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실패했다. 『Normal People』를 마저 읽었고, 끝내 코넬과 화해하지 못했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성적인 사랑이란 누군가 위에 군림하는 힘, 혹은 다른 누군가의 힘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상상했다. 아라비아의 전통에 따르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마법의 힘에 굴복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양에서 사랑에 빠지는 것은 '홀리는 것'이며 아니면 '매혹되는 것'이다. 즉, 구속되는 것이며 무력해지는 것이다.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75쪽)
사랑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자주 쩔쩔맨다. 영어 단어로 표현하자면, ‘vulnerable’이 제일 가까울 듯싶다. 취약한 또는 연약한 (신체적, 정서적으로 상처받기 쉬움을 나타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허둥지둥, 안절부절못한다. 사랑의 원래 모습이 이래야 한다거나 혹은 사랑의 지향점이 그렇다는 뜻이 아니다. 현재의 삶, 지금 이 순간을 통째로 요구하며 총체적 난국을 불러오는 사랑이라는 이 황홀하고 끔찍한 인간의 활동 속에는 그런 측면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내가 어떤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어려운 문제는 타자로 하여금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에게는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혹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도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에 있습니다. (『망각과 자유』, 21쪽)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원하는 것은 사랑이다. 내가 그를 사랑하듯 그도 나를 사랑해주기를, 우리는 바란다. 그리고 그 사랑은 강압이나 협박, 회유를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얻어지는 사랑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보다. 그 사랑은 선물 같은 물질적 형태를 넘어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원하는 건, 그녀/그의 진심이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 나를 배려하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원하는 것은 그것 혹은 그것뿐이다.
Ever since school he has understood his power over her. How she responds to his look or the touch of his hand. (248p)
When they drew apart Connell looked her in the eyes and said: I love you. She was laughing then, and her face was red. She was in his power, he had chosen to redeem her, she was redeemed. (262p)
코넬의 이러한 생각, 판단은 소설 속 상황을 봐서는 옳다고 여겨진다. 그는 마리안보다 더 강하다. 더 강력한 힘을,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코넬이 남자여서 그런 것인지, 혹은 마리안보다 더 안정적인 가정 환경 속에서 사랑받고 자랐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두 가지 모두일수도 있겠다.
코넬은 자신이 마리안에게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You know I love you.’라고 먼저 말할 수 있었다. 마리안을 괴롭히는 친오빠에게 한 번만 더 마리안을 때리거나 나쁜 말을 하면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할 수도 있었다. 코넬은 자신의 사랑, 마리안에 대한 자신의 사랑에 대해 확신했다. 혼란스러운 건 마리안이다. 마리안은 코넬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도, 그 말이 진심임을 믿어도, 자주 혼란에 빠진다.
나는 코넬이 마리안을 사랑한 것보다 마리안이 코넬을 더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사랑에서는,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다. 더 사랑한 마리안은 덜 사랑한 코넬보다 약자다. 나는 코넬이 마리안에게 자신의 사랑을 더 많이 보여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리안을 지배하는, 마리안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코넬이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보여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매달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애절하게, 더 간절히, 더 많이. 그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나의 애닳음, 완결에 대한 끝없는 강박이 코넬을 이렇게까지 밀어붙였지만, 코넬은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I never feel lonely when I’m with you. … That was kind of a perfect time in my life…. "라고 말하면 뭐하니. 코넬은 마리안을 떠나갈 것이다. 마리안의 추측처럼 돌아오더라도 예전의 코넬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가라, 코넬. 그냥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