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라아메드😘
지난 콘서트 무비는 얌전히 자리에 앉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지난밤(토요일)의 공연은 '싱어롱' 컨셉이라 걱정이 많았다. 나는 테일러 노래 4-5개 밖에 모르는데. 그것도 가사 없으면 부르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당대 최고의 위치에 오른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내가 말했다. 지난번에 다녀와서 글 쓰려고 했는데 못 썼어. 제목은 정했는데. <테일러는 되고, 힐러리는 안 되고>. 같이 가는 사람, 테일러 하얀 가디건에 테일러 빨간 목도리를 두른 사람, 싱어롱 표를 예매해 준 사람, 일본 공연 예매에 실패해 안타까운 마음을 영화관 가는 것으로 간신히 달래고 있는 테일러 왕팬이 답했다. 스위프트니까 가능한 거고, 클린턴이어서 안 된 거예요. 그래? 힐러리는 클린턴이잖아요. 테일러는 스위프트고. 힐러리 결혼 전 성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나는 아는데, 힐러리 결혼 전 성은 로뎀이야. 띠리링. 대화가 종료되었습니다.
스위프트가 올해 3월부터 미국 20여개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 중인 이 콘서트는 현재까지 300만여 관객을 동원하며 1조 원이 넘는 티켓 수입을 올렸다.
콘서트가 인기를 끌며 공연을 여는 지역마다 식당과 호텔 수요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자 ‘테일러노믹스(Taylornomics)’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에 미국 경제 들썩” 콘서트 실황 역대 최대 수입, 문화일보, 2023-09-02>
테일러노믹스, 스위프트노믹스는 예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미소지니(mysogyny)를 근간으로 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특별히 여성의 성 상품화가 당연시되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여성이 이만큼 성공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하얀 피부에 파란 눈, 금발, 큰 키, 모델 같은 몸매를 갖추고 있지만 동시에 가수이면서 과하게 춤을 못 추고, 섹시함에 목매달지 않아 오히려 부모들이 더 좋아한다는 단정한 옷차림의 그녀. 이 여성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테일러 왕팬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테일러가 ‘싱어송라이터’라는 점, 그리고 아이 없는 미혼 여성이라는 점이 그녀의 성공 비결 어쩌면 모두 다 알고 있는 성공 비밀일 수 있겠다.
내가 좋아하는 곡은 <Blank Space>와 <No Body No Crime>, <Lover> 등인데 이번에 꽂힌 곡은 <The Man>이다. 다른 분 블로그에 있는 가사와 해석 일부를 빌려온다.
<The Man>
They'd say I hustled, put in the work
다들 내가 노력파라고, 일을 열심히 한다며 떠받들었겠지
They wouldn't shake their heads and question
아무도 비난하지도, 의구심을 품지도 않았을 텐데
How much of this I deserve
내가 얻어낸 이 지위와 대우에 대해서 말이야
What I was wearing, if I was rude
내가 뭘 입든, 성격이 개같든
Could all be separated
모두 별개로 취급될 수 있었을 텐데
From my good ideas and power moves
내 좋은 아이디어들과 영향력 등과는 말이지
I'm so sick of running as fast as I can
온 힘을 다해 달리는 건 지긋지긋해
Wondering if I'd get there quicker if I was a man
내가 남자였다면, 더 쉽고 빠르게 이 지위를 얻었을까 궁금해하곤 해
And I'm so sick of them coming at me again
또 매일 빠짐없이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것들도 지긋지긋해
'Cause if I was a man, then I'd be the man
내가 남자였다면, 난 그런 사람이었을 거야
I'd be the man
그런 사람이었을 거야
I'd be the man
그런 사람이었을 거라고
[출처] [가사해석] 테일러 스위프트가 남자였다면? ‘The Man’|작성자 Onika Swift
연예인 혹은 셀럽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들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폭력이 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관심, 언론의 주목이 인기의 동력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세간의 다양한 평판이 성에 따라 확연히 구별된다는 게 중요한 포인트가 될 텐데, 많은 여성과의 염문설이 또 하나의 커리어로 인정되는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은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과의 사진 한 장만으로도 ‘이미지 추락’을 각오해야만 한다. 여성의 성취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평가절하된다. ‘실력으로 승부하라’는 말이 정당한 듯 들리는 세상에서, 재능 있는 여성이 각고의 노력으로 남성들이 이룬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었을 때조차 여성의 노력과 재능은 폄하되기 일쑤다. 페미니즘을 알기 전에 내가 식상하다고 생각했던 표현 그대로.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로.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자원과 시간이 필요하다. 예술을 다루는 분야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일은 길을 걷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작은 ‘조각들’을 단순히 모으는 일이 아니다. 만들고 고치고 다듬고 다시 고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의 시도를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것이 어떻게 확정되는지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출산과 육아와 나누어 쓴다고?
나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하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그녀가 결혼했는지를 검색했다. 나는 궁금했다. 결혼을 했는지, 아이가 있는지, 나는 그게 궁금했다. 아이 다섯을 키우며 소설가로서 자신의 세상을 완성한 박완선 선생님 같은 분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분은 천상계다. 보통의 여성, 보통의 인간들이 따라갈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소설가 한강도 그 일을 해냈구나. 밥을 짓고,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청소기를 돌리고... 그 후에, 그 남은 시간에...
최근 알라딘의 이웃님 서재에서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아니라 진지한 ‘패대기’ 사건이 있었다. (https://blog.aladin.co.kr/jyang0202/15058265) 한나 아렌트를 많이 읽지 않아도 안다. 그녀가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서라’고 말하고 있음을 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던 유대인 아렌트는 어떤 사람인가. 잠시였지만 시온주의자들과 협력했고, 급박한 유럽의 환경 변화 속에서 지하조직에서 유대계 망명자들을 돕기 위해 일했던 사람이다. 그 일로 인해 집중 조사를 받았고 자신만의 기지로 스스로 그 위기에서 걸어 나온 사람이다. 그가, 그랬던 그가, 유대인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서야 합니다.
여성만이 그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가부장제 5천년 미소지니의 역사 속에서 온갖 특혜를 누리고 살아왔던 인간 종이라면, 그에 대한 ‘적정한’ 태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갑자기 생각나서 정희진의 오디오 매거진 ‘인생은 상실, <너와 나>’의 조현철 감독 부분을 발췌해본다.
정희진(정) : ... 그건 감독님의 매력인 거 같아요.
조현철(조) : 저는 친구들한테 항상 그러거든요. 올려 치지 말라고. 특히나 남자들은 올려 치지 말라고. 흐흐.
정 : 그게 뭔 말이에요? 무슨 뜻이에요, 그게?
조 : 올려 친다는 거죠.
정 : 비행기 태운다고요?
조 : 네네, 그런. 특히나 남성들은 너무 오냐오냐 자랐기 때문에.
정 : 으하하하하. 하하하. 저는 저대로 굉장히 제 노선대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마음에 없는 말은 또, 못 합니다. 나름 까다로워요.
조 : 네네. 네.
정 : 저는 올려 친다는게 때린다는 건 줄 알았어요. 이렇게 젠더 방언이 있다니... 그런 이야기를 친구들한테 많이 전파해 주세요.
조 : 네, 친구들은 익히 알고 있어서.
정 : 감독님 주변의 남성분들은, 훌륭하다고 믿어도 될까요?
조 : 아.... 일단 그런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데, 과연... 남성이 훌륭할 수 있을까 생각...
정 : 흐흐....
조 : 그냥 조용히 자신을 좀, 죽이면서 살아야 그나마, 훌륭한 남성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정 : 남성들의 가장 큰 문제는 나대는 거잖아요.
조 : 네네네, 그렇죠. 그게 다 올려 쳐서 버릇이 그렇게 잘못 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무리는 테일러로 하자. 지하철 쩍벌남 잘생긴 그 남자가 바로 테일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