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물 들나물 대백과
이영득 글과사진 / 황소걸음 / 2010년 3월
장바구니담기


산행을 잘 하지 못하는데 몇 해 전부터 건강을 위하여 뒷산부터 오르기 시작하여 낮은 산부터 천천히 한걸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욕심을 부리지 않고 그날 갈 수 있는 곳까지, 내가 허락하는 곳까지 가기 시작한 것이 산에는 많이 가지 못한 것이 몇 년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야 겨우 뒷산 나들이 가끔 하는 수준이지만 그렇게 산에 다니며 나무며 야생화등 자연에 더 눈을 뜨게 된 것이 다른 무엇보다 기쁨이다. 철마다 피는 야생화가 보고 싶어 산에 가고 싶어 안절부절 하다가 가는 것은 겨우 뒷산, 그래도 만족이다. 낮은 산이라도 아파트 바로 뒤에 산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혜택인가.


그렇게 오르게 된 산에서 만나는 야생화나 나무 그리고 버섯과 곤충들에 관심을 가지며 그날 숙제를 하듯 그날 본 것들의 이름을 찾다 보니 자연이 아니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김춘수님의 꽃이란 시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정말 그 말이 맞다. 내가 야생화의 이름을 몰랐을 때는 그냥 들꽃이나 꽃 아닌 하얀 꽃,노란 꽃이었지만 이름을 부르고 부터는 그것은 새로운 생명을 간직하게 되었고 내 안에서 새로 태어난 생물이 되었다. 그렇게 하나 하나 익힌 것이 그래도 어디가서 '조금 안다' 할 정도만 익혔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그리고는 궁금증에 곤충도감,식물도감,동물도감 그리고 버섯도감을 장만한다는 것이 안된다. 그리고 이젠 나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기회를 만들게 된 이 책, 아 너무 반갑다.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야생화가 이 곳에 모두 담겨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는 먼저 산나물편이 등장을 한다.하긴 우리 국토의 70%가 산이니 산에서 나는 산나물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내가 아는 산나물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것도 산에 다니며 나물을 뜯이시는 분들에게 물어서 겨우 얻은 것 몇 개 정도이고 내가 직접 체취한것은 다래순과 뽕잎 취나물 조금 고사리 정도이다. 그외는 어떻게 그 경지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다보니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야생화가 모두 나물이다. 아 이렇게 등잔밑이 어두울 수가. 어릴때 난 동네에서 나물으 제일 잘 뜯고 찾는 아이였다. 사물이나 자연에 관심이 많았던 탓으로 무엇이든 그냥 지나치지 않고 눈여겨 보고 지나서일까 어디에 가면 미나리가 많고 씀바귀가 많고 어느 밭에 가면 냉이가 많고 달래가 많은 논둑이 어디고, 내가 살던 곳은 평야이기에 그야말로 나물이 널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들에 광주리 하나 들고 나가면 금방 한광주리 나물을 뜯어 들어와 부모님이 들일을 하고 들어 오시면 반찬 걱정을 한가지 덜어 드리기도 했다. 그런 내가 산에 가면 아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나물을 뜯으시는 분들에게 물어 다래순도 알게 되었고 엄나무순 옻나무순등을 알게 되었지만 어린 순을 뜯는다는 죄책감에 나물 체취를 잘 안한다. 그런데 나물이란 것이 이른 봄에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그래서 산행시 산 입구에서 동네 할머니들이 파시는 나물을 잘 사온다.

그런데 요즘은 웰빙이다 사찰음식이다 건강식이다 하면서 종종 만나게 되는 프로에서 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못 먹는 것인줄 알았는데 먹는 것이다. 대부분 뿌리를 먹는 것은 잎도 먹는단다. 그렇게 알고 보니 세상에 먹을 것이 더 많다 못 먹는 것보다. 이 책에서 만나는 산나물도 들나물도 갯나물도 나무나물도 그냥 잡초고 야생화라만 알던 것들이 모두 나물이다. 아 이렇게 고마울수가.그렇다고 당장 뜯어다 나물을 해 먹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나물꾼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무언가 잃어 버리고 있던 '먹거리' 를 찾은 것처럼 반갑고 고맙다. 산나물 하면 먼저 떠 오르는 고사리 고비 취나물 그외에도 너무 많다. 그냥 꽃만 보던 바위취 기린초 꿩의비름 제비꽃 참당귀 금낭화 미나리냉이 노루오줌 짚신나물 광대수염 개별꽃 앵초 산씀바귀 솜방망이 지칭개 엉겅퀴 둥굴레 풀솜대 향유... 그 많은 것들이 난 야생화로만 알고 있던 것들이 대부분인데 나물로 나오니 새롭다. 또 다른 세계를 알게 된 것은 느낌이다.우리 언니가 산에 가서 잘 뜯어와 봄에도 맛있게 먹었던 밀나물, 그 이름을 확실히 익혔다.


그렇다고 들나물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야생화로 알던 것들이 많다. 쇠뜨기,우리 어릴때 마늘밭에 너무 많아 다 뽑아 버리던 풀인데 나물이다. 며느리배꼽 모시풀 소리쟁이 벼룩나물 고마리 꽃다지 쇠별꽃 돌나물 개망초 벌개미취 뚱딴지 큰망초... 그 이름을 정말 나열하기도 힘들다. 그냥 잡초로 여겼던 것들이 나물이 되는 순간이고 먹거리가 되는 순간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독성이 있는 것들만 빼면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왜 안그렇겠는가 어려운 보릿고개 시절에는 초근목피로 연명을 했는데 못 먹을게 어디 있을까, 않먹고 입맛이 바뀌고 먹거리가 바뀌었을 뿐이지 그것들은 원래 나물이었고 먹거리였던 것이다. 그것을 점점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것이지. 내가 들나물에서도 나물이라고 뜯어 먹던 것은 몇 개 안된다. 아, 그런데 들나물도 정말 많다. 그냥 잡초고 야생화로 알던 것들이 나물이었는데 먹을 수 있는 나물을 그냥 잡초로만 여겼던 내 무식이 한심스럽기도 하다. 알면 알수록 정말 새로운 세계가 식물이고 자연인듯 하다.


나무나물 또한 내가 아는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먹어 본 것은 그나마 친정엄마가 팔순이 다 되는 연세에도 예전에는 나물을 잘 뜯으러 다니셨기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조금 있었다. 그렇게 친정엄마께 알음알음 안 것들이 대부분 이었고 내가 잘 모를땐 엄마께 전화를 해서 물어 보기도 하고 산행을 갔다가 산입구에 할머니들께도 잘 물어본다. 그런데 나무 나물도 정말 많다. 올 봄엔 옻순 엄나무순 두릅등 몇 개의 나무나물을 먹어 보았는데 정말 맛있다. 나물의 그 오묘한 맛에서 벗어 날 수 없는 그 행복감을 포만감으로 돌렸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나무나물도 느릅나무 참느릅나무 산뽕나무 오미자 생강나무 큰꽃으아리 으아리 으름덩굴 다래 음나무 국수나무 찔레꽃 칡 두릅나무 누리장나무 병꽃나무등 정말 많다. 먹거리들을 그냥 지나치며 산을 오르고 내린 것이다. 다른 나물도 그렇지만 나무들은 새 잎이 돋아 나오는 그 여린 잎들은 정말 야들야들 하면서도 고소하면서도 맛있다. 친정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나물이 꼬십지' 라고 답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렇게 많은 나물들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갯가나물도 있다. 어릴적 내가 사는 곳에는 갯물이 들어오는 기수역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무이 들어오는 갯가에 나가면 갯가에서만 나는 나물들이 있었다. 뱀을 무척 무서워했던 나는 뱀의 무서움도 잊고 갯가나물을 뜯고는 했던 기억이 있다. 참 맛있기도 했는데 친정엄마께 여쭈어 보니 지금은 그런 나물이 없단다.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는데. 갯완두 갯방풍, 몇 해 전 증도에 갔다가 갯방풍을 많이 본 듯 한데 나물로도 먹는단다. 난 그저 갯가의 야생화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이런... 갯씀바귀는 나도 어릴적에 무척 많이 뜯으러 다녀 아는 것이라 반갑다.


그리고 이어지는 '독이 있는 식물', 버섯이나 식물이나 독이 있는 것은 화려하고 겉모양이 번지르르하다. 먹기좋은 떡이 보기도 좋은 것이 아니라 모양이 좋고 색이 화려하다면 일단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입에 대면 안된다. 독에 중독될 수 있다. 자리공 할미꽃 앉은부채 홀아비바람꽃 미나리아재비 복수초 하늘매발톱 투구꽃 괴불주머니 미치광이풀 애기나리 윤판나물 삿갓나물 천남성 족도리풀등 꽃의 색이 어둡거나 화려한 것은 독이 있는 식물일 가능성이 높으니 일단 주위를 해야 한다. 산이나 들이나 내가 아는 나물만 뜯으면 됐지 더 많은 욕심을 부리면 탈난다.


책은 나물에 대하여 모든 것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나물 체취하러 가는 복장이며 체취철이며 조리법 산야초 만드는 법 등 그외 나물 한가지 한가지에 대한 세세한 사진과 함께 나물을 체취한 날짜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어 도움을 더 준다. 그리고 조리법과 추천음식으로 간결하게 정리를 해 놓아 이 책 한 권을 가지고 있으면 나물박사가 될 듯 하다. 하지만 난 나물공부도 되었지만 야생화 공부도 덤으로 할 수 있어 좋다. 이름을 모르던 것들을 사진을 보면서 '아하' 하는 순간이 참 좋다. 내가 나물 한가지를 알아서 뜯어 먹기 보다는 한가지 식물을 더 알게 되었다는 기쁨이 더 좋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손이 닿는 곳에 놓고 닳고 닳도록 봐야겠다.그러다 봄이 되면 산에 가서 한가지 나물 더 뜯거나 책에서 본 것을 신기한 듯 찾아보는 맛도 즐길 수 있으니 참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앗싸라비아 - 힘을 복돋아주는 주문
박광수 글.사진 / 예담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박광수, 그의 웹툰을 본 것이 언제였던가.난 참 무심하게 그동안 그를 잊고 살았다. 그가 어떤 만화를 그렸는지 어떤 말들을 쏟아 냈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동안 세월은 참 많이 흐르고 그도 나이를 먹었고 나도 나이를 먹었다. 이제 반환점이나 마찬자기인 이 지점에서 무언가 남은 인생을 위한 주문이 필요하다, '앗싸라비아'. 책의 겉표지의 도형들을 보고 있으면 어디론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나라' 나 아님 어느 곳인지 모를 '블랙홀' 에 빨려 드는 요지경속 도형같다. 그냥 보면 반짝반짝 은빛인데 이렇게 들어보니 '무지개빛'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도 그의 인생도 지금 무지개빛...

나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진의 단점은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내가 보고 싶은 곳' '내가 볼 수 있는 곳' 그 한부분만의 세상을 '똑 떼어내어 볼 수 있다' 는 장점이 있다. 그외 세상에서는 무엇이 일어나든 상관하지 않고 아름답게 보고 싶다면 좀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좀더 넓게 보고 싶다면 원거리 촬영을 하여 찍어 보면 된다. 그렇게 뷰파인더 속 세상을 들여다보다 보면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도 발견하게 된다. 좀더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삶에도 물음표를 던지며... 그의 '앗싸라비아' 에서는 왠지 모르게 지금 그가 서 있는 인생의 현재점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를 들여다보는 청사진처럼 내게 다가왔다.

과거, 그 속에서 만난 것은 어머니다. 어머니의 레시피대로 파 양파 고추 고춧가루 참기름 약간, 잘 익은 김치를 넣고 김치볶음을 하지만 그것은 결코 어머니가 해 주신 그 '맛' 아니다. 어머니의 손맛을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레시피엔 없다. 그것은 정성이고 마음이고 세월이다. 하지만 지금의 어머니는 과거의 모든 기억들을 하나씩 소거해 나가고 계시다. 아니 전부를 소거했는지도 모른다. 치매라는 어머니의 인생 마지막 친구 속에는 '어머니의 김치볶음' 맛이 들어있지 않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는 부분에서는 '울컥' 눈물이 솟았다. 나 또한 아버지를 지난해에 보내 드렸지만 그때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벌써 가물가물하다.아버지의 목소리, 아버지의 다정한 웃음소리, 그리고 아버지의 그 모든 행동과 언어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처럼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흘러가듯 아버지의 기억도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가 버렸다. 그가 담으려 했던 것은 어쩌면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 연습' 인 것처럼 불쑥 불쑥 글과 사진들에서 느껴지는 어머니에 대한 정성과 사랑 속에서 난 내 아버지를 만났다.

추억의 책장을 넘기듯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며 만나는 사진과 공감이 가는 글 속에서 삶에 지쳐 갖지 못했던 '여유와 휴식' 을 잠시 느껴본다. 그러다 돌아서는 길목에서 우연히 마주치듯 읽게 되는 가슴 뭉쿨한 글, 짧은 글에서도 눈물이 난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어쩌면 '눈물샘' 을 터트리는 것처럼 점점 늘어나는 눈물을 감당 못 할 때도 있다. 눈이 안 보이는 소년이 연을 날리고 있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 소년은 왜 연을 날릴까, 다른 일들이 자신의 연을 보고 '기쁨과 즐거움' 을 느끼니 자신을 위해 날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날리는 소년, 우린 너무 자신만을 위해 살고 점점 이기적이 되어 가고 있는데 문득 그 짧은 글과 사진 속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며 내 지난날을 뒤돌아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책을 다 읽기전 전날 늦은 밤에서 기숙사에 있는 큰딸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서로 별것도 아닌 일로 목소리를 높이고 그렇게 서로의 감정을 상하다 전화를끊고 어젯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게 보내고 아침을 맞아 바로 딸에게 전화, ' 니가 웃어야 모두가 웃는 것 알지,니가 웃어야 우리 가족 모두에게 힘이 나는 거야. 웃자.' 하며 좀더 여유를 가진 말들을 해 주었더니 봄 눈 녹듯 내 마음도 딸의 마음도 풀어졌다. 산다는 것은 별거 아닌데 왜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얻으려 하는지. '오래 엎드려 있던 새는 높이 날 수 없고, 먼저 핀 꽃은 일찍 지니, 이를 알면 발을 헛디딜 염려와 초조한 마음은 사라질 것이다.' 그의 사진과 잔잔한 글 속에서 잠시 내 잃어버린 여유를 찾는다. 그리고 마음의 휴식의 시간을 가져본다. 현재에 필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욕심도 아니고 어쩌면 한템포 늦출 수 있는 '여유' 는 아닐까.

그의 다른 책들을 보았다면 다른 느낌을 가졌을텐데 만화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포토에세이' 라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사진 또한 넘 좋다. 남이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먼저 잡아 내기도 하고 순간 스러지는 아름다움을 담아 내기도 하고 그래서 사진은 참 좋기도 하고 다시 꺼내어 보면 '물기' 를 머금고 있기도 하다. 지난 것은 어느 것이나 되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시간 뿐만이 아니라 인생도 그렇고 모든 것들이 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잡아 내고 기억하고 기록하지만 그것은 바로 순간에 '과거'가 되고 만다. 그 속에서 한 대학에서 존경을 받는 노교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늘 학생들에게 반말을 쓴지 않는 교수님 그가 왜 학생들에게 반말을 쓰지 않을까, ' 나는 현재의 자네들에게 경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네. 나는 자네들의 위대한 미래에 대해서 존경과 경의의 뜻으로 경어를 쓰는 것이라네.' 얼마나 가슴 뭉클한 말인지. 새삼 반토막 등록금에 않좋은 교육제도들에 흔들리는 교육이야기들에 가슴에 멍이 들었는데 제자들의 '위대한 미래에 대하여' 라는 말에 가슴이 울컥했다. 참교육자의 모습을 본 듯도 하고 밝은 미래를 본 듯도 하고.

그렇다면 그의 사진과 글들이 내게 지금 '수리 수리 마수리' 하면서 '앗싸라비아'라고 주문을 걸어 준 것이 맞는 듯 하다. 잠시 어둡게 내 머리 위에 걸쳐 있던 먹구름을 거두고 밝은 하늘과 무지개를 내려 걸어 주었다. 한 장 한 장 내가 보지 못하고 내가 알지 못하던 뷰 파인더 속의 세상과 행간을 읽게 해 준 '앗싸라비아' 사진과 글이 참 좋다. 마음의 여유가 날 때마다 다시금 어느 페이지든지 펴서 차 한 잔과 함께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너무 깊숙히 모셔두기 보다는 가까이 손 닿는 공간에 놓아 두고 한동안 '오랜 지기' 처럼 두고 싶은 책이다. 한참 고3이라 힘들어 하는 딸에게 한페이지를 펼치고 읽어 주었다. 아니 그 글을 이야기 해 주었더니 좋단다. 서로에게 드리워져 있던 먹구름이 잠시나마 걷혀서 다행이다. 내일 다시 먹구름이 몰려 온다해도 오늘은 오늘의 주문대로 '앗싸라비아' 하게 지나갈 수 있는 하루가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 또한 딸들에게 엄마의 이런 '포토에세이' 집을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을 가져본다. 늘 녀석들의 일상을 담고 사진으로 남겨 두던 지난 날, 어리고 힘들고 미래가 불확실하다 해도 다 묶어 놓으면 추억이고 행복이다. 행복속에는 불행도 기생한다.공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기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가 불행한 날이 있다고 불행하다고 생각이 들기에 행복이 더 간절하고 배로 느껴진다면. '철수엄마' 라는 글에서 청각장애자인 엄마와 아들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 하지만 그것은 말로 안해도 느낌이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왠지 모를 '사랑' 을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한아름 선물 받은 것 같다. '공간은 중요하지 않아. 공간을 채우는 것은 사람들일뿐. 그 사람들과 그곳에서 사연을 만드는 것지.' 정말 사연이 가득한 책이다. 보고 읽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듯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해에도 '2010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을 읽었는데 올해 만난 작품들은 왠지 모를 낯설음, 소설을 그래도 조금은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젊은 작가' 들의 작품을 등한시했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작가의 이름도 내용도 나와는 동떨어진 느낌을 가져 평론을 읽지 않고 읽어보려다 조금 참고를 하며 읽었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상이고 작품집이기에 나 또한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리고 그다음에도 쭉 이어 책들을 만나고 싶은데 장편만 읽다가 단편을 읽어서일까 낯설다. 하지만 작품들마다 왠지 모르게 '외로움,고독,절망' 속에서도 나름 희망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 같은 그들의 바닥을 짚고 일어서는 '패기' 를 느껴 희망적으로 책을 놓으며 그들의 또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물속 골리앗 - 김애란
그녀의 첫 장편소설인 <두근두근 내인생> 요즘 주목하고 있는 작품인데 이 작품을 먼저 만나게 되었다. 물속 골리앗은 정말 재난 소설이다. 일본의 대지진을 뉴스를 통해서 보았기에 이 소설이 낯설지 않았을까, 우리의 재개발과 일본의 대지진이 함께 어우러져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평생 용접을 하며 겨우 장만한 아파트, 대출금을 겨우 값고 '내집이다' 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그것도 모두가 떠나버린 빈 아파트에 어머니와 둘이 남아 있는데 거대한 장마가 닥쳤다. 그들은 상중이기에 그곳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재개발시위에서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평생 불을 가지고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축축하게 물에 적어 있었다. 타워에서 떨어지셨다는데 이유가 뭘까. 아버지의 사유도 재개발이 된다니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려해도 그들에겐 더이상 물러설 곳도 아무것도 없다. 오직 이 집이 그들이 가질 수 있고 버틸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인 것처럼 그들은 집에 갇히고 줄기차게 내리는 장마로 인해 거대한 물이 모든 것을 휩쓸고 간다. 아버지의 묘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머니마져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시신을 겨우 문짝배를 만들어 거대한 물살에 띄워 보지만 황톳물은 아버지를 데려 간것처럼 어머니도 데려가 버렸다. 그런 속에서 골리앗을 만나고 아버지의 영혼의 도움으로 먹을 것을 구하게 되어 겨우 살아난 그 앞에 비는 그치고 하늘에 뜬 '반달' 을 보게 된다. 아버지도 잃고 어머니도 잃었지만 그 자신만은 재난 끝에서 겨우 살아 남아 반달을 보고 있다.희망적이라고 해야 할까,목숨을 건졌으니. 실감나게 그려지는 일들이 영화 속 장면들처럼 뇌리에 남는다. 표현을 잘한듯 하여 그녀의 다음 작품들이 아니 앞으로의 행보가 기다려진다.

물속 골리앗이 재난소설이라면 김유진의 <여름> 은 무언가 감각적이면서도 쓸쓸함이 느껴진다.개수대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벌레와 인터뷰에서 느껴지는 '쓸쓸함' 알 수 없는 여름의 뙤약볕을 방금 지나쳐 온 듯한 순간의 현기증이 느껴진다. 그런가하면 이장욱의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 은 몽롱하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가는 그런 현실속에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분간이 안가는 자전적 느낌까지 '먼 공간을 건너온 것이 아니라 먼 시간을 건너온 것 같은 기분이 되곤 한다.' 라는 소설속 문장처럼 그런 느낌이다. 현실이면서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생각' 속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김사과의 소설은 현실적인 '분노' 를 보지만 왜 분노해야 하는지 사무실에서는 꾹 꾹 눌러 참던 그가 왜 밖에서는 살인을 저지르며 알 수 없는 슬픈 분노로 인하여 타인처럼 변해가는지 약간은 판타지적이며 점점 분노의 끝을 알 수 없는 블랙홀에 빨려 들 듯 따라가게 한다. 그녀의 다른 책 <영이 02>를 가지고 있는데 그녀를 좀더 들여다 보고 싶게 만든다.

단편 소설 한 편으로 작가들을 이해하기란 힘들다. <허공의 아이들>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모두가 증발해 버리고 소년이 소녀를 만나 마트에서 가져온 것들로 연명하며 서로의 성장을 지켜 보는 시간 속에 소녀 또한 증발하고 소년만 남겨지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 처럼 허공중에 있다. 아, 난감하다.외롭다.쓸쓸하다. 그런 세상이 올까,갑자기 궁금해진다. 물로 모든 것이 휩쓸려 가는 중에도 '물속 골리앗' 에서도 한사람이 살아 남았고 '허공의 아이들' 에서도 소년이 살아 남았다. 아담과 이브처럼 있던 그들 중에서 한사람이 사라진 순간에 '뼈가 자라는 소리' 를 듣게 되는 소년, 난 이 소설을 어떻게 내려 놓아야 할까. 내가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도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라 해도 난 그저 '희망' 을 보았다는 이유로 작품을 접는다. 그렇다면 <너의 변신>은 어떤가, 성형이 만연한 사회,예전에는 일부 연애인이나 그외 자신에게 콤플렉스가 있다고 생각하는 몇 몇이 하는 그런 '변신' 인줄 알았는데 이제 성형은 '일반적' 인 일이 되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어느 부위이든 맘에 들지 않으면 고치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렇기도 하거니와 성을 바꾸는 일도 놀랍지 않다. 세상이 변해가고 환경이 변해가니 이해할만 한데 그 끝이 어디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완벽함' 을 추구하여 무엇이 될까. 외모에 그리 욕심을 부리지 않는 내겐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요즘 세태를 나태내고 있는 듯 하여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소통의 부재를 보다'
그리고 <떠떠떠,떠> 말을 하고 싶지만 그가 내 뱉는 언어는 '떠떠떠..' 남들은 그의 말을 기다리는 순간에 다른 세계에 빠져 있다. 그의 언어는 말이 되지 못하고 가슴 안에 맺히고 만다. 그런 속에서 한 소녀가 쓰러지고 전학을 가게 되고 사회인이 되어 사자탈을 쓴 청년과 팬더곰탈을 쓴 아가씨가 되어 만났다. 아직도 그의 언어는 말이 되지 못하고 있다. 서로의 아픔도 충분히 알고 감싸줄 줄도 알지만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랑이 되려는 순간에 마찰음을 일으키듯 그녀는 발작을 그남자는 '떠떠떠' 말더듬이가 된다. 사랑에도 '소통' 이 되어야 하는데 서로의 장애로 인하여 '단절' 된다. 어찌보면 단편들은 현대인들이 겪는 '외로움' '고독' '소통의 부재' 를 나타내기도 한다. 물속 골리앗에서는 빈 아파트에 어머니와 그만 외로이 '고립' 된다. 그러다 혼자 남겨지게 되는, 그 순간에 세상과 통할 수 있는 무언가 수단이 있었다면 어떻게 소설은 변했을까, 소통이 안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겪는 외로움과의 싸움은 처절하다.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 또한 혼자 겪는 외로움이 더 큰 혼란을 가져오지 않았을까,멀리 이국땅에서. 그렇다면 김사과의 소설은 또 어떠한가. 자신의 슬픈 분노를 남에게 털어 놓았다면,회사에서 억눌린 감정을 옆 동료에게 털어 놓았다면 줄줄이 이어지던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이 발생했을까. '허공의 아이들' 또한 고립이고 외로움이다. 어느 누구도 없다. 세상에 단 둘만 버려진 상황에서 그들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지만 언제 증발하게 될지 모른다. 다른 세상과 소통할 무엇이 없다. 그런 속에서도 자신은 자라고 있다. 아이러니다. 외롭고 고독함 속에서도 시간은 간다는 것이다. 삶은 계속되고 시간은 흘러가고 물은 낮은 곳을 찾아 흘러간다. 그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어 사랑의 소통이 안되는 순간에도.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스마트시대라고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개인화와 고립화' 로 이어지는 것 같다.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시대라고 하지만 언제나 난 혼자인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당당하게 홀로 남겨지는 사람들, 하늘에 뜬 반달을 보듯, 젊은 작가들에게서 나 또한 희망을 본다. 작품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산마애블이며 구례연곡사 바로 앞까지 갔다가 못 갔던 곳들이 나와 더 와 닿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