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치 영웅 플라그 모험을 떠나다 거꾸로 생각하는 어린이 1
강경수 글.그림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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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해갈수록 단것과 인스턴트에 아이들이 길들여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면서 그 속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것도 있지만 치아 건강을 꼽고 싶다.물론 울집 아이들도 어릴 적에 치아 관리를 해준다고 했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 치아 균이 침범하여 이를 갏아 먹고 있었다는 것,그래서 얼른 치료를 해주고 미래를 위하여 좀더 관리를 해주어 안심을 하기도 했지만 치아란 오복중에 하나라 평생을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에 잘 관리를 해야하는데 어릴 때에는 치아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요즘은 어릴 때부터 교정을 해주기도 하고 이쁜 이에 대한 관심도 높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이가 제일 좋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

 

수많은 세균중에 하나 플라그, 플라그의 역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래 전에도 우리와 함께 했음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한 함께 한 다는 것을 말해주면서 여행을 떠난다. 입 속을 청결하게 하지 않으면 생기는 세균 플라그, 플라그가 좋아하는 천국같은 세상은 그야말로 입 속에 오물이 가득한 곳,음식물을 먹고 양치질을 하지 않아 여기저기 오물이 남아 있는 곳을 무척 좋아하고 공격을 하게 된다.이와 이 사이 그리고 이에 홈이 빠인 곳이라든지 플라그가 좋아하는 곳은 정말 많다.

 

플라그가 제일 싫어하는 친구는 음식물을 먹고 바로 양치질을 해서 이가 반짝반짝 빛나는 친구, 그 중에 '승주'는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나는 이,치카치카 푸카푸카 이를 너무도 잘 닦기 때문에 플라그가 눌러 살만한 곳이 못된다.ㅜㅜ 그래서 자신이 둥지를 틀만한 친구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데 초등학교 갓 입학한 순희의 입 속에 들어가게 된다.하지만 순희 엄마가 순희를 치과에 데리고 가게 된 것.치과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이 병원이니 잘못된 곳을 치료하게 되니 플라그가 살만한 입 속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그래서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고 초콜릿을 좋아하는 장원이를 발견하게 된다.하지만 장원이는 할아버지가 재채기를 하다가 틀니가 빠지는 사태를 보면서 이 관리를 잘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그가 좋아하는 초콜릿 근처에도 가지 않게 되고 이를 잘 닦게 되었다.

 

장원이가 이를 잘 닦게 되었으니 이젠 어디에 가서 살지? 그러다 뚱보 민수를 발견하게 되었다. 민수는 초콜릿도 좋아하고 이것저것 많이 먹는 아이라 플라그가 살기에 안성맞춤인 이를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플라그만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세균이 살고 있어 플라그는 안성맞춤인 뚱보 민수를 뒤로 하고 다시금 여행을 떠나게 되는 플라그의 모험이다. 어릴 때 아이들은 양치질을 잘 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양치질의 중요성을 알지 못해 잘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이가 아파 치과에 한번 다녀오게 되면 양치질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이를 잘 잘관리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이든 잃고 나봐야 그것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건강도 마찬가지고 이도 마찬가지다. 내가 누릴 때는 모르지만 한번 아파보면 소중함을 알게 된다.건강할 때 잘 관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을 보면서 재밌게 플라그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양치질을 잘 해야겠다는 것을 느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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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는 이제 그만! 푸른숲 새싹 도서관 16
세베린 비달 글, 리오넬 라흐슈벡 그림, 박상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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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확성기를 대고 크게 외치는 소년, '잔소리는 이제 그만!'.소년 뿐만이 아니라 울집 이십대 딸들도 늘 내게 하는 소리가 '엄마 잔소리좀 그만 하세요~~!' 하면서도 객지에 떨어져 있다가 방학을 맞아 오래간만에 집에 오면 '엄마,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웠어!' 하고 관심을 보여 달라고 어리광을 부린다. 그런 녀석들이 며칠 함께 있으면 '아 시끄러워.잔소리 잔소리 잔소리..ㅠㅠ' 하며 다닌다. 관심을 많이 보여줘도 탈이고 관심을 덜 줘도 탈이고 도대체 어떻게 해달란 말인가.

 

 

초등학생인 아르센,그는 이제 다 컸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을 '강아지 강아지~~'라고 부른다. 엄마들이나 할머니들이 이렇게 많이 부른다.나도 울집 딸들을 '똥개'라고 잘 부르는데 처음엔 싫어하더니 왜 그렇게 부르느냐고 물어서 이야기해줬더니 그게 좋단다. 그런데 타인이 듣기에 안좋을수도 있다는 것,물론 아르센도 엄마가 많은 친구들 앞에서 '강아지 강아지...'하고 불렀으니 얼마나 창피한지 얼굴이 다 빨개졌다. 거기에 엄마는 자신의 머리도 엄마 맘대로 해 놓고 엄마가 어린시절에 입었다는,보물이라며 찾아낸 옷까지 입힌다. 엄마의 보물이 내 보물일수는 없는데 엄마는 엄마 맘대로 생각해 놓고 그렇게 자신을 엄마의 틀에 가두려고 한다.

 

 

그런가하면 엄마는 일찍 자라고 하는가 하면 잠자기 전에 읽어야 할 책도 엄마에게 맞추듯 한다. 무엇이든 다 엄마 맘대로 이면서 엄마 친구들이 놀러 오면 방안에서 조용히 앉아 놀기를 원한다.하지만 어떻게 찾아 온 기회인데 그 기회를 그냥 흘러 버린단 말인가,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우리의 아르센은 엄마를 부추긴다.그래 아르센은 다 컸다. 엄마는 분명히 말해 놓고 또 잔소리를 한다. 아르센 그러다 화풀이를 하듯 엄마가 자신에게 하는대로 동생에게 똑같이 하는데 엄마는 또 그게 좋은지 추억으로 남겨 놓는다. 아...정말 무엇이 정답일까? 내가 다 크긴 큰 것일까? 언제쯤 엄마의 잔소리가 사라질까? 엄마의 잔소리가 사라지는 날은 내가 정말 다 컸다고 생각되는 날인데 도대체 얼마만큼 커야 잔소리가 없어질까.

 

 

엄마의 잔소리가 없으면 행복할 줄 알았던 아르센,뭐든지 엄마의 잣대로 자신을 맞추려고 하면서 하는 말들이 정말 싫다. 모두가 다 자신이 어리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들인듯 해서 빨리 크고 싶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의 잔소리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엄마의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들이 사라지면 지구의 평화 아니 우주의 평화가 오는 날일듯 했는데 엄마가 잔소리가 사라지니 그립고 엄마의 사랑이 담긴 잔소리가 가끔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르센도 이젠 많이 컸다는 증거일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말풍선에 대화를 담아 놓아서 재밌게 읽어 나갈 수 있고 아이의 눈높이 마음이 잘 담겨 있다. 아르센만 그런것이 아니라 울집 딸들도 이래라저래라 하는 잔소리가 필요할 때도 있고 필요 없다고 생각할때도 있지만 잔소리란 필요한 것이라 생각을 한다. 잔소리기 때문에 필요없는 말들도 있겠지만 관심이고 사랑이다. 관심을 갖지 않고 사랑이 없다면 잔소리를 할까? 자신에게 쏠리던 관심이 어느날 동생에게 향하고 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워진 아르센처럼 '엄마 사랑해요!' 라고 하면서 자신을 어린애 취급이 아닌 사랑의 잔소리가 필요함을 그 느낌을 읽어 나가며 엄마의 사랑도 더 소중하게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부모에게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늘 자식이라는 것을 우린 잊는다.모든 것은 사랑의 표현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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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저어
소네 게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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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저어> 제목과 표지를 보고 무척 읽고 싶어했던 책인데 우연하게 기회가 왔다. '침저어',바다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사는 어류 혹은 대상국의 한 시민으로 살며 명령을 받았을 때만 활동하는 공작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단다. 침저어보다는 심해어라는 말을 더 많이 쓸텐데 원제에 더 느낌을 두었던지 심해어보다는 침저어가 느낌이 와 닿는 것 같다. 침저어라 지칭이 된 정보제공자는 누구일까? 침저어를 찾기 위한 외사2과 경찰들의 서로 파벌싸움도 그렇고 정보원을 찾기 위한 수사보다는 경찰들의 내분이 더 의미 있게 와 닿았다고 할까.밥그릇 싸움을 하듯 같은 조직내에서도 파벌이 나뉘어 서로 물고 뜯고 할퀴고 그야말로 야생성이 느껴지는 살벌한 곳이 외사2과이지 않을까. 그곳 또한 미중일 정보 전쟁터보다 더 살벌하고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곳이 아닐까.

 

미래세상은 정보 전쟁이라는 말처럼 그야말로 정보의 바다에서 하루라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사는 세상에 눈 감고 자신의 땅이 아니면서 자신의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일본,그들은 또 그렇게 우리에게 피해를 입혔듯이 그들도 중국으로부터 똑같은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속에서 미국에 망명을 요청한 후샤오밍,그가 건넨 첩보로는 일본에 거대 침저어가 있다는 것이다.후샤오밍의 첩보를 진실로 믿고 침저어가 누구인가를 밝혀내기 위한 외사2과팀들이 움직인다. 그 우두머리로 도쓰이라는 인물이 오게 되고 후와는 와카바야시와 팀을 이뤄 움직이다가 학창시절 친구인 이토 마리를 만나게 된다. 그녀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을까? 그리고 그녀와 얽혀들면서 점점 그들이 파고드는 사건은 심해에서 서서히 수면위로 올라온다.

 

후와라는 인물도 와카바야시라는 인물도 외사2과에서는 그리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들이다.개개인 모두를 두고 보면 고미라는 인물만 패거리를 이루어 다니지 모두가 서로 물어 뜯지 못해서 안달이 난 사람들 같다. 왜 그들은 같은 소속의 경찰인데 왜 서로 물도 뜯어야 하는지.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을 보면 경찰내 내분을 다른 소설들이 많이 있는데 이 소설도 어쩌면 정보전쟁이라는 그 커다란 그림 아래 외사2과 경찰들의 내분및 경찰이라는 조직사회의 붕괴아도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누구를 믿어야 좋을지 모르는 세상,후와도 와카바야시도 아니 함께 조직사회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한다.누가 이중간첩인지 두더지인지 모르는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물고 뜯는다.그런 세상에서 살아 남으려면 심해에 가라앉은 '진실'을 캐내야 한다. 거대 심해어 밑으로 가라앉은 진실이란 그 피비린내 나는 놈을 파헤쳐 내동댕이 쳐야 한다.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뜯기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베이징은 우리로 하여금 침저어 멕베스가 존재한다고 믿게 만들려고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후샤오미이라는 위장 망명자를 미국에 보내고 두견새라는 허위 정보 제공자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아쿠타가와의 비서인 이토 마리는 존재하지도 않은 스파이 메신저로 오해를 받았고,살해되었다. 베이징의 공작 목적은 아쿠다카가와 겐타로라는 한 정치가를 실각시키는 것,오로지 그뿐이었다.

코미디다.....

 

침저어만 밝혀내면 되는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침저어를 밝혀내면서 그에 얽힌 잔가지들이 많다. 진실을 파헤치려 잡은 줄기 하나에 줄줄이 달라 붙어 딸려 오는 굵직한 열매들이 여기저기 달려 있는 것처럼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고 막힘없이 읽을 수 있지만 이런 이야기의 마지막은 씁쓸하다는 것. 결국에는 권력의 윗자리에 군림하는 자는 그 힘으로 모든 일을 부리려 하고 밑에서 열심히 뛰어 다니는 이들은 자신의 밥줄이라 어쩔 수 없이 뛰지만 어느 순간에는 목숨도 내 놓아야 하는데 그 목숨이 너무도 '어이없게'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후와의 친구 이토 마리의 죽음은 자세하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누구를 위하여 참혹하게 죽은 것인지. 그녀의 직업병 성격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와카바야시는 자신의 딸의 목숨까지 저당잡히며 이중 삼중 첩보원 노릇을 했다. 하지만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딸아이.어떻게 보면 거대 권력과 그 힘 밑에 있는 이들은 나약하고 그들의 소리는 진실이라고 외쳐도 진실이라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갑자기 사라져 버려도 누구 하나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고 현실은 거짓을 진실이라고 포장해도 믿는 세상이고 또 그렇게 되어 버렸다.

 

우리는 가끔 진실이 아닌 이야기도 진실인양 믿으며 웃고 살아간다. 진시이 아니지만 진실이라 믿는 것이 더 어떻게 보면 현실의 아픔을 잊을 수 있는 그런 거짓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 가고 있기도 하다. 홍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정보 속에서 어느 것이 진실인지 가려내는 것도 힘든 세상이긴 하다. 그런 정보의 바다 속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빼돌리고 조율하고 눈감아 주고 짜맞추어 놓은 그림 위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진실을 캐기 위하여 부러지고 찢어지고 피를 흘리며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싸우는 외사2과 사람들, 그들에겐 모두가 적이다.나를 뺀 타인은 적이다. 동료를 믿을 수 없고 상사라고 해도 믿을 수 없는 현실,그 속에서 과연 진실은 존재하는 것인가? 계속되는 반전 속에서 무엇이 과연 진실인지.어쩌면 거짓과 거짓 속에 파묻혀 진실을 그 빛을 잃어가고 있는지 모른다.심해에 살아 빛을 감지하는 눈이 퇴화된 고기처럼 우리는 진실을 볼 수 있는 눈과 귀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거짓 속에 진실이 박제된 세상,코미디다. 현실은 보이지 않는 이의 코미디에 놀아나는 세상처럼 코미디판처럼 되어 버렸다. 진실은 뭘까? 진실이 무엇이든 살아 남아야 코미디 같은 세상도 즐길 것이다. 침저어로 살든 개복치처럼 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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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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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수명이 연장되고 노후 대비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젠 내 이야기가 된 듯 하고 부모님도 연로하시니 많이는 도움을 드리지 못해도 심적 부담감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100세라고 하면 예전에는 별의미없이 받아 들였는데 내가 점점 나이가다보니 한세기를 살아 왔다는 것은 개인적인 삶도 대단하지만 '역사'와 함께 했다고 바꾸어 생각해 보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백년,아니 100세 생일날 양로원 창문을 넘어 도망쳐야 했던 알란,그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 무슨 일로 그는 백세 생일날 축하 행사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창문을 넘어 도망쳐야만 했던 것일까.

 

이 책은 표지가 이뻐서 읽고 싶었던 책인데 바로 접하지 못하다가 읽게 되었다. 그것이 또 내가 허리가 아파서 누워 있는 시기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잘 되었다. 웃긴 일들이 도미노처럼 이어져서 아파서 스트레스를 받아 모두에게 조금 신경질적이었는데 이 책으로 인해 그것이 조금 여유를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나란히 달린다. 백세 생일날 창문 넘어 도망친 알란,그는 자신의 나이보다는 정신도 그리고 육체도 건강한 할아버지였다. 창문도 거뜬히 뛰어 내리고 담장도 넘어 정류소까지 가서 자신이 있던 장소가 아닌 주머니 속에 있던 돈이 갈 수 있는 곳까지 가게 되는데 그것이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가 화장실에 간다며 맡긴 커다란 트렁크를 주인이 화장실에서 나오기 전에 유유히 자신의 것처럼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며 발퀴가 달려 끌고 갈 수 있으니 가게 되었고 폐역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살고 있는 남자를 만나 그와 함께 하게 된다. 그런데 그 가방이 다름아닌 조직이 연관된 돈이라는 것,큰일났다 이 할아버지 목숨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을까.

 

가방과 함께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을 알게된 알란과 함께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의 인생 백년을 뒤돌아 보며 그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되짚어 본다. 부모를 잃고 폭약 회사에 들어가 폭약에 대하여 배우게 되고 그로 인해 스웨덴 시골청년이 중요한 역사의 순간마다 자리하며 자신의 족적을 찍고 다니게 된다.왜 알란의 백년사가 진부하게 필요했을까? 복선처럼 중요했던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알란의 삶에서 그가 무엇을 했고 누구와 함께 했는지 물론 백살의 알란의 여행과 함께 하는 이들과의 이야기처럼 그의 인생사도 재밌게 그려진다. 그는 왜 중요한 역사의 현장에 있어야 했을까? 세계 곳곳을 누비며 시한폭탄처럼 떠돌아 다녀야 했던 폭약 전문가 알란의 삶, 그것은 다름아닌 그가 백살 생일에 창문을 넘어 도망친 사건의 중요한 알라바이가 된다. 그의 과거 인생사 모두가 말이다.그런가 하면 그와 관계한 모두가 휴가처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로 선택한 지상낙원과 같은 곳 그리고 사람이 그의 이야기 속에 모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다.'

 

알란의 백년의 삶을 뒤돌아 보았지만 삶은 삶 그 자체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미리 계획해 놓은 것도 아니었고 변화무쌍한 자신의 삶에 불만을 가지며 살은 것도 아니었다. 그때 그때 닥치는대로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인정하고 받아 들이며 살았다. 알란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된 사람들,그들은 어떻게 보면 낙오자들처럼 자신의 인생에 패배를 인정한 이들이다.하지마 알란이라는 노인네를 만나며 새로운 희망에 불풀게 되고 미래를 설계하게 된다. 삶은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말해주며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결코 포기하지 말고 부딪혀 보라고 이야기하듯 그의 백년사 삶을 뒤돌아 보아도 정말 어느 한 곳에 안주하기 보다는 그 때 닥친 삶에 적응하며 어떻게 보면 운명에 순응하고 살았다고 볼 수 있는데 백살 생일이 지난 후 그의 삶에 이런 날이 올지 몰랐는데 뜻하지 않은 희망을 만나게 되고 또 다시 시작처럼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 삶이란 무엇일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에 어떻게 대응하며 살아야할까? 지금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포기하고 뒤돌아가야할까? 알란은 아니 부딪히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 보라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그의 삶은 그야말로 도미노와 같이 계속적으로 무언가의 힘에 의해 부딪혀 다른 삶으로 연결되듯 연결 연결된 삶속에서 우연과 우연이 만나 필연이 되는 것처럼 운명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깊은 울림을 준다.  

 

'바로 이런 일 때문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쓸데없다는 거예요. 내가 하루 종일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 본댔자,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어요?'

 

한사람의 인생은 그의 마지막을 보면 그사람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다 알 수 있다고들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의 순간, 생각하지 나름이겠지만 장례식장에 가보면 그의 삶이 보여진다. 세상에 너무 인색하게 살아 온 사람은 그의 마지막을 지켜 주는 이들도 드물지만 그래도 세상에 빚지지 않고 살아 온 이들의 마침표의 시간은 시끌벅적하다. 얼마 살아 오지 않은 삶이지만 뒤돌아보면 몇 십년의 삶도 정말 한순간처럼 눈 감았다 뜨면 잠깐의 시간처럼 찰나처럼 여겨진다. 그런 시간이 백년이라고 하면 대단하게 느껴지고 역사를 뒤돌아 보면 정말 엄청난 일들이 백년의 시간 속에서 다가왔다 사라져가고 흩어져갔을 것이다. 백년이 지났다고 시간이 멈추는 것도 아니고 아직 알란이 건강하게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또 다시 시간은 오기도 흘러가기도 할 것이다. 그가 백살 생일에 창문을 넘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듯이 분명 삶이란 이유가 있고 풀리지 않는 답이란 없다. 정답은 아니지만 부딪혀 풀려고 한다면 근사치는 풀어 나가게 될 것이다. 얼마를 살지 모르지만 알란에게는 세계를 다 돌아보기에 백년이란 시간도 부족했는데 오늘이란 시간을 좀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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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 영화심리학자 심영섭의 마음 에세이
심영섭 글.사진 / 페이퍼스토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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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한참 빠져서 지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아니 그런 시간이 지나고 이젠 조금 시들해졌다고,극장에 간다는 것이 귀찮고 챙겨 본다는 것 자체가 왜 그리 싫은지.조금 거리를 두고 있는데 봄이 오면 아마도 다시 영화에 빠져 모든 일 제쳐두고 극장으로 달려가지 않을까 싶다. 요즘 영화를 챙겨보기 보다는 그저 주위에서 들리는 이야기들로도 영화를 보고 나온 듯한 느낌,아마도 스마트폰과 그외 SNS 때문에 영화에 대한 갈증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궁금증이 있어야 달려가는데 그 궁금증을 매체나 SNS에서 너무도 해부를 잘해 놓으니 호기심이나 궁금증없이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은 단물 다 빠진 껌을 씹는 것과 같아 극장나들이를 조금 미루고 있다.

 

 

그런면에서 EBS에서 금요일과 토요일에 해주는 '고전영화'를 보고 있는데 느낌이 좋다. 다시 영화에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다. 고전이란 그래서 고전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본다. 오래전 보았던 흑백영화나 그외 영화들을 나이가 들어서 다시 보면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좀더 세상을 살아 본 연륜이 있어서 그런가 더 폭넓은 안목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그전에 보지 못하고 읽지 못했던 행간을 읽듯 그 행간에서 삶의 깊이를 보기도 하고 인간의 감정 그 정도를 헤아리며 우리네 삶을 고스란히 담아 놓은 영화 속에서 잊고 있었던 감정들을 다시금 되새김질 하듯 하면서 삶이란? 물음표를 던져 보기도 하지만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통해 다시 새로운 것들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인 것들'

프롤로그의 제목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인 것들' 정말 영화를 보다보면 예전에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시간에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영상이 주는 텍스트만 받아 들이며 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런 것들이 있었지 하면서 보는 그런 느낌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첫째장에서는 '사랑에 관하여' 사랑을 이룬 이야기도 많겠지만 사랑에 실패를 하고 느끼는 그 감정,깨달음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두번째 장에서는 ' 내 안을 파고드는 고통스런 감정에 관하여.' 분노,외로움,열등감 같은 감정들,'부정적'인 감정이라 표현한 것들을 다시 재단해 본다. 세 번째 장에서는 '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영혼의 회복에 관하여.' 행복,용서,감사와 같은 마법과 같은 감정들에 대하여 알아 본다.

 

사랑이라는 그 놈,사랑이라는 것에는 정말 무수히 많은 것들을 간직하고 있다. 사랑,이별,두려움,외로움,쓸쓸함 뿐만이 아니라 이별 후에 느끼는 또 다른 감정들.아픈만큼 성숙해지듯 사랑을 해봐야 감정의 열매가 영글어가듯 어떻게 보면 사랑을 하면서 그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는것 같다. '진정한 사랑을 증명하는 길은 단 한 가지뿐이다.사랑을 사랑하지 말고, 당신의 사람을 사랑하라. 조건 없이.욕망 없이. 두려움 없이.' 아무런 이유없이 시작한 사랑은 사랑을 하면서 욕심을 부리게 된다. 내것이기에 가지는 감정이지만 얼마나 거짓되게 만드는지 그런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 사랑 그 순수한 감정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농후해진 후,모든 것을 겪어 보고 난 후가 아닐까.사랑이라는 감정에 비를 맞기도 눈이 내리기도 그리고 맑은 날 모든 것들을 거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모든 맛을 경험한 후에 겸허히 받아 들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슬픔이나 기쁨 이별의 아픔등과 같은 감정들이 내게 오면 무척 큰 파도에 휩쓸린것처럼 생각 되지만 그것이 타인의 아픔이라면 어떨까? 영화는 그런 면에서 간접적으로 감정의 경험을 해보게 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지나 온 감정들을 뒤돌아보게 하는 거울과 같아 가끔 먼지가 낀 거울을 닦듯 감정의 정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영화 '시네마천국' 모든 부분은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마지막 부분인 영화 속 아름다운 키스장면들,우여곡절을 거친 후에 맞이하는 감정이 아름다운 교감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던져주는 또 다른 감정에 행복함을 느끼던 그런 시간도 있었다. 극장을 찾을 때에는 둘이 가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 함께 하는 경우도 있는데 무엇보다 좋은 것은 '혼 자 서' 갈 때가 제일 좋다. 내 감정에 폭 빠져들수도 있고 흔들리지 않고 느낌을 온 몸으로 흡수하듯 할 수 있어 가끔 혼자가는 영화를 선호한다. 그것도 조조로 말이다.이른 아침 시간에는 소음이나 방해요인이 덜 하다. 그런 시간에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그것도 개봉 처음시간 조조로 본다는 것은 정말 행복이다. 그렇게 느끼며 보았던 영화 속 모습과 감정은 우리네 삶이다. EBS영화로 중간에서 보았던 <자전거를 탄 소년>이라는 영화가 인상 깊었는데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정말 좋았다. 다른 영화들도 보았거나 혹은 조금 그 느낌을 알고 있는 것들이라 무리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지만 <자전거를 탄 소년>이란 영화는 보고 나서도 뒷감정이 남아 있었는데 그 갈증이 조금 풀렸다고 해야하나? 이 영화에 대하여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 표현해 놓았는데 소년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버려지기도 했지만 현실에서도 버려지듯 겉돌기만 하는 소년이 도망치듯 나무 위로 갔다가 소년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은것처럼 나무 밑으로 떨어져 미동도 하지 않는다.돌을 던진 소년들은 자신들의 행동 때문에 겁을 내고 소년에게 다가 온 순간,전화벨이 울리고 소년은 누군가 자신을 찾는 전화에 화답을 하고는 무심하게 자전거를 끌고 다시 현실 속으로 달려간다.소년이 누군가 두려움이라는 것을 헤치고 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현실이 아련하게 소년을 한참 보라보게 했던 장면이 자꾸만 여운처럼 남아 있는데 읽게 되니 내가 그 영화를 조금이라도 보게 된 것은 이런 인연을 맺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영화에도 정답은 없다. 누군가가 내린 결론이 아니 리뷰나 이야기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개개인 영화를 보고 느끼는 감정과 느낌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타인의 느낌을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어느 것 하나에서 답을 찾으려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우리의 삶은 계속 되고 있고 감정이란 무한반복처럼 전에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지 말란 법은 없으니 간접 경험으로 좀더 내 감정이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여유를 부려 보는 것은 좋다고 생각을 한다. 너무 깊게 파고 들려고 신경쓰며 보기 보다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즐기듯 볼 때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감정의 곡선이 말랑말랑해지고 있을 때 이불을 박차고 나가 창가에 핀 한송이 꽃과 마주하게 해주는 신선함을 느끼게 해주는 느낌이 있어 어느 날 갑자기 그저 무작정 어느 페이지를 펴고 읽어도 좋을 듯 하다.느낌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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