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 해러웨이에 대한 글을 쓰게 된다면 “이원론, 오리엔탈리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상황적 지식”을 태그로 삼아야할 것 같다. 그리고 사이보그.
『도나 해러웨이』의 조지프 슈나이더는 해러웨이의 ‘사이보그’를 이렇게 정리한다.
특히 해러웨이의 사이보그를 통해 우리는 젠더가 없고, 그에 연결된 오이디푸스 가족 이야기의 끝없는 순환이 없는 세계를 희망할 수 있다. 그것은 기독교인이 아니고, 여성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으며, 에덴동산이 있다 해도 인식하지 않았을 것이고, 전지한 아버지가 조화롭게 마련한 이성애적 생식 결합을 통한 구원에 의존하지 않는다. 해러웨이는 페미니즘 과학소설이 이미 유망한 사이보그 서사를 몇 가지 제공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한다(Ibid.: 106, n.27). (113쪽)
‘젠더’의 각주를 찾아보면, 1991년의 인터뷰에서 해러웨이가 사이보그를 “다염성polychromatic의 소녀, 나쁜 여자아이”(299쪽)라고 말했음을 알게 된다.
『해러웨이 선언문』의 역자 황희선은 『오늘의 SF #1』의 <도나 해러웨이 – 사이보그, 그리고 SF적 상상력의 유토피아적 모멘텀>에서 이렇게 썼다.
해러웨이가 볼 때 사이보그는 우선 이분법적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출현하는 하이브리드를 뜻한다. 서구 근대의 이분법적 사고관에서는 본성상 이질적인 존재들, 비단 유기체와 기계만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이 뒤섞여 네트워크를 이룬 상태를 일컫는다. 더 중요한 점은 하이브리드는 정의상 순수하지 않다는 것이다. 순수한 것은 범주가 명확한 존재들이다. 예컨대 이성애주의적인 규범에 부합하는 여성과 남성, 영혼 있는 인간과 영혼 없는 기계라는 개념이 그렇다. 하지만 인공지능 윤리에 대해 토론이 벌어지고 개인이 '생명의 암호’인 염기서열로 특정되어 데이터베이스로 관리되는 오늘날 그 모든 이분법은 흐트러진다. 출생 시 사회적으로 지정된 것과 다른 성정체성을 지닌 사람들도 남녀이분법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단일 설계와 의지에 따라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조합된 신의 피조물과 달리, 각각의 부분이 서로 원리상 이질적인 사이보그는 모순이 가득한 존재이다. (294-5쪽)
이분법적 경계를 무너뜨리며 출현한 하이브리드가 바로 사이보그이며, 우리 자신을 그런 사이보그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이전에 각각을 구분하는 기준점이었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작게 느껴질 것이다. 여성 범주에 대한 통찰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여성’이라고 부를만한, ‘여성’이라고 칭할 만한 존재 자체가 부재할 수 있다는 전망에 대해서는 좀 묘한 느낌이 든다.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에는 ‘여성’ 공통의 경험에 대한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던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피해자됨’, ‘피해자성’에 대한 이야기, 정체성에 기반한 페미니즘의 한계를 지적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절판된 책이고, 중고로 구입하려면 120,000원. 도서관을 이용하시길.