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국 소설보다 한국 소설을 읽을 때 힘들다. 물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서, 일상의 삶을 사실적 문체로 나타내는 리얼리즘 문학도 불편하기는 한데, 아무래도 제일 불편한 건 역시나 한국 소설이다. 이 소설의 고민, 이 소설 속 주인공의 난관이 뭔지 알 것 같을 때, 번역이라는 필터 없이 감정의 진동이 훅 치고 들어올 때, 그럴 때 힘들다. 이전 세대의 작품들은 물론이고, 현시대의 소설이라면 더욱 그렇다. 잘 읽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잘 읽지를 못한다. 차라리 저기 머나먼 나라, 바닷가의 중세식 고성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이나 이탈리아 나폴리의 식당에서 셰프로 일하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게 속이 더 편하다. 현실 도피형에 더해 갈등 회피형인 나의 엄연한 현실이다.
프리다의 Housemaid 시리즈 세 번째 책인 『The Housemaid is Watching』의 배경은 미국이다. 2,30여 년 전쯤이라고 해야 할까. 미국 교외에 집을 장만한 한 가족이 등장한다. 여기까지는 '먼 나라 이웃 나라'의 먼 나라 이야기이고, 그래서 나는 편안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는데....
핵가족 이데올로기의 정점 딸 하나, 아들 하나, 남편 하나, 4인 가족의 생활이 너무나 한국적이다. 시작은 이사다. 무리한 대출을 받아 우리 집을 마련했을 때의 행복과 두려움, 전학 가게 된 아이들이 새 학교에서 잘 적응할 것인지에 대한 걱정, 아이들에게 놀이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한 (엄마의) 필사적인 노력, 워킹맘과 전업맘 사이의 묘한 긴장감,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 친구들과의 다툼. '죄송합니다'로 시작되는 사과의 말씀. 내 아이가, 내 아들이 유독 폭력적인가, 혼자 되묻는 시간. 사건과 고민과 갈등의 전개가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어머, 이 소설이 장르가 뭐야? 하고 다시 묻게 된다. 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건 딱 하나, 플러팅. 이웃집 여자의 적극적인 플러팅.
내 남편이 너무 잘생기고 멋지고, 말 그대로 완벽 핫가이라서 눈을 뗄 수 없다는 건 이해하겠다. 이런 상황을 이해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눈을 뗄 수 없다는 걸 이해하겠다는 의미의 '이해한다'이다. 그건 본능에 충실한, 그래서 자주 '자연스럽다'라고 불리는 행동이다. 핵심은 그 행동의 제어와 관련이 있다. 빤히 쳐다보는 것보다는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좋다. 쳐다보고 있는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다. 결혼한 지 이제 12년 차. '나'(화자)의 남편은 항상, 언제나, 일관되게, 어김없이 핫가이였고, 어디서나 여자들의 집중 공략을 받아온 사람이어서, 화자는 그런 상황에 일면 익숙해진 상태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다른 여자들이 힐끗대거나 가까이 다가와 핫가이와 대화를 시도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앞집의 이 여성, 시선이 노골적이고 매사에 적극적이며 자신의 매력을 새로 이사 온 이웃집 핫가이에게 어필하고 싶은 이 여성은 그와의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시도한다는 데 있다.
의심스러운 지점은 여기다. 나는 외국에 살아본 적이 없고,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자주 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의 실제 생활을 '책', 그중에서도 '소설'을 통해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전에 미국에서는, 혹은 현재 미국에서는, 이런 시도를 하는 여자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러니까, 이웃집 남자의 팔을 혹은 이두박근을 더듬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핫가이의 아내가 옆에 있는데, 자신의 남편이 바로 옆에 있는데, 이웃집 남자의 팔을 쓰다듬는 여성이 있단 말인가.
내가 좋아하는 로맨스 『The Love Hypothesis』에서 올리브는 교수 애덤과 사귀는 척을 하고 있다. (여차 저차한 이유 때문인데, 그 이유가 궁금하신 분들은 개인톡 바랍니다.) 올리브와 그녀의 친구들은 학과에서 주최하는 프리스비 경기에 반강제로 구경을 가게 된다. 작열하는 햇빛, shirtless 남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올리브와 애덤이 진짜 사귀는 줄 알고 있는 올리브의 베프 안(Anh)은 올리브더러 애덤에게 선크림을 발라 주라고 말한다. 올리브는 안 된다고 펄쩍 뛰고, 오히려 안이 놀란다. "왜? 왜 그게 부적절한 일이야?"


하여, 올리브는 안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학과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이 잔뜩 모인 그곳에서 애덤의 등에 선크림을 발라 준다. 이건, 자신의 남자 친구에게 할만한 행동이라고 한다. 안이 그랬다.
여기, 할만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한 여인이 있었으니, 아까 그 여성분 되시겠다. 자신의 남편을 바로 옆에 버려두고, 핫가이의 어깨에 정성 어린 손놀림으로 선크림을 발라주는 이 대담함. 이 과감성, 이 적극성.


진짜 세상은 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책에 있는 것이 모두 다 현실인 것도 아니겠지만, 이렇게 다시 내 의심은 한껏 솟구쳐 오른다. 연애할 때 남친은 물론이요,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의 손도 잘 잡지 않는 한국의 한 중년 여성은 그게 정말 궁금하다. 정말 이래? 그래, 정말? 일단 등 내밀고 있는 핫가이의 얼굴 한 번 더 보고, 다시 생각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