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을 읽고 있다. 이 저자의 책은 『긍정의 배신』이 제일 유명한 것 같은데, 나는 2021년에 『200년 동안의 거짓말』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이웃님들과 함께 읽었다.

시작은, AI다.

인공지능에 관한 책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문송이며 기계치인 내가 관련 책을 계속해서 읽고 있는 이유는 한 가지다. 의문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질문은 인공지능의 의식에 대한 것이다. 인간 의식에 대해서도, 아직 학계에서 정해진, 혹은 확정된 이론이란 게 없다(라고 나는 알고 있다). 인간 뇌의 많은 부분은, 우주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다. 인간은 자신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아직도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은데, 그런 채로, 그런 환경 속에서 인간의 힘으로 인공지능이 탄생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인간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게 『AI, 신의 탄생 인간의 종말』의 저자들의 주장이다.

내 궁금증은 이 지점에 있다. 인공지능이 자기 결정권을 갖는가. 인공지능도 인간처럼, 인간의 뇌가 그러하듯이, 선호의 메카니즘에 따라 행동하는가. 경사하강을 통해 강화된 인공지능의 판단과 실행은 인간에게는 마치 '욕망'처럼 보이는데, 이것이 인간의 욕망처럼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

또 하나의 궁금증, 혹은 문제 의식은 '노동'에 대한 것이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친구들과 비교적 긴 시간 동안 페미니즘에 대해 읽어 오면서 느끼는 것은 각자 공명하는 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섹슈얼리티에, 어떤 이는 젠더에, 어떤 이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또 어떤 사람은 이것이 작동하는 권력의 방식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나는 가사 부불 노동과 강제적 이성애에 관심이 있다. 19년 동안의 전업주부의 생활을 끝내고, 아이들이 다 자라 이제 더 이상 내 손이 필요하지 않으니, 나는 워킹맘이 되어야 하나, 하는 고민과 갈등의 순간들이 나의 페미니즘 읽기에 녹아 있다. 사회적으로 계산되지 않고 재화로 환원되지 않는 노동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노동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오래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돈이 되지 않으니 의미가 없는 걸까? 돈으로 환산되지 않으니 내 노동은 무의미한 걸까? 남편의 카드로만 이루어지는 나의 소비는 비윤리적인 행동인 걸까? 돈을 벌어 오지 않으니 우리 가정 경제에 나의 기여는 전혀 없는 걸까. 맞다, 아니다를 오가는 시간에 『혁명의 영점』의 실비아 페데리치와 『페미니즘의 투쟁』의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그리고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의 크리스핀 델피를 읽었다. 『파크애비뉴의 영장류』도 빼놓을 수 없는 책이다.


답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나 나름의 해결책으로 생각했던 게 기본소득이었다. 이미 국가는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육아에 대해 일정 금액(조부모 돌봄 수당, 매월 30만원/서울시)을 지급하고 있다. 일반적인 가사 노동에 대해 국가가 임금을 지급하는 데까지 가는 길은 너무 멀 테니, 나는 기본 소득이 그 중간 단계 혹은 계산이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다른 방식보다 훨씬 효율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적은 금액이기는 하지만, 기초연금과 노령연금이 노인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고 있는 것처럼, 기본소득의 도입과 확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20대 초반의 젊은이에게, 가난한 예술가에게,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중년에게, 그리고 하는 일은 많지만 툭하면 '논다'는 이야기를 듣는 전업주부에게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작은 안전판, 확실한 시작점이 되어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에... AI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3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의 발전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지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노동과 직업에 대한 전망 역시 노동의 형식이 단순하고 물리적인 힘이 요구되는 업종에서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실제는 달랐다. 2040년과 2050년 사이를 예상했던 범용인공지능(AGI)의 출현이 10년 내외로 예상되는가 하면, 실제로 인공지능이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는 직업은 프로그래머, 변호사, 디자이너 등 종전의 예상을 뒤엎어 버리는 경우가 발생했다. 초인류 기업을 자청하는 빅테크 기업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노동하지 않은 인간은 소비하지 않을 것이고, 인간이 소비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바퀴로 운영되는 그들의 유토피아의 존재할 수 없기에, 그들은 기본소득을 들고나왔다. 인류 전체를 위한다기보다는 소비 중단과 경제 공황, 자본주의의 실패를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들조차도 기본 소득의 도입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때에, 『노동의 배신』을 읽는다.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의 등장으로 노동이 사라지려는 이 순간, 일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할 일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청소부, 웨이트리스, 요양원 식이 보조원, 월마트 매장의 직원의 일상, 고되고 더럽고 짜증 나는 순간을 기록한 이 책을 읽는다. 종일 일했는데도 항상 배고프고, 평생 노동했는데도 내 발 하나 뻗을 집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읽는다.

억울한 지점이라면, 이 책이 한국에 2012년에 나왔는데, 이제야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 책을 이제서야 만나다니.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구조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파헤친 그녀의 혜안이 놀랍다. 자신이 이런 일(고된 육체 노동)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가 건강하고, 이제까지 훌륭한 단백질 식사를 계속해왔고, 강도 높은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기에 그렇다는걸, 그녀가 문장 속에서 말할 때, 너무 흥분된다. 열심히 일해도 계속 가난한 삶에 대한 심오하고 발랄한 통찰이 가득하다.

간식 먹고 얼른 나가야 하는데, 그 다음이 너무 궁금해 2쪽만 읽고 나가야지 해서 책을 펼쳤는데, 변기 청소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말 그대로 똥 이야기. 먹어야 해서 잠시 덮었다. 이따가 다시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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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6-06-20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오하고 발랄한 통찰이라니! 궁금하네요. 제목은 많이 들어본 책인데요 ㅎㅎ 긍정의배신이 더 익숙하긴 하네요!
여행계획 짤 때 ai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데 이번에는 계속 실수를 해서 짜증내는 말투로 얘기하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졌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