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하트우드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김경미 옮김, 배그램 이바툴린 그림 / 비룡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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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면서 사는 사람이 더 행복을 느끼고 건강하다고 한다. 사랑도 받는 것보다 줄 때에 느끼는 행복은 몇 배가 된다.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이란 책은 드라마 '별그대'에서 외계에서 온 도민준이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찾은 천송이와의 사랑 사이에서 오작교와 같은 작품처럼 등장해서 관심을 갖다가 미루어 두었던 책인데 저자의 <초능력 다람쥐 율리시스>를 읽고는 <생쥐기사 데스페로>를 몇 년 전에 읽어봐야지 하고 소장하고는 잊었던 작가의 책이란 것을 알고 읽어보게 되었다. 사랑이란 사랑을 할 때 참 유치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고통없이 얻어지는 것이 있을까? 아픔만큼 성숙해진다고 고통 뒤에 따라오는 사랑은 더 깊고 바다처럼 넓어 모든 것을 다 담아들 수 있는 넓은 그릇과 같은 마음을 갖게 만드는 것 같다.

 

 

소설에서 에드워드는 그야말로 장인이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토끼인형'과 같은 도자기와 귀와 꼬리는 토끼털로 만들어진 공들인 인형이기도 하지만 할머니가 손녀딸 애블린에게 선물한 인형이기도 했다. 도자기로 만들었으니 당연히 가슴은 차갑다. 아니 모든 것이 차갑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지만 애블린은 사람처럼 그에게 옷도 입히고 회중시계도 있어 애블린이 몇 시에 학교에서 돌아오는지 알 수가 있다.다른 것은 그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애블린이 모든 것은 보이듯 그는 애블린의 사랑을 넘치게 받고 있다. 그런 에드워드가 애블린네 가족과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배를 타고 가다가 개구장이들 때문에 뜻하지 않게 바다에 빠지게 된다. 그리곤 모험이 시작된다.그만을 넘치게 사랑을 해주던 애블린을 떠나 차가운 바다 밑에 가라앉게 되었지만 어부의 그물에 걸리게 되어 어부부부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남자였지만 어부부부는 그에게 여자이름과 여자옷을 입혀 놓기도 했고 다시금 어부의 딸 때문에 쓰레기장에 버려지게 되고 떠돌이 노숙자의 손에 들어가게 되지만 개와 노숙자는 그에게 옷도 해 입히고 그들과 함께 여행을 하게 해준다.그러다 다시 그들과 떨어지게 되고 어느 불쌍한 아이들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코흘리개 남자아이는 다 죽어가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에드워드를 선물해서 그녀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해준다.하지만 그도 잠시 여동생이 죽음과 함께 에드워드의 운명도 끝이 나는가 했지만 코흘리개는 에드워드의 삶을 끝이나지 않게 인형수리아저씨께 보내고 에드워드는 비록 몸에 흠집은 있지만 멋지게 다시 생명을 찾아 선반위에서 손님을 기다린다.자신을 찾아 줄 누군가가 있을까? 지금까지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았는데 그는 애블린에게도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고 그의 사랑을 주지 못했다.이제부터는 자기 스스로 사랑을 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느끼는 순간에 어느 꼬마 숙녀가 그에 앞에서 멈추어 서고 그에게 다가 온 이는 다름아닌 '애블린'그의 원래 주인이다. 그녀가 꺼내든 회중시계처럼 그를 기억해주는 누군가에게 이제 다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비록 그동안의 세월동안 여기저기 낡고 흠집은 생겼지만 가장 거리가 멀다는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지게 된 것이다.

 

 

드라마 '별그대'에서 왜 이 책을 선정한 것일까? 도민준 또한 에드워드 툴레인과 같은 여행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지구에 정착을 한다면 자신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사랑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내 놓는 것과 같은 상황에서 그는 사랑을 택한다. 응당 그에 대한 대가처럼 그는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기도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그래서 더 가슴 절절하게 느껴진다. 에드워드의 사랑 또한 자신을 진짜 살아 있는 토끼처럼 대해주는 애블린,애블린이 늘 나가면서 에드워드에게 하는 말은 '사랑해,에드워드'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 말에 대한 대답을 해줄수가 없다.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것 뿐이다. 그래도 애블린은 에드워드에게 식탁에 앉게도 해주고 침대에서도 곁에 눕게 해준다. 늘 자신의 옆자리를 내주면서 귀하게 대해준다.그때는 사랑이 그렇게 행복한 것인줄 모르다 애블린 곁을 떠나게 되고 그가 누리던 그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잃게 되면서 자신이 그동안 누렸던 그모든것들이 얼마나 행복이고 사랑인지 깨닫게 된다. 그것을 오랜시간 오랜 여행을 거치면서 느끼고 겪게 된다. 어떻게 보면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를바 없을 듯 하다.사랑인줄 알고 시작한 것들은 한순간에 식어가게 되기도 하지만 오랜시간이 지나다 보면 미운 정 고운 정에 사랑은 받는 것보다 줄 때가 더 행복하다는 느끼며 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사는 이들이 많다. 그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욕심만 채우는 사람도 더러는 있지만 말이다.너무 늦기 전에 깨닫아야 하는데 죽는 순간에도 깨닫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난 이미 사랑을 받아 봤어.애빌린이라는 여자아이의 사랑을 받았지.그리고 어부와 그의 아내,떠돌이와 그의 개에게 사랑을 받았어. 또 하모니카를 부는 남자애와 죽은 여자애에게 사랑을 받았고, 나에게 사랑에 대해 말하지 마.나도 사랑을 알아."

 

사랑은 대가를 바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더 진정한 가치가 있는데 사랑의 대가를 바라며 사랑을 베푸는 이들도 있다.케이트 디카밀로는 동화인지 우화인지 그 경계가 애매모호한 이야기 속에서 어린이에게도 그리고 어른에게도 마음을 울려주는 이야기를 참 잘 쓰는 작가라 그런지 2004년에는 <생쥐기사 데스페로>로 뉴베리상을 수상하고 2006년에는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으로 혼 북 상을 받았다고 한다. 케이트 디카밀로는 어느 크리스마스에 멋지게 잘 차려입은 토끼인형을 선물받게 되고 며칠 뒤 토끼 인형이 바다 밑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꿈을 꾸고 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차가운 도자기 인형 에드워드 툴레인이 가슴 따뜻한 사랑을 찾게 되기까지 신기한 여행을 하는 과정이 참 재밋기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상처의 흔적마다 아름다운 사랑꽃이 피기라도 하는 것처럼 에드워드 툴레인이 겪은 신기한 여행을 따라가다보면 가슴에 고이는 따뜻한 감동이 오래도록 남을 듯 하다.에드워드의 사랑처럼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사랑도 시간이 흘러가고 인생의 파고를 넘으면서 점점 그 깊이와 의미가 달라지는 듯 하다.사랑도 세월과 함께 성장을 하는 것처럼."마음을 열어. 누군가 올 거야. 누군가 널 위해 올거라고.하지만 먼저 네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해." 모든 것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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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턴드
제이슨 모트 지음, 안종설 옮김 / 맥스미디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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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국이 한참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로 시끄러울 때 이 책을 읽게 되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 또한 지난 달에 13년동안 함께 하던 애견을 보냈고 그 전에도 친정아버지와 또 다른 애견을 보낸 일이 있어 가끔은 '다시보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씩 해보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말 하루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아니 정말 보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본 듯 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만약에 딱 하룻밤만 어머니가 정말로 돌아오시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만약에 죽었던 이들이 아니 나의 소중한 가족이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

 

어느 날 갑자기,죽었던 이들이 다시 살아 돌아왔다.

해럴드와 루실에게는 8살된 아들 제이콥이 있다. 제이콥의 여덟번째 생일날에 그들은 제이콥을 잃고 말았다. 모두 생잎파티를 하고 있는데 제이콥이 혼자 강가로 간줄 누가 알았을까.제이콥은 그렇게 익사하고 말았다.그리고 50년이란 시간이 흘러 그들은 칠십대의 노파가 되고 루실은 제대로 된 잠을 자보질 못했다.그런 그들 앞에 '귀환자' 라고 할 수 있는 아들이 그때 그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났다. 젊은 시절의 부모가 아니라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그들에게 어린 아들인 귀환자는 악마일까? 다시 한번 그들에게 찾아온 기회일까?

 

믿음이 강한 루실은 제이콥이 나타나기 전에는 귀환자를 악마라 하였지만 자신의 아들이 나타나자 '축복'이라 여긴다. 그는 힘에부치지만 제이콥을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여 살뜰하게 보살피지만 해럴드는 귀환자 제이콥을 아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사람이라 할 수도 없는,분명히 자신의 손으로 제이콥의 시체를 건져냈고 묻기까지 했는데 이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갈등을 하게 된다. 마을에는 제이콥 뿐만이 아니라 무척 많은 귀환자들이 생기게 되고 그들은 한꺼번에 가둘 시설로 학교를 택하여 그들을 한곳에 두려 하는데 해럴드는 제이콥과 그가 죽었던 그 장소에 갔다가 그를 아들로 받아 들이게 되면서 시설에도 함께 들어가게 된다. 아들이라 인정하지 않았던 귀환자가 자신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자신은 나이를 먹었지만 아들은 그 시절 그대로 그들이 즐겼던 수수께끼 문제도 할 줄 알고 그야말로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부자의 정을 나눈다.

 

한두명이 아니라 너무도 많은 귀환자가 생긴다면 살아 있는 사람들의 권리는 어떻게 될까? 귀환자들로 넘쳐나는 곳이 마을 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고 그들도 똑같이 사람처럼 먹고 자고 감정을 느끼는데 그에 드는 것들이 많으니 당연히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귀환자'들은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기를 들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죽은 가족이 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풀지 못한 문제가 있었는데 왜 그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인지. 갑자기 사고를 당해 죽거나 죽는 순간 가족과 풀지 못한 문제가 있는 귀환자들은 꼬였던 실타래를 풀 듯 가족과 나누지 못했던 것들을 풀며 그들이 돌아가야 할 시간을 알고 있다. 시설에 갇힌 남편과 아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던 루실은 죽음에 이르고 그들이 평생 함께 했던 집도 화재로 잃게 되지만 해럴드는 소중한 아들과의 시간및 아들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제이콥은 갑자기 사고로 죽게 되면서 부모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말을 하기 위하여 귀환한 것인데 너무 많은 귀환자들로 인해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죽음 또한 삶의 연장선인데 자신의 생을 다하고 간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제이콥처럼 삶도 다 살지 못하고 갑자기 사고로 죽게 된다면 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도 많을 듯 하다.죽은 이나 보낸 이나 모두 마찬가지 상황일 듯 한데 그런 시간이 누구에겐 필요하지만 그런 시간을 원치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칠십대의 노파에게 어린나이에 죽은 아들을 아들로 인정하기란 어렵다. 살아 있는 자들은 과거의 시간에서 벗어나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죽은 자들은 과거의 그 순간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분명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나쁘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좀더 생각을 해보게 한다. 만약에 친정아버지가 하루만 다시 돌아와 내게 시간을 준다면 무얼해야하나? 가끔 꿈속에 아버지는 살아생전 모습으로 나타나시기도 하는데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로 이어진다면 어떨까? 소중한 존재의 상실로 인해 생긴 어긋난 관계를 회복해 가는 이야기로 볼 수 있는데 어떤 죽음에나 미련은 남게 마련이겠지만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좋은 것도 있겠지만 정말 더 많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것.어떤 이들은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그 상실감에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아픔이 너무 커서 벗어나지 못하고 굴레처럼 지고 가는,해럴드가 자신은 느끼지 못했지만 평생 쥐고 있던 십자가처럼 그런 십자가 가슴에 하나씩 묻고 있는 이들도 있다.저자가 던진 질문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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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정원] 아마릴리스와 그외 초록이들

 

 

 

 

 

어제는 몽오리였던 아마릴리스,오늘 아침에 베란다에 들어가보니 하나가 활짝 폈다.

아마릴리스는 두가지 종류를 가지고 있는데 흑장미색에서는 아직 몽오리가 보이지 않고 있고

줄무늬 아마릴리스에만 꽃대가 두개 올라와서 몽오리져 있고 하나는 이제 올라오고 있다.

군자란이 져서 시들한 베란다에 녀석들이 활기를 넣어 주고 있다.

 

 

요즘 통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제라늄...

그래도 녀석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빨간색까지 펴서 한층 더 화려하다.

언제 한번 날잡아 삽목도 하고 분갈이도 해야할텐데...

 

 

참취...

산에서 몇 개 뽑아다 화분에다 심어 봤다.

뿌리가 튼튼해서인지 시들지 않고 바로 싱싱~~

잘 커서 꽃대도 나오고 씨도 맺힌다면 더 좋겠는데...

 

미나리

 

몇 번 뜯어서 상추와 함께 무침을 해 먹었는데

이렇게 또 많이 자랐다. 미나리 화분은 두개~~ 다른 화분에서 잘라서 심은 것인데

그럭저럭 잘자란다고 봐야하나.. 해를 덜 보는 곳인데도 그래도 이렇게 자라니 참 신기하다.

그리고 가끔 식탁에도 오르고 말이다.

 

 

커피나무..밑에 보이는 작은 것은 참취..

작년에 산에서 참취를 하나 캐다 심었는데 죽었나 했는데

이렇게 살아서 잎이 올라오고 있다.잘자라야 할텐데..물론 커피나무도 새로 나오는 잎들은

햇빛을 잘 보는 곳에 있어서인가 잎이 무척 크다.

 

 

커피나무와 함께 동거하고 있는 아마릴리스와

여기에 [레몬씨] 열개를 묻어 두었는데 두개가 발아를 했다.

삐죽 밑에 올라오고 있는 것이 레몬싹이다..

작년 겨울에 레몬차를 담으며 나온 씨를 두었다가 심었더니 그래도 싹이 올라오고

다른 화분에서는 두개가 발아를 먼저 해서 자라고 있다.

울집에 커피나무는 3그루, 햇빛을 잘 드는 곳이 역시나 잘 자란다.

 

 

제라늄 수정도 안해주었는데 씨가 맺혔다.

제라늄 씨를 받아 놓은 것을 심어야 하는데 귀차니즘..

삽목도 해야하고 씨도 심어야 하고...

 

 

 

사랑초..지저분한 듯 하면서 잘자라 주어서 이쁜 사랑초..

어제는 사랑초 잎을 떼어서 삽목을 했다.

작년에 그렇게 해서 놓아 두고는 잊었는데 화분에 보니 몇 개가 올라온 것이 있어

다시 뽑아서 다른 화분에 옮겨 주었더니 커져서 꽃대도 올라오고..

크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다른 화분에도 많은 사랑초,올해는 뿌리를 떼어내어 다시

심어줘야 하는데 역시나 귀차니즘.. 검은땅콩도 심어야 하고 파프리카 씨도 심어야 하는데

아침이면 세월호 뉴스를 보다 먹먹해지는 가슴,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괜히 마음이 아프니.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텐데 모쪼록 관계자들 마음이 상하지 않게 잘 되기를.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ㅜㅜ

그래도 내겐 초록이들이 있어 행복한 하루다. 녀석들이 크는 것을 보면 시름도 잊을 수 있으니.

 

201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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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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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성작가 쓴 흑인 노예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슬프면서도 모성이라 해야할지 노예의 삶이라 해야할지 그 경계를 모를,아니 자신의 원한에 찬 과거를 회상하며 그 과거 원한과의 애도라고 봐야할 듯 하다. 소설의 모티브가 된 1856년 1월,켄터키 주의 노예였던 마거릿 가너는 <빌러버드>의 주인공 세서처럼 임신한 몸으로 네 명의 자식을 데리고 얼어붙은 오하이오 강을 건너 신시내티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녀의 삼촌이자 노예 출신인 조 카이트의 집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추격에 나선 노예 사냥꾼과 보안관들이 집을 포위해 끝내 붙잡힐 지경에 처하자, 그녀는 자식을 노예로 살게 하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결심했다.그리하여 두 살배기 딸을 칼로 베어버리고 다른 자식들도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고 그녀의 죄는 살인죄로 기호할 것인지 도망노예법에 의해 처벌한 것인가가 논쟁이 되었다고 한다. 마거릿 가너의 변호사는 그녀를 살인죄로 재판하길 원했지만 그녀는 한사람의 자유로운 '인간'으로 재판을 받지 못하고 '노예'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폴 디가 바로 '과거의 삶'에서 튀어나와 그녀의 잠자리로 기어들어왔다는 것도 더 나아진 일이었다. 그와 함께 하는 미래,혹은 그가 없다 해도 미래라는 생각 자체가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놓기 시작했다. 덴버를 위해서도,세서가 해온 대로 여전히 그애를 기다리고 있는 과거로부터 그애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여성 작가이다. 이 작품으로 1988년 플리처상을 수상했고 1992년 <재즈>라는 작품으로 199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내겐 왠지 노벨문학상 작품들은 쉽게 읽혀지지가 않는,그래서일까 노벨문학상 작가와 작품을 많이 읽지는 못한 듯 하다. 이 작품은 <노예 12년>을 읽고 읽어서일까 그 작품과 일직선상에 놓고 생각을 하며 읽게 되었다.<노예 12년>은 솔로몬 노섭이라는 자유인이 노예사냥꾼들에게 팔려가 12년 동안 루이지애나에서 가족들과 떨어져서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노예 생활을 하다가 극적으로 가족과 노섭이라는 변호사에게 연락이 닿아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인으로 돌아 온 이야기를 쓴 책으로 그의 그 후의 삶은 노섭 변호사의 추천으로 책을 집필하고 강의활동을 했지만 그의 자유인의 삶은 오래가지 못하고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니 유색인종이라 하여 그들이 겪었던 일들이 작품속에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오늘은 항상 여기 있지. 내일이란 건 없고."

 

'124번지는 한이 서린 곳이었다. 갓난아이의 독기가 집안 가득했다.그 집 여자들은 그걸 알고 있었고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로 시작하는 빌러비드,124번지는 소설의 시작처럼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세서와 그녀의 딸 덴버가 함께 살고 있는 집으로 오랜시간동안 다른사람들의 출입이 없던 곳이다.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그야말로 다른 사람들은 멀리했던 집이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딸 묘비에 '빌러버드(사랑받는 이)'라는 글씨를 겨우 새겨 넣었고 그 아가의 혼이 이 집안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도 그리고 그녀의 딸인 덴버는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보다는 과거속에 파묻혀 그야말로 세상과 단절되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듯 무언가에 단단히 얽매어 살아가고 있다. 세서가 식당에서 일을 하며 겨우 얻어오는 것들로 연명하고 있지만 덴버는 무언가 결핍된 듯한 아니 어느 시간속에 박제된 듯한 이 삶이 그리 좋지 않다.그런 그들에게 어느 날 한남자가 오게 된다. 과거 세서와 함께 일했던,그녀의 남편을 알고 있는 남자인 폴 디.세서는 폴 디를 집안에 들인다. 오래전에는 누구나 탐하고 싶던 여자였던 세서,하지만 그녀의 등에는 나무가 하나 자라듯 노예시절에 얻은 상흔이 있고 집안에는 그녀가 죽인 어린 딸의 망령이 함께 하고 있다. 폴 디는 그 어린 영혼을 쫒아 버리고 세서의 남편 아닌 남자로 함께 한다.

 

"저 흰둥이들은 내가 가진 모든 것,내가 꿈꿨던 모든 걸 빼앗아갔어."......"그리고 내 심장마저 부숴놓았지.세상에 불운 따위는 없어. 흰둥이들이 있을 뿐이지."

 

그런 둘의 삶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덴더에게도 다음날 친구같은 언니가 생긴다. '빌러비드',세서가 자신의 아기 묘비에 새겼던 빌러버드와 같은 이름을 가진 어디서 왔는지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는 빌러비드가 집에 오면서 덴버는 그야말로 함께 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친구같은 언니를 갇게 된다. 세서가 잊고 있던 18년 전의 그 단어 '빌러비드' 라는 이름을 가진 이 소녀는 어딘지 모르게 자신의 아이와 닮았다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되는 세서,빌러비드는 덴버와 너무도 잘 어울리면서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오면서 세서는 잊고 있었던 과거와 조우하게 된다. 그녀가 노예의 삶을 살았던 '스위트 홈'에서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고 그곳에서 어떻게 탈출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남편은 왜 만나자고 한 곳에 나오지 않고 지금 그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임신한 몸으로 스위트 홈을 탈출하면서 그녀를 도와 주었던 백인소녀 덴버,누구도 그 이야기를 믿지 않지만 그녀는 그 이름을 자신의 딸에게 지어주고 그 이름을 기억한다.그녀가 스위트 홈을 탈출할 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폴 디로부터 그 때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의 결말이 다시 아귀를 맞추어 나가던 순간 빌러비드는 사라지고 만다.하지만 누구도 그녀를 찾지는 않는다.

 

1874년이지만 백인들은 여전히 제멋대로 날뛰었따.온 마을 흑인들이 몰살당하기도 했고, 켄터키 주에서만 한 해에 여든일곱 건의 흑인 린치가 일어났으며, 유색인 학교 네 곳이 완전히 불에 타버렸다.

 

풀지 못한 과거가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던 세서와 그들에게 과거는 풀어야 할 숙제였다. 그 과거와 조우하여 애도하는 순간 빌러비드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듯 사라지고 모든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하지만 어디엔가는 흔적이 남겨지듯 빌러비드의 발자국이 남는다. 과거없는 현재는 그리고 미래도 있을 수 없다. 과거의 바탕 아래 현재도 있고 그보다 더 나은 미래가 있는 것인데 과거의 틀 속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 듯 갇히고 만 세서,아니 마거릿 가너 그리고 '육천만 명 아니 그 이상'의 노예의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 애도를 표하듯 토니 모리슨은 세서의 삶의 통한 시적 언어로 아름답게 풀어낸다. 아름다운 시적 언어이기 때문에 더 슬프고 애잔한 노예의 삶, 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백인들의 재산이고 물건처럼 취급받았던 이들에 삶이 흑인 여성 작가를 통해 더 진하게 우러난 듯 하다. 엄마인 세서는 자신의 아이가 자신과 같은 노예의 삶을 살지 못하게 어린 딸을 죽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엄마에게만 남아 있는 상흔이 아니라 그 후의 자식인 덴버에게도 상처다. 그 상처를 보듬지 못하고 하루 하루 식당에서 얻어 오는 음식으로 연명하고 귀신이 들린 집이라 하여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며 살아야 했으니 어린 딸이 받은 상처 또한 무척 클 듯이다.사회적으로 멸시를 받는 이들은 어디에서나 아주 작은 일에도 움츠러든다. 그들이 풀지 못하고 꽁꽁 싸매 두었던 '과거'라는 숙제가 빌러비드를 통해 하나 하나 풀려가면서 엉켰던 실타래가 풀리 듯 그들의 현재와 미래는 어쩌면 좀더 속박받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심적여유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세서에게서 누군가는 터트려 주어야할 과거라는 곪아터진 상처를 건드려 준 이는 폴 디였다. 그런 상흔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현재에도 있겠지만 노예라는 인간이지만 유색인종이라 하여 받아야 했던 흑인 노예들이 백인에게 받았던 것에 비할까.세서에게 상처였던 과거가 빌러비드를 통해 온전히 '사랑받는' 아니 사랑해야 하는 그 시간으로 이어져 짐을 내려놓지만 마거릿 가너는 노예의 삶으로 마쳤다니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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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 Supply - Always And Forever: The Very Best Of Air Supply [로얄 아이보리 디지팩]
에어 서플라이 (Air Supply)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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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에어 서플라이~~ 정말 좋아하고 심취해서 듣던 때가 생각나 에어 서플라이를 카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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