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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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성작가 쓴 흑인 노예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슬프면서도 모성이라 해야할지 노예의 삶이라 해야할지 그 경계를 모를,아니 자신의 원한에 찬 과거를 회상하며 그 과거 원한과의 애도라고 봐야할 듯 하다. 소설의 모티브가 된 1856년 1월,켄터키 주의 노예였던 마거릿 가너는 <빌러버드>의 주인공 세서처럼 임신한 몸으로 네 명의 자식을 데리고 얼어붙은 오하이오 강을 건너 신시내티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녀의 삼촌이자 노예 출신인 조 카이트의 집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추격에 나선 노예 사냥꾼과 보안관들이 집을 포위해 끝내 붙잡힐 지경에 처하자, 그녀는 자식을 노예로 살게 하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결심했다.그리하여 두 살배기 딸을 칼로 베어버리고 다른 자식들도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고 그녀의 죄는 살인죄로 기호할 것인지 도망노예법에 의해 처벌한 것인가가 논쟁이 되었다고 한다. 마거릿 가너의 변호사는 그녀를 살인죄로 재판하길 원했지만 그녀는 한사람의 자유로운 '인간'으로 재판을 받지 못하고 '노예'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폴 디가 바로 '과거의 삶'에서 튀어나와 그녀의 잠자리로 기어들어왔다는 것도 더 나아진 일이었다. 그와 함께 하는 미래,혹은 그가 없다 해도 미래라는 생각 자체가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놓기 시작했다. 덴버를 위해서도,세서가 해온 대로 여전히 그애를 기다리고 있는 과거로부터 그애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여성 작가이다. 이 작품으로 1988년 플리처상을 수상했고 1992년 <재즈>라는 작품으로 199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내겐 왠지 노벨문학상 작품들은 쉽게 읽혀지지가 않는,그래서일까 노벨문학상 작가와 작품을 많이 읽지는 못한 듯 하다. 이 작품은 <노예 12년>을 읽고 읽어서일까 그 작품과 일직선상에 놓고 생각을 하며 읽게 되었다.<노예 12년>은 솔로몬 노섭이라는 자유인이 노예사냥꾼들에게 팔려가 12년 동안 루이지애나에서 가족들과 떨어져서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노예 생활을 하다가 극적으로 가족과 노섭이라는 변호사에게 연락이 닿아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인으로 돌아 온 이야기를 쓴 책으로 그의 그 후의 삶은 노섭 변호사의 추천으로 책을 집필하고 강의활동을 했지만 그의 자유인의 삶은 오래가지 못하고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니 유색인종이라 하여 그들이 겪었던 일들이 작품속에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오늘은 항상 여기 있지. 내일이란 건 없고."

 

'124번지는 한이 서린 곳이었다. 갓난아이의 독기가 집안 가득했다.그 집 여자들은 그걸 알고 있었고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로 시작하는 빌러비드,124번지는 소설의 시작처럼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세서와 그녀의 딸 덴버가 함께 살고 있는 집으로 오랜시간동안 다른사람들의 출입이 없던 곳이다.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그야말로 다른 사람들은 멀리했던 집이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딸 묘비에 '빌러버드(사랑받는 이)'라는 글씨를 겨우 새겨 넣었고 그 아가의 혼이 이 집안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도 그리고 그녀의 딸인 덴버는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보다는 과거속에 파묻혀 그야말로 세상과 단절되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듯 무언가에 단단히 얽매어 살아가고 있다. 세서가 식당에서 일을 하며 겨우 얻어오는 것들로 연명하고 있지만 덴버는 무언가 결핍된 듯한 아니 어느 시간속에 박제된 듯한 이 삶이 그리 좋지 않다.그런 그들에게 어느 날 한남자가 오게 된다. 과거 세서와 함께 일했던,그녀의 남편을 알고 있는 남자인 폴 디.세서는 폴 디를 집안에 들인다. 오래전에는 누구나 탐하고 싶던 여자였던 세서,하지만 그녀의 등에는 나무가 하나 자라듯 노예시절에 얻은 상흔이 있고 집안에는 그녀가 죽인 어린 딸의 망령이 함께 하고 있다. 폴 디는 그 어린 영혼을 쫒아 버리고 세서의 남편 아닌 남자로 함께 한다.

 

"저 흰둥이들은 내가 가진 모든 것,내가 꿈꿨던 모든 걸 빼앗아갔어."......"그리고 내 심장마저 부숴놓았지.세상에 불운 따위는 없어. 흰둥이들이 있을 뿐이지."

 

그런 둘의 삶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덴더에게도 다음날 친구같은 언니가 생긴다. '빌러비드',세서가 자신의 아기 묘비에 새겼던 빌러버드와 같은 이름을 가진 어디서 왔는지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는 빌러비드가 집에 오면서 덴버는 그야말로 함께 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친구같은 언니를 갇게 된다. 세서가 잊고 있던 18년 전의 그 단어 '빌러비드' 라는 이름을 가진 이 소녀는 어딘지 모르게 자신의 아이와 닮았다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되는 세서,빌러비드는 덴버와 너무도 잘 어울리면서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오면서 세서는 잊고 있었던 과거와 조우하게 된다. 그녀가 노예의 삶을 살았던 '스위트 홈'에서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고 그곳에서 어떻게 탈출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남편은 왜 만나자고 한 곳에 나오지 않고 지금 그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임신한 몸으로 스위트 홈을 탈출하면서 그녀를 도와 주었던 백인소녀 덴버,누구도 그 이야기를 믿지 않지만 그녀는 그 이름을 자신의 딸에게 지어주고 그 이름을 기억한다.그녀가 스위트 홈을 탈출할 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폴 디로부터 그 때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의 결말이 다시 아귀를 맞추어 나가던 순간 빌러비드는 사라지고 만다.하지만 누구도 그녀를 찾지는 않는다.

 

1874년이지만 백인들은 여전히 제멋대로 날뛰었따.온 마을 흑인들이 몰살당하기도 했고, 켄터키 주에서만 한 해에 여든일곱 건의 흑인 린치가 일어났으며, 유색인 학교 네 곳이 완전히 불에 타버렸다.

 

풀지 못한 과거가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던 세서와 그들에게 과거는 풀어야 할 숙제였다. 그 과거와 조우하여 애도하는 순간 빌러비드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듯 사라지고 모든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하지만 어디엔가는 흔적이 남겨지듯 빌러비드의 발자국이 남는다. 과거없는 현재는 그리고 미래도 있을 수 없다. 과거의 바탕 아래 현재도 있고 그보다 더 나은 미래가 있는 것인데 과거의 틀 속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 듯 갇히고 만 세서,아니 마거릿 가너 그리고 '육천만 명 아니 그 이상'의 노예의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 애도를 표하듯 토니 모리슨은 세서의 삶의 통한 시적 언어로 아름답게 풀어낸다. 아름다운 시적 언어이기 때문에 더 슬프고 애잔한 노예의 삶, 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백인들의 재산이고 물건처럼 취급받았던 이들에 삶이 흑인 여성 작가를 통해 더 진하게 우러난 듯 하다. 엄마인 세서는 자신의 아이가 자신과 같은 노예의 삶을 살지 못하게 어린 딸을 죽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엄마에게만 남아 있는 상흔이 아니라 그 후의 자식인 덴버에게도 상처다. 그 상처를 보듬지 못하고 하루 하루 식당에서 얻어 오는 음식으로 연명하고 귀신이 들린 집이라 하여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며 살아야 했으니 어린 딸이 받은 상처 또한 무척 클 듯이다.사회적으로 멸시를 받는 이들은 어디에서나 아주 작은 일에도 움츠러든다. 그들이 풀지 못하고 꽁꽁 싸매 두었던 '과거'라는 숙제가 빌러비드를 통해 하나 하나 풀려가면서 엉켰던 실타래가 풀리 듯 그들의 현재와 미래는 어쩌면 좀더 속박받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심적여유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세서에게서 누군가는 터트려 주어야할 과거라는 곪아터진 상처를 건드려 준 이는 폴 디였다. 그런 상흔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현재에도 있겠지만 노예라는 인간이지만 유색인종이라 하여 받아야 했던 흑인 노예들이 백인에게 받았던 것에 비할까.세서에게 상처였던 과거가 빌러비드를 통해 온전히 '사랑받는' 아니 사랑해야 하는 그 시간으로 이어져 짐을 내려놓지만 마거릿 가너는 노예의 삶으로 마쳤다니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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