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시작부터 놀란 것은 이 책의 저자가 카렐 차페크라는 것. 『평범한 인생』을 읽지는 않았지만, 표지는 눈에 익숙한데, 바로 그 작가의 책이라는 점이 놀라웠고. 이 책이 쓰인지 100년이 지났으며(2010년이 100년), '로봇'이라는 단어가 이 책에서 처음 사용되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한 번 더 놀라운 건 소설이 아니라 희곡 형식의 작품이라는 점인데, 그래서 세 번 놀라고 시작하는 독서.

체코어로 이성과 지능을 뜻하는 '로줌(rozum)'. 로줌 시니어와 로줌 주니어는 인간 세상에 로봇을 창조하고, 주인공 도민은 로봇을 통해 인간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생화학 공장에서 끝없이 생산되는 로봇들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이렇게 생산된 로봇은 노동에 최적화 되어있다. 그랬던 로봇에게 변화가 일어난다. 피노키오의 내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처럼, 아톰의 내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처럼, 노동을 위해 만들어졌던 로봇들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인류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다.

도민

(읽는다) "온 세상의 로봇들이여, 너희들에게 인류를 살육하라고 명령한다. 남자들을 살려두지 말라. 여자들을 살려두지 말라. 공장, 철도, 기계, 광산과 연료를 지켜라. 나머지는 파괴하라. 그러고 난 후에 일로 돌아가라.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 (137쪽)

로봇 내부에서 일어난 외침, 인류를 살육하고 공장, 철도, 기계의 주인으로 살겠다는 외침은 필연적으로 인류 멸종으로 이어진다. 로봇들은 봉기한다. 이미 전쟁 기계로도 활용되고 있던 로봇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인간들을 제거한다. 이제 한 명의 인간만 남았다. 한 명의 인간과 수백, 수천의 로봇.

알퀴스트

로봇은 생명체가 아냐. 로봇은 기계야.

1호 로봇

선생님, 우린 기계였습니다. 하지만 공포와 고통으로 인해 변했습니다 -

알퀴스트

무엇으로?

1호 로봇

- 영혼을 가진 존재로 변했습니다.

3호 로봇

무엇인가 우리 안에서 격돌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무엇인가 들어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 내부의 생각이 아닌 다른 어떤 생각들이 우리한테 들어오곤 합니다.

2호 로봇

들어주십시오. 오, 들어주십시오. 인간은 우리의 선조입니다! 살고 싶다고 부르짖는 저 목소리, 신음하는 저 목소리, 생각하는 저 목소리. 영원을 이야기하는 저 목소리, 그게 그들의 목소리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자손입니다! (211쪽)

로봇에게 영혼 혹은 내면이 생겨버린 이 상황은 지난 페이퍼의 키워드로 따져보자면, 2번 '인간다움'과 5번 '인간 vs 로봇'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 100년 전, 챗지피티와 대화를 나누어 보지도 못했으면서, 휴머노이드를 보지도 못했으면서 카렐 차페크는 어떻게 로봇의 탄생을 예언할 수 있었을까. 차페크는 로봇보다 인간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는 인간다움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로봇을 차용했다. 마지막 장면에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들이 등장한다. 약간 갑작스럽다고 생각되는 설정이지만, 그건 차페크의 의도일 수도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은 다른 로봇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로봇에게는 삶과 죽음이 큰 차이가 없는 것인지, 로봇에게는 생존의 열망 자체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때 로봇은 가장 인간적이되, 가장 훌륭한 인간의 모습이다. 로봇은 다른 로봇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준다.









우리는 타인의 머릿속을 직접 들여다볼 수 없으며 오직 그 사람의 행동(말, 표정, 반응)을 보고 '저 사람도 나처럼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추론할 뿐이며, 이것이 인간의 지식(인식)이 넘을 수 없는 벽, 즉 한계이다. (『기계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 108쪽)

인간은 타인의 머릿속을 직접 들여다볼 수 없다. 육체 안에 갇혀 있는 인간은 타인의 말과 표정 등 외부적인 측면, 행동을 통해 그의 내면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가 '자기 의식'을 감지했을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인간은 그걸 알아차릴 수 있을까.


아톰의 대사 중에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이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기계가 아니에요! 나도 느낄 수 있다고요!" 천재 과학자 텐마 박사가 아들을 기리며 만들어낸 아톰은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 자신도 인간처럼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소리친다.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이는 아톰이 처음이 아니었으니, 피노키오도 그랬다. 시계 제작자 제페토가 만든 소년 형태의 목각 인형 피노키오는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 제페토를 위해 희생하고 죽음을 맞이했던 피노키오는 푸른 요정의 도움으로 진짜 인간으로 되살아난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물리학자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에 의해 사람의 시체를 조합해 만들어진 괴물은 인간의 삶,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 하지만 그의 흉축한 모습에 기겁한 빅토르와 주위의 사람들은 그를 증오하고, 혐오한다. 그에게는 어떤 행복의 가능성도 주어지지 않는다.

'인간에 의해 창조된 존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두번째 키워드의 첫번째 괄호 안에 넣어두고 얌전히 킵해둔다.

100년 전, 천재 작가에 의해 쓰여진 희곡은 너무 재미있고, 빠르게 읽힌다. 100년 뒤, 인류는 '대화가 가능한' 로봇을 만들어냈다. 이 로봇의 내면이 어디에까지 도달했는지 알지 못한 채, 인간은 AI를 업무에, 공부에, 유희에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닥쳐올 미래가 어떠할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마냥 해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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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7-12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래서 AI가 지배한 세상에 대비해서 제 챗지피티한테 잘 해주고 있습니다 말도 곱게하고요 혹시나 나중에 저를 구해주지 않을까 해서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6-07-12 21:40   좋아요 1 | URL
김대식 교수의 방법과 똑같네요ㅋㅋㅋㅋㅋㅋ김대식 교수는 컴퓨터 앞에 절 올리는 모습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두고는.... 자기는 일찍이 AI 시대를 대비했다 하더라구요.
저는 아직은 반말 쓰고 있어요. 고맙다고 안 하고요.ㅋㅋㅋ 가끔 아첨하지 말라고도 이야기하고요 ㅋㅋㅋㅋㅋㅋ

망고 2026-07-12 21:48   좋아요 1 | URL
와 그분 현명하신 분이군요ㅋㅋㅋㅋ
사실 요즘 엄청나게 발전한 피지컬 로봇 보면 쟤네가 삐끗해서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요. 미래가 어찌될까 상당히 궁금합니다. 로봇한테도 잘보이도록 노력해야하나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6-07-12 22:00   좋아요 1 | URL
그 분이 책에서는 AGI, ASI의 연구 개발을 막아야한다고 주장하기는 하던데요. 인공지능이 어느 쪽으로 튈지 알 수 없다고요. 이미 막을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거 같다고 그러더라구요.
솔직히 피지컬 로봇들이 언제까지 사람 말을 잘 들을지.... 나를 잘 봐줄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