 것도 무리였지만 그들이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중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에도 무리가 있었다. 역사의 흔들림은 너무도 강했고 외모와는 다르게 속이 모두 중국인으로 변해버려 중국에서 살고 싶어했던 펄을 급기야 제2의 조국은 쫒아내듯 한다. 하지만 늘  변함없이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소장농들과 함께 그들 속에서 살아가려 했던 아버지,그런 아버지와 가족의 마찰은 말없이 시작된듯 하다.펄의 옆에서 그녀의 든든한 버팀목처럼 윌로우는 그녀와 돈독한 우정을 나누며 그녀가 더욱 중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윌로우 아버지 또한 펄의 아버지 압살롬와 함께 기독교가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도와주다가 그 또한 그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 펄의 가족과 함께 윌로우의 가족 또한 역사와 함께 번성해 나간다. 

하지만 펄의 인생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아 첫번째 결혼한 로싱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낳은 딸 또한 정상아가 아니었다. 딸 캐롤의 치료비를 위해서는 남편이 꼭 필요했지만 그와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깨진 상태와 마찬가지인 불행한 삶이었다. 그런 삶의 돌파구를 찾듯 글쓰기를 시작하는 그녀, 하지만 남편은 극구 반대를 한다. 자신과 딸을 돌볼 시간을 글쓰기에 빼앗긴다며 반대를 한다.하지만 자신의 마지막 비상구를 찾듯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의 길을 더욱 넓혀 나가고 남편과는 급기야 헤어지게 된다. 그녀의 글값으로도 딸을 치료할 수 있을만큼 그녀의 글은 대단한 힘을 지녔던 것이다. '소설 집필은 영혼을 쫒고 포락해내려는 과정과 흡사합니다. 소설가는 아름다운 꿈속으로 초대받은 사람이죠. 운이 좋은 사람은 꿈속에 한 번 살았던 사람이고, 최고로 운이 좋은 사람은 계속 꿈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죠.' 라는 말처럼 그녀의 인생 또한 꿈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인생이 소설 그 자체는 아니었던가싶다.

한번의 결혼 실패와 자신과 뜻이 잘 맞는 남자인 시인을 만났지만 그 또한 아직 이혼이 성립되지 않아 그녀 곁에서 서성이다 이혼을 하려고 가던 길에 비행기추락사를 당하게 되고 그녀는 큰 아픔을 겪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처럼 여겼던 중국에서 떠나 미국으로 쫒겨가듯 해야 했던 시간, 영영 중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인지도 모르고 향했던 미국에서의 그녀의 성공은 중국공산당에서는 그녀를 꼭두각시처럼 이용하고 싶어했지만 뼛속길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녀를 속인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 그녀의 비웃음 거리로 치부되었던 당은 그녀를 미국 문화 제국주의자라고 비판하기에 이르고 그녀는 다시는 고향땅을 밟을 수도 어머니인 캐리의 무덤을 한번 더 볼 수도 없었지만 친구인 윌로우를 만난다는 것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윌로우 또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공산당의 앞잡이가 되듯 한 남편 딕을 따라 같은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그녀에겐 기독교가 뿌리 깊게 내래고 있어 그녀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그 값을 톡톡히 치뤄야만 했다. 펄과 비밀리에 편지왕래를 하던 것 마져 그녀에겐 죄가 되어 감옥생활을 해야만 하는 세상, 이젠 세상이 변해 버린 것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정을 나누며 이방인이지만 중국에 깊게 뿌리를 내린 펄 곁에서 그녀 또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되지만 윌로우 그녀의 눈을 통해 펄의 노벨문학상 작가로서가 아닌 그저 한 인간이고 여자의 삶을 보여주지 않았나생각된다. 펄이 어떻게 하여 <대지>라는 거대한 작품을 탄생시키게 되었는지, 어떻게 중국 소작농들의 그 깊은 내면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되었는지 너무도 세세하게 알게 해주는 작품으로 좀더 인간 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녀가 작가의 길을 걷게 어쩌면 역사가 내몰지 않았나하면서 그녀의 묘비를 보고는 또 한번 감동, 영어 이름이 아닌 중국이름으로 쓰인 그녀의 묘,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중국인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묘에 엄마인 캐리의 묘의 흙을 뿌려줌으로 하여 어쩌면 정부가 못한 일을 윌로우 자신이 그녀의 마지막을 다독이고 있다. 

펄의 아버지인 압살롬이 미국에서 목회활동을 했다면 위대한 작품인 <대지>가 탄생하고 그녀가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을까. 역사가 만들고 그녀의 인생이 당연하듯 작가의 길을 걷게 하였지만 그녀 또한 그런 작품을 쓰지 않으면 중국에서의 삶에 빚을 지는것 같았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키워주고 그녀를 성장하게 한 중국과 중국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담긴 작품이 <대지>라면 이 작품은 작가의 그녀를 비난한 댓가로 그녀의 인생을, 그녀의 삶을 다시 부활시키는 오마주와 같은 작품이다. 철저히 왜곡되었던 그녀의 삶이 이 작품으로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해도 펄 벅이라는 여인의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다시금 들여다볼 수 있음이 좋았던 작품이다. 이방인으로 왕따를 당하며 살 수도 있었던 삶인데 모든 것을 자기화시켜 그 속에 융화되고자하고 그들 속으로 깊숙히 들어갔던 펄, 그랬기에 왕릉일가도 탄생되고 했겠지만 같은 여자로서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니 안쓰럽기도 하다. 모성을 느껴보고 싶었겠지만 자신의 맘과 다른 캐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감싸 안으려 한 엄마 펄은 어쩌면 신앙을 위해 가족을 무관심속에 버려두고 목회활동에만 전념한 아버지에게서 냉대를 받았던 그녀 자신이기에 더욱 캐롤을 놓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더욱 사랑을 주고 싶었했고. 그런 맘을 들여다 보면 더욱 가슴이 저미지만 그런 일들을 바탕으로 입양까지 하여 다른 인생까지 거둔것을 보면 그녀 또한 여자이고 엄마였다.중국역사와 함께 두 여자의 끈끈한 우정과 중국에 기독교가 어떻게 뿌리를 내리는지도 보여주고 중국문학까지 잠깐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작가 펄 보다 한 여성 펄에 대하여 좀더 삶의 깊이를 파헤쳐 들어간 작품이지 않았나싶다. 이 기회에 펄 벅의 <대지>를 읽어봐야겠다.너무 오래되어서 잊혀져간 왕릉일가에 대하여 이참에 펄 벅의 삶과 비교하며 읽어보면 어떨까 생각을 해보며 역사가 펄 벅이라는 대단한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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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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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 자신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알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이 그린 밑그림처럼 되어간다면 그 누가 후회를 하고 반성을 하며 살겠는가. 연습이 없는 인생의 무대에서 하루하루가 '전진' 뿐인 삶에서 우린 때론 '만약에 그 시간으로 되돌아 간다면..' '만약에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하며 '만약에..' 를 찾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만약의 시간으로 되돌아 간다고, 시계 바늘을 되돌려 놓는다고 해도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문득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생각이 나지만 거꾸로 가는 시간이라고 후회가 없지는 않다.언젠가 인간은 실수를 하게 되고 그렇게 하면서 진보하고 그릇이 더 커져 가는 것이지 처음부터 완성된 그릇의 인간이란 없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 그러니까 죽은이가 엮어가는 소설이다.화자가 죽은 자의 소설로는 <딩씨마을의 꿈> 에서는 이미 죽은 어린아이가 화자였고 <그녀에 대하여>에서도 아직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십대의 숙녀가 자신이 죽었던 나이의 어린 아이에서 시간이 흐른 후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이해해간다고 해야 하나 그런 기법으로 쓰였는데 이 소설은 그가 왜 죽게 되었는지 아니 그의 인생이 왜 무엇과 함께 꼬여 나가게 되었는지 도입부분에 나타내준다. 이 소설 또한 이미 죽은 자인 혈기왕성한 나이에 미쳐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게 된 마커스가 화자이다. 그의 인생은 절묘하게 한반도 전쟁과 함께 엮여 들어가게 되고 그로 인해 그는 한반도에서 꽃처럼 죽어가야만 했다. 그렇다면 그가 왜 역사의 현장에 오게 되었는지 무엇때문에 죽음을 당하게 되었는지 그 속으로 들어가본다.

이 소설을 읽으며 '만약에..' 라는 가장을 참 많이 해 보게 된다. '만약에..' 마커스의 인생에서 만약에 한반도 전쟁도 없었다면 그가 죽었을까.아니 그가 만약에 와인스버그 대학으로 옮기지 않고 그냥 시골 대학에 남아 있었다면 그가 죽게 되었을까. 아니 코틀러와 사귀지만 않았더라면, 채플시간에 지글러에게 대리출석을 하지 않고 그가 꾹 '울분' 을 참고 참석했더라면 그는 죽음에 이르렀을까.그의 가족의 비극은 일어났을까. 인생에 만약이란 단어를 뺀다면 우린 모두 희극속에서 자신이 그리는 그림대로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연습이 없는 삶이기에 길고 짧은 인생에 희극과 비극을 오가며 사는 것 아닐까.길고 짧은 것은 어찌보면 운일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어찌 사람의 맘처럼 의지대로 될 수 있는 문제인가.

원리원칙대로 살아가는 마커스의 아버지, 그는 유대인 대대로 가업처럼 해 온 정육점을 운영한다. 하지만 세상밖은 한참 시끄러워 그의 조카들이 하나 둘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게 되고 혹시나 그도 하나뿐인 자랑거리인 마커스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하고 늘 노심초사한다. 자신의 곁에서 하기 싫은 닭똥구멍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 내장을 빼내는 일도 서슴치 않고 잘해내는 아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면 무언가 일이 벌어질것 같아 안절부절 노심초사하는 그의 아버지는 그를 집안에 가두어 두듯 하려고 한다. 하지만 혈기왕성한 십팔세 청년이 갇혀 지내기엔 세상은 너무 호기심이 많고 그 또한 피가 끓는다. 아버지의 정육점에서 가업을 이어받아 닭내장이 빼내면 살고 싶지는 않다. 아버지의 관심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살고 싶지만 그의 가슴 속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으로 늘 복잡하다. 아버지 곁에서 함께 일을 하며 돈을 벌던 시간이 무척 행복했던 시간이었음을 그는 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부모님에게도 행복했던 때었음을 안다.하지만 이제 그는 세상밖 소식에 민감하고 그도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가며 살고 싶지만 자신이 고집하여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하여 집에서 멀리 떨어져 왔기에 부모님을 돕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를 힘들게 해야 하고 공부 또한 열심히 해야만 한다. 하지만 룸메이트들나 학장은 그런 자신의 맘을 몰라주고 그를 괴롭히듯 한다. 그렇다면 그가 참을 수 없는 '울분' 으로 가슴의 피가 들끓게 된 것은 무엇일까.

'울분' , 먼저 아버지의 관심이다. 너무 지나친 관심은 자식의 길을 다른 길로 가게 만들기도 한다. 그냥 지켜보고만 있으면 바라보고만 있으면 바른길로 잘 갈텐데 너무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울분' 에 삐딱하게 가고 싶어진다. 그게 사람맘인것 같다. 아버지의 관심이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룸메이트들이다. 잠잘 시간도 부족하게 열심히 뛰고 있는데 그런 자신의 잠잘 시간을 빼앗는 룸메이트에게서 벗어나기 위하여 방을 바꾸어 보지만 역시나 그곳에도 자신의 맘과 통하지 않는 사람 뿐이다. 그렇다면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남들이 가지 않는 지저분하고 불편한 혼자쓸 수 있는 방이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고 그만의 공간에서 그만의 방식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번에는 학생과장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의 방바꿈에 대하여 발을 거는 그를 향해 거침없이 구토를 해주는 마커스, 하지만 그것조차 그의 몸이 아픈 상황이었다. 충수제거수술을 하고 그의 음경을 빨아준 손목을 그어 자살 시도를 했던 올리비아를 만남으로 인하여 그는 또다른 세계를 맛보려 하고 있는 순간, 어머니는 이혼을 들먹이며 그의 그런 연애를 막으려 한다. 그렇다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이란 무엇이란 말인가.보잘것 없는 정육점집 아들이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여 전과목 A의 성적에 누구보다 모든 일에 열성적이고 거기에 아르바이트까지 하여 학비보충을 하고 있다면 최고라고 할터인데 그의 생각만큼 세상은 그의 편이 아니다. 조력자가 되지는 못할망정 그의 발목을 자꾸만 거는, 가슴속에서 밀어 올라오는 '울분' 을 참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자꾸만 족쇄처럼 발목을 잡는다. 

'나는 그애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그애가 두려웠다. 나는 아버지만큼이나 나빴다. 내가 바로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를 뉴저지에 두고 온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불안에 나도 둘러싸이고, 불길한 예감에 나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하이오에서 나는 아버지가 된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벗아나려고 하면 할수록 불안감에 휩싸인 아버지처럼 되어가는 자신을 깨닫게 되는 마커스, 어찌보면 뭉크의 <절규>를 보는 것 같다. 뭉크는 자신의 가족이 한 명씩 죽게 되는 불안에 자신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늘 시달려 정신질환을 알았다고 하는데 이 소설은 어쩌면 그와 흡사하다.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점점 불안에 빠져드는 아버지와 아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불안감은 비극을 예고하듯 '모르핀을 맞고' 라며 과거를 회상하면서 소설이 시작된다는 것은 뭔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을 되집어 보는 것이다. 만약에 그는 어느 한순간, 그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한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니 어느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바뀌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 모든 시간들을 잘 이겨냈다면 그는 학업을 마치고 변호사가 되어 있을 수도 있고 결혼을 하고 잘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는 스무살 그 후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불안처럼 아버지 또한 아들의 비극적 죽음으로안해 자신 또한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되고 어머니는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던 자신의 남편을 이겨내지 못하여 모든 것이 비극적으로 끝났다고 자책하며 살게 된다. 혼자서.그렇다면 그들의 인생에서 무엇이 그토록 꼬이게 만든 것이고 무엇이 그토록 참기 힘든 '울분' 이었을까.

채플시간에 참을 수 없는 중국의 국사를 몇 번씩 반복하여 부르듯이 그가 좀더 한반짝 뒤로 물러나 자신의 삶을 관조하였다면, 정말 가슴에 참을 인을 세번 정도 생각하며 행동하고 말을 했다면 그는 울분을 참지 못하여 짧은 생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네 삶에 만약에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연습없는 단막극이기에, 어느 순간 삶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라도 그런 순간은 있다. 그렇다고 모두 '울분' 의 시간을 참고 군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비극적인 삶은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커스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격한 시간은 바로 '청춘' 의 시간이다 한참 청춘의 피가 끓는 시간이니 무엇인들 참을 수가 있었을까. 격정과 분노속에 자신이 세상의 중심으로 보이는 그런 시간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희극이 될 수도 비극이 될 수도 있다는 선택의 갈릴길을 잘 표현해 냈다. 그 또한 그 시기에 쓴 소설이라니 얼마나 잘 표현해냈겠는가.격정적인 시간을 비극으로 갈무리하여 안타깝지만 청춘의 그 길목을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런것을 보면 참을 인을 세 번은 아니어도 한 번을 새기며 한번 참아보는 것도 어찌보면 삶의 한 방법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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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 이외수의 감성산책
이외수 지음, 박경진 그림 / 해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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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나기전에 먼저 읽은 황경신의 단편소설중에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 코끼리 소원들어주기’ 라는 그런 소설이 있었다.작은 동물도 아닌 거대한 코끼리가 다른 것도 아닌 스케이트를 타려면 스케이트장은 얼마나 커야 하고 코끼리에게 맞는 스케이트는 대체 어디에서 구한단 말인가. 하지만 숲 속 동물친구들은 코끼리가 낙심하지 않게 한가지 한가지 방법을 찾아내어 그 소원에 근접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스케이트장은 그렇다면 남극 아니면 북극, 거대한 얼음을 힘들여 얼리지 않아도 그 자체가 스케이트장이다. 그리고 거기까지 코끼리와 그외 다른 동물들이 갈 수 있는 것은 뱃길이 제일 편할것이라는...이렇게 한가지씩 의견을 내고 제일 타당성이 있는 것들을 찾아가다보니 정말 코끼리라고 스케이트를 타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하지만 코끼리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것은 어떨까, 가당치 않은 일지만 누군가 내게 날개를 달아주길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그 날개를 찾아 달 방법을 찾아보라는 이야기다.

<아불류 시불류>에서는 그가 트위터에 올린 짧은 글에서 촌철살인을 느낄 수 있었듯이 이 책에도 그의 그런 글들이 나오긴 하지만 ’아불류 시불류’는 좀더 감성적인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제목처럼 좀더 진리적이고 무언가 이성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잠언,명언, 그외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들과 함께 그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움이 담긴 글이 담겨 있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듯 장의 마지막에는 그이 감성적인 ’시’ 가 마지막 입가심을 하듯 담겨 있어 한 장을 끝내고 나면 감성충전을 할 수 있으니 다음 장으로 넘어갈때는 다시 이성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고양이그림처럼 제목을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의 몸에는 밤하늘의 달과 별이 함께 담겨 있다. 느릿느릿 고양이걸음으로 읽으며 감성충전까지 하라는 그림으로 해석을 해 본다. 너무 빨리 읽다보면 체할것 같아 짧은 글은 한번더 읽어보기도 하면 쉼표를 찍는것처럼 좋다.

’뛰어난 미모는 나이 들면 시들어 버리지만 뛰어난 매력은  나이 들어도 시들지 않습니다. 미모는 외면에서 형성된 것이어서 시간의 제약을 받지만 매력은 내면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력은 어떤 경우에도 성형불가입니다.’ 

당신은 외면의 미로를 가꾸고 있나요 아님 성형이 자유자재로 마음대로 되는 내면의 매력을 가꾸고 있나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멀리 볼 것도 없이 가까이 있는 친구들만 봐도 외면에 치중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내면에 치중하는 향기나는 친구가 있다. 외면에 치중하는 친구는 늘 힘들다. 나보다 더 잘나고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따라가기 위하여 늘 허덕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보지 못하여 자신은 늘 가난하고 못생기고 부족한듯 하여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하지만 내면을 가꾸는 친구들은 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난다. 비록 많이 가지지 못했어도 아무도 훔쳐가지 않는 내면이 가득차 있기에 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어디에서도 자신으로 우뚝 설 수 있다. 그에겐 삶이란 희망이고 날마다 새로운 일상이다. 타인이 도둑질해가지 못하는 내면이 가득차 있어 퍼내고 퍼내며 다른 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기도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슨 치기 정도로 본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정말 삶이 희망이다. 스스로 자신에게 날개를 달았기 때문이다. 남이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줄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날개를 다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내면이 아닌 ’외모지상주의’ 를 만들어가서인지 그런 사람들의 날개를 타의에 의해 부러뜨리고 있다. 그럴때 꼭 필요한 말들이 담겨져 있다. 무언가 쉼표와 같은 여유와 깨우침 진리와 번득이는 재치가 필요할 때 한꼭지씩 챙겨 읽어본다면 삶의 지침서가 될 그런 글들이 담겨져 있어 윤활유가 될 수 있다.

’보편적 슬픔’ 이란 이야기도 익기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지난 겨울엔 그런 ’보편적 슬픔’ 의 일을 당했다. 남에게 일어난 일은 그리 슬퍼보이지 않지만 내가 당하면 슬픔은 정말 크다. 나와 너의 차이에서 그렇게 슬픔도 기쁨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슬픔이 없는 집에서 겨자씨를 구해오거라’ 한다면 정말 슬픔이 없는 집이 있을까.전국을 돌아도 아니 세계를 돌아도 과연 슬픔이 없고 그런 곡절 한가지 없는 집이 존재는 할까.아무리 날마다 웃는 삐에로에게도 말 못할 슬픔이 있고 고민이 있는 것이다. 그가 날마다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그에게 기쁨만 있으란 법은 없듯이 슬픔 한꼭지 간직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힘든 것이다. ’ 슬픔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을’ 당연한 것이다. 슬픔도 기쁨도 누구에게나 있는데 그것이 ’나’ 냐 아님 ’너’ 인가 하는데도 그 크기가 다를 뿐이다. 그것을 보편적으로 받아 들이라는 이야기 친정아버지를 보내 드리고 깊게 느꼈다. 아버지를 보내 드리기 전에는 그런 슬픔이 닥쳐 온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아님 그런 슬픔이 내게도 올까 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는데 내게 닥치니 정말 하늘이 무너진듯한 너무 큰 슬픔이란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도 또한 지나고 나면 망각의 동물이라 서서히 빛이 바래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다른 이가 그와 같은 슬픔을 당하면 슬픔을 더 깊게 나눌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 뿐이다. 

그의 글들에게는 경험이 담겨 있어 더 마음이 간다. ' 진실로 글을 쓰고 싶다면 놀부처럼 살지 말고 흥부처럼 살아라. 다리가 부러진 제비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껴라. 글을 쓰는 일이 도를 닦는 일과 무엇이 다르랴. 내 마음 밖에 있는 것들을 모두 내 마음 안으로 불러들여 같이 슬퍼하고 같이 기뻐하라.' 글을 쓴다는 것은 어느 순간에는 술술 실타래가 풀리듯 잘 풀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 엉킨 실타래처럼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처럼 잘 안되는 날이 있다. 그런 속을 들여다 보면 그 글에 내가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가에 따라 느낌에서 오는 차이가 그렇게 크게 나타난다는 것을 느낄때가 있는데 같이 슬퍼하고 같이 기뻐한 작품은 좀더 쉽게 풀어 쓸 수 있었는데 읽으면서 겉돌기를 한 책들은 리뷰를 쓸때도 무척이나 힘들었던 것을 느낀다. 억지로 날개를 달아보려 했다가는 큰 탈만 나게 된다.그럴때는 과감하게 안되면 안되는 방향으로 그냥 밀고 나가는 것이다.'아이야 뽑지 않아도 된다/ 내 인생도 때로는/ 눈물이었노라고/ 반짝이며 자라나는/ 은빛 실뿌리//' - 새치의 시 전문이다. 그냥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는 것이 어찌보면 제일 편할때가 있다. 일부러 물길을 만들기 보다는 물이 흘러가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순리이고 스스로 길을 찾는 방법이 될 때가 있다. 한페이지 한페이지 읽어나갈수록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다. 한꺼번에 몽땅 털어 넣어 버리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있다. 지치고 내 실타래가 엉켰다고 생각될때 꺼내어 어느 페이지를 펴고 읽어도 마음의 매듭을 풀 수 있는 글들이 있어 좋다.

얼마전에 읽은 <기계공 시모다> 라는 책에 보면 시모다가 읽었다는 '메시아 핸드북'이라는 책이 소설속에 나온다. 그 책에는 짧은 글들이 있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펼쳐진 부분을 읽다보면 스스로 메시아에 이를 수 있는 '메시아 핸드북' 그 책은 다름아닌 <갈매기의 꿈>으로 유명했던 리터드 바크의 소설이다. 이 책은 그 책을 읽는 느낌이다. 어느 페이지를 펼치고 읽어도 길을 찾을 수 있다. 지금 당장 내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 내가 길을 정하기 전에는 모든 곳이 길이었다는 말처럼 길이라고 정의해 놓기 전에는 어디에나 길이 있었다. 보다 나은 지름길을 찾다보니 시행착오도 거치고 코끼리에게 꼭 필요한 코가 아닌 날개를 찾고 있지만 한박자 물러서서 있다보면 길이 보이고 길은 내 앞에 있다. 잠시 바라보지 못하고 찾지 못했을 뿐이지 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잠깐의 여유를 찾아 주는 책이다. 맘에 드는 부분들은 윗부분을 살짝 접어 놓고 다음에 다시 펼쳐볼때 기억하기 좋게 해 놓는데 이 책에도 접어 놓은 부분들이 정말 많다. 그만큼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다. 그의 글에서 좋은 부분들도 많지만 동서고금의 이야기만 따로 보아도 좋은 이야들이 많다. 알고 있었지만 다시 읽어본다고 내 날개의 깃털에 흠이 되지 않는다. 더욱 빛나고 화려하게 펼치고 비상할 수 있게 만들지 결코 방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들은 읽는 것만으로도 숲 속을 천천히 걸어 피톤치드로 맑고 깨끗하게 샤워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 감성충전을 봄이 되기 전에 한번 해보면 어떨지,코끼리가 아닌 내게 날개가 돋아 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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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페이터 - The Counterfeit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세상은 속여도 양심을 속일 수 없었던,카운터페이터 2007



감독/ 스테판 루조비츠키
출연/ 카알 마르코빅스, 오거스트 디엘...

세상은 속여도 자신들의 양심은 속일 수 없었던 사람들, 그들의 양면을 보다

<타인의 삶>이란 영화를 정말 재밌고 감동적이게 보았는데 그 제작진들이 다시 한번 뭉친 영화라고 한다. 2008년 아카데이상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인 이 영화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위조지폐 작전,베른하트 작전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실제사건을 영화화 해서인지 감동적이다. 독일에서 위조지폐의 제왕으로 불리던 살로몬 소로비치는 화려한 생활을 하다가 경찰에 붙들렸다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그가 지금까지 누렸던 생활과는 너무도 다른 바닥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뭔가 해야 했던 그는 나치 친위대 간부들의 눈에 띄어 친위대 간부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다가 더 나은 곳으로 가게 된다. 그와 함게 인쇄공이며 몇 몇 뽑힌 사람들이 가야했던 곳은 ’위조지폐’ 를 만드는 곳.

그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파운드’ 를 만들어 내야만 했다. 인쇄공이며 전직 은행직원등,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명’ 을 담보로 나치의 줄에 매달려 목숨을 구걸하듯 하며 위조지폐를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살로몬은 남들과는 다른 천부적인 위조지폐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의 손에서는 영국지폐를 만들어내야만 하는데 일을 하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의 양심은 이를 받아 들일 수 없지만 살로몬은 살기 위해서는 해야만 한다고 한다. 삶이나 무엇인가. 가스실에서 죽느니 위조지폐라도 만드려 남들보다 배불리 먹고 편하게 생활하며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총구앞에 서는 날까지 목숨을 부지 하기 위해선 선택이 길이 없다. 그들의 명령에 따를뿐.

우여곡절끝에 드디어 찍어 낸 파운드, 위조지폐를 가지고 당당하게 은행에 가서 위조지폐인지 물어보지만 ’위조지폐가 확실히 아니다’ 라는 진짜라는 판명이 난다. 이런일이 있을수가 있을까. 그들의 목숨은 이제 유호기간이 정해진 것이다. 그렇게 영국지폐를 만들어 내고 좀더 편한 생활을 누리게 된다. 좋은 음악에 수용소안에 탁구대까지 남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생활을 보장받으며 파운드에서 이제 달러를 만들어 내야만 했던 살마들, 하지만 전직 인쇄공은 그를 받아 들일 수가 없다. 자신의 양심을 속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살로몬과 그외 사람들과 인쇄공은 대립을 하게 되고 친위대 간부는 점점 그들의 목을 조여온다. 

위조달러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시간을 보내던 중 전쟁은 그야말로 판도가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취해야 하는 태도는... 날마다 목숨을 노리고 있는 총구앞에서 단일분 일초도 편하게 숨을 쉴 수 없었던 사람들과 달리 음악은 너무도 아름다운 곡들이 흐른다. 그런 음악과 그들의 생활이 대조를 이루며 그들의 생명은 점점 풍전등화가 되어 가고 살로몬은 그가 살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날카로운 그의 얼굴과 눈빛이 더욱 영화의 맛을 살려 준 듯한 영화이며 음악과 달리 위태위태하던 그들의 하루하루, 전쟁은 바야흐로 끝나게 되고 나치도 어디론가 흩어지고 아무도 없는 수용소에 갑자기 들이닥친 이들, 다른 곳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에 눈에 비친 부르조아적인 위조지폐팀은 그야말로 다시 목숨이 위태롭게 되고 자신들 또한 같은 수용소인들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결코 양심적이지 않은 끝. 전쟁은 끝나고 많은 위조지폐로 도박과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살로몬, 하지만 그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바닷가에 앉아 있는 그의 뒷모습은 다른 누구의 모습보다도 쓸쓸하다. 그에게 삶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타인의 삶>이란 영화에서는 타인의 삶을 엿보면서 비로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찾게 되었다면 이 영화는 누구보다도 화려한 삶을 사는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큰 아픔과 쓸쓸함이 있다는, 그것이 무엇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대조를 이루며 보여준다. 남들이 보면 정말 행복하고 돈이 많아 행복할듯 한데,현대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돈이 많은 남자, 하지만 그에게 돈이란 땀을 흘려 노력하여 얻는 것이 아닌 ’만들어 내는 것’ 이다. 없으면 만들어 내면 된다. 그렇다면 그에게 삶이나 그외 행복이나 모든 것들이 돈으로 얻을 수 있을까.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것에 쓸쓸해 하는 남자, 전쟁이 끝나고 세상은 변했다고 하지만 그의 삶은 더욱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 남았지만 그 삶은 그에게 삶은 결코 값지지 않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가. 그가 찍어내는,만들어 내는 위조지폐처럼 모든 것을 그의 맘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삶은 변할까. 한남자의 쓸쓸한 삶을 통해 돈의 의미를 한번 다시 되새겨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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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 - Glov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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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그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을 보고 싶은가. 그 속에 사랑과 감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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