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하자는 말은 내가 했다. 분위기는 좋았고, 계속 상승모드여서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범야권 의석수 맞추기에 5만원 내기였다. 일단 범야권에 대한 정의가 필요했는데, 더불어민주당, 더불어 민주연합, 조국혁신당, 새로운 미래까지만 범야권으로 보기로 했다. 현재 이준석의 스탠스는 야권임이 분명하지만, 이준석은 곧 그 당으로 다시 들어갈 몸이니까 범야권에서 빼는 것에 합의했다. 부르는 대로 숫자를 노트에 적어 두었는데, 혼자 숫자를 정하지 못한 둘째가 이렇게 해서는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종이에 적어 내고 출구 조사 발표 직전에 다같이 보는 앞에서 공개하자고 했다. 이렇게까지 진지하지 않아도 됩니다, 고3님, 이라고 속으로 말하고는 그래, 그렇게 하자 했다. 보통 저녁에 배달 음식을 시킬 때는 한 가지만 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날은 내가 봄날무드라 2개를 시키라 했다. 1등 한 사람이 음식값을 계산하기로 하고, 엽기떡볶이와 60계 치킨을 시켰다.
출구 조사가 발표되고! 그날의 승자는 나였다. 나는 203, M1이 185, M2가 197, M3가 191 이었다. 기쁨의 함성을 외침과 동시에 그들의 믿음 없음을 탓했다. 그렇게 행복했고, 아침이 되니 출구 조사가 틀린 곳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1등인 M3가 10만원을 가져갔다. 5만원을 냈으니, 5만원 개이득. M1는 2등을 했다. 5만원을 냈고 5만원을 가져갔다. M2는 5만원을 냈고 떡볶이가 남았다. 나는 M1에게서 5만원을 빌려 내기에 참여했고, 떡볶이와 치킨을 많이 먹었다. 승자는 나였다.
친구들 단톡방에서는 새벽까지 개표방송을 보느라 피곤하다는 카톡이 올라왔다. 저항의 의미가 아니라, 생존의 의미로 집에서 대파를 키우고 있는 친구는 실망스런 마음에 몸져누웠다. 개헌저지선에 이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나 보다. 친구에게 힘을 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이 결과에 만족하나. 우리는 이 결과에 만족할 수 있나. 우리 3년을 살 수 있나. 이렇게 3년을 살아낼 수 있겠나.
며칠 전에 흥미로운 기사를 보게 됐다. 뉴스타파였다. <조국혁신당에 누가 표를 주었나? 광주서 최다, 경북서 최소 득표> (https://www.newstapa.org/article/Ma1sC)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조국혁신당은 24.25%를 득표해 12석의 의석을 차지했다. 받은 표는 687만 4,278표이다. 창당한 지 한 달 만에, 대통령 중심제의 분단국가에서 제3당이 이런 성적표를 받는다는 건 헌정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라 신기하고 놀라웠다.
제목처럼 조국혁신당은 광주에서 47.72%를 얻어 최다 득표했고, 대구에서 11.8%를 득표했다. 특기할 만한 건,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조국혁신당의 특표 결과이다. 조국혁신당은 63,429표를 얻어 30.93%를 득표율을 보여줬는데, 2위인 국민의 미래와 3위인 더불어 민주연합을 앞서 1위를 차지했다. 공무원의 도시, 이 정부에 소속된 공무원들이 투표로 속마음을 보여줬는데, 그들이 선택한 그 정당은 (윤석열 정부) ‘3년은 너무 길다’라고 외친 조국혁신당이었으며. 하하하.
서울에서 조국혁신당은 22.87%의 지지를 받았는데, 그중에 가장 높은 비율인 24.95%를 받은 지역이, 내가 사는 지역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사람들, 말 그대로 동네사람들이 그런 마음인지, 나는 몰랐다. 갑자기 우리 동네가 좋아지는 기현상 발생하게 되고.
서울 지역의 22.87%가 조국혁신당을 지지했는데, 7% 미만의 표를 얻은 곳은 모두 강남구 내 투표소였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거주 유권자들, 타워펠리스 1차,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근처의 투표소에서 5%에서 7%미만의 득표율을 보였다. 계급 투표임이 확실해지는 지점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20~25% 정도 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견을 밝힌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이 전국적으로 24.25%를 차지한다 해도, 현재 이 나라의 대통령이 더 낫다고 혹은 그가 속한 정당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압도적으로 많은 지역이 바로 그 지역이다. 왜 현 정부가, 윤석열 정부가 그래도 더 낫다고 생각하는가. 그들도 뻔히 아는 이런 상황 속에서. 바이든과 날리면과 일본에 대한 굴욕외교와 수출 감소와 경제 침체와 여러 정책 간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가 그들의 이해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 이외의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들은 이 정부를 지지한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비록 대통령이 윤석열이어도.
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을 비교해 보면, (아무도 안 물어보는데 대답하고, 아무도 안 궁금해하는데 입장 밝히는 나다. 아무도 안 시켰는데 혼자 비교하고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 그리고 강원도는 지지하는 정당이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충청도의 변화가 눈에 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역은 역시 가장 많은 투표수를 가진 서울, 경기 지역이다. 다음에도 그럴 것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강원도는 바뀔 가능성이 비교적 작으며, 충청도와 서울, 경기 지역은 살펴볼 것이다. 꼼꼼히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 결정할 것이고, 표를 줄 것이다. 도농 간, 세대 간 격차와 변화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0.73%는 참 아쉽고 또 아까운 차이이다. 승자독식의 어두운 그림자가 내게 드리워졌을 때, 내가 지지한 정당이 실패했을 때, 그건 더 무겁고 두려운 일임은 확실하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는 지금까지 민주당 후보로 나와 대통령이 되었던 어떤 대통령보다 더 많은 득표수를 얻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10,326,275표를 득표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12,014,277표를, 문재인 대통령은 12,423,800표를 득표했다. 이재명 후보는 16,147,748표를 득표했다. 모든 표를, 모든 힘을 다 끌어모아도 실패할 수 있다. 그렇게 실패했고, 그래서 우리 대통령은 윤석열이다.
하지만, 실망해도 오늘밤은 깊어가고 그리고 나서는 새 아침이 온다. 3년이 남았는지, 아니면 그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오늘은, 오늘의 기쁨을, 오늘의 위안을, 오늘의 김치만두를.
김치만두를 쪄서 김치만두를 먹고. 그리고 쉬자.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보자.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다음을 기약하는 나. 그런 나. 바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