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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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 자신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알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이 그린 밑그림처럼 되어간다면 그 누가 후회를 하고 반성을 하며 살겠는가. 연습이 없는 인생의 무대에서 하루하루가 '전진' 뿐인 삶에서 우린 때론 '만약에 그 시간으로 되돌아 간다면..' '만약에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하며 '만약에..' 를 찾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만약의 시간으로 되돌아 간다고, 시계 바늘을 되돌려 놓는다고 해도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문득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생각이 나지만 거꾸로 가는 시간이라고 후회가 없지는 않다.언젠가 인간은 실수를 하게 되고 그렇게 하면서 진보하고 그릇이 더 커져 가는 것이지 처음부터 완성된 그릇의 인간이란 없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 그러니까 죽은이가 엮어가는 소설이다.화자가 죽은 자의 소설로는 <딩씨마을의 꿈> 에서는 이미 죽은 어린아이가 화자였고 <그녀에 대하여>에서도 아직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십대의 숙녀가 자신이 죽었던 나이의 어린 아이에서 시간이 흐른 후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이해해간다고 해야 하나 그런 기법으로 쓰였는데 이 소설은 그가 왜 죽게 되었는지 아니 그의 인생이 왜 무엇과 함께 꼬여 나가게 되었는지 도입부분에 나타내준다. 이 소설 또한 이미 죽은 자인 혈기왕성한 나이에 미쳐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게 된 마커스가 화자이다. 그의 인생은 절묘하게 한반도 전쟁과 함께 엮여 들어가게 되고 그로 인해 그는 한반도에서 꽃처럼 죽어가야만 했다. 그렇다면 그가 왜 역사의 현장에 오게 되었는지 무엇때문에 죽음을 당하게 되었는지 그 속으로 들어가본다.

이 소설을 읽으며 '만약에..' 라는 가장을 참 많이 해 보게 된다. '만약에..' 마커스의 인생에서 만약에 한반도 전쟁도 없었다면 그가 죽었을까.아니 그가 만약에 와인스버그 대학으로 옮기지 않고 그냥 시골 대학에 남아 있었다면 그가 죽게 되었을까. 아니 코틀러와 사귀지만 않았더라면, 채플시간에 지글러에게 대리출석을 하지 않고 그가 꾹 '울분' 을 참고 참석했더라면 그는 죽음에 이르렀을까.그의 가족의 비극은 일어났을까. 인생에 만약이란 단어를 뺀다면 우린 모두 희극속에서 자신이 그리는 그림대로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연습이 없는 삶이기에 길고 짧은 인생에 희극과 비극을 오가며 사는 것 아닐까.길고 짧은 것은 어찌보면 운일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어찌 사람의 맘처럼 의지대로 될 수 있는 문제인가.

원리원칙대로 살아가는 마커스의 아버지, 그는 유대인 대대로 가업처럼 해 온 정육점을 운영한다. 하지만 세상밖은 한참 시끄러워 그의 조카들이 하나 둘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게 되고 혹시나 그도 하나뿐인 자랑거리인 마커스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하고 늘 노심초사한다. 자신의 곁에서 하기 싫은 닭똥구멍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 내장을 빼내는 일도 서슴치 않고 잘해내는 아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면 무언가 일이 벌어질것 같아 안절부절 노심초사하는 그의 아버지는 그를 집안에 가두어 두듯 하려고 한다. 하지만 혈기왕성한 십팔세 청년이 갇혀 지내기엔 세상은 너무 호기심이 많고 그 또한 피가 끓는다. 아버지의 정육점에서 가업을 이어받아 닭내장이 빼내면 살고 싶지는 않다. 아버지의 관심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살고 싶지만 그의 가슴 속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으로 늘 복잡하다. 아버지 곁에서 함께 일을 하며 돈을 벌던 시간이 무척 행복했던 시간이었음을 그는 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부모님에게도 행복했던 때었음을 안다.하지만 이제 그는 세상밖 소식에 민감하고 그도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가며 살고 싶지만 자신이 고집하여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하여 집에서 멀리 떨어져 왔기에 부모님을 돕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를 힘들게 해야 하고 공부 또한 열심히 해야만 한다. 하지만 룸메이트들나 학장은 그런 자신의 맘을 몰라주고 그를 괴롭히듯 한다. 그렇다면 그가 참을 수 없는 '울분' 으로 가슴의 피가 들끓게 된 것은 무엇일까.

'울분' , 먼저 아버지의 관심이다. 너무 지나친 관심은 자식의 길을 다른 길로 가게 만들기도 한다. 그냥 지켜보고만 있으면 바라보고만 있으면 바른길로 잘 갈텐데 너무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울분' 에 삐딱하게 가고 싶어진다. 그게 사람맘인것 같다. 아버지의 관심이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룸메이트들이다. 잠잘 시간도 부족하게 열심히 뛰고 있는데 그런 자신의 잠잘 시간을 빼앗는 룸메이트에게서 벗어나기 위하여 방을 바꾸어 보지만 역시나 그곳에도 자신의 맘과 통하지 않는 사람 뿐이다. 그렇다면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남들이 가지 않는 지저분하고 불편한 혼자쓸 수 있는 방이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고 그만의 공간에서 그만의 방식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번에는 학생과장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의 방바꿈에 대하여 발을 거는 그를 향해 거침없이 구토를 해주는 마커스, 하지만 그것조차 그의 몸이 아픈 상황이었다. 충수제거수술을 하고 그의 음경을 빨아준 손목을 그어 자살 시도를 했던 올리비아를 만남으로 인하여 그는 또다른 세계를 맛보려 하고 있는 순간, 어머니는 이혼을 들먹이며 그의 그런 연애를 막으려 한다. 그렇다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이란 무엇이란 말인가.보잘것 없는 정육점집 아들이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여 전과목 A의 성적에 누구보다 모든 일에 열성적이고 거기에 아르바이트까지 하여 학비보충을 하고 있다면 최고라고 할터인데 그의 생각만큼 세상은 그의 편이 아니다. 조력자가 되지는 못할망정 그의 발목을 자꾸만 거는, 가슴속에서 밀어 올라오는 '울분' 을 참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자꾸만 족쇄처럼 발목을 잡는다. 

'나는 그애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그애가 두려웠다. 나는 아버지만큼이나 나빴다. 내가 바로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를 뉴저지에 두고 온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불안에 나도 둘러싸이고, 불길한 예감에 나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하이오에서 나는 아버지가 된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벗아나려고 하면 할수록 불안감에 휩싸인 아버지처럼 되어가는 자신을 깨닫게 되는 마커스, 어찌보면 뭉크의 <절규>를 보는 것 같다. 뭉크는 자신의 가족이 한 명씩 죽게 되는 불안에 자신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늘 시달려 정신질환을 알았다고 하는데 이 소설은 어쩌면 그와 흡사하다.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점점 불안에 빠져드는 아버지와 아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불안감은 비극을 예고하듯 '모르핀을 맞고' 라며 과거를 회상하면서 소설이 시작된다는 것은 뭔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을 되집어 보는 것이다. 만약에 그는 어느 한순간, 그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한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니 어느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바뀌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 모든 시간들을 잘 이겨냈다면 그는 학업을 마치고 변호사가 되어 있을 수도 있고 결혼을 하고 잘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는 스무살 그 후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불안처럼 아버지 또한 아들의 비극적 죽음으로안해 자신 또한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되고 어머니는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던 자신의 남편을 이겨내지 못하여 모든 것이 비극적으로 끝났다고 자책하며 살게 된다. 혼자서.그렇다면 그들의 인생에서 무엇이 그토록 꼬이게 만든 것이고 무엇이 그토록 참기 힘든 '울분' 이었을까.

채플시간에 참을 수 없는 중국의 국사를 몇 번씩 반복하여 부르듯이 그가 좀더 한반짝 뒤로 물러나 자신의 삶을 관조하였다면, 정말 가슴에 참을 인을 세번 정도 생각하며 행동하고 말을 했다면 그는 울분을 참지 못하여 짧은 생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네 삶에 만약에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연습없는 단막극이기에, 어느 순간 삶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라도 그런 순간은 있다. 그렇다고 모두 '울분' 의 시간을 참고 군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비극적인 삶은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커스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격한 시간은 바로 '청춘' 의 시간이다 한참 청춘의 피가 끓는 시간이니 무엇인들 참을 수가 있었을까. 격정과 분노속에 자신이 세상의 중심으로 보이는 그런 시간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희극이 될 수도 비극이 될 수도 있다는 선택의 갈릴길을 잘 표현해 냈다. 그 또한 그 시기에 쓴 소설이라니 얼마나 잘 표현해냈겠는가.격정적인 시간을 비극으로 갈무리하여 안타깝지만 청춘의 그 길목을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런것을 보면 참을 인을 세 번은 아니어도 한 번을 새기며 한번 참아보는 것도 어찌보면 삶의 한 방법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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